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슬픔을 마시는 자
슬픔을 마시는 자
모르드 평원의 첫 전투는 로얀의 검에 의해 막을 내렸지만 빈트러드 제국의 병력은 아직 평원에 진을 치고 있는 상태였다.
총지휘관인 매의 창 안드라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빈트러드 제국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공석이 된 총지휘관의 자리를 원래 태양기사단의 단장이었던 알렉스가 이어 맡고는 다시 전투를 준비했다.
그들은 3일 후 대열을 모두 정비하고 두 번째 전투를 위해 나섰다.
안드라가 죽은 것만으로도 카엔의 미움을 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다 전쟁에서 지기까지 한다면 악독하고 잔인하기로 소문난 카엔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죽기 살기로 싸워야만 했다.
남은 병력은 총 1만 3천. 지난 전투로 2천의 군사를 잃었다. 몰딘 왕국이 병사 천 명 정도를 잃은 것에 비하면 두 배나 많은 수였다. 그래도 아직까지 수적으로 유리한 빈트러드 제국이었지만 몰딘 왕국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있다는 사실에 모두 긴장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 한 사람은 천군만마를 얻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는데, 몰딘 왕국은 바로 그런 이를 얻은 것이다.
빈트러드 제국의 병사들이 모두 몰딘 왕국의 진영 앞으로 다가와 길게 도열하자 몰딘 왕국의 수뇌부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얀을 중심으로 여러 장수들과 궁정 마법사인 그리알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얀 바로 앞에는 로얀이, 그 옆엔 엘라임이 앉아 있었다.
엘라임은 로얀의 동료이자 물의 정령을 다루는 정령술사로 소개되었다.
이곳 여름의 대륙에서는 물의 정령술사에 대한 대우가 남달랐다. 장마로 인해 비가 확 쏟아지기도 하지만 평상시에는 항상 대지가 바짝 말라 있어 항상 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굳게 다물려 있던 얀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역시 다시 공격해 들어오는군.”
“예. 태양기사단의 전 단장인 알렉스라는 자가 총지휘관이 되었습니다.”
얀의 말에 답한 건 그리알이었다.
“알렉스?”
“알렉스라는 자는 중급의 소드 마스터입니다. 실전경험이 부족하여 안드라에게 밀린 듯하지만 실제 실력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흠, 정면으로 붙으면 우리에게 승산이 없겠지.”
“그렇습니다. 한데 이곳에는 산도 없을 뿐더러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아 기습공격을 하는 것도 힘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앞에 닥친 위기부터 모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에 펼쳐진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얀의 물음에 그렇게 답한 건 붉은 불꽃이 수놓여 있는 적색 갑옷을 입은, 홍염의 기사단 단장인 로이드였다. 그는 단정한 붉은 머리카락과 듬성듬성 나 있는 붉은 수염이 인상적인 40대 초반의 중년인이었다.
그가 말하는 위기란 제국 병사들이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치고 도열해 있는 것을 뜻하는 듯했다.
그러자 그리알이 로얀을 바라보았다.
“폐하의 친구 분이신 로얀님께서 선봉으로 나서서 도와주신다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도 있을 겁니다.”
모두의 이목이 자신에게로 쏠리자 로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얀이 참전 의사를 밝히자 얀이 작전명령을 내렸다.
“그럼 홍염의 기사단이 로얀을 엄호하고 붉은 루비 기사단은 로얀의 명을 직접적으로 받들고 선봉에 선다. 로얀과 붉은 루비 기사단이 앞서 나가면 전 병사들은 그의 뒤를 따라 돌진한다.”
이 작은 병력으로는 제국의 병사들을 가둘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모르드 평원에서의 전투는 돌진밖에 없었다.
그러나 얀의 말에 로얀은 고개를 저었다.
“나의 휘하에 병사는 필요없다. 엄호도 사양하지.”
그 말에 모든 이들이 놀란 눈으로 로얀을 바라보았다. 그가 왕인 얀에게 말을 놓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혼자서 싸우겠다는 소리로 들리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
그리고 왕에게 말을 낮춘 것에 대한 것은 얀이 이미 신신당부를 해두었기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네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도 혼자서는 무리야.”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선봉으로 나갔을 때, 만약 내가 위험에 처한다면 그때 날 도와줬으면 한다.”
“야! 그건 정말.......”
“그 녀석에게 보내는 나의 경고, 확실하게 나의 손으로 하겠다.”
