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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89화 (8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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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이 울렸을 때, 학철은 몸을 움찔했다.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넣지 않았는데 총성이 들렸으니 고장이라도 난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아니었다. 총성이 들린 건 진 팀장이 개미를 향해 사격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미해야. 무장 안 했어?”

진 팀장은 글록 42를 들고 있었다. 380A CP 탄을 사용하는 글록 42는 크기가 작아 휴대하기 간편해서 비밀요원들이 기본무장으로 종종 애용하는 총이다.

“저, 정보 분석하러 파견 나온 거잖아요. 무기 불출, 안 했는데요….”

미해는 기어들어 가는 것 같은 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내 뒤에 숨어. 학철 씨. 머리에 쏘는 거, 효과 없는 거 같은데, 어쩌죠?”

진 팀장이 다가오고 있는 개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학철에게 물었다.

“효과 있을 때까지 쏘면 안 될까요?”

학철은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학철 씨. 두 발씩 쏴요. 한 발씩 쏘지 말고. 탕, 이 아니라 타탕.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진 팀장이 말했다. 한 발은 효과가 없을 수 있으니 두 발을 쏜다는, 더블 탭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타탕!

학철은 두 발을 연속으로 쏘았다. 이번에도 총탄은 머리에 명중했다. 하지만 개미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표정에 변화가 없으니 더욱 그렇게 여겨졌다.

타탕! 타탕! 타탕!

진 팀장도 연속으로 사격했지만 개미는 그저 묵묵히 두 사람을 향해서 다가올 뿐이었다. 학철은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달리고 있었다.

‘그냥 나도 저 사람들 속에 섞여서 도망칠까?’

거대한 턱을 가진 괴물이 자신을 향해 똑바로 다가온다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학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상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절대로 자존심 상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머리 말고 배 쏴요, 배!”

학철은 이렇게 외치면서 개미의 왼편으로 돌아갔다. 진 팀장은 오른쪽으로 돌았다.

목표가 둘로 나뉘자 개미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바로 학철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마도 둘보다는 하나가 상대하기 쉽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배요! 배!”

타타타타탕! 타탕!

개미가 옆으로 돌자마자 진 팀장이 연속으로 사격을 가했다. 학철은 개미의 단단한 외골격이 부서지며 파편이 튀는 것을 보았다.

툭.

개미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떨어진 머리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 더듬이를 움직였고, 남아 있는 몸체는 학철 쪽으로 계속 움직였지만 걸음은 느리기만 했다.

“목이 약점이네요.”

진 팀장이 말했다. 진 팀장은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고 있는 부위를 집중적으로 사격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사격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학철은 괜히 배를 쏘라고 그랬나 싶어서 머쓱해졌다.

“어휴! 깜짝 놀랐네!”

그래서 학철은 짐짓 아무 말도 안 했던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개미 머리는 축구공만 했다. 더듬이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구멍에서 계속해서 체액이 흘러나오는 게 괴기했다.

“학철 씨?”

진 팀장이 학철을 불렀다. 진 팀장은 학철을 보지 않고 이즈파크 빌딩 1층 상가 안쪽을 보고 있었다. 불길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개미가 더 있었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언뜻 보아도 열 마리가 넘었다. 학철은 들고 있는 토카레프 권총에 몇 발이 더 남아 있을까 생각했다. 두어 발? 많아 봐야 세 발은 넘지 않을 것 같았다.

“저기요, 실탄 많이 남아 있어요?”

학철이 진 팀장에게 물었다. 진 팀장은 대답 대신 총을 들어서 보여주었다. 슬라이드가 후퇴 고정되어 있었다. 탄을 다 쓴 것이다.

“도망쳐야… 겠죠?”

진 팀장이 빈 총이 되어버린 글록 42를 도로 넣으며 학철에게 물었다.

“어디로요?”

학철은 이렇게 되물었다. 어디를 가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개미가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는 모르지만 사방이 온통 괴물 천지였다. 그래서 사람들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한 다음에 다시 여기로 오죠.”

진 팀장이 대답했다.

“어디가 안전한데요?”

학철의 질문은 핵심을 찔렀다. 안전한 곳은 없었다. 게다가 이곳을 떠나면 리얀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건….”

진 팀장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개미들이 학철 일행을 발견하고는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개미들은 조금 전 상대했던 개미와는 완전히 달랐다. 앗, 하는 사이 이미 개미는 학철 일행을 포위했다. 보자마자 도망쳤다고 해도 절대로 도망칠 수 없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뭐지, 이 속도는? 일개미하고 병정개미의 차이인 건가?’

