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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두두두…
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울렸다.
“서, 설마… 지진인가?”
장철중 소령은 소리가 나는 곳을 파악하기 위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하지만 이런 지하에서 울리는 소리의 진원지를 귀로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기 때문이다.
이상한 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거미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부상당한 세이라를 추격할 기세였지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이후에는 공격을 멈추고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세이라! 괜찮아?”
쟈론이 세이라에게 물었다.
“상처가 그렇게 깊진… 않아요!”
세이라는 평소처럼 명랑하고도 쾌활한 투로 말했지만 멀리서 봐도 출혈이 엄청났다.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언제 의식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두두두두두두두…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가 커질수록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이 분명해졌다. 소리는 일행이 들어온 바로 그 출입구 쪽에서 울리고 있었다.
“다들 피해요!”
출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행렬이 그대로 성체 거미를 향해서 직진하고 있었다.
뉴트리아였다.
수천 마리의 뉴트리아가 마치 거대한 물결처럼 일렁이며 성체 거미를 향해 돌격해 들어가고 있었다.
- 츠츠츠츳!
거미는 쟈론과 세이라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처럼 달려드는 뉴트리아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처음 한 마리는 정확하게 발톱에 찍혀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하지만 두 마리, 세 마리, 사십 마리, 이백 마리… 뉴트리아의 물결은 그대로 성체 거미를 뒤덮어 버렸다.
- 그아아아! 그아아아아!
수 천마리의 뉴트리아가 동시에 울음소리를 내었다. 성체 거미는 다리를 마구 휘둘렀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거미집에 개미 떼가 들이닥친다면 비슷한 느낌일까?
마치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을 들고 홀로 개미 떼와 맞서 싸우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성체 거미에게는 한 마리를 찍어낼 수 있는 정확성이 있었고, 한 번 휘둘러 수십 마리의 뉴트리아를 밀쳐낼 수도 있었지만 수천 마리의 뉴트리아가 몸에 기어오르는 것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성체 거미는 그 신체 구조상 몸통에 올라탄 뉴트리아를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 그아아! 그아아아아아!
뉴트리아는 날카롭고도 거대한 앞니를 이용해 성체 거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방 안은 순식간에 성체 거미가 흘리는 시커먼 체액으로 젖어가기 시작했다. 거미는 이제 쟈론과 세이라의 존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 츳! 츳! 츳!
성체 거미가 여덟 개의 다리를 미친 듯 휘두르며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뉴트리아들은 더욱 맹렬하게 성체 거미에 달라붙었다. 성체 거미와 목숨을 걸고 싸우던 쟈론과 세이라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둘 다 입을 쩍 벌리고선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뉴트리아들의 맹렬한 공격에 몸통이 뜯겨나가던 성체 거미의 앞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몸통에 연결된 관절을 뉴트리아들이 먹어치운 모양이었다. 곧 다리 하나가 더 떨어져 나갔고, 미친 듯 휘두르던 움직임은 천천히 잦아들었다.
푸우우욱!
어느 순간 뭔가가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시커먼 것이 성체 거미의 몸 위로 솟구쳐 올랐다. 아마 거미줄을 저장하는 신체 기관이 터진 모양이었다. 거미줄의 원료가 되었을 성체 거미의 내용물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거미는 무의미한 저항을 멈추었다.
- 쉬이이이익…
마지막으로 성체 거미의 몸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그 소리를 끝으로 성체 거미에게서는 더 이상 숨소리가 이어지지 않았다.
- 그아아아아아! 그아아! 그아아아아아!
성체 거미가 모든 움직임을 멈추자, 뉴트리아의 울음소리가 승리를 자축하는 것처럼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방 안에 있던 모두는 경악의 심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체 거미는 이렇게 죽었다.
“다들 괜찮아요?”
조금 전 다들 피하라고 입구 쪽에서 외쳤던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며 다가왔다. 오툴이었다. 그 뒤로 진 팀장이 보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네요.”
진 팀장이 상황을 살펴본 후 말했다.
“이미 늦었어, 진 팀장. 우리 애들 많이 상했어. 많이 죽었고.”
장철중 소령은 아주 쓴 것을 씹은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서 진 팀장에게 원망 어린 어투로 말했다.
“이게 최선이었어요. 그나마 저기 오툴, 저 이세계인이 뉴트리아를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으면 더 늦어졌을 거예요. 저는 시린 가스를 쓰려고 했거든요.”