그러자 얀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얀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허락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로얀이 약간의 부상을 당할 순 있겠지만 죽지는 않으리라 생각한 탓에 쉽게 허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위의 장수들과 그리알이 크게 반박했지만 이미 왕의 허락이 떨어진 뒤였다.
그러자 할 말을 다 한 로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 백 필만 나에게 주었으면 한다. 확실하게 일을 매듭지을 테니.”
“끄응... 알겠다, 알겠어! 근데 말을 백 필이나 가지고 뭘... 젠장, 마음대로 해라!”
자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로얀이 막사에서 나가 버리자 얀은 그렇게 투덜댔고, 회의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러자 엘라임이 급히 로얀의 뒤를 따라 막사를 나섰다.
로얀은 자신이 묵고 있는 막사로 걸어갔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로얀의 막사는 좀 외진 곳에 있었다.
“로얀!”
멈칫.
성큼성큼 걸어가던 로얀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를 불러 세운 사람은 엘라임이었다. 그녀가 로얀을 부르는 호칭은 차갑게 흘러나오는 ‘당신’에서 어느새 묘한 감정이 담긴 것 같은 ‘로얀’으로 바뀌어 있었다.
로얀이 멈추어 서자 엘라임이 다가와 그의 앞에 섰다.
“혼자서 어떻게 만 명이 넘는 병사를 상대할 수 있어?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질 거야?”
“혼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
“안 그런가?”
로얀은 허공을 향해 나직이 중얼거렸다.
“예, 마이 로드.”
음침하면서도 스산한 음성과 함께 주위에서 어둠이 몰아쳤다.
단단한 대지 위에 그려져 있는 수많은 그림자들... 주위를 가득 메운 막사의 그림자가, 우뚝 솟은 깃발의 그림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로얀의 그림자도 심하게 일렁이더니 그 속에서 한 존재가 튀어나왔다.
검은 바람은 곧 형체를 갖추었다. 그 존재는 길게 뻗어 발목까지 오는 검은 후드를 눌러쓴 채 그 속에서 붉은 빛을 언뜻언뜻 내비쳤다. 그들의 후드 속이 살짝 보였지만 그 속은 어둠뿐이었다.
어둠의 상급 정령 세드니스, 로얀의 슬픔을 먹고 자라난 자들이었다.
그들은 로얀의 말을 듣고 과거 다크로드였던 정령으로 보이는 이를 중심으로 그의 앞에 부복했다. 주먹만 하던 정령들이 170 정도의 큰 키로 자라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음성과 말투도 지난번 중급 정령 데스일 때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아이에서 성인이 된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들이 손을 무릎 위에 얹고 부복하자 드러난 팔은 검은색 천을 둘둘 만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세, 세상에......!”
엘라임은 뒤로 주춤 물러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서 강한 정령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상급 정령부터는 인간과의 대화가 가능했다. 그래서 로얀은 그들에게 인간인 것처럼 행동하라고 말해 두었다. 그랬기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어둠의 상급 정령 세드니스들은 곧 정령의 기운을 숨겼다.
“나는 이들과 함께 싸운다.”
그러자 엘라임이 주위의 세드니스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서 말 백 필을... 정령이라면 이동 수단이 필요 없을 텐데?”
“이들이 정령이라는 것을 밝힌다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
로얀과 엘라임의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다. 멀리서 들려온 나팔소리 때문이었다. 드디어 도열해 있던 제국 병사들이 움직인 것이다.
선봉을 맡은 로얀은 서둘러 전방을 향해 나아갔다. 그 뒤로 백 명의 세드니스가 검은 후드를 휘날리며 뒤따랐고, 엘라임은 멀리서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몸을 허공으로 띄운 뒤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얀은 약속대로 말 백 필을 준비해 두고 전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몰딘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로얀을 선두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백 명의 검은 후드를 쓴 이들을 보고 조각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들의 행진은 뭔가 섬뜩했고 위압감이 넘쳐흘렀기 때문이다.
얀이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로얀을 향해 물었다.
“어, 어이! 뒤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냐?”
“나의 부하들이다.”
“언제 부하를 들였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이들이었다. 갑자기 백 명이나 되는 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묻지 마라.”
로얀은 무덤덤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얀이 잡고 있던 말 위에 올라탔다.
“다크로드, 말을 탈 줄 안다고 했던가?”
[동물들은 정령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다크로드는 정령어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어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하는 언어이기에 사람들은 모두 듣지 못했다.