“도망치자니까!”

진 팀장이 학철을 원망했다. 하지만 학철은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이 없었다. 사방이 개미였다. 십여 마리의 개미가 이미 학철 주위를 완벽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도망칠 길은 없었다.

학철은 미해가 진 팀장의 등 뒤에 숨어서 고개만 살짝 진 팀장 어깨너머로 내미는 것을 보았다. 학철은 용기를 냈다. 용기를 내야만 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제가 그쪽에 있는 개미 목을 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철이 말했다. 정면에 있는 개미의 목을 쏠 수는 없었지만 측면에 있는 개미들은 가능할 것 같았다.

“목이 떨어지면 그 개미 밟고 도망치세요.”

학철은 이렇게 말하면서 학철 쪽에서는 측면이고 진 팀장이 보기엔 정면에 있는 개미의 목을 겨냥했다. 하지만 기껏해야 두세 발 남아 있을 권총탄으로 과연 저 개미의 목이 떨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빗나간다면….’

학철은 여기까지 생각하고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췄다. 명중시켜도 학철에게 미래는 없었다. 그 뒤는 끔찍한 최후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이해 못 할 거야. 내가 왜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지.’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미해 앞이다. 죽으면 죽었지 약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얄궂게도 세이라가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전쟁통에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넘친다고 했지. 다들 목숨을 걸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다가 죽었다고 했어. 그런데 도대체 그 증명하고 싶다고 하는 가치는 무슨 가치지?’

학철은 자신이 지금 증명하고 싶은 가치도 마찬가지로 의미를 알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학철은 개미의 목을 정조준했다. 숨을 들이마시다가 멈췄다.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넣었다.

툭.

다음 순간, 개미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학철은 자신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법이 아니라면 생각만으로도 개미의 목을 떨어뜨릴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 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아니었다.

쟈론이었다. 쟈론은 학철이 노리고 있던 개미의 목을 벤 다음, 그대로 한 바퀴를 크게 돌면서 칼을 휘둘렀다. 아주 잠깐이 흘렀을 뿐인데 바닥에 개미 목 십여 개가 나뒹굴었다.

“다가가지 마! 위험해! 저거, 물리면 잘려!”

쟈론이 잘린 개미 머리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경고했다.

“오셨…군요.”

학철은 긴장이 풀려서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지만 간신히 중심을 도로 잡으며 쟈론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당연하지! 저 위에서 곰하고 싸우고 있을 때, 내가 눈빛 보냈잖아!”

학철이 손을 흔들고 고함을 쳤을 때 쟈론과 눈이 마주치긴 했었다. 하지만 그걸로 신호를 보냈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인지, 진심인지 학철은 그냥 아, 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리얀은?”

쟈론이 물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길 건너편에서 사마귀를 불태우고 있었어요. 그다음에는… 합정동 쪽에서 불기둥이 막 솟아오르는 걸 봤는데 아마 리얀 님 마법 아닐까 싶고… 그 뒤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리얀 하던 방식 그대로네. 전장을 누비면서 적들을 마구잡이로 불태우는 거. 3년 전 대평원 전투 이후로 놈들이 뭉쳐 다니질 않아서 리얀은 주로 돌아다니면서 각개격파를 했어. 그런데 이상하네. 개미는 여왕개미가 있어야 하고, 개미집도 있어야 한단 말이야. 다른 것들이야 흑마법사가 지금 차원이동문을 통해서 불러냈다고 해도 개미는 여기 존재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거든.”

쟈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거미처럼 몰래 숨겨서 기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학철이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봐야지. 그리고 개미집 찾아내서 청소해야지. 지금 당장은 더 급한 게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진 팀장,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안전하려면 개미집 청소는 꼭 해야 할 거야.”

쟈론이 진 팀장에게 말했다.

“당장 급한 거 같은데요.”

진 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개미는 결국 잡을 수 있어. 목만 떨구면 되니까 칼 한 자루면 누구라도 잡을 수 있다고. 하지만 전갈이나 사마귀, 늑대, 곰 같은 건….”

“저기 보세요.”

진 팀장이 상가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학철은 이번에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불길한 예감은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개미 떼였다.

시커먼 개미 떼가 지하에서 1층 상가로 줄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100마리? 1,000마리? 압도적인 숫자에 학철은 기가 질려 버렸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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