독을 이용해서 지하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절멸시키려고 했다는 소리였다. 학철은 일본에서 있었던 시린 가스 테러 사건이 떠올라서 몸이 다 떨렸다. 진 팀장은 다 죽일 작정이었다. 특수부대도, 이세계에서 온 사람들도, 그리고 학철도. 하지만 진 팀장은 그런 끔찍한 소리를 내뱉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학철은 진 팀장이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심각하게 해 보게 되었다.
그 사이 부대원들은 성체 거미에게 잡혀갔던 네 명의 1중대 대원들을 구출했다. 그중 셋은 마비된 상태이긴 했지만 생명은 건질 수 있었다. 다만 하나는 이미 거미의 먹이가 된 후였다.
학철은 글자 그대로 몸통에 뼈만 남은 시신을 보았다. 내부의 모든 장기를 다 빨아 먹은 모양이었다. 다만 얼굴만큼은 온전하게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나머지 마비된 세 부대원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 끔찍한 참상에 부대원들은 다들 숙연한 표정이었다.
“세이라! 괜찮아?”
쟈론은 조금 전 성체 거미의 공격을 받아 큰 상처를 입은 세이라를 걱정했다. 하지만 세이라의 옆에는 이미 리얀이 붙어 있었다. 리얀은 언제 일어섰는지 세이라 옆에서 치료를 마친 모양이었다.
“역시! 아! 아깝다! 아까워!”
쟈론이 큰소리로 외쳤다.
“왜요? 제가 죽었으면 했나요?”
세이라는 이미 치료받아 통증이 사라졌는지 여유 있는 얼굴로 쟈론의 말을 받았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아깝다고! 리얀 말이야, 리얀! 나는 늘 궁금했거든. 마법사가 방귀 뀌는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말이야! 오래전에 친구하고 내기한 적도 있어. 마법사의 방귀에는 에테르가 있어서 그 에테르로 방귀 냄새를 없앤다는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
“어느 쪽에 걸었는가, 쟈론?”
리얀이 의외로 쟈론의 농담에 대응했다.
“나는 마법사들의 에테르 농담은 대부분 지어낸 거라고 했지. 당연히 방귀 냄새가 날 거라고, 그것도 아주 지독할 거라고 했지! 하하하!”
“쟈론. 그대가 졌다.”
리얀은 이렇게 말하곤 피식 웃었다. 학철은 피식 웃는 리얀의 표정이 마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핏기없는 얼굴에 눈이 퀭했다.
“그래, 그랬군. 마법사들, 개인위생에 엄청 신경 쓰지. 리얀, 정말 대단해. 지금도 보라고. 옷이고 머리고 방금 목욕하고 나온 사람처럼 뽀송뽀송 깨끗하잖아?”
쟈론의 말은 사실이었다. 리얀의 얼굴과 피부, 머리는 처음 보았을 때처럼 완벽하게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깨끗한 몸과 마음은 마법사의 미덕이다, 쟈론.”
“그래. 그렇다고 해 두지. 그런데 오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쟈론이 오툴에게 물었다.
“늘 하던 대로 했어요. 지금 상황을 알려주고, 어떻게 행동하는 게 최선인지 알려준 거죠. 그리고….”
오툴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뉴트리아들이 거미를 떠나고 있었다. 거미를 떠난 뉴트리아의 행렬은 출입구를 지나 긴 복도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싸움 끝나면 다들 자유롭게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볼리비아 정보부하고 이야기됐어요. 볼리비아 북쪽 습지대에서 남은 삶을 평화롭게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외국으로 보내겠다는 말인가?”
리얀이 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되어 있어서 법대로 하자면 다 살처분해야 하거든요.”
“그렇군.”
리얀은 진 팀장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학철은 리얀이 뭔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리얀의 마법이 끝났다. 부대원들은 들고 있는 쿠크리 나이프로 거미줄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부대원들은 거미줄을 쿠크리 나이프에 솜사탕처럼 모아서 방구석에 몰아넣었다. 역시나 대한민국 군대였다. 작업은 정말이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되었다.
작업이 끝날 무렵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뉴트리아들, 사육장으로 돌아갔어요. 일단 쌓여 있는 사료들 먹어야 할 테니까 그건 거기 남아 있던 대원들한테 부탁했고요. 그런데 그 과정 확인할까요, 아니면 브리핑할까요, 진 팀장님?”
여자 요원이었다. 여자 요원은 이렇게 말하며 안을 살피다가 학철 앞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학철이니?”
여자 요원이 학철을 보며 말했다. 학철은 너무 놀라서 잠시동안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지은이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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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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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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