로얀이 말 위에 올라타자 곧 세드니스들도 각자 말 위에 올랐다.
동물과 대화가 가능한 정령들은 그 누구보다도 말을 잘 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나중에 보자. 승리를 가져오마.”
“지고 죽더라도 말은 돌려보내라.”
얀의 농담 섞인 말을 뒤로하고 로얀이 몰딘 왕국의 진영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말을 탄 세드니스들이 따랐다.
“자, 잠깐만 멈춰주십시오!”
다각.
갑자기 들려온 외침에 로얀은 말을 멈춰 세웠다. 저 멀리 그리알이 종이와 펜을 들고 서 있었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부대를 서류에 기재하기 위함이었다.
이 이유 외에도 전쟁이 끝난 후 로얀을 왕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도 담겨 있었다. 미리미리 챙겨두려는 것이다.
“부대의 이름이 무엇인지요?”
“슬픔을 마시는 자.”
로얀은 그 말과 함께 말 머리를 돌렸다.
그리알은 멀리서 들려온 로얀의 말을 입으로 중얼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서류에 기재해 넣었다.
“슬픔을 마시는 자라.......”
그때, 로얀의 머릿속에서는 엘라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녀가 정령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다친다면 절대 치료해 주지 않겠어.]
피식.
그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의 등을 싸늘하게 노려보고 있을 엘라임의 시선, 그리고 그녀의 차가운 말 한마디는 왠지 모르게 로얀에게 따뜻한 봄 햇살처럼 와 닿았다.
이윽고 몰딘 왕국의 진영이 희미하게 보일 때쯤 로얀은 자신의 옆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다크로드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에겐 무기가 없나?”
데스였을 때에는 시클이라는 사신의 낫이 있었지만 지금 이들에게는 무기로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로얀의 말에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듯 세드니스들은 말고삐를 놓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출, 흑검!”
츄아아악!
그들의 말과 함께 두 손등에서 검은 흑빛의 검신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것들은 숏 소드처럼 길이가 짧았다.
“편리해서 좋군. 하지만 기마전에서는 그렇게 짧은 검은 불리하다.”
로얀의 말에 세드니스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자신들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스으윽.
츄아아악!
왼손에 있던 검날이 사라지고 오른손에 있는 검날이 길게 늘어났다. 롱 소드보다 긴 흑색 검이었다. 아마도 두 개의 검날을 합친 듯한 그것은 다크리온처럼 베기 위해 만든 듯 양쪽에 날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로얀은 다크리온이나 에리오네를 떨어뜨렸을 때 자신도 저 기술을 사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적이 보이면 모두 돌진하여 우두머리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죽인다.”
“예, 마이 로드! 명을 받들겠습니다!”
세드니스들의 우렁차면서도 스산한 대답을 끝으로 로얀은 정면을 응시했다.
거세게 불기 시작한 모랫바람의 끝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제국 병사들의 것이었다.
* * *
제국 병사들의 총지휘를 맡게 된 알렉스는 지금 뭔지 모를 두려움에 손을 떨고 있었다. 검을 쥔 그의 손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제국 병사들은 모두 알렉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몰딘 왕국 진영이 있는 방향 쪽에서 모랫바람을 뚫고 나타난 무리들 때문이었다.
검고 긴 후드를 눌러쓰고 오른손엔 흑색 검을 쥔 존재들... 아니, 검을 쥔 것도 아니었다. 장갑에 검날을 붙였는지 검은 그들의 손등에 솟아나 있었다.
이 무더운 날씨에 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말을 탄 채 점점 제국군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수는 제국 병사들에 비해 매우 적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봉에 서 있는 남자!
검은 후드를 쓴 다른 이들과는 달리 갈색 망토를 두르고 두 개의 검을 차고 있는 그는 매의 창 안드라를 죽이고 많은 제국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 백광의 오러를 뿜었던 신비에 가려진 그랜드 소드 마스터였다.
알렉스는 다가오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검은 옷의 무리들을 바라보며 병력을 앞으로 이동시켰다.
“모두 진격하라!”
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누군가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먼저 선봉으로 말을 탄 오천여 명의 기사와 기병들이 나아갔고 그 뒤로 용병들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반 병사인 보병들이 뒤따라 움직였다.
서서히 움직이는 제국 병사들을 보고 신비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로얀도 속력에 박차를 가했다.
두두두두......!
