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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75화 (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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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라는 말에 부대원들이 모두 리얀을 주목했다. 리얀은 그걸 노렸는지 다들 충분히 집중할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오, 소령.”

리얀이 말했다.

“시작? 시작이라니?”

“저 녀석은 성체가 아니오. 사람으로 따지자면 이제 고작 청소년기에 접어든 녀석이란 말이오. 저 안으로는 저런 녀석 몇 마리가 있을 것이고, 저것보다 작은 새끼도 수십 마리가 존재할 것이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것들을 낳은 거미 성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리얀이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성체의 크기는 저 정도가 아니라고. 이 복도를 꽉 채울 수 있을 정도의 크기야.”

“승합차 크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 다리 빼고요. 몸통만요.”

쟈론과 세이라가 리얀의 설명에 보충을 더했다.

“…성체도 아닌 놈을 상대하느라 우리 정예 부대원이 다섯이나 전사했어.”

소령은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소.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가도 좋소.”

리얀이 소령에게 말했다.

“사실 나도 좀 그래. 뭐, 와 줘서 나름대로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이곳은 평화로운 거 같던데, 이런 평시에 사람들 죽어나가는 거 보는 것도 기분 좀 그렇고 말야.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가도 상관없어.”

쟈론이 말했다. 나름대로는 신경 써서 하는 말이겠지만 학철이 보기에는 꼭 거들먹거리는 것 같아서 그다지 좋게 들리지 않았다.

‘어쩐지 쟈론이 말하면 다 재수 없게 들린단 말이지.’

물론 실력이 있으니 거들먹거리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재수 없게 들린다는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었다.

“우리가 장비한 이 방패, 총알도 막아. 그래서 대테러작전 때 쓰기도 한단 말이야. 그런데 이 방패를 이렇게 쉽게 뚫어버리는 괴물이라니….”

장철중 소령은 전사한 자신의 부하가 들고 있던 방패를 보며 중얼거렸다. 방패 중심부에는 마치 콤파스를 대고 그린 것 같은 동그란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을 보던 장철중 소령이 구르카 나이프를 들고 거미의 사체 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쩡!

장철중 소령이 구르카 나이프를 죽은 거미의 발톱을 향해 휘두르자 불꽃이 튀며 나이프가 퉁겨져 올랐다.

“흠집도 안 갔어. 이건 도대체 뭐로 만들어진 거야?”

발톱을 이리저리 살피며 소령이 말했다.

“거미 발톱에 저렇게 놀라는 걸 보니까 용 비늘을 보면 기절하시겠어.”

쟈론이 리얀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하지만 소리가 하도 커서 복도에 있는 사람들은 다 들은 것 같았다. 물론 쟈론은 그 사실을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진 않았다.

“화력이 더 필요해. 이것들 잡으려면 더 큰 화력이 있어야 해. 마음 같아서는 여기 확 다 불 질러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홍대 지하에서 폭발이 일어나 지상에 있는 민간인들 희생이 엄청나겠지. 그렇다면….”

“지원 병력을 더 불러오는 건 어때요? 그편에 더 나은 무기도 챙겨 오시고요.”

세이라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장철중 소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우리가 전부야. 이 일은 정보부 일이야. 외부로 나가면 안 돼. 우리끼리, 우리 손으로 해결해야만 해.”

장철중 소령은 꽤 단호해 보였다.

“그럼 일부 병력만 보내서 장비만 보충하는 건 어떻소? 지금 무장으로 다시 싸운다면 좀 전과 같은 결과가 나올 뿐이오, 소령.”

리얀이 충고했다.

“하지만 지금 지원을 기다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동료들이 있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소.”

장철중 소령은 당장에라도 출발 명령을 내릴 기세였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는 리얀이 말한 그대로가 될 터였다.

‘이대로 더 죽는 걸 봐야 하는 걸까?’

“대장님. 저, 이건 어떨까요?”

학철이 생각하고 있는데, 부하 하나가 장철중 소령에게 뭔가를 보여주며 물었다. 뿌연 우윳빛 액체가 담겨 있는 작은 앰플이었다.

“그렇지! 테트로톡신! 혹시 오늘 테트로톡신 챙겨 온 대원 또 있나?”

갑자기 소령의 얼굴이 환해졌다. 부대원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고, 곧 십여 개의 앰플이 모였다.

“이걸로 부족한 화력을 보충할 수 있을 것 같아. 이게 뭔지 알아?”

장철중 소령이 모인 앰플을 리얀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독인 것 같소.”

“예, 독이네요. 눈으로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동물에서 추출한 독인가요?”

세이라가 관심을 보였다. 암살자이니 아마도 독에는 나름대로 식견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거, 복어 독이야. 우리가 알고 있는 독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독이지. 우리 부대원들, 자살용으로 이걸 가지고 다녀. 이거 입에 물고 어금니로 앰플을 깨면 바로 즉사하지.”

