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홍대 가다-90화 (90/100)

- 90 -

“다들 뭐 하나 집어 들어! 목을 노려! 힘들면 머리 한복판을 세게 내리쳐! 그러면 목 떨어져! 개미들은 내구성이 약해! 목만 떨어뜨리면 어쨌거나 끝이야!”

쟈론은 전투 지시를 하며 칼을 쥐었다. 학철은 권총을 도로 바지춤에 꽂고, 상가 매장에 뭔가 쓸 만한 물건이 없을까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가까운 곳에 스포츠용품점이 있었고, 학철은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진 팀장과 미해는 하키 스틱을 집었다.

“연수 기간에 검도 배웠지?”

진 팀장이 하키 스틱을 목검 잡듯이 잡으며 미해에게 물었다.

“예, 팀장님.”

미해도 비슷하게 잡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제대로 배운 것 같진 않았다.

“온다!”

쟈론이 소리쳤다.

자신만만하게 야구방망이를 들긴 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는 될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

학철은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내지르며 바로 앞에 달려드는 개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우지끈!

머리통이 박살 나는 끔찍한 감촉과 함께 얼굴로 개미 얼굴의 파편이 튀어 올랐다. 목이 약하다는 쟈론의 말은 맞았다. 그 정도 충격으로도 개미의 목은 바닥에 떨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다시 야구방망이를 들어 올리기도 전에 다음 개미가 학철에게 달려들었다.

일당백이라는 단어가 있다.

학철은 일당백이란 일종의 비유라고 알고 있었다. 마치 한 사람이 백 명을 당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일 때 일당백이라고 한다는 게 학철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쟈론은 정말로 일당백이었다. 아니, 학철이 백 명 있다고 해도 쟈론 한 사람을 당해낼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적어도 칼에 있어서는 틀림없었다.

번쩍!

학철에게 개미들이 달려들던 바로 그 순간 학철은 눈이 부실 정도로 뭔가가 번득인다고 생각했다. 그건 쟈론이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칼을 휘둘러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고 난 뒤에는 휘두른 칼을 회수해야 한다. 하지만 쟈론은 칼을 회수하지 않았다. 휘두른 힘을 그대로 이용해서 다음 공격으로 이어갔다. 그것은 마치 회오리바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휘리리리리릭!

쟈론은 원심력을 이용해서 개미들을 베어나갔다. 꼭 믹서에 개미 떼를 밀어 넣는 것만 같았다. 회전하는 칼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개미들의 목을 베었고, 상가 1층 바닥에는 잘려나간 개미의 머리통이 쌓여갔다.

학철은 쟈론을 보기 직전, 리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절대로 급하게 움직이지 마라. 쟈론의 검술은 너무나도 빠르고 강해서 자칫 휩쓸리기라도 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리얀의 말은 사실이었다. 저런 움직임이라면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베어버리기 딱 좋을 거였다.

얼마나 베었을까?

개미들이 공격을 멈추고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러간다!”

진 팀장이 소리쳤다. 진 팀장도 학철과 마찬가지로 한 마리 밖에는 해치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개미들이 물러나는 게 기쁜 기색이었다.

“물러나는 게 아냐.”

쟈론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개미들은 일단 후퇴하더니 진형을 짜기 시작했다. 조금 전, 일직선으로 줄을 지어 달려들었던 것과는 다른 진형이었다.

학익진이었다.

“우리를 포위하려는 거야. 우리 숫자는 적고, 자기들은 많으니까. 개미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런 머리를 굴리는 거지? 거, 참.”

쟈론이 한탄 조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쟈론의 회오리바람 같은 칼에도 한계는 있었다. 그것은 칼날의 범위만큼의 물리적 한계였다. 개미들이 포위에 성공한다면 쟈론을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한 번에 한 마리밖에 공격하지 못하는 나머지 셋은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을 거였다.

“그냥 밖으로 나가고 싶은 거 아닐까요?”

진 팀장의 말은 예측이라기보다는 희망 사항에 가까운 것이었다.

“만약 그냥 나가기만 할 생각이었다면 그냥 나갔을 거야. 셋이나 넷으로 나가는 행렬을 늘리면 그만이잖아?”

쟈론의 말이 옳았다. 개미들은 학철 일행을 공격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동료의 복수를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베어진 개미 머리통에 달린 더듬이들이 마치 공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개미들은 진형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좌우로 넓게 포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장으로 기어 올라간 무리도 있었다. 학익진이 2D라면 지금 개미들의 진형은 3D였다.

“내 뒤에 붙어 있어.”

쟈론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옷깃으로 훔치며 말했다.

“뒤에 붙어 있다가… 휩쓸리면요?”

학철이 물었다.

