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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56화 (5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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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공주를 여기 놔두고 간다고 해도 맹세가 깨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공주.”

리얀은 침착하게 말했지만 분명 당황한 기색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말했다.

“자. 그럼 간단하네. 어차피 맹세는 깨어지게 되어있고, 내가 죽는 걸 보고 싶은 거야, 아니야? 그것만 선택하면 되겠네. 칫.”

일리스 공주는 들고 있던 38구경 리볼버 권총의 해머를 뒤로 당겨 고정시켰다.

철컥!

싸늘한 금속음이 방 안에 울렸다. 해머가 후퇴 고정 된 리볼버는 방아쇠에 머리카락만 닿아도 발사될 정도로 예민해진다.

“다들 움직이지 마! 리얀! 마법 쓰겠다고 손끝만 움직여도 내 머리통은 날아갈 거야. 쟈론! 숨도 크게 쉬지 마. 조금만 움직여도 난 죽어. 알겠어?”

방 안이 침묵에 잠겼다. 학철은 자신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공주. 일단 총을 내려놓으시지요.”

리얀은 아주 천천히 공주의 눈을 주시하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요, 공주. 나도 여기 리얀도 공주를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절대로 공주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요. 그러니 총은 좀 내려놓으시지요.”

쟈론도 공주에게 총을 내려놓으라는 말을 했다. 침착한 리얀과는 달리 조금은 긴장된 음성이었다.

“나가, 두 사람 다. 그러면 총 내려놓을게.”

“나가기 전에 딱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주.”

리얀은 아주 천천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면서 말했다.

“말해봐.”

“공주가 원하는 것은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흑마법사를 따라 이곳으로 오신 것이고요. 제 말이 맞습니까?”

“맞아. 하지만 아빠는 죽어도 내가 춤추고 노래하게 놔두지 않을 거야. 궁궐에 가둬서 꼼짝 못 하게 감시하다가 정략결혼이나 시키겠지. 내 말이 틀려?”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신 행동으로 보면 만약 궁궐로 돌아간다 해도 공주의 목숨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공주.”

이 말은 효과가 있어 보였다. 공주의 표정이 조금은 풀리고 있었다.

“그럼, 나, 여기서 계속 무대에 오를 수 있게 해 줄 거야? 응? 리얀.”

“다만 한 가지, 흑마법사에 대한 말씀만큼은 드리고 싶습니다. 흑마법사는 지금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우리는 룩칼과 함께 이곳으로 왔습니다. 룩칼을 아시지요?”

“알지. 햇살 용역 대표. 자이스 장군하고 같이 다니잖아. 여기 리키 곽하고 카와타처럼.”

“룩칼이 있는 햇살 용역은 공격당했습니다.”

“…공격당해?”

“예, 그렇습니다. 이곳의 특수부대원들이 외국의 무기로 무장하고 공격했습니다.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자들이 그렇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햇살 용역을 공격한 자들 배후에 흑마법사가 있다고. 흑마법사가 룩칼을 배신하고, 여기 리키 곽을 배신하고, 공주까지 배신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리얀이 공주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리얀의 말이 끝나자 공주는 피식 웃었다.

“흑마법사가 왜 배신해? 아니, 그 전에 물어볼게. 흑마법사가 자기 부하를 왜 공격해?”

“이곳 정부와 손을 잡는 조건이 부하들을 정리하는 게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위협적인 존재니까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혹은 이곳 정부가 주기로 한 보상을 나누기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룩칼도 카와타도 수인족입니다. 인간인 흑마법사가 수인족과 공을 나누기 싫었다는 가설도….”

“진짜 그렇게 생각해? 응? 그런 거야? 리얀? 칫.”

공주가 리얀의 말을 끊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그럴싸한 가설입니다, 공주. 적들은 이곳 정부 소속이 분명하고,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싶어 했으며, 현재 흑마법사와는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리얀. 옛날에는 똑똑했잖아? 아빠한테 조언도 하고. 그런데 진짜 감 떨어졌네. 그래서 흑마법사가 자기 부하들을 배신했다고 추리했어?”

공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있던 권총을 내렸다. 리얀과 쟈론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리얀. 똑바로 들어. 지금 흑마법사, 도망 다녀!”

공주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학철은 리얀이 당황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리얀은 입을 벌리고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말해 줄게. 흑마법사, 도망치고 있다고! 그러니까 당연히 연락이 안 되지. 거기, 햇살 용역 친 것도 정보부야! 이곳 정부가 흑마법사를 배신한 거야! 이 바보야! 칫!”

공주는 이렇게 말하곤 리볼버를 책상에 던져놓았다.

쾅!

순간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학철은 전에도 이런 폭음을 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금방 이해했다. 공주가 리볼버를 던졌기 때문에 그 충격으로 격발한 거였다. 오발이었다.

“아, 이런….”

쟈론이 탄식을 했다. 학철은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쟈론이 배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라, 쟈론.”

