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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인간의 언어로 번역될 수는 없었다. 그저 어떤 종류의 감각, 그리고 영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지금 킬타스가 우리에게 전한 것, 다들 이해했는가?”
리얀이 모두에게 물었다.
학철은 킬타스가 전한 것을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군복을 입은 남자.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고통. 공포. 거기에 피로함과 수면,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음이 동시에 뒤섞여 이미지로 전달되었다. 동물의 언어를 이해할 수는 없으니 이 정도면 훌륭한 정보전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킬타스에게 정보를 전달한 그 고양이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전령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건 알 수 있겠어요.”
학철이 말했다.
“가다가 어디 걸려서 넘어졌나 보네. 그래서 머리가 깨졌거나, 아니, 피 이야기는 없었으니, 그냥 충격을 받아 기절했거나.”
쟈론이 빈정거렸다.
“특수부대원이 넘어져서 의식을 잃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네요. 그런 일이 정말로 벌어졌을까요?”
세이라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건 학철도 비슷했다.
“구하러 가야 하지 않을까요?”
학철이 리얀에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비록 얼굴도 모르는 젊은이이지만 같은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위험에 처해 있다면 구해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조금 전 부대장이 했던 말을 생각해 보면 이미 저들은 전투를 몇 차례 치르고 내부로 진입했으니, 그곳까지 가는 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리얀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학철. 너무 용감한 거 아니야?”
쟈론이었다. 학철은 쟈론의 말에 아픈 곳을 찔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들어가 봐야 학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학철은 그냥 짐이나 마찬가지일 거였다.
“혹시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건가요, 학철?”
세이라가 부드럽게 학철에게 물었다.
“그, 그건….”
역시나 아픈 말이었다.
학철은 일이 끝나면 금화 1천 개를 받는다. 현금으로 100억 원어치. 정보부 진 팀장도 확인해 주었다. 세금이고 수수료고 다 떼고 나도 50억 원은 될 것이다. 어쩌면 학철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세이라가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나는 살면서 학철 같은 남자들, 수도 없이 봤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전쟁을 치렀는데 말이죠.”
“그래. 전쟁통에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넘치지.”
쟈론이 어깨를 쭉 펴면서 말했다.
“그래요. 다들 목숨을 걸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했지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학철이 세이라에게 물었다.
“목숨을 걸었다고 했잖아요. 글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가치를 증명한 다음, 죽었죠. 대부분 그랬어요.”
목숨을 걸면 죽기 십상이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목숨을 걸곤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 대가를 치른다. 목숨으로.
“목숨 걸고 뭘 하고 싶진 않아요. 다만….”
“다만?”
잠자코 있던 리얀이 학철을 보며 물었다.
“다만 사람이 위험에 처했는데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그래요. 게다가 특수부대원들이 전투를 하면서 지나간 길인데, 그렇게까지 위험하겠어요?”
학철이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킬타스가 다시 한번 정보를 보내왔다. 대화에 집중하는 사이, 킬타스는 복잡한 환풍구 통로를 이리저리 움직여 특수부대원이 있는 방을 찾아내었다. 킬타스는 환풍구를 통해서 신중하게 부대원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맙소사….”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쟈론이었다. 학철은 부대원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리얀도, 세이라도, 오툴까지도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부대원은 하얀 색 실에 온몸이 감겨 있었다. 머리와 발이 나와 있어서 사람이라는 건 확인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마치 실타래처럼 하얀 실로 칭칭 감겨 있는 상태였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초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입은 살짝 벌어져서 침을 흘리고 있었고, 실타래가 간격을 두고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는 것으로 보아 호흡에는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거… 거미!”
쟈론이 소리쳤다.
“거미는 먹잇감을 잡으면 독을 주입해 마취시킨 후, 저런 식으로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배가 고플 때 먹는다. 거미의 독니는 길고 뾰족해서 먹잇감에 독을 주입하는 데에는 효율적이지만 먹이를 씹어 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독니를 통해 소화액을 먹잇감의 체내에 주입한 다음, 소화액에 녹은 부분을 빨아 먹는다.”
세이라가 길게 거미의 생태에 관해 설명했다. 설명도 끔찍했지만 학철은 부대원의 눈에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부대원의 눈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시체보다 끔찍한 느낌이었다.
“살려야 해요.”
