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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내부는 모조리 LED 조명이었다. 자연광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때문에 내부는 지하주차장이라기보다는 푸른색 금속 건물 내부 같은 느낌이었다.
“납치가 아니라고?”
사장이 처음 듣는 목소리에 답했다. 그러자 낯선 여자 하나가 주차장 앞쪽 계단에서 걸어 내려왔다.
“예, 아니에요.”
단정하게 검정 바지 정장을 차려입은 40대 여자였다. 머리는 깔끔하게 단발로 잘랐고,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얼굴에는 검정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어디를 보나 단정하고 깔끔해 보였다.
“홍 대표. 이분들이야?”
여자가 홍 대표에게 물었다. 홍 대표는 고개를 끄덕했다.
“일단 앉으세요. 두 분.”
주차장 구석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작은 응접실 같은 배치였지만 아무래도 주차장과 어울리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럽시다.”
사장은 여자를 뚫어지게 보면서 자리에 앉았고 가히도 따라 앉았다.
“많이 놀라셨죠? 죄송해요.”
홍 대표가 앉는 것을 확인한 후, 여자도 자리에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식으로 소개드릴게요. 대한민국 국가정보부 2과 거울 팀 팀장 김세진이라고 해요. 진 팀장이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여자가 자기소개를 했다.
“저, 정보부?”
“그리고 여기 홍 대표는 우리 정보부 아이오에요.”
진 팀장이 홍 대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오? 그거 무슨 걸그룹 아닌가?”
“아이오(I.O)는 Intelligence Officer의 약자입니다. 그냥 번역하면 정보장교, 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 정보부에서 아이오라고 하면 보통 민간정보관을 뜻합니다.”
“민간인 중에 우리 회사에 정보를 주는 요원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네요.”
“저, 그, 그럼 홍 대표가 정보부 요원이었단 말이지, 지금?”
사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홍 대표를 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계약직 요원이라고 생각하시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겁니다, 사장님.”
홍 대표가 말했다.
“…날 속인 거야?”
“속이다니, 말씀이 지나치신 것 같네요. 전 그저 제 일을 한 것뿐입니다.”
“홍 대표 말이 맞아요. 홍 대표는 그냥 자기 일을 하는 것뿐이거든요. 굳이 신분을 알릴 이유는 없지요. 정보부 직원인데. 사실 정보부 직원의 신분을 아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기도 하답니다. 이제 곧 알게 되시겠지만요.”
진 팀장은 이렇게 말하며 서류를 사장과 가히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죠?”
가히가 진 팀장에게 물었다.
“보안서약서요. 읽어보세요. 자세히.”
“안 해.”
사장은 제대로 읽지도 않고 서류를 진 팀장 쪽으로 밀었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진 팀장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납치 아니라고 했지? 나, 집에 갈래. 홍 대표. 문 열어달라고 해요.”
사장은 씩씩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장님. 지금 나가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홍 대표가 사장을 보며 차분하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후…회?”
“테러방지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진 팀장이 물었다.
“그야 뉴스에서 봤지…요.”
사장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조금은 수동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흑마법사는 지금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 리스트에요. 그냥 들으면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실 수도 있지만, 테러리스트라고 정의되는 순간 테러방지법이 작동하게 되거든요?”
진 팀장은 여기까지 말한 뒤 사장이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인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러분은 테러리스트와 접촉한 민간인이고요. 테러방지법에 따라서 우리 정보부는 두 분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고, 계좌를 추적할 수 있고, 임의로 동행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구금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사장님. 죽을 때까지도 조사할 수 있다는 겁니다.”
홍 대표가 진 팀장의 말을 대신 맺었다.
“고마워요. 제 뜻을 정확하게 전달해주셨네요, 홍 대표.”
“그럼 여기 서명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잠자코 보안서약서를 보고 있던 가히가 진 팀장에게 물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우리 거울 팀, 속칭 ‘이세계인 대응팀’의 I.O가 되시는 거죠.”
“잠깐만요. 아까 아이오, 그거, 정보부 계약직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가히가 질문했다.
“예. 맞아요.”
“그럼 수당 나와요?”
“아, 그게 중요하셨구나. 예, 나와요. 건당으로 나오기도 하고, 기본급도 있어요. 물론 다른 직업 있어도 상관없어요.”
“뭐야? 이거 완전 꿀보직이네?”
가히는 바로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거, 어린 친구가 신중하지 못하게….”
“사장님. 꼰대 짓 하고 싶으면 직원들한테나 하세요. 전 지금 직장이 필요하다구요. 특히나 회사가 공격당해서 망한 직후엔 말이죠. 저기요, 진 팀장님, 기본수당 한 달에 얼마나 나와요? 4대 보험 돼요? 일은 어떤 거 하면 돼요? 건당으로 수당 나온다고 했는데 어떤 걸 기준으로 한 건 쳐줘요?”
