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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57화 (5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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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음이 울리는 순간, 학철은 이번에도 반사적으로 머리를 팔로 보호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학철 쪽으로 날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폭발음이 울린 곳은 룩칼의 머리가 아니었다. 소리는 창밖에서 들려왔다. 학철은 얼른 창밖을 내다보았다. 학철이 타고 온 승합차가 불타고 있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이 승합차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어? 차! 우리가 타고 온 차가… 터졌어!”

학철은 승합차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인장이 묻은 내 이마의 비늘을 뜯어냈어, 리얀. 크크크. 공주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눈치 못 챌 줄 알았지. 크크크크크!”

룩칼은 웃으며 공주와 함께 깨진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기 시작했다.

“리얀! 마법으로 저 자식 공격해!”

누워있던 쟈론이 손짓 발짓을 하며 소리쳤다.

“늦었다. 지금 룩칼을 공격해 봐야 공주만 다친다.”

리얀은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룩칼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리얀! 너, 최강 마법사잖아! 무슨 마법이든 써 봐! 포획하는 그물을 던진다거나, 하늘에 비를 내리게 하거나… 아무튼! 뭐라도! 좀!”

“이미 늦었다.”

“그럼 어쩔 거야! 그럼! 그냥 이대로 보낼 거야? 응?”

쟈론은 누워 있으면서도 분이 안 풀리는지 허공에 발길질을 하며 리얀에게 쏘아붙였다.

“달리 수가 없다, 쟈론. 지금은 이대로 보낼 수밖에.”

리얀은 어금니를 꽉 무는지 볼 근육이 심하게 씰룩였다.

“잠깐만요. 그런데 룩칼이 가기 전에 여기로 특수부대가 오고 있다는 말하지 않았어요?”

학철이 얼른 끼어들었다. 특수부대가 이곳을 공격한다면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희박해진다.

“특수부대? 이곳 현지 군대 말야?”

쟈론이 학철에게 물었다.

“예. 조금 전에 들으셨잖아요. 햇살 용역 공격했던, 그 특수부대요.”

학철이 답했다.

“몇 명이나 되는데? 한 100명 되나? 1,000명? 조금만 기다려. 까짓 조무래기들, 내가 회복만 하면….”

“쟈론. 그대의 검이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는 건 내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는 정면으로 붙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무장하고 있는 화력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리얀이 쟈론에게 말했다.

“일반 부대원 100명, 1,000명이 무서웠으면 내가 차원이동문 타고 여기까지 왔겠어? 리얀. 사람 작작 무시해.”

“그대의 검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고 내가 분명히 밝혔다. 이들이 무장하고 있는 자동소총은 우리 군 1개 군단과 맞먹는다.”

“자동소총? 그게 뭐 대단하다고….”

“권총 한 방에 쓰러져서 간신히 회복하고 있으면서 자동소총을 우습게 볼 처지가 아닐 텐데. 운이 좋아서 배에 맞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머리 맞았다면 나도 손 쓸 수 없다, 쟈론.”

리얀이 말하자 쟈론은 입을 꾹 다물었다. 분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정보부에서 특수부대 보냈다는 거죠? 아, 진짜! 내가 그렇게 정보부 사람들한테 무릎을 꿇고 빌었는데….”

“잠깐만요. 리얀 님. 저기 리키 곽, 흑마법사하고 관련된 말은 하지 못하는 마법, 그러니까 침묵의 서약, 그거 한 거 맞죠?”

리키 곽의 말을 자르며 학철이 물었다.

“그렇다.”

“그럼 정보부하고 관련된 정보는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렇죠?”

“그런 것 같다. 지금 말한 내용을 보니 그렇게 판단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저기요, 리키 곽, 곽 대표님. 지금 이 두 분이 곽 대표님 죽이려고 하는데, 정보부 관련 정보를 주신다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학철이 리키 곽에게 물었다. 리키 곽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맞아요! 저, 정보부에 대해서 좀 알아요! 정보부하고 약속도 했어요! ‘이세계인’ 관련자라면서 저한테 막 무슨 기밀유지서약서 같은 것도 쓰게 했고… 그러다가… 좆까 씨발. 헉!”

이렇게 말이 끊긴 게 세 번째였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학철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지금 침묵의 서약 때문에 흑마법사 관련된 말을 하려고 하면 욕하면서 말을 끊지만 다른 건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정보부에서는 흑마법사나 흑마법사하고 관련된, 리얀 님이 살던 곳에서 온 사람들을 ‘이세계인’이라고 부르는 거 같아요. 그리고 리키 곽은 정보부하고 함께 일하고 있는 것 같고요. 내 말이 맞죠?”

“좆까 씨발. 어, 그러니까, 이건 내 본심이 아니라….”

“학철. 네 말이 옳다. 리키 곽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요?”

“일단 여기를 피한다. 쟈론이 회복하면 그 즉시 이곳을 떠난다.”

“저, 그런데 쟈론 님이 회복하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어요?”

