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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53화 (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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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사내의 가슴 한가운데에 뒤가 보일 정도로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사내는 폭발과 동시에 사지를 쭉 하고 뻗더니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뭐 하느냐, 학철! 정신 차리라고 했다!”

“예, 예? 뭘….”

“무기를 회수해라. 그리고 무장하고. 어서!”

리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철은 쓰러진 사내가 쥐고 있던 권총을 집어 들었다. 묵직한 토카레프 권총이었다. 학철은 권총의 장전 슬라이드를 당겼다. 약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슬라이드를 당기자 약실 안에 들어있던 실탄이 금속음을 내면서 튕겨 나갔다.

학철은 슬라이드를 고정한 다음 탄창을 분리했다. 탄창 안에는 5발의 실탄이 들어있었다.

‘총알은 귀하지….’

얼른 바닥에 떨어진 총탄을 집어 든 학철은 탄창에 그것을 밀어 넣은 다음, 탄창을 결합하고 슬라이드를 전진시켰다.

철컥!

금속음이 무겁게 학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데 내가 진짜로 권총을 쏠 수 있을까? 사람을 쏠 수 있을까? 내가?’

학철은 능숙하게 토카레프 권총으로 사람을 쏘던 홍 대표를 떠올렸다. 홍 대표는 냉정한 표정으로 아주 능숙하게 총을 쏘았다. 심호흡을 한번 깊게 했다.

‘홍 대표 흉내를 내는 거야. 그래. 그렇게 하면 될 거야.’

학철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리얀이 건물 1층 로비로 들어갔다. 학철은 잽싸게 그 뒤를 따랐다.

로비는 엉망진창이었다.

화분은 모조리 박살이 나 있었고, 바닥에는 피와 절단된 사지가 뒹굴고 있었다. 절단된 시체들이 꿈틀거리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잠시 대기한다.”

리얀은 이렇게 선언하고는 정신을 집중시켰다. 아마도 마법으로 건물 내부 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 학철은 위쪽에서 들리는 소음에 집중했다. 황급히 뛰어가는 구둣발 소리, 비명 소리, 그리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쪽 계단으로 간다. 학철. 뒤를 봐라.”

“예!”

학철은 이렇게 말하고는 리얀과 등을 대고 뒷걸음질로 리얀을 따랐다. 리얀은 아주 천천히 움직였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계단을 올라갈 때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헛디뎠다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어디 한 군데 부러지고 싶지는 않았다.

“학철!”

뒷걸음질로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리얀이 소리쳤다. 누군가 2층 계단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학철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2층 쪽으로 총구를 겨눴다. 총구 앞에는 조직원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사내가 권총을 들고서 리얀과 학철 쪽을 겨누고 있었다.

탕!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리얀의 앞에 사내가 발사한 총탄의 탄두가 허공에 멈춰 있었다. 이미 한 번 본 광경이었다.

“어, 어….”

사내는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벌리고 기묘한 소리를 내었다. 다음 순간, 박혀 있던 탄두는 사내 쪽으로 되돌아갔고, 탄두를 가슴에 직격당한 사내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내 뒤를 봐달라고 했더니, 내가 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겠느냐?”

리얀이 학철을 비난했다.

“아! 몰라요! 내가 데리고 가 봐야 방해만 될 거라고 했잖아요!”

학철은 화가 나서 이렇게 소리쳤다.

사실 학철이 화가 난 것은 적이 분명히 총을 겨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응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 때문이었다. 만약 방아쇠를 당겼다 해도 정당한 방어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학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됐다. 너는 뒤에 누가 오는지만 지켜보다가 알려주면 된다.”

리얀은 이렇게 말하곤 계속해서 계단을 올랐다. 학철은 풀이 죽어서 그대로 리얀의 뒤를 따랐다.

2층에 도착한 뒤, 리얀은 고개를 들어 위쪽을 살펴보았다. 학철도 그렇게 했다. 1층 로비에 들어섰을 때부터 들리던 소음은 이제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발걸음 소리도, 비명도, 이제는 간격을 두고 가끔 울리고 있었다.

“이제 정리가 된 모양이다.”

“쟈론… 맞나요?”

“그렇다. 이제 3층으로 올라가면 쟈론을 만나게 된다. 절대로 급하게 움직이지 마라. 쟈론의 검술은 너무나도 빠르고 강해서 자칫 휩쓸리기라도 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천천히 움직이기만 하면 그, 쟈론의 검술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겠죠?”

학철이 의심 가득한 투로 리얀에게 물었다.

“나도 모른다. 그건 순전히 쟈론의 심리상태에 달려 있다. 우리는 그저 쟈론이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은 상태이기를 빌어야 할 것이다.”

학철은 리얀의 등 뒤에 딱 달라붙어서 절대 벗어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평온했다. 간간이 들리던 소음도 멎었다. 이제 다 쓰러진 모양이었다.

“쟈론!”

