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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라를 부른 진 팀장의 목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홍 대표와 사장, 그리고 가히는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여기 주차장, 정보부에서 안전가옥으로 쓰는 건물 주차장이에요. 왜 내가 저 사람들, 밖에서 안 만나고 여기까지 고생해서 데리고 왔겠어요? 여기 감시 수준은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라고요.”
진 팀장은 여전히 트레일러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머지도 트레일러를 진 팀장을 따라서 주시했다.
“이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적외선 스캔에 열감지 센서까지 작동해서 수색을 해요. 가끔은 X-레이도 촬영하고요. 오늘은 안 했지만요. 아무튼 여기 들어올 때 다 확인했어요. 세이라, 트레일러 밑에 붙어서 따라오다니 정말 대단해요. 이세계인이 가진 능력이 일반적인 상식 수준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팔 아프지 않아요?”
진 팀장이 이어서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들 트레일러를 주시하면서 진 팀장이 던진 질문에 대답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림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야 아프다는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트레일러 쪽이 아니라, 진 팀장이 내려왔던 2층 쪽이었다.
“도대체 언제….”
진 팀장이 중얼거리는데, 세이라가 계단을 따라 주차장 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조금 전 진 팀장이 내려왔던, 바로 그 계단이었다.
“어떤 사람은 손가락에 가시만 박혀도 아프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팔다리가 잘려나가야 아프다고 하기도 하잖아요?”
세이라가 진 팀장에게 말했다. 진 팀장은 세이라가 예상했던 곳에서 등장하지 않아서 잠깐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곧 차분해졌다.
“세이라. 당신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아프다고 하나요?”
“글쎄요? 가시 박힌 손가락과 잘려나간 팔다리 중간 어디쯤이겠죠. 진 팀장님은 어느 정도인가요?”
“아마 손가락 쪽에 가깝겠죠.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세이라.”
분명 가벼운 대화가 오가고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마치 끈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언제 거기로 올라갔어요? 전혀 몰랐는데.”
“경비원 두 명. 직원 한 명. 딱 셋 있더라고요. 절 너무 쉽게 생각하신 거 아닌가요? 이런 은밀한 곳까지 왔으니 적어도 완전무장한 병력 10명은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고작 이런 거 들고 있는 경비원 둘만 있으니 좀 실망했어요.”
세이라가 진 팀장 쪽으로 뭔가를 집어 던지면서 말했다. 진 팀장은 자신의 발치에 떨어진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탄창이 제거된 글록17 9mm 두 정이었다.
“…죽였나요?”
진 팀장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홍 대표 일행이 주차장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보인 굳은 표정이었다.
“그럴까 했는데 아무래도 첫인사니까 죽이진 않았어요. 좋은 인상 남기고 싶어서. 내일 아침까지는 자고 있을 거예요.”
세이라는 환하게 웃으며 진 팀장 쪽으로 걸어갔다. 진 팀장은 세이라 쪽으로 몸을 돌려서 당당하게 세이라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마침내 두 사람이 딱 세 걸음 거리를 두고 마주쳤다. 홍 대표는 물론이고 아무도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세이라. 직접 보니까 화면으로 볼 때보다 훨씬 예쁘네요.”
“화면?”
“이거, 작동시키고 싶은데, 괜찮겠어요?”
진 팀장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자신의 노트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세이라는 말없이 고개만 살짝 까딱했다. 진 팀장은 노트북을 조작해서 동영상 파일을 하나 열었다.
“어제 마포구 CCTV에서 잡힌 영상이에요. 보실래요?”
사거리에 설치된 CCTV인 모양이었다. 화면에 리얀과 세이라가 마치 화면을 빠르게 재생한 것처럼 스쳐 지나는 모습이 보였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CCTV라는 도구. 그런데 말로 들을 때는 그런 게 있나 보다 싶더니, 이렇게 직접 보니까 신기하긴 하네요.”
세이라는 팔짱을 끼고는 화면 속 자신의 영상을 집중해서 보았다.
“옆에 같이 계신 분은 리얀이지요? 마법사라고 들었어요. 흑마법사를 죽이기 위해서 이곳에 온 이세계인 중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분인 것 같던데요. 거기다가 능력도 가장 뛰어난 것 같고요.”
“이미 다 파악하고 계시네요.”
“제 일에 충실한 거죠, 뭐.”
진 팀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온전히 즐거워서 웃는 웃음 같지는 않았다. 세이라도 따라 웃었다. 역시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진 팀장님은 정보부에서 근무하시는 거죠? 정보를 모으고, 정보를 분석하고,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행동하는, 그런 거.”
“예, 맞아요.”
“저도 제가 있던 곳에서는 그런 일 했어요. 여기서는 제가 가진 직업을 암살자, 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요.”
“그럼 저는 당신이 정보도 수집하고 분석도 하고 현장 요원으로 뛰기도 한다고 생각할게요. 제 말이 맞지요?”
“맞아요. 그리고 진 팀장님도 보니까 현장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것 같아요. 제 말이 맞나요?”
