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 (1/42)

프롤로그

나의 이름은 시엔.

이름에 성이 없는 평민에 신을 믿지 않는 인간.

나는 나에게 빛을 내려주지 않은 신을 저주했다.

태어날 때부터 나에겐 눈이라는 것이 없었다. 전쟁터의 기억을 가진 삭막한 대지 위를 굴러다니는 해골처럼 나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항상 어둠 속에 갇혀 지내던 나는 고작 열세 살의 나이에 용병일을 하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여동생 레이나를 위해서였다.

열세 살의 나이에 용병이 되기 위해 나는 인간이 아닌 벌레가 되어야 했다. 벌레처럼 이 빌어먹을 세상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 생각했다.

나의 하나뿐인 혈육이자 동생인 레이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스러워 앞을 보지 못하는 나에게 누나처럼 모든 걸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앞을 보지 못하는 내가 죽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것도 모두가 레이나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슬퍼할 것 같아서, 그 아이를 지켜주고 싶어서였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버려진 우리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지 의식을 차렸을 때에는 팔레인이라는 시골 마을에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어 굶어 죽을 지경에 빠진 우리를 구해 준 사람은 바로 그 마을의 대장장이 처크 할아버지였다. 그분은 우릴 친자식처럼 돌봐주셨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나에게 부모님의 얼굴이란 것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맑아지게 하는 환한 빛이 비치는 곳에서 살았다는 것과 나의 이름과 나이, 레이나의 이름과 나이는 기억했다. 그 당시 세 살이었던 레이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처크 할아버지에게서 검 두 자루를 받은 나는 용병이 되기 위해 도시로 향하는 상단 일행에 끼어 마을을 떠났다. 레이나가 지독한 병에 걸려 그녀의 약값을 마련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후 어렵게 용병이 된 나는 미친 듯이 싸웠다. 레이나를 생각하며 난 어떤 일이든 했다. 용병일로 번 돈은 얼마간의 쓸 돈을 제외하고는 모두 레이나에게 보내주었다. 간간이 오는 레이나의 편지가 나의 모든 힘의 원천이었다.

눈이 없는 나에게 레이나가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건 나에게 친구라는 것이 생겼을 때부터였다. 바람 같은 그 녀석이 나도 모르는 새에 레이나에게 연락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도착하는 편지를 나에게 읽어주었다.

그렇게 피의 전장에서 십 년.......

나의 얼굴 여기저기에는 줄이 그어져 있었고 전신에도 상처가 그림처럼 새겨져 있었다. 손끝으로 더듬어 느껴지는 몸 곳곳에 새겨진 홈이 나의 십 년간의 전장에서의 생활을 알려주었다. 나의 육체는 피에 찌들어 있었고 나의 영혼은 강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십 년간의 용병생활을 청산하고 팔레인으로 향했다. 편지를 통해 레이나의 병이 다 나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용병일을 할 이유가 없어졌기에 나는 당장에 용병일을 그만두고 레이나가 있는 팔레인으로 향했다.

카엔이라는 젊은 마법사에 의해 병이 나았다는 레이나는 그 마법사와 연인이 되었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을에 가까워지자 행복감이 깃들인 그녀의 밝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팔레인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언제나 외로웠던 내 옆에 지금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리아라는 엘프 여인이었다. 같은 용병이었던 그녀와 나는 많은 일을 함께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외모를 모르지만 엘프인 그녀는 아마도 무척이나 아름다울 것이다.

그녀는 지난 십 년 동안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나의 추악한 외모를 보고도 나에게 다가와 준 유일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이 순간만큼은 신에게 감사하고 싶었고, 눈을 버리고 태어난 건 모두 이리아를 만나기 위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랜만에 만난 레이나의 말투에서 그녀도 이젠 성숙한 여인이 되었음을 느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습한 동굴 같은 나의 눈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내 옆에 이리아가 있듯 레이나 옆에도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카엔이라는 남자로 대륙에서 흔치 않은 마법사라고 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해보니 좋은 사람 같았다. 그날 우리 네 사람은 밤새도록 술을 마셨고 나의 앞에는 즐거운 일만 가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신은 끝내 나를 버렸다.