3층에 오르자마자 리얀이 고함을 쳤다. 학철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숙였다. 큰 소리에 쟈론이 반응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3층에 서 있는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바닥에 쓰러져 죽었거나 곧 죽을 사람들뿐이었다. 그들 가운데 서 있는 사내는 피를 뒤집어쓴 꼴로 리얀 쪽을 바라보았다. 학철은 번쩍이는 눈빛만으로도 겁이 더럭 났다.

“쟈론.”

리얀이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어라? 피바람을 부르는 마녀? 리얀?”

쟈론은 의외라는 듯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쟈론은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상태였다. 두 손에는 장검을 들고 있었다.

갑옷은 판타지 영화나 만화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 가슴에 금속판이 있었고, 어깨와 팔뚝에도 금속판이 둘려 있었다. 허벅지와 정강이에도 금속판이 있었다. 하지만 관절 부분은 그냥 텅 비어있었다. 투구는 머리만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꼭 수박을 뒤집어쓴 것 같은 모양이었다. 허리에는 뭔가를 차고 있었는데, 아마도 개인물품을 수납할 수 있는 복대인 모양이었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보던 온몸을 보호하는 풀 플레이트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에 비하자면 초라해 보일 법도 했다. 하지만 쟈론이 뒤집어쓰고 있는 피의 붉 빛 때문에 볼품없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들고 있는 칼만큼은 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학철이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도대체 몇 명을 베었을지도 모를 칼날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쟈론은 붉은 천으로 칼날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렇다, 쟈론. 오랜만이다.”

리얀이 말했다.

“응. 오랜만이네.”

쟈론도 눈짓으로만 인사를 보내더니 투구를 벗고는 좀 전에 피를 닦아냈던 붉은 천으로 이마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핏물을 닦아냈다.

쟈론은 상당한 미남이었다. 머리는 마치 무슨 죄수처럼 짧게 잘랐는데, 피부는 번쩍이는 갈색이었다. 콧날이 아주 높고 눈도 부리부리한 것이, 꼭 다큐멘터리에서 본 중동의 귀족 같은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온 거 아냐? 여기 혼자 정리하느라 애먹었는데.”

쟈론은 이렇게 말하곤 들고 있던 장검을 한 번 털었다. 바람을 가르는 칼날의 소리가 마치 채찍처럼 날카롭게 울렸다.

“마지막 전투에서 보지 못했던 거로 보아 쟈론, 그대가 그리 빨리 전투에 참여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에이. 마지막 전투에서 나는 후방 지원을 했어. 잔당들이 후방에서 교란작전을 펼쳐서 그걸 막아야 했거든. 그런데 흑마법사가 차원이동문을 열고 도망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달려서 바로 통과했다고. 리얀. 네가 통과한 직후였을 거야.”

쟈론이 리얀 쪽으로 걸어오면서 말했다. 학철은 리얀의 등 뒤에 숨어서 어깨너머로 다가오는 쟈론을 힐끔거리며 관찰했다.

“쟈론. 왜 차원이동문을 통과하자마자 나를 찾지 않았는가?”

“무슨 소리야? 당연히 찾으려고 했지. 그런데 이곳이 워낙 사람도 많고 복잡해서 못 찾은 거야. 그나마 천만다행인 게 오툴을 만났거든. 오툴 덕분에 정신감응 마법으로 이곳 언어도 배울 수 있었고, 또 흑마법사 일당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도 얻었지.”

쟈론이 리얀 앞에 섰다. 리얀도 큰 편이지만 쟈론은 훨씬 더 컸다. 학철은 자신보다도 훨씬 더 큰 걸 보면 아마 쟈론의 키는 거의 2m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다.

“뭐야? 벌써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가?”

쟈론의 뒤편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리키 곽!”

학철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리키 곽.

키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다부진 체격. 반백의 머리를 완전히 뒤로 넘겨서 고정한 머리 스타일. 금목걸이와 단정한 회색 정장. 방송에서 본 지는 좀 되었지만 학철이 기억하는 얼굴 그대로였다.

“네가 여기 대장이냐?”

쟈론이 칼날을 리키 곽 쪽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내 부하들을 아주 잘도 썰어 넘기더군, 쟈론. 전장에서 본 적은 없지만 쟈론이라는 이름이 그냥 얻어진 게 아니란 건 잘 알겠어.”

리키 곽은 이렇게 말하면서 주먹 관절을 꺾어 우드득 소리를 냈다.

“허튼짓하지 마라!”

바로 그 순간, 리얀이 리키 곽 쪽으로 손을 뻗어 핏물을 뿌렸다. 그러자 리키 곽의 모습은 사라지고, 비슷한 체구의 다른 형태가 나타났다.

“헉! 코뿔소!”

학철은 리키 곽 모습을 하고 있던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괴상한 존재로 바뀐 것을 확인하자마자 이렇게 내뱉고 말았다.

“너, 수인족이구나?”

쟈론이 말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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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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