그들이 달리자 뿌연 먼지가 자욱이 퍼져 나갔고 대지는 크게 울부짖었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그럴수록 병사들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이제 두 무리 사이엔 더 이상의 공간이 없어지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강하다! 그리고 우리에겐 많은 병사들이 있다! 모두 제국을 위해 돌격하라!”
“와아아아아......!”
다가오는 그들을 보며 로얀도 세드니스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죽인다. 단, 우두머리 단 한 명만 살려두고!”
“예.”
두두두두......!
채채챙!
드디어 제국군과 로얀이 이끄는 ‘슬픔을 마시는 자’라는 부대가 격돌했다. 그러나 알렉스는 두려움 때문인지 그 자리에 서서 병사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귀족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유하고 안락한 생활을 했기에 전쟁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지독한 훈련을 한 그는 귀족들 사이에서 검의 천재라 불리며 중급 소드 마스터에 올랐지만 그가 펼치는 검술은 책을 그대로 읽는 것만 같은 딱딱한 느낌이었고, 그는 목각 인형과 다름없었다. 그런 그가 안드라에게 지휘관 자리를 빼앗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장에서 경험이 없는 장수는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 뿐이었다.
스거걱!
부우욱.
“크아아악......!”
세드니스는 달려오는 태양기사단의 기사들을 볏짚 베듯 베어 넘겼고, 그들의 몸과 하나인 흑색 검은 기사들의 피를 취했다.
갑옷에 금을 도금한 이 태양기사단은 제국의 2군이었다. 태양기사단의 진정한 저력인 1군은 제국에 주둔하고 있었다. 국력이 약한 몰딘 왕국을 멸망시키는 데에는 태양기사단 2군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다른 귀족들의 기사단도 참가했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긴 창을 든 기마병의 창이 세드니스의 몸을 뚫었고 금빛 검을 든 태양기사단의 기사의 검이 세드니스의 몸을 베었다.
“......?”
“로드의 명은 적의 섬멸... 죽어라.”
스거걱!
“크아악!”
운 좋게 세드니스를 베거나 꿰뚫은 병사나 기사들은 하나같이 이와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는 곧 세상을 하직했다.
정령은 소멸당하지 않는 한, 강한 타격을 입으면 정령계로 돌아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어둠의 정령에게는 돌아갈 정령계가 없었다. 그들이 서 있을 곳은 바로 이곳, 그들의 왕인 로얀 곁이었다.
베어도, 뚫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는 세드니스들은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으, 으아악! 괴, 괴물!”
그들의 얼굴은 온통 암흑이었고 그 속에서 빛나는 붉은 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장 떨리게 만들었다.
스걱.
“크아악!”
병사의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백 명의 세드니스가 제국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있을 때 로얀도 다크리온과 에리오네를 뽑아 들고 빈트러드 제국군의 목숨을 소거하고 있었다.
로얀은 말을 능수능란하게 아주 잘 타고 있었다. 용병 시절에 보통 사람과 차별 대우받는 것이 싫어 뭐든지 미친 듯이 연습해 배웠다. 그 중 하나가 말을 모는 것이었다.
밤늦게까지 얀의 도움을 받으며, 말을 타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바닥을 구르고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그는 처절하게 연습했고 결국 말을 몰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웅웅!
로얀의 손에 들린 두 자루의 검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두 눈에 긴 창을 들고 돌진해 오는 기마병이 보였다.
로얀은 세드니스와는 달리 아직은 붉은 피를 가진 인간이었다.
“크아압!”
팟!
몸을 젖히자 그를 향해 곧장 다가오던 창이 허공을 갈랐다. 창이 지나가고 로얀은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위로 일으켰다.
부욱!
그리고 다크리온으로 그 병사의 상체와 하체를 갈라놓았다.
슬픔을 마시는 자라는 로얀의 부대와 제국 병사들 간의 싸움은 벌써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뜨거운 대지 위에는 제국군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붉은 피는 바싹 마른 대지에 수분을 공급해 주었다. 붉은 피의 오아시스라고나 할까? 붉은 피는 말라버린 대지 위에 커다란 강을, 호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바닥을 구르는 세드니스의 시체는 당연히 없었다. 만약 그들이 죽는다면 자연으로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소멸당하면 백 년이 지나야 다시 살아나는 어둠의 정령들이었다. 그건 왕이 생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수천 명이 죽었다. 무적이라 할 수 있는 로얀의 부대에 의해 제국 병사들은 말 그대로 학살을 당했다. 처음 1만 3천 명이던 병력은 이제 겨우 팔천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로얀은 빨리 끝내기 위해 세드니스들을 둘러보며 정령어로 말했다. 혼돈의 정령왕이 된 뒤부터 그는 자유자재로 정령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 죽음의 반월을 펼친 뒤 말에서 내려 사신의 춤을 쓴다.]
