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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였다. 거의 컨테이너 정도 크기의 늑대였다.
학철은 늑대가 원래 큰 동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동교동 로터리에서 차도를 막고 서 있는 늑대는 학철이 살면서 봐온 그 어떤 늑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 으르르르…
차들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늑대의 두 눈이 마치 시퍼런 불꽃을 보는 것처럼 섬뜩했다.
늑대가 앞발을 휘둘러 바로 앞을 막고 서 있던 승용차를 가격했다.
-콰직!
승용차는 꼭 압착기에 들어간 것처럼 찌그러졌다.
“으아아악!”
운전자는 간신히 차에서 빠져 나와서는 늑대 반대편 인도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늑대는 도망치는 운전자를 노려보다가 방향을 바꿔 찌그러진 승용차를 물어뜯었다. 늑대에게 물린 승용차는 마치 마분지로 만든 것처럼 너무나도 힘없이 찢겨나갔다.
- 아오오오오오…
늑대가 목을 하늘로 빼고 울부짖었다. 동료를 부르는 건지 구슬프게 들리는 울음소리였다. 학철은 늑대 울음소리를 듣자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도망쳐야 해!’
학철의 본능이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학철의 발은 땅에 붙어서 움직이질 않았다.
다음 순간, 울부짖던 늑대 울음소리가 뚝, 하고 끊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목과 몸통이 분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학철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차리기 위해 잠깐 시간이 필요했다.
쟈론이었다.
쟈론은 늑대의 목을 벤 다음 차도에 멈춰 서있던 대형트럭 위에 올라타더니 좌우를 살펴보고 있었다.
“여, 여기요!”
학철은 쟈론을 향해 두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너무 먼데다가 사람들이 고함을 치며 이리저리 도망을 치는 통에 전혀 들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학철은 최선을 다해 소리쳤다.
쟈론이 한순간 학철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 같기는 했다. 학철은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하고 더 크게 소리를 쳤다. 하지만 쟈론은 이내 곧 고개를 돌리고는 정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아, 뭐야….”
학철은 허탈해서 중얼거렸지만 곧 쟈론이 왜 뛰어갔는지는 알 수 있었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큰 곰 한 마리가 트럭 한 대를 힘으로 뒤집고 있었다.
쿵!
트럭이 쓰러지자 곰은 포효하며 두 발로 일어섰다. 거의 2층 건물 높이는 될 것 같은 크기였다. 쟈론은 곰에게 성큼 다가가더니 칼을 휘둘렀다.
챙!
곰의 발톱이 불꽃을 튀기며 쟈론의 칼을 막아냈다. 그리고 곰과 쟈론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쿠쿠쿵!
바로 그 순간, 정 반대편 합정 쪽에서 폭음이 들렸다. 학철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리얀은 쟈론과 반대편에서 뭔가와 싸움을 벌이는 모양이었다.
두두두두두두…
학철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헬기 한 대가 홍대 부근을 선회하고 있었다.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헬기에 박혀 있는 방송사 로고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괴물에게 당했고, 누군가는 깨진 유리창에 베었다.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밟혔고, 누군가는 도망치는 차에 깔렸다.
생지옥이었다.
하늘의 헬기는 선회하며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담고 있을 거였다. 그리고 홍대를 벗어난 강 건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그저 불구경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현실적이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괴물이 서울 한복판에 등장한 것도, 이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괴물과 싸우는 것도, 모조리 비현실적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피비린내가 났다. 어디서 뭔가가 타고 있는지 탄내도 풍겼다. 사람들이 학철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철은 현실감을 느끼기가 힘이 들었다.
“…이제 어떡하지?”
학철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이즈파크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리얀이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그리로 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도망치려고 해도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괴물은 어느 방향에나 있었다.
이즈파크 빌딩 출입구 쪽은 의외로 사람이 없었다. 이즈파크 빌딩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탈출했기 때문이겠지. 학철은 출입구 바로 앞에서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던 진 팀장과 미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철아!”
미해가 진 팀장보다 먼저 학철을 알아보았다.
“그, 이세계인들. 이세계인들은 어디 있어요?”