“사람에게 쓸 용도로 희석한 거긴 하지만 앰플이 열 병도 넘게 있으니까 효과가 있을 겁니다. 이걸 화살촉에 발라서 쏘면 제아무리 거미라고 해도 죽을 겁니다. 복어 독은 정말 강력하거든요.”

소령이 말하자 처음에 앰플을 추천한 부대원이 덧붙였다. 말이 끝나자 리얀은 고개를 돌려 세이라를 쳐다보았다.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독이라는 건 아주 미묘하거든요. 사람한테 치명적인 독이 어떤 동물에게는 약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동물에게는 약이 되는 게 사람한테 치명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 않겠어?”

소령이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기도 하죠. 전 절반 정도 성공할 확률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물고기 독이라고 했죠? 그리고 아주 강력하다고 했고요. 어떻게 작용하는 건가요? 즉사하는 독이라고 했으니까… 심장을 공격하나요? 폐? 아니면 뇌?”

“우리는 독을 그런 식으로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복어 독은 신경독으로 분류하죠. 굳이 설명하자면 이 독은 신경을 공격해서 전신이 마비되어서 숨이 막혀서 죽습니다.”

“마비시키는 독이로군요. 이건 효과가 있겠는데요? 이 독으로 죽지 않는다고 해도 움직임이 느려질 거예요.”

“거미 앞다리를 느리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바로 잡아버릴 수 있지.”

쟈론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학철은 재수 없기는 하지만 어쩐지 같은 편이라면 믿음직스럽다는 느낌도 주는 구나 싶었다. 부대원들 다들 비슷하게 느끼는지 쟈론을 바라보는 눈빛이 신뢰로 가득해 보였다.

어쩌면 그저 희망이 필요한 사람의 절박한 눈빛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좋았어! 그럼 쇠뇌 사수들은 이걸로 독화살 만들어! 나머지는 유해 수습하고! 빨리 서둘러! 다음 방으로 가야 한다! 전우들이 기다리고 있다!”

“예! 알겠습니다!”

다음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쇠뇌 사수들은 휴대하고 있던 의료키트에서 약솜과 핀셋을 이용해 독화살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병력은 전사자들의 유해를 한곳에 몰아서 임시로 안치시켰다. 전투복을 벗어 얼굴을 덮어주었는데, 학철은 시신의 민얼굴을 직접 보는 것보다 얼굴을 덮은 시신이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진다. 묵념!”

장철중 소령이 전사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부대원들도 따라 했다. 리얀과 세이라는 멀뚱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만 보았고, 쟈론은 따라서 묵념을 했다. 학철도 어설프게나마 묵념에 동참했다.

그 사이 리얀은 병에서 피를 흘려 복도 쪽으로 흘려보냈다. 이제는 학철도 리얀이 정찰을 하는 거라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럼 다음 방으로 이동한다! 전진! 사주경계 철저! 나를 따른다!”

장철중 소령은 앞장서서 이동을 시작했다. 부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우리도 가지?”

쟈론이 말했지만 리얀은 대꾸 없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세이라도 함께 걸었다.

“왜 저러는 거죠?”

학철이 쟈론에게 물었다. 정찰을 마친 리얀은 뭔가 고민하고 있는 눈치였다.

“나도 모르지. 사실 저 친구 속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원래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기도 했어. 그리고… 가끔씩 아군을 희생양으로 삼기도 했고. 조금 전에 봤지? 저 부대원들 죽을 거 뻔히 알면서 먼저 앞장서게 만든 거 말야. 덕분에 그 거미, 쉽게 잡긴 했지만….”

“저기요, 그래도 아까 이 복도로 출발하기 전에 리얀 님이 분명히 조심하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학철이 조심스럽게 쟈론의 의견에 반론을 내보았다.

“그래. 그런 식이야. 분명히 뭐라고 할 수는 없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편을 희생시켜서 성과를 얻은 거잖아?”

분명 거미가 기다리고 있는 복도로 출발하기 전, 리얀은 장철중 소령을 말렸다. 하지만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한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이 말 왜 하는지 알겠지? 현지인.”

쟈론은 이렇게 말하곤 학철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희생당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걸까?’

한편으로는 믿음직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재수 없는 인간. 한편으로는 재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조언을 해 주는 인간. 학철은 쟈론을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복도는 길고도 어지러웠다. 푸른 LED 조명도 눈에 거슬렸다.

‘도대체 흑마법사는 이 지하에 뭘 숨겨놓은 걸까?’

학철은 최면에 빠져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긴 복도를 걸으며 이런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흑마법사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어서 이렇게 길고도 복잡한 미로를 홍대 한복판에 만든 것일까?

아무리 긴 하루도 시간이 가면 저무는 것처럼 결국 복도도 끝이 났다. 장철중 소령은 부대원들을 출입구 앞에 정렬시켰다.

“전투준비!”

소령이 명령을 내렸다. 쇠뇌로 무장한 병사들은 사격 준비를 했고, 방패를 든 부대원들이 앞장서서 출입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기분 나쁜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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