세이라가 진 팀장에게 물었다.
“예. 예전에 현장 요원, 오래 했었어요. 무슨 일 했는지는 묻지 마세요. 그걸 말하면….”
“죽여야 하니까?”
세이라가 진 팀장의 말을 대신 맺었고, 두 사람은 그게 재미있는지 깔깔대며 웃었다.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농담이었다.
“자, 그럼 대충 소개는 한 거 같으니까 이제는 제가 좀 물어볼게요, 진 팀장님.”
세이라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진 팀장은 마음껏 물어보라고 했다.
“저는 이곳 사람이 아니라서 서약서 같은 거 써 봐야 효력도 없을 텐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우리 나름대로 프로토콜이 있어요. 보통 이세계인 정책이라고 해요.”
진 팀장은 바로 막힘없이 대답을 했다.
“정책이 있군요. 나처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을 대하는 정책이. 그러니까 제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곳으로 온 다른 세계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이지요? 제가 이해한 게 맞나요, 진 팀장님?”
“예. 맞아요. 시작은 흑마법사였어요. 세이라, 당신과 여기 화면에 있는 리얀이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
진 팀장은 목이 마른 지 테이블 위에 놓인 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흑마법사가 우리나라로 차원이동문을 타고 와서는 이곳 사람들과 접촉한 게 3년 전이에요.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흑마법사는 홍대에서 어떤 회사 대표하고 만났고, 그곳에서 데리고 온 어떤 여자를 가수로 데뷔시키고 싶다고 했었죠. 그런데 그때, 저기 홍 대표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거죠. 홍 대표?”
진 팀장이 홍 대표를 불렀다.
“예. 정보부 I.O였던 저는 이 사실을 제 담당관인 여기 진 팀장님한테 알렸습니다. 그래서 정보부에서 이세계인을 관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새로 부서를 창설하게 됐습니다. 이세계인 전담부서, 거울 팀입니다.”
“원래 저는 홍대에서 외국인 정보 관련 정보분석을 하는 정보분석팀 팀장이었어요. 홍 대표는 제가 데리고 있던 I.O 중 하나였고. 하지만 흑마법사의 등장으로 우리 팀은 전면적으로 개편을 하게 된 거죠. 다른 차원에서 사람이 올 수 있다는 걸 누가 알았겠어요? 그것도 차원이동문, 이라는 걸 통해서 말이죠. 아마 길 가는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예요. 아무도.”
“그때는 흑마법사가 위험하다는 걸 몰랐어요?”
세이라가 물었다.
“물론 몰랐죠. 호기심이 더 컸어요. 다른 차원에서 왔는데 가수를 하고 싶다니 그것도 참 흥미로웠고요. 우리 입장에서는 세이라, 당신이 온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었어요. 궁극적으로는 당신들이 사는 세계와 외교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외교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요. 우리는 그쪽에 기술을 전수하고, 그쪽은 우리 쪽에 마법을 전수해 주고.”
“만약 정말로 외교 관계가 성립된다면 정말 좋겠네요. 이곳 문명은 부유하기도 하고 물건들이 만드는 기술이 발달되어 있잖아요. 아까 본 그 CCTV도 그렇고… 만약 우리가 사는 12대륙으로 그런 기술이 이전될 수 있다면 정말 많은 게 바뀔 것 같아요.”
“우리 세계에서도 마법이 사용된다면 많은 게 바뀌겠지요. 보다 진보된 사회가 될 수도 있을 테고요. 이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진보가 걸린 문제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흑마법사가 전쟁에서 패한 뒤, 이곳으로 도망친 직후, 그러니까 바로 어제부터, 대한민국 국가정보부는 흑마법사를 제거하기로 하셨네요?”
세이라가 물었다.
“흑마법사가 테러리스트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흑마법사가 대한민국에 발을 들인 사업이 좀 있어요. 그 회사들, 이제는 다 정리시켜야죠.”
진 팀장은 ‘정리’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햇살 용역, 햇살 엔터테인먼트 말씀하시는 거죠?”
“예.”
진 팀장은 짧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면서 경비원이 둘 뿐이었다니. 저는 이해가 잘 안 가네요. 대비책이 있지 않아요?”
세이라가 물었다.
“예. 솔직하게 말할게요. 같은 업계 사람들이니까 이해할 거로 생각해요. 근처에 타격팀이 하나 있어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보험 같은 거요.”
“역시나 그렇군요. 그래서, 부를 건가요? 그 보험?”
“고민 중이에요. 저도 세이라, 당신처럼 좋은 인상 남기고 싶어서요.”
진 팀장은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 누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로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고민할 것 없어요, 진 팀장님.”
세이라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진 팀장이 말하려는데 주차장의 출입문이 무거운 작동음과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순간 진 팀장은 저절로 문이 열린 걸 보며 당황했다. 주차장 문이 열린 덕분에 푸른 LED 조명 사이로 햇빛이 쏟아졌다.
“굳이 부르실 필요 없을 거란 거죠.”
세이라가 열린 주차장 출입구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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