가히는 사장은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진 팀장에게 질문을 쏟아부었다.
“아이오 일, 직장이라고 생각하면 꽤 괜찮아요. 아무 일도 안 해도 한 달에 150씩 나오거든요. 그런데….”
진 팀장은 검정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면서 대답했다.
“그런데요?”
가히가 눈을 반짝였다.
“4대 보험은 안 돼요. 우리가 하는 일이 국가기밀인데 어떻게 기록을 남겨요? 그리고 건당 처리한다는 건 그때그때 달라요. 정보를 제공해 주면 정보 중요도에 따라서 페이를 책정하기도 하고, 위험한 일 생기면 위험수당 붙이기도 하고요.”
“아하… 그렇구나.”
“나름 힘든 일이긴 한데, 요즘 안 힘든 일 하고 돈을 어떻게 벌어요? 안 그래요? 거기다가 이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숨만 쉬어도 한 달에 150씩 준단 말이죠. 어때요? 나쁘지 않죠?”
“그럼요! 최고죠, 팀장님!”
가히는 벌써 진 팀장의 오른팔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아니, 요즘 아무리 취직이 어려워도 그렇지 정규직도 아니고 계약직에 뭐 그렇게….”
“아, 그리고 사장님은 따로 작성해 주셔야 할 문서가 있어요.”
진 팀장은 사장에게 다른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이게 뭐요?”
“건물 계약서요. 신성일 이름으로 되어 있는 햇살 용역 건물, 명의 이전해야죠. 사장님 이름으로.”
진 팀장의 말에 사장은 한동안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당황한 게 틀림없었다.
“…거, 내가 뭐라고 한 건, 아무래도 이게 위험한 일일 거 같다 보니까 한 소리고… 아무래도 이런 일은, 그,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는, 국민의 의무, 국가에 충성, 뭐 이런 거니까….”
사장은 건물 계약서를 보면서 횡설수설을 했다. 진 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사장과 가히를 지켜보았다.
“다만 조건이 있어요. 보안서약서.”
진 팀장은 이렇게 말하곤 사장과 가히가 자신을 주목하길 기다렸다. 두 사람 다 진 팀장이 무슨 말을 하건 바로 따를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보안서약서라는 건 글자 그대로 서약을 한다는 뜻이에요. 지금부터 우리가 나눌 대화, 그리고 일하면서 알게 되는 정보, 이런 걸 외부로 유출하거나 그 정보를 이용해서 이득을 본다거나 하면… 절대 경고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죠.”
진 팀장이 가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히는 진 팀장의 눈빛에 살짝 흠칫했다.
“가희 씨? 친구들하고 술 먹다가 정보부에서 계약직 하게 됐다고 자랑 한 번 하거나 부모님한테 효도 선물 사면서 이 돈 정보부에서 나왔다는 소리 한 번 하면, 그대로 계약은 종료에요. 그 시점까지 받은 돈, 전부 다 토해내야 하고, 국가보안법 위반에 테러방지법 위반으로 감옥 가요. 최소 3년은 살아야 할 거예요.”
진 팀장이 말했다. 가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사장님? 사장님도….”
“거, 내가 애도 아니고 굳이 그런 설명하지 맙시다. 나, 입 무거운 사람이에요. 이 바닥에서 외국인 손님들 수도 없이 상대하면서 비밀들, 수도 없이 알게 됐고, 단 한 번도 비밀 누설한 적 없어요!”
사장이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면서 호통을 치듯 말했다.
“알겠어요.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이 바닥에서는 말이죠, 이번 한 번은 경고로 끝난다는 게 없어요. 딱 한 번 실수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제 말, 충분히 이해하셨죠?”
“예!”
가히가 밝고 명랑하게 대답했다.
“사장님?”
“물론.”
사장은 힘차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자, 그럼 이 두 분 문제는 일단 해결됐고… 이제 이세계인 문제를 처리해야 할 것 같네요.”
“말씀하시죠.”
“뭘 하면 될까요?”
진 팀장의 말에 사장과 가히가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진 팀장은 그게 아니라는 듯, 검지를 들어서 좌우로 흔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분이 해야 할 일은 지금 당면한 이세계인 문제를 해결하고 이야기하죠. 이름이… 세이라, 맞죠?”
“맞습니다.”
진 팀장의 말에 홍 대표가 대답했다.
“아뇨. 난 홍 팀장에게 물은 게 아니에요. 세이라에게 물은 거지. 세이라!”
진 팀장이 트레일러 쪽을 향해서 날카롭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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