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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51화 (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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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철은 룩칼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룩칼은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배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을 뿐이다. 공주를 납치하는 일을 함께할 이유는 없다.

“오늘 행사는 저녁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대는 우리를 도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흑마법사에게 직접 물을 수 없다면, 공주에게 물어야 할 것 아닌가?”

리얀이 룩칼에게 말했다.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그 전에 진실이 드러나겠지. 진실을 알고 있는 홍 대표를 최고의 암살자가 미행을 하고 있으니 진실이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어? 크크크.”

“진실이 간단하다면 그럴 것이다. 간단하다면.”

리얀은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

“복잡하다고 생각하나 보네? 크.”

“이 나라는 거대한 규모를 가진 국가다. 이런 나라의 권력 구조가 간단할 리가 없지 않은가?”

“권력. 국가권력이라.”

“흑마법사는 이곳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복잡한 파벌 싸움에 얽혀 있을 것이다. 이곳은 투표를 통해서 권력이 교체되지만, 지나간 권력도 목숨을 부지하고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곳이라 들었다. 흑마법사가 누구와 손을 잡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상대하는 적도 달라질 것이다.”

“나는 그런 거 몰라, 리얀. 복잡한 거. 그런 걸 알았으면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긴 한데 말이야. 크크크.”

룩칼이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며 말했다. 리얀도 자연스럽게 룩칼의 발끝을 향했다. 룩칼은 발끝을 까딱거리며 발장난을 치고 있었다.

“과정은 복잡할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간단해. 납치? 뭐하러 그런 복잡한 일을 해? 그냥 가서 물어보면 되잖아. 안 그래? 크크크.”

“물어본다고요? 마셰라, 아니, 일리스 공주한테 가서요? 직접?”

학철이 룩칼에게 물었다.

“더 간단한 방법 있어? 있으면 그렇게 하고. 크크크.”

룩칼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직접 가려면….”

학철이 뭔가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리얀이 가만히 있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학철은 반사적으로 입을 닫았다.

“그래. 천천히 말해라, 세이라.”

홍 대표를 따라간 세이라가 뭔가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정신감응 마법인지 인장인지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철이나 룩칼은 들을 수 없었다.

“…안 되겠다. 학철! 이리로.”

리얀이 학철을 불렀다. 학철은 얌전히 리얀의 명령을 따랐다. 그러자 리얀은 거침없이 손바닥을 칼로 죽 그어 피를 내더니 학철의 목 뒤에 묻혔다.

“으악!”

“조용히! 눈 감아!”

학철은 놀랐지만 바로 다음 순간 리얀이 소리를 친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학철이 눈을 감자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세이라가 보고 있는 도로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홍 대표의 차가 보였다.

“보이시죠? 그런데 홍 대표 앞에 있는 저 큰 차가 계속 길을 막고 있어요.”

세이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큰 차는 무엇인가, 학철?”

리얀이 물었다.

“저거, 츄레라요. 아, 그러니까 트레일러요. 대형 짐차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앞에 있는 바퀴달린 부분이 뒤에 있는 저 큰 짐칸을 끄는 형식이죠.”

학철이 설명했다. 그런데 학철도 저 정도로 큰 트레일러가 도심을 달리는 건 거의 못 본 것 같았다.

세이라는 건물 위에서 위로 뛰어가면서 홍 대표를 추적하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야는 사람의 달리는 것처럼 흔들렸다. 학철은 흔들리는 영상 때문에 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저 큰 차가 계속 앞서서 가고 있어요. 홍 대표는 뒤를 따르고 있고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죠?”

이번에는 세이라가 물었다.

학철은 차량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트레일러의 속도는 느렸고, 홍 대표의 차는 추월하려면 얼마든지 추월할 수 있는 상태였다.

“아까부터 계속 이 상태라고 했죠? 혹시 앞에 있는 큰 차에서 누가 총으로 위협하거나 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학철이 세이라에게 물었다.

“아뇨. 전혀요.”

세이라가 대답하는 순간, 홍 대표 차의 차창이 열렸다. 그리고 두 개의 핸드폰이 차량 밖으로 던져졌다.

“핸드폰을 버렸네요? 두 대인 걸로 봐서 사장 것 하고 홍 대표 것인가 봐요. 아… 그리고 한 대 더 버려지네요. 저건 아마 가히라는, 그 여성 것이겠지요?”

세이라가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어?”

앞서가던 트레일러가 속도를 천천히 줄이며 도로에서 벗어나 공원 입구 쪽으로 들어섰다. 홍 대표는 그 뒤를 따랐다.

