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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41화 (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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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금 룩칼이라고 불렀나?”

룩칼은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물었다.

“내가 잘못 불렀는가? 수인족을 이끄는 룩칼 장군.”

리얀은 이렇게 말하고는 손바닥을 단검으로 그어 피를 낸 뒤, 그것을 룩칼에게 날려 보냈다. 순간 자이스 장군의 얼굴이 일렁이는 빛이 되어 사라지고 룩칼의 본래 모습이 나타났다.

“도마뱀! 이럴 줄 알았다고요!”

세이라가 룩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룩칼의 비늘로 가득한 피부와 등에 접혀 있는 날개가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본모습이 드러났다고 해도 그렇게 당황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흑마법사의 마법은 강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물의 본질까지 바꿀 수는 없다. 나는 그대가 수인족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제아무리 자이스 장군의 외형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수인족 고유의 움직임까지 바꿀 수는 없는 법.”

“보잘것없는 장군에 불과한 내 이름을 기억해 주다니, 이거 영광이로군, 피바람을 부르는 마녀. 크크크.”

룩칼은 미소를 지으며 빈 콜라잔을 리얀 앞으로 들어 경의를 표했다.

“룩칼. 그대는 내가 상대했던 장군이다. 당연히 기억한다. 너의 용맹함도, 그리고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기억한다.”

동족. 룩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세이라. 룩칼 장군에게 흑마법사에 관해서 물어보겠는가?”

리얀이 세이라에게 말했다.

“룩칼 장군. 흑마법사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겠어요?”

세이라가 물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룩칼은 갑작스러운 질문이 의아해서 이렇게 되물었다.

“어라? ‘좆까 씨발’이라고 대답하지 않네요?”

세이라가 눈을 깜빡거리며 리얀에게 말했다.

“용족은 흑마법사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제아무리 강력한 흑마법사의 정신감응 마법이라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룩칼은 다른 흑마법사의 부하들과는 달리,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우리와 싸웠다는 말이다.”

“엄밀히 말해서 지금도 싸우고 있소, 리얀. 난 아직 전쟁을 끝내지 않았으니까.”

룩칼의 말투는 어느새 리얀을 존중하는 투로 바뀌었다.

“그렇다. 만약 이곳이 우리의 고향이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적으로 만나 서로를 죽이려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곳이고, 다른 곳에서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법이다. 룩칼. 나는 너를 죽이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흐음….”

룩칼은 리얀의 눈을 바라보았다.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죽이지 않겠다고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룩칼은 리얀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룩칼이 이끌던 수인족 일개 군단을 마법 한 방으로 불태워버렸던 리얀이었다. 지금 룩칼을 죽이는 것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게다가 리얀의 옆에는 암살자가 서 있었다. 암살자에게 이 정도 가까운 거리를 허용했다는 것은 이미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콜라 한 잔 더 마시고 싶은데. 혹시 들겠소?”

룩칼이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물었다.

“말했듯이 그런 단맛을 먹으면 혈관이 막혀서 죽게 된다.”

“난 마시겠소. 옆에 있는 암살자, 이름이 세이라? 그대는 마시겠는가?”

“에이. 제 상관이 안 마시겠다고 하셨는데 제가 마실 수는 없죠.”

“그럼 나 혼자 마시겠소. 괜찮겠소, 리얀?”

“룩칼.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는 것이 좋다.”

리얀이 말하자 붉은 핏방울이 허공에 떠서 룩칼쪽으로 다가가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룩칼의 이마에 딱 달라붙었다.

“인장이로군. 하나 물어보지. 손바닥에서 피는 늘 흘리고 있는 거요?”

룩칼은 피식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필요할 때만.”

“그것참 불편하겠군. 단검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겠어. 언제 피를 흘려야 할지 모를 테니까. 크크크. 그건 그렇다 치고, 자이스 장군도 이걸로 죽였소?”

룩칼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다. 그대도 같은 방법으로 죽고 싶지 않다면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허튼수작 부리는 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오, 리얀. 정면승부라면 또 모를까. 크크크.”

룩칼은 냉장고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리얀과 세이라도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니까, 리얀. 그대는 정보가 필요한 거야.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 다른 놈들을 심문해 봤겠지. 그리고 다들 ‘좆까 씨발’이라고 말하고 죽어버렸을 테고. 정보를 모으고, 전략을 세우고, 단숨에 싸워서 승리한다. 이게 리얀의 방식이잖아. 그래서 내 정보가 필요하다는 거고. 내 말이 맞소? 크크크.”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며 룩칼이 말했다.