진 팀장이 학철에게 물었다. 진 팀장도 학철과 그리 다르지 않은 상태인 것 같았다.
“리얀 님하고 세이라는 합정 쪽에서 괴물들하고 싸워요. 쟈론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저기 동교동 로터리 쪽에서 곰하고 싸우고 있었어요.”
“곰….”
진 팀장은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특수부대는요?”
학철이 진 팀장에게 물었다.
“지금 지하철에 괴물 개미들이 나오고 있어! 사람들 공격해! 내가 봤어! 개미가 개미 턱으로 사람 무는 거! 팔 잘리고, 목 잘리고, 피… 우리 정보부 특수부대, 지금 개미들하고 싸우고 있어! 쿠크리 나이프! 방패!”
학철의 질문에 미해가 답했다. 앞뒤 맞지 않는 횡설수설이 답이라기보다는 하소연에 가깝게 들렸다.
“학철아!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응? 너 알잖아. 너, 이세계인하고 계약했다면서. 그러니 알 거 아냐. 이게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응?”
미해가 이어서 이렇게 물었다. 학철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궁리해 보았지만 애초에 모르는 것을 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학철은 잠시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언제였더라?’
학철은 멍하니 생각을 해 보았다.
지난달, 유럽에서 온 애들이 짐 잃어버린 걸 학철 탓으로 돌렸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는 했다. 보험으로 퉁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생활비를 다 날릴 뻔했다.
군대에서 유격 마치고 복귀 행군할 때도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학철은 꿈에서 깨어나면 집 안 이불 속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미해와 헤어졌을 때도 그랬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학철은 그저 미래가 없는 휴학생일 뿐이었다. 미해가 떠난 걸 뭐라 할 수는 없었다. 희망이 없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돌이켜보니 학철 인생에서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이 꿈이 되어 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제발 꿈이 아니었으면 했던 일이 꿈이었던 적은 있었다.
“그래. 로또. 당첨됐었는데, 꿈이었지.”
학철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꿈? 무슨 말이야? 이세계인, 그 사람들, 꿈이야? 꿈에서 나온, 악몽에서 나온, 그런 거야? 응?”
미해는 학철이 뭔가 의미가 있는 중요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물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학철은 이즈파크 빌딩 1층 상가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진 팀장과 미해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개미 한 마리였다. 거의 대형견만 한 크기의 개미였다. 어쩌다가 지하철에서 이즈파크 빌딩 1층 상가까지 오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이 썩 좋은 상태가 아니란 것만은 분명했다.
개미의 턱에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피와 살이 묻어 있었고, 더듬이 한쪽과 앞다리 하나가 끊어져 나가 있었다. 아마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그렇게 된 걸 수도 있고, 특수부대원의 쿠크리 나이프에 잘려나간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개미가 평화롭게 갈 길을 가지는 않을 거라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학철아!”
미해가 비명에 가까운 높은 소리로 학철을 불렀다. 학철은 미해가 왜 그러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 자기 손에 토가레프 권총이 쥐어져 있다는 걸 확인하자 대충 짐작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죽을 순 없잖아.”
학철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햇살 엔터에서 주운 토카레프였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주웠을지 몰라도, 지금 이 토카레프 권총은 학철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팀장님!”
학철이 개미를 향해 총구를 겨냥하자 미해가 소리를 질렀다.
탕!
하지만 진 팀장이 어떤 반응도 보이기 전에 학철의 총구가 먼저 불을 뿜었다. 발사된 총탄은 개미의 오른쪽 눈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충격으로 개미의 고개가 왼쪽으로 잠깐 돌아갔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탕! 탕!
학철은 두 발을 연이어 발사했다. 이번에는 개미의 두 눈 사이에 두 발이 정확하게 명중했다. 하지만 개미는 그게 뭐냐는 듯,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천천히 학철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미의 눈과 눈 사이에 난 구멍에서 끈적이는 뭔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학철은 두 손으로 토카레프 권총을 고쳐 쥐고 개미의 머리를 겨냥했다.
“죽이거나, 죽거나.”
학철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타탕! 타탕!
곧이어 총성이 울렸다.
지은이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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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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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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