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독종 이야기
독종 이야기
삐그덕, 삐그덕.......
오늘도 짜증나는 고물 집의 비명소리가 나의 신경을 긁었다.
용병길드.......
그란티에 있는, ‘용병길드’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이 집은 나의 집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꼴에 2층짜리 건물이다. 1층에서는 용병길드의 일을 보고 2층은 집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혼자 살기엔 꽤나 넓은 집이었다. 이 나이 되도록 어째서 결혼을 하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의 이름은 마크, 그래도 과거에는 꽤나 잘 나가는 용병이었다.
이 건물을 맡은 지 이제 갓 한 달이 지나고 있었지만 난 그런대로 잘 적응하고 있었다. 나의 천부적인 재능? 개뿔이다.
어릴 때부터 영감탱이의 일하는 모습을 질리도록 보았고, 용병일을 하며 늘어난 수완 덕택에 용병길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전대 그란티 용병 길드장은 나에게 마크라는 이름을 지어준, 나의 아버지가 되는 영감탱이였다. 그 영감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한 달 전 용병일을 청산하고 나는 이렇게 그란티 용병 길드장이 된 것이다.
용병길드를 총괄하는 곳에서 어느 정도 건물 유지비를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용병길드에선 의뢰비에서 일부를 조금 떼어먹었고, 그것으로 살림을 꾸려 나갔다. 그건 물론 나도 마찬가지.
갑자기 죽은 영감을 난 원망하지 않는다. 어차피 30대 후반의 검사인 나는 퇴직할 때가 다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 퇴직이 영감이 죽어 갑자기 찾아왔다는 게 문제였지만.
비는 억세게 퍼붓는데 길드 안은 귀가 따갑게 시끄러웠다. 적당한 일거리가 나타날 때까지 길드 안에 죽치고 앉아 있는 용병들 때문이었다.
이 자식들은 이 신성한(?) 나의 집에서 도박판을 벌인 것도 모자라 술판까지 따블로 벌이고 있었다.
쩝! 나도 예전에 그랬고, 저놈들이 술을 팔아주니 나야 좋긴 하지만.......
용병길드는 거친 용병들만 상대하는 술집 역할도 했지만, 이렇게 대낮부터 찾아와 떠들어대고 있으니 골이 다 띵했다. 안 그래도 찜찜하게 내리는 비가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는데 말이다.
끼이익!
쏴아아아......!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나의 푸념을 늘어놓고 있을 때 빌어먹을 고물 문이 열렸다. 한동안 퍼붓는 빗소리가 귀를 따갑게 때렸다.
“하하! 이거 비가 장난이 아니구먼. 자네가 드디어 정착하고 길드장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네, 마크.”
아니, 이 목소리는?
“엇, 짠돌이 알!”
“하하! 오랜만이군, 그래.”
역시 녀석이다. 그는 나의 지기로 조그마한 상단의 주인이었다. 과거 녀석의 상단을 호위해 준 계기로 알게 되었는데 나이가 비슷해 친구 사이가 된 것이다.
상인답게 살짝 휘어 올라간 그의 눈썹은 꽤나 약삭빨라 보였다. 아, 이건 저 녀석에게는 비밀이다. 저 자식은 한 가지 일로 삐치면 일 년은 기본으로 가는 좀생원이니 말이다.
얼씨구! 한데 오늘은 이상한 놈과 같이 왔다. 두 눈에 눈알이 들어 있지 않은 쪼그마한 아이였다. 왜소한 체구에 이제 갓 열 살을 넘긴 듯한 어린 소년... 서커스라도 하려는 걸까? 그 아이의 등엔 커다란 롱 소드가 매여 있었다. 그것도 두 자루씩이나.
검들은 땅에 질질 끌리고 있었지만 꽤 실력이 좋은 장인이 만든 것인지 반짝이는 예기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 꼬마는 뭔가? 서커스단에 팔려고?”
“쯧쯧,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말게.”
나와 알의 대화에 관심을 가지는 용병은 없었다. 잠깐 눈이 없는 아이를 힐끗 바라볼 뿐이었다. 용병들에게 눈이 없는 사람은 별거 아니었다. 수많은 전투에서 눈을 잃고 사지가 잘린 용병은 수두룩했으니까.
뚜벅뚜벅!
그그그그......!
알이 괴상한 아이의 작대기 같은 손을 잡고 나에게 다가왔다. 맹인 생활이 오래돼서일까? 그 꼬마는 잠시 주춤거리다 보통 사람처럼 잘 걸었다. 하지만 저 빌어먹을 꼬마 녀석의 등에 매여 있는 검 때문에 바닥에 긴 줄이 그려지며 갈렸다.
“팔레인에서 데려온 아이인데 여동생의 약값을 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라네. 그리고 이 아이가 무슨 일이든 한다기에 너무 딱해 내가 데려왔지. 아이치고는 몸에 독기가 있어.”
이런 씨팔! 누가 그런 거 물어봤냐! 저 바닥 값이나 물어내!
“그래서 상단의 잡일이라도 시키려고?”
저런 병신 같은 꼬마를 어디다 쓴단 말인가?
“하하하! 아닐세. 저 검을 보면 모르겠나? 이 아이는 용병이 되고 싶어한다네.”
흠, 용병이라... 뭐, 뭐?
“그럼 잘 부탁하네!”
뚜벅뚜벅.......
끼이익.
쿵!