“맞다.”

“내가 적장에게 정보를 흘릴 것 같소? 목숨이 아까워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컵에 콜라를 채우며 룩칼이 물었다. 탄산이 콜라에서 빠져나오는 시원한 소리를 냈다.

“아니.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그대의 부하들을 아낀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내 부하들? 크크크. 어떻게, 내 부하들을 여기서 한 번에 다 죽여 버릴 생각이신가? 그,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쥐꼬리만도 못한 에테르를 가지고?”

“쥐꼬리보다는 많다, 룩칼 장군.”

리얀이 준비해 온 생수병을 들면서 말했다. 우시준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사장이 모는 차에서 가지고 온 생수병이었다.

그리고 생수병에는 리얀의 피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정도 에테르면 단숨에 이 건물을 날려버릴 수 있다. 이 건물 안에 있는 네 부하들은 다 죽을 것이다.”

“그야… 그렇겠군.”

룩칼은 리얀의 말이 허세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저 정도 에테르라면 지하 2층 지상 5층 건물 정도는 통째로 날려버리고도 남을 것이라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룩칼은 태연히 굴어야 했다. 적 앞에서 겁먹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면 여기를 날려버리겠다는 건가? 날 죽이고 난 후에 날려버릴지, 죽이기 전에 날려버릴지가 궁금하군. 크크크.”

룩칼은 허세를 부렸다.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티를 내고 싶었다.

“날려버린 뒤가 될 것이다. 네 부하가 모조리 죽는 것을 네 눈으로 확인시킨 뒤, 다시 한번 물을 것이다. 날 도울 것인지, 아니면 부하들을 따라 죽을 것인지.”

“상황이 급박하긴 한가 보군, 리얀. 내가 아는 리얀이라면 훨씬 더 치밀한 작전을 세웠을 것 같은데. 지금 한 말은 결국 나에게 지금 당장 죽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리얀. 내가, 이 자부심 높은 용족의 장군이, 그대의 협박에 굴복할 것 같은가?”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룩칼 장군.”

리얀은 담담하게 말했다.

무표정한 리얀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에서 이미 여러 차례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해보았고, 하나같이 협조를 거부했고, 그래서 모두 죽일 수밖에 없었던 리얀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룩칼은 콜라가 가득 찬 컵을 들고서 천천히 다시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면서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캬아! 이 톡 쏘는 맛! 이곳에 와서 가장 좋은 게 이 콜라를 맘껏 마실 수 있는 점이야. 크크크. 단맛? 혈관? 오래 살 생각이었다면 이 전쟁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거야, 리얀. 크크크크.”

“…결국, 그대도 죽음을 택할 생각인가?”

리얀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룩칼은 어깨를 으쓱했다.

“돌이켜보면 너희 인간들은 우리 용족을 늘 두려워했지.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고, 정신감응 마법이 통하지 않고, 그대들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하늘을 날 수 있는 우리 용족을 멸종시키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가?”

“멸종이라니. 과장이 지나치다, 룩칼. 용족을 차별하는 정책은 있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작은 섬에 가두고 자유를 빼앗았지. 그건 우리 용족에게는 죽음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야. 크크크.”

“보호구역을 설정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고 나면 나도 보호구역에 가두실 텐가? 크크크크.”

룩칼은 콜라를 다시 한 모금 들이켰다. 탄산이 목구멍을 따갑게 찔렀다.

“잠깐만요.”

세이라가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 하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 이거. 룩칼 장군이 배치한 예비병력 아닌가요?”

세이라가 가리키는 것은 길 건너에 배치한 승합차였다. 그리고 그 승합차를 향해서 처음 보는 검정 승합차가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뭐지?”

룩칼은 혼잣말을 하며 승합차와 통신을 하기 위해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급하게 달려온 승합차가 멈추더니 안에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이 쏟아져 내려왔다.

“외부승합차 팀! 외부승합차 팀! 지금….”

타타타타탕!

룩칼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자동소총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룩칼의 부하들이 타고 있던 승합차는 순식간에 벌집처럼 구멍이 뚫렸다. 사방으로 파편이 튀는 것이 CCTV 화면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리얀!”

룩칼은 반사적으로 리얀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리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리얀도 지금 벌어지는 일이 도대체 뭔지 알 수 없는 게 틀림없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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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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