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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95화 (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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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게 도대체 뭐야?”

진 팀장이 악취를 풍기며 머리 위로 다가오고 있는 회색 구름을 보며 말했다. 회색 구름은 푸드덕거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펼쳐지는가 싶더니 오툴이 깔아놓은 옷 위로 질서정연하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비둘기 떼였다.

학철은 살면서 비둘기를 수도 없이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비둘기가 이렇게 정렬해서 움직이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게… 비행체인가요?”

학철이 거의 중얼거리는 것 같은 투로 쟈론에게 말했다.

“응. 비행체. 보기보다 안전해. 살면서 비행체 추락사고 나는 거 몇 번 못 봤어.”

“사고 나는 거 보기는 봤다는 거잖아요?”

“그야 난기류 발생하거나 돌풍 불거나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용이 나타날 수도 있는 거고.”

“아니 그건….”

“아무튼 떨어지면 죽으니까 조심하라고!”

쟈론은 이렇게 말하고는 벽을 타고 옥상을 향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조심하라는 거야….”

학철이 중얼거리는 사이, 오툴은 준비를 마쳤다. 비둘기들은 오툴이 펼쳐놓은 옷의 끝자락을 발톱으로 움켜쥐었다.

“이거, 나름 장인이 만든 귀한 물건이에요.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찢어지거나 끊어지지 않는다고요. 게다가 에테르도 있어서 무게를 좀 줄여주기도 해요. 얼른 올라오세요. 시간 없어요.”

오툴이 말했다. 학철은 오툴 옆에 서기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다.

“저 닭둘기들이 제대로 날 수 있을까…요?”

학철이 아주 조심스럽게 오툴에게 물었다.

“저 비둘기들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나름대로 골라서 뽑은 친구들이라고요. 이 동네에서 나름 힘쓰는 비둘기들 고르고 골랐어요. 참. 곡식 중에 노란 거, 그거 옥수수 맞죠? 이 친구들이 옥수수를 원해요. 일 끝나면 옥수수 한 포대, 저기 공원에 뿌려줘야 해요. 알겠죠?”

“무사히 돌아온다면 옥수수 한 포대가 문제겠어요? 그런데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가….”

“갑니다!”

오툴이 외치자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시작했다.

푸드드드득!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오툴의 옷과 연결된 끝을 쥐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허공으로 떠오르는 순간 아찔했다. 잠시 동안 옥상으로 가겠다고 말했던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일단 비행을 시작하자 의외로 바닥이 편안했다. 지금 문제는 옥상에 올라가서 해야 할 일이었다.

‘아파치! 그래! 아파치가 있었지!’

그랬다. 리얀과 쟈론은 아파치 헬기를 장난감이라고 불렀지만 아파치 헬기는 절대 장난감이 아니다. 냉전 시절에 16기의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한 아파치 헬기는 한 번 출격하면 소련 탱크 16대를 격파할 수 있다고들 했다. 게다가 탈레반 탱크 조종수들은 교본에 아파치 헬기를 만나면 회피 기동을 하라고 배운다고 들었다.

‘아파치를 만나면 도망치라는 건, 그러니까 떨어지면 죽으니까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하고 다를 바 없는 거지.’

학철은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쟈론을 원망했다. 하지만 만약 지금 비행체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쟈론 아니라 그 누구에도 도움이 될 수 없을 건 당연한 이치였다.

‘잊어버리자. 지금 비둘기들이 도와줘서 하늘을 날고 있다는 걸 잊어버리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옥상에 도착하면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래! 흑마법사! 아파치 헬기가 사격을 시작하기 전에 흑마법사를 끝내야 해! 도울 수 있어! 도울 수 있을 거야!’

학철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하늘로 시선을 향하면서, 아무리 아파치 헬기가 구름 위에서 공격을 한다고 해도 소리를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경험이 없으니 그게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최후의 싸움뿐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학철은 최선을 다해 리얀을 도와야만 했다.

‘리얀은 살아야만 해. 그래야 나도 옥상에서 살아서 내려올 수 있을 거야.’

옥상까지는 금방이었다. 다른 생각을 열심히 한 덕도 있으리라 싶었다.

어젯밤에 세이라와 함께 올라왔던 바로 그곳이었다. 전혀 다른 방법으로 올라오기는 했지만 눈에 익은 옥상의 풍경이 보이자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옥상 중앙에 그려진 H자가 눈에 들어왔다. 간밤에 본 헬기 착륙장이었다.

쿵!

“아!”

착륙은 그리 안락하지 못했다. 비둘기들은 오툴이 벗어놓은 ‘비행체’를 그냥 옥상 위에 팽개쳤다. 학철은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은 뒤 옆으로 굴렀다.

“뭐해요? 얼른 내려요.”