빌어먹을 자식! 지 할 말만 다 내뱉고 그 자식은 횅하니 나가버렸다. 그리고 내 앞에 멀뚱히 서 있는 꼬마... 빌어먹을! 오늘 재수 옴 붙었다.
으아아아!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어서 여기서 꺼져! 너 같은 병신이 무슨 용병일을 할 수 있겠냐!”
으으으...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젠장, 잠이나 자야겠다.
알이 어째서 저 꼬마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는 안 봐도 머릿속에 훤히 그림이 그려진다.
마을과 도시를 오가며 장사를 하는 장사꾼은 마을 사람들의 신뢰와 믿음을 얻어야 한다. 저 녀석은 분명 팔레인에서 저 병신을 불쌍하다며 착한 척 다하고는, 도시로 가 일자리를 구해 주겠다며 소년을 데리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지켜보는 팔레인 사람들의 마음은 그 자식에게 사로잡혔을 것이고.
하지만 저런 병신을 어디다 쓸 것인가? 노예로 팔고 싶어도 사가는 사람이 없을 테고, 길가에 버리자니 상단을 따라온 다른 마을 사람들의 이목이 신경 쓰였을 테니 결국 나에게 떠맡기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겠지.
젠장, 생각할수록 열 받는다. 으으으! 이럴 때에는 역시 잠이 최고지. 암암!
“하아아암!”
얼마나 잤을까? 비는 그쳤는데, 용병길드 안은 어두컴컴했다.
벌써 밤이 된 것일까? 그러고 보니 떠들어 제치던 용병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빈대 같은 용병들이 돌아갈 정도로 벌써 어두운 밤이 되었던 것이다.
화르륵!
랜턴에 불을 붙여 그것을 들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삐그덕, 삐그덕.......
짜증나는 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끄응! 날 잡아 집을 손보든지 해야... 으히힉!”
타탁!
헉! 일층으로 내려온 나는 랜턴을 떨어뜨릴 뻔했다. 만약 그랬다면 나의 집은 홀라당 타버렸을 거다.
“너, 너 이 자식! 왜 여기 있는 거야!”
내 앞에는 랜턴의 불빛을 받고 서 있는, 아침의 그 눈알 없는 병신 꼬마가 서 있었다.
그 아이가 목소리 때문인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빌어먹을! 밤에 보니 더 무섭다.
“어서 꺼져!”
그그그......!
꼬마가 검을 끌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나의 발걸음을 몇 발짝 뒤로 물리게 만들었다. 밤에 보니 정말 더럽게 무섭게 생긴 녀석이었다.
녀석은 내 눈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저를 용병으로 만들어주십시오. 전쟁터의 칼받이라도 되겠습니다.”
“뭐? 뭐, 뭐야! 이 미친 새끼!”
정말 미친놈이 분명하다. 눈알을 잃으면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일까? 이 병신 꼬마는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병신아, 그란티에는 제르라는 날건달이 있다. 그 녀석을 이긴다면 전쟁터로 보내주마. 하지만 실패한다면 그 검은 나의 것이다.”
꽤나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듯한 롱 소드 두 자루... 솔직히 탐이 났다. 그리고 어서 저 꼬마를 내쫓고 싶었다.
나의 말에 꼬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등에서 검을 풀었다.
“약속 지키세요.”
뚜벅뚜벅.......
“뭐?”
나의 물음에 꼬마는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벌써 길드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버렸으니까.
니미럴, 소금이라도 왕창 뿌려야겠다! 흐흐... 그건 그렇고, 검 두 자루를 팔아서 오랜만에 재미 좀 봐야겠군.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확히 일주일 후 그 병신 꼬마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온몸이 퉁퉁 부은 그 꼬마가 처음 한 말은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그때 길드 안에 있던 용병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꼬마의 말을 증언해 주었다.
용병들의 말을 들어보니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날건달 제르는 피투성이가 되어 실려갔다고 한다.
자세히 물어보니, 저 병신 꼬마가 마을 대로에서 제르를 목이 터져라 외치자 불같은 성격의 날건달 제르는 꼬마를 끌고 가 마구잡이로 팼단다. 하지만 그 다음날 피투성이가 된 꼬마가 비틀거리며 대로로 나와 또다시 제르의 이름을 부르자 잔뜩 흥분한 제르는 또다시 달려와 꼬마를 반쯤 죽여놓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기를 닷새.
남은 이틀 동안은 너무 심하게 다쳐 한동안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와 약속한 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꼬마는 제르를 이겼다.
완벽한 승리!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꼬마는 제르를 이겼단다.
“너, 너 어떻게 이긴 거냐?”
나의 물음에 병신 꼬마가 입을 열었다.
저 괴물 독종 꼬마의 말에 따르면 녀석은 일주일간 제르의 공격 패턴을 모두 기억했단다.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제르가 내뻗는 주먹의 바람소리, 그가 내딛는 발걸음 소리 등등... 아이는 눈이 아닌 다른 모든 감각을 동원해 제르를 서서히 쇠사슬로 묶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아이에게 검을 넘겨주었고, 약속대로 전쟁터로 보내주었다. 용병을 전쟁터로 내보내면서 군관에게 돈을 쥐여준 것은 그때가 내 생애 처음이었다.
그렇게 나의 눈에서 그 병신은... 아니, 독종은 사라졌다.
“이봐, 독종! 너 이름이 뭐냐?”
저 녀석이라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비록 눈이 없는 병신이지만, 미친놈인 저 녀석이라면... 전쟁은 미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니까.
“시엔...입니다.”
그리고 소년은 군관을 따라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혼돈의 정령왕」 1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