“휩쓸리지 마. 죽을 테니까.”

쟈론은 당연하지 않으냐는 투였다.

‘그냥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쟈론의 말에 학철은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정신 바짝 차려! 이번엔 제대로 갈 테니까. 합!”

쟈론은 기합을 단단히 넣고는 한 손으로 가볍게 칼을 돌리며 개미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비켜!”

바로 그때였다.

와장창!

강화유리로 된 이즈타워 빌딩 1층 상가 출입문이 거의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학철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에 몸이 굳어버렸는데, 천만다행으로 유리는 학철과 진 팀장 사이에서 깨져나갔다. 쟈론이 있던 자리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시커먼 승합차였다. 학철 일행과 추격전을 벌였을 때 본 것과 같은 기종의 승합차였다.

승합차는 후진으로 유리문을 깨고 상가 1층 내부로 진입한 것이다. 학철은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귀 막아!”

장철중 소령이었다. 그리고 귀를 막으라는 외침이 신호가 된 것처럼 승합차의 뒷문이 열렸다.

…!

이어지는 소리는 귀를 막으라는 경고에 딱 맞는 어마어마한 고음의 소음이었다. 학철이 듣기에는 거의 ‘삐…’하는 소리로 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승합차 뒤쪽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학철은 혹시 마법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 들었다.

소음의 정체는 M134D 미니건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영화 터미네이터2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써서 익숙한 총이다.

배터리를 포함하면 25kg이나 나가는 이 중기관총은 1분에 5,000발의 7.62밀리 총탄을 발사한다. 학철은 귀를 막고 미니건이 내뿜는 불꽃이 향하고 있는 개미들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쟈론의 칼날이 회오리바람이었다면 미니건은 쓰나미였다. 미니건이 내뿜은 총탄의 파도는 순식간에 개미 떼를 집어삼켜 버렸다. 총탄이 뚫고 지나간 개미들은 그대로 찢겨 산산조각이 났다. 학철은 귀를 막고서 개미들이 총탄에 맞아 파괴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미니건의 압도적인 화력은 개미들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절반 이상의 개미들이 찢겨나갔을 때쯤, 남은 개미들이 황급하게 지하 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사격 중지!”

장철중 소령이 외쳤다. 그리고 1층 상가에 적막이 찾아들었다.

“쟈론, 쟈론은?”

진 팀장이 쟈론을 찾았다. 쟈론이 있던 자리에 승합차가 후진으로 돌진했기 때문이었다.

“와! 그거 화력 한 번 죽여주네. 원리가 뭐야?”

쟈론의 목소리는 천장에서 들려왔다. 학철은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연결된 빔 위에 올라 앉아 있는 쟈론이 학철과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뛰어내렸다. 낙법도 아니고, 파크루 착지도 아닌, 마치 중력을 무시하는 것 같은 몸놀림으로 쟈론은 바닥에 착지했다.

“우리 세계가 가지고 있는 화력이 이 정도야, 쟈론. 이건 급하게 준비해 가지고 오느라 제대로 된 무기도 아니라고. 지금 다른 부대는 대공포부대에서 발칸 빌려서 나온 곳도 있어. 괴물이고 나발이고 다 찢어버릴 테니 두고 봐.”

장철중 소령이 승합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학철은 승합차 뒤에 실려 있는 미니건을 살펴보았다. 사격을 가한 시간은 불과 1분도 되지 않았지만 바닥에는 탄피가 마치 조개구이집에서 회식한 후 뒹구는 조개껍데기처럼 쌓여 있었다.

“일단 1층은 제압했지만 이 위가 문제네. 이 건물, 몇 층짜리 건물이지?”

장철중 소령이 운전석에 앉은 부대원에게 물었다.

“12층 건물입니다. 12층 전망대 식당에서 밥 먹어 본 적 있어서 압니다.”

“흑마법사, 틀림없이 이 빌딩 어디에 숨어 있다 이거지? 그렇다면 이런 괴물들이 층마다 지키고 있겠군. 조금 전에 지하에서 거미들하고 싸울 때는 신세 좀 졌어, 쟈론. 이제 그 신세, 제대로 좀 갚아줘야 할 거 같소.”

장철중 소령은 이렇게 말하면서 씨익 웃었다.

기름거미 때문에 제대로 된 화력을 보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이들은 대한민국 정예 특수부대다. 이들은 영화에서나 보던 각종 화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고, 또한 그 화기들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할 것이다.

‘우리가 이긴다…!’

학철의 가슴 깊은 곳에 희망의 빛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때, 리얀의 음성이 들려왔다.

- 학철! 학철! 내 말 들리는가!

정신감응 마법이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 본 전자책은 <툰플러스>가 저작권자와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무단복제와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