리얀이 말했고, 쟈론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이거, 어디 가서 소문내지 마, 리얀. 생각도 못 했네. 공주가 던진 총에서 발사된 총알에 맞다니… 이거, 도대체….”

“조용히.”

리얀은 손에서 피를 내더니 쟈론의 배 위에 흘렸다.

총상을 입은 곳은 강철 갑옷이 보호하지 못하는 허리의 아주 좁은 구역이었다. 책상 높이와 비슷해서 하필 거기에 맞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위나 조금만 아래로 향했어도 갑옷이 총탄을 막아냈을 것 같았다.

“총탄은 뽑아냈고, 장기는 회복시켰다. 하지만 잠깐 누워 있어라, 쟈론. 장기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알았어, 알았어.”

쟈론은 손을 휘휘 저으며 바닥에 똑바로 누웠다.

“고의는 아니었어, 쟈론. 내가 고의로 쐈다면 피할 수도 있었겠지. 칫.”

일리스 공주는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암튼 내 뜻은 정확하게 전달이 된 거지? 흑마법사는 쫓기고 있지만 그건 사실 내가 알 바가 아니야. 난 여기 리키 곽하고 계약했고, 오늘 누가 죽었든 상관없이 리키 곽은 내가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도와줄 거야. 그렇지? 곽 대표.”

“물론입니다, 공주님! 이봐요! 저, 죽이지 마세요! 제가 죽으면 공주님이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제발!”

곽 대표가 애원했다. 리얀은 알아들었다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검지를 입술로 가지고 갔다. 리키 곽은 입을 다물었다.

“그럼 이제 가. 나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이번에는 권총, 그냥 내려놓지 않을 거야. 쟈론이 한 방 맞았으니까 공평하게 리얀한테 한 방 쏴 줄 수도 있고.”

“잠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리하긴 뭘 정리해? 여기서 나가서 흑마법사랑 싸우든지 이곳 정부랑 싸우든지 맘대로 해. 난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날 내버려 둬. 그럼 된다고. 응?”

“하지만….”

리얀은 쉽게 포기할 수 없어 보였다. 비록 누워있기는 했지만 쟈론도 그냥 포기하고 물러설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뭐? 응? 리얀하고 쟈론은 날 지키기로 한 거지 날 교육하기로 한 게 아니잖아? 그리고 교육한다고 해도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해! 난 여기서 새 인생을 찾았어! 난 일리스 공주가 아니라 아이돌 마셰라야!”

와장창!

일리스 공주, 마셰라가 선언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일리스 공주 뒤편에 있던 유리창이 폭발하는 것처럼 깨졌다. 학철은 얼굴로 날아드는 유리 파편을 막기 위해서 반사적으로 팔을 올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학철 쪽으로 날아온 파편은 없었다.

“어라? 우시준? 그런데 왜 날개가 있지?”

공주가 깨진 유리창 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리얀!”

룩칼이었다. 룩칼은 공주 뒤편으로 다가갔다.

“룩칼! 꼼짝 마!”

“우리 약속은 여기까지야, 리얀.”

룩칼이 공주를 향해서 팔을 뻗으며 말했다.

“약속이 여기까지라니….”

“듣고 있었어. 공주가 말하는 거. 흑마법사가 배신한 게 아니란 게 확실하네. 그러니 우리 약속은 여기까지인 거지. 크크크. 공주. 가시지요.”

공주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다가 룩칼의 품에 안겼다.

“우시준, 방송국에서 딱 한 번 봤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기분 좋네? 칫.”

일리스 공주가 농담조로 말했다.

“룩칼. 지금 움직이면 네 머리통이 날아갈 것이다.”

“날 죽이겠다고? 공주는 어쩌고?”

“룩칼! 그러니 움직이지 마! 공주! 눈을 감으십시오! 보기 좋지 않을 것입니다!”

리얀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긴. 내 약속이 여기까지니까 그대의 약속도 여기까지겠지, 리얀. 그래. 죽이려면 죽여. 난 내가 할 일을 할 테니까.”

룩칼이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룩칼! 이렇게 널 죽이고 싶진 않다! 마지막 경고다! 그 자리에 멈춰!”

리얀은 정말로 룩칼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학철은 리얀이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알려줄게. 아까 그 특수부대, 여기로 오고 있어. 놈들한테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금은 공주를 보호하는 게 먼저인 거 같아. 저놈들 죽이는 건 그대에게 맡기지. 크크크.”

“룩칼!”

“그리고 저놈들 죽이는 것보다 저놈들을 움직인 놈들을 찾아서 죽이는 게 내가 할 복수에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크크크. 그럼 다시 보자, 리얀! 다시 볼 수 있다면 말이야!”

룩칼은 이렇게 말하고 몸을 웅크려 도약할 준비를 했다.

“정말 이래야만 하는가….”

리얀은 중얼거리더니 정신을 집중했다.

콰콰쾅!

그리고 폭발음이 울렸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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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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