[예, 로드.]
“죽음의 반월.”
스가가각!
푸쉭! 촤아아악......!
로얀의 검 끝에서 흘러나온 수십 가닥의 흑색 검날이 병사들과 기사들의 육신을 훑었다. 그와 동시에 백 명의 세드니스의 흑검에서 죽음의 반월이 펼쳐졌다.
스거거걱!
“크아아악......!”
“끄아아악!”
흑색 검날은 모두 수천 개가 되어 전장을 뒤덮은 채 병사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세드니스와 로얀을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이윽고 일제히 말에서 뛰어내린 로얀과 세드니스는 멀리서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제국군들에게 다가갔다. 그런 그들의 몸에서는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계의 마기와는 전혀 다른 기운이었다. 칙칙한 어둠이지만 뭔가 시원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마치 매일같이 찾아오는 하늘의 밤처럼 포근한 특이한 어둠이었다.
스르륵.
츄아아악!
제국 병사들에게 다가가던 세드니스의 검날이 작아지더니 왼쪽 손등에 또 다른 검날이 솟아났다.
“으아아아! 오, 오지 마!”
챙깡......!
“으아아아!”
이미 전의를 상실한 8천 명이나 되는 병사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내팽개치고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 수는 곧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 시간이 너무도 가지 않는다고 느낀 적이 또 있던가?
로얀의 부대는 제국군들의 코앞에까지 다가갔다. 병사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로얀의 입에서, 세드니스의 후드 속에서 나직이 흘러나온 말이 죽음의 문을 열었다.
“사신의 춤.”
휘오오오......!
콰가가가강!
스가가가각!
정확히 101명이 펼치는 사신의 춤.
거대한 전쟁이라는 무대 속에서 101명이 모두 동시에 죽음의 춤사위를 벌였다. 그들의 몸은 검은 바람이 되었고 검은 칼날이 되었다. 그들은 사람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제국 병사들과 기사들의 육신을 스쳐 지나갔다.
[저기 백색 말을 타고 금빛 갑주를 입은 녀석만 살려두고 모두 죽여라.]
로얀의 말이 모두에게 전달되자 세드니스들은 금빛 갑주에 백마를 탄 알렉스를 제외하고는 보이는 족족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사신의 춤사위에 붉은 피가 허공을 수놓았고 그 위를 제국 병사들의 육신이 퉁겨져 올라갔다. 끔찍한 비극이 적혀지고 있었다.
알렉스는 소드 마스터라는 이름이 창피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석상처럼 전장의 중심에 서서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런 그의 동공은 풀어져 있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하기는, 귀족가의 자제인 알렉스가 감당하기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너무도 끔찍하고 잔인했다.
로얀과 그의 부대인 슬픔을 마시는 자가 펼치는 사신의 춤은 제국 병사들의 숨이 모두 끊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붉은 석양이 빛나고 있었다. 그 붉은 빛을 받으며 로얀과 세드니스, 그리고 그들이 이끌 고 온 백 필의 말만이 전장 위에 서 있었다.
아니, 백마를 탄 알렉스도 서 있기는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부하들의 시체 위에 알렉스만이 서 있었다.
저벅저벅.......
로얀은 알렉스를 향해 걸어갔다. 발에 대지를 가득 메운 시체가 자꾸만 걸렸지만 그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어깨에 걸린 땅의 숨결은 멀쩡했지만 다른 옷과 전신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알렉스라고 했던가... 카엔에게 가서 전해라. 곧 목을 가지러 가겠다고. 나의 이름은 로얀, 그리고 우리는 슬픔을 마시는 자라고 한다.”
그의 말에 알렉스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탁.
히힝!
로얀이 백마를 때리자 백마는 우렁찬 울음소리를 토하며 빈트러드 제국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다가닥, 다가닥......!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알렉스는 그렇게 사라져갔다.
그것을 지켜본 로얀은 곧 몸을 돌려 자신의 말에게로 다가갔다.
“모두 돌아간다.”
로얀과 백 명의 세드니스들은 석양을 배경으로 몰딘 왕국의 막사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훗날 모르드 평원의 혈전이라 불리는 이번 전쟁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 * *
모르드 평원의 대 전쟁이 끝나고 몰딘 왕국의 병사들은 누가 먹여주는 공짜 밥을 먹은 듯한 얼떨떨한 기분으로 수도인 모르딘으로 향했다.