세이라도 건물에서 내려와 공원 쪽으로 향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야에서 이제는 흔히 보는 일반적인 시야가 되었다. 학철은 멀미할 것 같은 느낌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트레일러의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트레일러에서 발판이 뻗어 나왔다. 홍 대표의 차는 그 발판을 타고 그대로 트레일러의 내부로 들어갔고, 다음 순간 발판이 회수되면서 문도 닫혔다.

홍 대표의 차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맙소사! 보셨어요? 저 큰 차가 홍 대표 차를 삼켜버렸어요!”

세이라가 소리쳤다.

“학철.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리얀이 물었다. 학철은 눈으로 보면서도 지금 벌어진 사건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서울 시내에서 이런 광경을 보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음… 어떤 사람도 홍 대표 차를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나봐요. 그래서 저런 방법을 쓴 거겠죠.”

“그건 알겠다, 학철. 그런데 저런 일이 흔한 일인지 알고 싶다. 큰 차 안에 작은 차를 숨기는 일. 이곳에서 자주 일어나는가?”

“아뇨. 전혀요. 저도 처음 봐요, 저런 거.”

리얀의 질문에 학철은 거의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잠깐만요. 지금 큰 차가 공원을 지나서 다른 곳으로 가요. 어떻게 하죠?”

세이라가 다급하게 물었다.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 흐음….”

리얀은 잠깐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사는 학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다른 곳에서 온 리얀 입장에서야 더욱 당황할 법한 상황이었다.

“세이라! 일단 홍 대표를 삼킨 그 큰 차를 미행하라. 중간에 홍 대표가 내릴 수도 있으니 그 점 주의하고.”

리얀이 세이라에게 지시했다.

“옙!”

세이라는 경쾌하게 대답을 하더니 공원 안으로 들어가 뛰기 시작했다. 덕분에 학철은 다시 멀미가 나기 시작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리얀이 손짓을 한 번 보내자 세이라의 시야는 사라졌다.

학철은 눈을 떴다. 이제 더 이상 세이라가 보는 광경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꼭 자신이 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숨이 다 찼다.

“홍 대표는?”

룩칼이 물었다.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론가 몰래 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아마 그 행선지에 따라서 홍 대표의 의도가 드러날 것이다.”

“그래. 그럼 인제 어떻게 할 거야? 응? 직접 가서 물어볼 거야, 아니면 그냥 여기서 가만히 기다릴 거야? 크크크.”

룩칼이 물었다.

“룩칼. 네 의문이 풀려야 홍 대표의 다음 행동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렇게 거대한 차까지 동원해서 홍 대표를 이동시키고 있으니 목적지에 금방 도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룩칼. 그대의 말을 따르겠다.”

“오! 내 말을 들으시겠다? 내가 적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닌가? 크크크.”

“나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뿐이다, 룩칼. 홍 대표가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모으고 싶을 뿐이다.”

“좋아, 좋아. 그럼 가지. 가자고. 학철.”

룩칼이 사장이 타고 온 게스트하우스 승합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학철은 운전석에 앉았다. 게스트하우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미 몇 번 몰아본 경험이 있는 승합차였다. 그때마다 승합차는 관광객으로 꽉 차 있었다.

물론 지금은 룩칼과 리얀, 단둘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뿐인 승합차가 관광객으로 가득 찬 승합차보다 몇 배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리얀과 룩칼이 승합차 뒤에 탔다. 학철은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뒤에 시동을 걸었다.

“어디로 가요?”

“룩칼. 어디로 가야 하는가?”

“네비 찍어줄게. 크크크.”

룩칼은 몸을 운전석 쪽으로 빼서는 내비게이션을 조작했다. 목적지는 합정동과 홍대 중간쯤이었다.

“상상마당 지나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 햇살 엔터테인먼트. 내가 가깝다고 했잖아. 크크크.”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학철은 차를 몰고 가면서 세이라의 시야를 생각했다. 그리고 거대한 트레일러와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가던 홍 대표의 차를 생각했다.

‘도대체 누구지? 무슨 목적인 거지?’

아마 리얀도 자신과 같은 궁금증을 품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궁금해도 트레일러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풀리지 않을 의문이기도 했다.

차는 합정역을 지나 상수역 쪽으로 향하다가 사거리에서 동물병원과 페인트가게 중간을 지나 서교동 쪽으로 향했다.

“저기요, 햇살 엔터테인먼트, 거기 흑마법사 본거지 중 하나 맞지요? 그럼 거기, 지키고 있는 사람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룩칼 님 같은… 사람요.”

학철이 운전을 하며 물었다.

“물론이지. 리얀, 나는 배신하지 않겠다고 했지, 돕겠다고는 하지 않았어. 만약 싸움이 벌어져도, 나는 가만히 있을 거야. 크크크.”

룩칼이 놀리는 투로 말했다.

“도울 필요 없다, 룩칼. 방해하지만 마라. 머리통 날아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리얀이 룩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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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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