학철이 말했다. 생각을 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본능적인 것이었다. 지금 위기에 처해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 나, 진짜… 거미는 정말 싫은데….”
쟈론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거미는 거미집에 사는 거 아닌가요? 보니까 주변에 거미집은 없는 것 같은데….”
학철이 눈을 감고 킬타스의 시선을 공유하면서 리얀에게 물었다. 텅 빈 방이었다. 이 방에서 있었던 전투 때문에 곳곳이 부서지고 무너졌고,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긴 했지만 거미줄은 보이지 않았다.
“새끼 때 거미들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곤 한다.”
“다시 말해서 이 길을 따라서 가장 깊은 곳까지 가면 거미가 집을 짓고 살고 있을 거라는 거지. 어마어마하게 큰 성체 거미가.”
쟈론이 설명을 덧붙였다.
“도대체 지하에 뭐가 있어서 거미까지 데리고 온 걸까요? 거미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는 것 자체가 위험부담이 큰일이었을 텐데 말이죠.”
세이라는 그 점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지금 당장은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지원부대가 올 것이다. 정보부 특수부대의 자동소총이라면 거미를 상대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저 사람 내버려 두고 여기서 기다리자고요?”
학철이 물었다. 리얀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그 새끼거미가 언제 돌아와서 저 부대원을 잡아먹을지 모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여기 가만히 있다가 그 사람 죽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학철은 리얀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세이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건 뭘 증명하고 어쩌고, 그런 게 아니에요. 저, 죽는 거 싫어요. 용감하게 뭘 어쩌자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저 사람만 구해주자고요. 저렇게 끔찍한 꼴로 죽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지는 말자고요. 그리고….”
“알았다.”
리얀이 학철의 말을 끊었다.
“예?”
“알았다고 했다. 쟈론. 거미의 발톱과 이빨은 그대가 상대하라. 세이라는 뒤로 돌아가 몸통을 찌른다. 짧은 단검 외에 다른 무장은 없는가?”
“단검이면 충분해요. 어차피 긴 칼로 거미를 쑤실 수는 없어요. 가죽을 길게 갈라버려야죠.”
세이라는 단검을 뽑아 들고는 가볍게 몇 번 돌리며 말했다.
“그럼 세이라 님은 혹시 거미하고 전에 싸워 본 적 있어요?”
학철이 물었다. 경험이 있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몇 번 있어요. 내가 상대한 건 주로 새끼들이었지만요.”
세이라에게는 꽤 즐거운 경험이었던 모양이었다. 표정이 밝았다. 반면 쟈론의 표정은 어두웠다. 거미와는 그다지 좋은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게 분명하구나 싶었다.
“그럼 출발한다.”
리얀이 앞장서서 계단 쪽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자, 잠깐만요!”
학철은 그런 리얀을 서둘러 말렸다.
“뭐냐?”
“지금 내부에서 통신이 안 된다고 했어요. 그, 여기 에테르의 장벽이 쳐져 있다면서요? 그럼 안으로 들어갔을 때 오툴하고 교신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학철이 물었다. 리얀이 부대원을 구하러 가자는 말을 들어준 것은 고마웠지만 만약 오툴과 통신이 되지 않는다면 곧 도착할 정보부 특수부대가 오인사격을 하거나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곳 문명이 사용하는 통신의 원리는 기계를 이용해 파장을 주고받는 것이다. 고로 중간에 차단을 할 수 있고, 이런 깊은 지하에서는 통신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정신감응은 서로 다른 정신이 동시에 공명하는 것이다. 때문에 차단할 수 없다. 동시성 이론을 모르느냐?”
리얀이 꽤 길게 설명을 했다. 학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연속이었지만 적어도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알겠어요. 오툴! 여기 비밀번호가 뭐라고 했죠?”
민망한 마음에 학철은 서둘러 계단을 뛰어 내려간 뒤, 철문 옆에 설치된 비밀번호 입력판을 발견하고는 오툴에게 물었다.
- 720610.
오툴이 알려주었고, 학철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끼이이이이….
두꺼운 철문이 육중한 금속음을 울리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준비해라.”
리얀이 말했다. 쟈론은 칼을 뽑아 들었고, 세이라는 단검을 고쳐 쥐었다.
마침내 육중한 철문이 완전히 다 열렸다.
“다들 그 자리에 대기하라.”
리얀이 열린 철문 너머를 보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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