학철은 리얀이 자신의 다리를 치료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부러진 다리와 극심한 고통이 떠올랐다. 하지만 리얀이 마법을 쓰자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쟈론이 다친 곳은 뼈가 아니라 내장이라고 했다.

‘내장이 다치면 회복되었다는 걸 어떻게 알지? 통증이 사라지나?’

학철은 이런 의문을 품었다.

부우우우우우욱!

학철의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쟈론이 길고도 우렁차게 방귀를 뀐 것이다. 방귀를 뀐 쟈론은 정말 시원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 허리를 튕겨서는 단 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복됐어! 자! 얼른 가자고!”

쟈론이 어깨를 풀면서 리얀에게 말했다.

“쟈론. 지금은 우리 네 사람이 도망을 쳐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온 승합차는 폭파되었다.”

“그래. 좀 전에 이야기 들었어. 용족 이마에 인장을 박아놓고 방심했던 거지? 용족 비늘이야 뜯어버리면 그만인데 말이지. 어떻게 그걸 깜빡할 수가 있어? 최강의 마법사가? 응?”

쟈론이 빈정댔다. 학철은 리얀이 화를 내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지만 리얀의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지나간 실수에 집착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쟈론. 최강의 장군이 그걸 깜빡해서는 안 된다.”

“하여간 말은 잘해. 알았어, 알았다고. 그럼 빨리 가자고.”

“앞장서겠다. 쟈론. 리키 곽을 맡아라.”

리얀이 먼저 방을 나서면서 말했다. 쟈론은 리키 곽의 얼굴을 보고는 빙긋 미소를 짓더니 팔을 잡고 리얀의 뒤를 따랐다. 학철은 마지막으로 쟈론을 따라 방을 나섰다.

리얀이 향한 곳은 정문이었다. 조금 전 학철과 함께 들어온 곳이었다. 복도를 지나 1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학철은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는 시체들을 수도 없이 뛰어넘었다. 앞장서서 가고 있는 쟈론의 허리에 찬 칼을 보았다.

‘도대체 무슨 금속으로 만든 거지? 이렇게 많이 베었는데 날이 여전히 서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도 무슨 마법 같은 걸까?’

학철이 쟈론의 칼을 궁금하게 여기는 사이, 리얀은 1층 로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앞서, 1층 로비 앞에 시커먼 승합차가 섰다.

“저, 저기!”

학철이 고함을 쳤다. 승합차 문이 열렸고, 조금 전 햇살 용역에서 빠져나오면서 보았던 특수부대원들이 자동소총을 들고 승합차에서 내렸다.

“그럼 춤 한 번 춰 보실까?”

쟈론이 칼을 뽑아 들었다. 조금도 상하지 않은 완벽한 형태의 칼날이 빛을 받아 번득였다.

타타타타탕!

그리고 특수부대원들이 자동소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경고 한 번 하지 않은 급작스러운 사격이라 학철은 이번엔 팔로 머리를 감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동소총에서 발사된 탄두는 1층 정문을 뚫지 못하고 허공에 멈췄다.

“다들 중지하라!”

리얀이 양손을 앞으로 한 상태로 뒤쪽을 향해 외쳤다.

언제 했는지 정문에는 희미한 붉은 기운이 퍼져 있었다. 그리고 탄두는 그 붉은 기운에 가로막혀 떠 있었다. 소총을 들고 있는 특수부대원들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계속 사격을 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뭘 고민해? 가서 다 썰어버리면 되지. 넌 다 터트려 버리고.”

쟈론이 리얀의 옆으로 가서 말했다.

“안 된다. 이들은 우리 편이다.”

“우리 편? 리얀. 여기는 다른 세계야. 여기에 우리 편이 어딨어?”

“이들은 흑마법사를 노리고 있다. 그대가 말한 그대로다, 쟈론. 여기는 다른 세계고, 이곳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흑마법사를 죽일 수 없다.”

“일리는 있네.”

타타타타타타탕!

쟈론이 말하는 순간 특수부대원들이 자동소총을 사격하기 시작했다. 총탄은 이번에도 붉은 기운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학철은 붉은 기운이 조금씩 뒤로 밀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서 있다가 죽을 거야? 그게 방법이야?”

“잠시만 조용히. 방법을 생각 중이다.”

리얀이 말했다.

“그래, 생각 좋지. 그런데 얼른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쟈론이 승합차에서 내리는 한 특수부대원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특수부대원은 쟈론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을, 그런 무기를 들고 있었다.

“아, 알피지?”

학철은 깜짝 놀랐다. RPG는 러시아 쪽 무기로 휴대용 대전차 유탄발사기를 말한다. 영화나 게임 속에서 주로 공산당이나 중동 쪽 테러리스트들이 사용하는 무기인데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이렇게 정면으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저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쟈론이 알피지를 발사하려는 특수부대원을 보면서 말했다.

“다들 엎드려!”

리얀이 소리쳤다.

콰콰쾅!

바로 그 순간 거대한 폭음과 함께 학철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귀에서는 이명만이 울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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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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