오툴이 말하지 않아도 내릴 생각이었다. 학철은 엉금엉금 기어서 비행체 밖으로 나갔다.

“오툴! 이 변태!”

오툴이 비행체를 다시 입기 위해서 옷을 정리하고 있는데 세이라가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변태 아니라고요! 이게 제 일이라고요!”

오툴은 투덜거리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학철은 기어가는 자세 그대로 옥상 위 상황을 지켜보았다.

리얀과 세이라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치 중이었다. 쟈론이 말한 세 명의 이름 높은 칼잡이인 모양이었다.

“세이라! 집중해라!”

“진짜! 이건 오툴 탓이라고요! 어휴! 알았어요, 알았어!”

세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전방을 향해서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세이라의 움직임은 거미와 싸울 때도 실컷 보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세이라가 움직일 때마다 붉은 안개 같은 궤적이 세이라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눈! 눈에서는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고 빛을 따라서 붉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눈에서 불을 뿜는 것만 같았다.

“에테르의 축복이네요.”

오툴이 옷매무시를 바로 하면서 말했다.

“에테르의 축복요?”

“예. 에테르를 이용해서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극대화하는 거죠.”

온라인 게임에 나오는 버프 같은 건가 싶었다.

“나한테는 보호 마법은 건 군종장교가 기도해 주는 거랑 같다고 하더니 세이라한테는 진짜 버프를 걸어주네.”

학철은 칫, 하는 소리를 덧붙였다.

“그런데요, 저 축복은 에테르 자체의 힘으로 신체 능력이 극대화되는 게 아니거든요. 신체 내부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에테르를 이용해서 빨리 태우는 거니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학철은 진짜로 이해가 잘 안 가서 이렇게 말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에테르의 축복을 받으면 며칠은 누워있어야 해요. 힘을 다 소진해 버리니까요.”

“아….”

학철은 승부를 빨리 내야 한다는 것을 리얀도 이해하고 있구나 싶었다.

세이라와 쟈론은 세 명의 칼잡이를 상대로 엄청난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조금 전 본 기름거미와 싸울 때 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고도 강한 공격이었다. 아마 에테르의 축복 덕분이겠지만 싸움은 거의 세이라와 쟈론이 주도하고 있었다.

세 명의 기사는 방어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세 기사의 실력이야 12대륙 8대양에서 이름이 높았다고 하니 당연히 출중하겠지만 셋 다 정장 차림인 데다가 방어만 하고 있으니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으아아!”

팟!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세이라가 괴성을 내지르며 들고 있던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살이 베어져 나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사람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남아 있는 몸통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아… 하아….”

세이라의 입에서 거친 숨과 함께 붉은 안개가 담배 연기 모양으로 피어나왔다. 학철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다 돋았다. 남은 두 칼잡이가 거리를 두고 물러섰고, 세이라와 쟈론도 잠깐 공격을 멈췄다.

“1층으로 내려간 스트라이어 장군을 쓰러뜨린 게 우연이 아니었군, 이름 모를 암살자.”

남은 둘 중 수염을 길게 기른 쪽이 말했다.

“필리페 장군. 지금 홀라스의 머리를 벤 것도 우연은 아니라고.”

쟈론이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래. 에테르의 축복을 썼다고는 해도 방어로는 유명한 홀라스의 목을 베다니 정말 대단해. 하지만 나와 여기 대륙의 문지기 케르벨은 쓰러뜨릴 수 없을 것이야.”

쟈론이 필리페 장군이라고 부른 흰 수염의 칼잡이가 말했다. 흰 수염의 칼잡이 옆에는 보통 사람은 들기도 버거워 보이는 거대한 대검을 든 남자가 서 있었다. 필리페 장군이 문지기 케르벨이라고 불렀는데, 거의 학철 또래로 보일 정도로 어린 얼굴에 덩치는 쟈론 두 사람을 합쳐 놓은 것 같았다.

“전투가 벌어지면 누구나 자기만은 안 죽는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 몸에 칼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야.”

쟈론은 건들거리는 투로 이렇게 말하고는 필리페 장군의 얼굴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이제 승부를 보자고, 필리페 장군.”

“그래. 그러지. 흐흐흐….”

필리페 장군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웃음을 흘리며 쟈론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문지기 케르벨은 자연스럽게 세이라 쪽으로 공격 방향을 잡았다.

2대 2의 싸움이 이어졌다.

쟈론과 필리페 장군은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두 사람은 날카로운 공방을 주고받으며 옥상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반면 세이라와 문지기 케르벨의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세이라의 맹공을 케르벨이 방어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 하아….”

세이라의 공격이 갑자기 멈췄다. 세이라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붉은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세이라!”

“세이라!”

학철이 자신도 모르게 세이라의 이름을 외쳤다. 그리고 리얀도 거의 동시에 세이라를 불렀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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