이리아가 실수로 내뱉은 레이나의 연인인 카엔의 정체에 대한 것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그는 다름 아닌 드래곤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를 알아본 이리아 역시 드래곤이었다.

이리아는 카엔에게 유희를 방해해 미안하다고 말했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리아 또한 나에게 그동안 즐거웠다고 얘기하고는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드래곤들 사이에는 다른 드래곤의 유희를 방해한 경우 자신도 유희를 포기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는 것을 난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그날 카엔이라는 이가 밖으로 나가면서 내뱉은 말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에이! 유희를 망쳐버렸잖아! 젠장! 지우고 다시 시작해야겠군.”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그는 곧 드래곤의 본체로 현신했고, 우리 마을에 브레스라는 것이 떨어졌다.

드래곤은 나와 레이나를 가지고 논 것이다. 단지 유희를 즐기기 위한 장난감으로 말이다. 난 어떻게 돼도 괜찮았다. 그러나 레이나만은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비정했다. 이리아의 단 한 마디로 인해 행복이 깨어지고 작은 마을이었던 이 팔레인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굉음과 함께 난 내 몸을 덮쳐오는 뭔가를 느꼈다. 그리고.......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나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레이나에 대한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리아의 배신도, 카엔에 대한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레이나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신을 만난다면 나의 운명에 대해 따지고 싶었다.

그렇게 죽음에 이른 나에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들려왔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까? 그것은 머릿속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이상한 음성이었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한 카오스에게서 버림받은 존재. 천족도, 마족도, 어떠한 것에도 속하지 않는 정령왕이라는 존재다.]

“.......”

[한 차원계를 멸망시킨 죄로 카오스에 의해 네오스의 어둠 속에 봉인된 나는 이제 쉬고 싶다. 나는 지쳤고 내가 쉬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내 존재 자체를 지우는 것이다. 나에게 미련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다. 그대 인간이여, 나의 존재를 그대가 모두 받아주었으면 한다.]

“무, 무슨 말이지?”

[나의 모든 힘과 모든 기억을 그대에게 주고자 한다. 그러면 난 소멸하겠지. 그대는 받아들이겠는가?]

“큭큭... 모든 것에게 버림받은 나에게 왜 그런 제안을 하지? 왜 이제 와서 이러냔 말이다!”

죽음에 이르러 다가온 이상한 존재의 말. 레이나와 나에게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다가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최소한 레이나만은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이곳은 어둠의 세계. 카오스를 제외한 다른 존재들은 내가 봉인된 이 어둠 속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하나, 그대는 태어날 때부터 어둠 속에서 살아왔고, 죽음에 이르러 그 어둠이 극대화되어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다.]

그의 말에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어찌 되었던 간에 나에겐 다시 한 번 살아날 수 있는 기회와 엄청난 힘이 더불어 주어질 것이다. 모든 정령들을 다스리는 정령왕의 힘이니 말이다.

복수라... 아무리 정령왕의 힘이라도 힘들겠지. 정령왕과 계약해서 그들을 부를 수 있는 드래곤이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되니까. 뭐, 이 정령왕은 차원계라는 것을 붕괴시켰다고는 하나 그때의 난 차원계가 뭔지도 몰랐다.

나는 그 존재를 향해 물었다.

“내가 너의 존재를 받아들인다면 나는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물론이다.]

“나를 내버려두고 레이나를 데려간 하늘이라는 걸 보고 싶다.”

정말 하늘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슬펐다.

“승낙한다.”

[그대는 나의 뒤를 이어 버림받은 정령왕 다크로얀이 될 것이다.]

고오오오......!

그리고 뻥 뚫려 있는 나의 눈으로 뭔가가 빨려들어 옮을 느꼈다. 그것은 엄청난 고통을 동반했고, 난 고통에 몸부림치다 정신을 잃었다.

“크아아아악!”

이날의 선택으로 인해 나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는 그저 하늘을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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