승리를 위해 그들이 실제로 한 일은 없었지만 첫 전투에서는 정말 열심히 싸웠기에 처음에 얼떨떨해 하던 기분을 곧 떨치고 의기양양하게, 발걸음도 가볍게 돌아가고 있었다.
평원을 제외하고는 험난한 지형을 많은 수의 인원이 이동하려니 자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어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나서야 모르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르딘의 모든 시민들이 나와 성으로 이어지는 길거리에서 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공신 중의 공신인 로얀은 얀의 뒤에서 말을 탄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그의 옆엔 엘라임이 나란히 나아가고 있었다.
로얀은 세드니스로 인해 벌어질 혼란을 막기 위해 그들을 모두 그림자 속에 숨게 했다. 그러자 얀이 이상해 하며 로얀을 바라보았지만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얀은 로얀이 정령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세드니스 또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기에 묻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장수들과 그리알은 그런 사실을 몰랐지만 무언의 압박을 주는 얀 때문에 궁금증을 표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긴 건 이긴 거니까 로얀의 비위를 거스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묻지 않았다.
* * *
로얀과 일행이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을 때, 그곳과는 분위기가 정 반대인 곳이 있었다.
빈트러드 제국의 수도인 트라이언.
트라이언의 왕성 깊숙한 곳에 위치한 어느 방 안.
거대한 그곳에 현 황제인 빈센 폰 빈트러드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지금 여름의 대륙을 휘젓고 있는 제국의 황제가 무릎을 꿇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앞에는 화려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팔걸이에 왼팔을 올리고 오른손엔 붉은 와인이 담긴 잔을 들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검은 흑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조각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로얀과 똑같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었지만 인상은 180도 달랐다. 여기에 있는 이 남자는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로얀처럼 강인한 인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몸매는 여자처럼 늘씬했다. 또한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반지를 끼고 있었다.
“위대한 존재시여, 뭐가 잘못되었는지.......”
황제인 빈센은 앞의 젊은 남자에게 위대한 존재라 말하고 있었다. 그 존칭은 흔히들 드래곤에게 쓰는 말이었다.
빈센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용병왕 카엔이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정체가 블랙 드래곤이라는 것을 황제 빈센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이 빈트러드 제국을 지금 조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용병왕이자 블랙 드래곤인 카엔이었다.
그는 이번 유희의 컨셉(?)을 전쟁놀이로 잡고 놀고 있는 것이었다. 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빈센에게만은 정체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 나라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땅이 작았기 때문이다. 땅이 작다면 커다란 나라들과 많은 전쟁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역사에 자신의 위대한 이름을 더욱 깊이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그의 유희는 순조로웠다. 원래 사용하고 다니던 용병왕이라는 이름이 있었기에 빈트러드 왕국에서 쉽게 공작이 될 수 있었고 전쟁도 시작할 수 있었다. 주위의 나라들을 차례차례 무너뜨리는 재미는 그야말로 쾌감 그 자체였다.
한데 어젯밤, 이미 한 달 전에 전투를 끝내고 지금쯤 보고가 올라왔어야 할 모르드 평원의 전쟁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전서구를 통해서도 아니고 전쟁터에 나갔던 태양기사단의 전 단장 알렉스가 직접 왕성으로 와서 말이다.
그는 국왕에게 달려가기에 앞서 제국의 실세이자 전 병권을 쥔 공작 카엔에게로 갔다. 그리고 제국 병사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화가 난 카엔은 마법을 써서 알렉스의 기억을 읽고 난 후에 그의 머리를 터뜨려 죽여버렸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화를 식히기 위해 와인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카엔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알렉스를 끔찍하게 죽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겁을 먹은 황제 빈센이 그의 방으로 황급히 달려온 것이다.
“전멸했다는군.”
한동안 와인 잔만 기울이던 카엔이 이윽고 여전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황제 빈센을 향해 그렇게 중얼거렸다.
“예?”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빈센도 잘 알기에 그는 고개를 들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카엔을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로얀... 슬픔을 마시는 자.”
카엔이 손에 들린 와인 잔을 살짝 흔들자 그 안에 담긴 붉은 와인이 출렁였다. 그는 그것을 입가로 가져가 살짝 와인을 훔쳤다.
“난 지는 싸움은 하지 않아. 감히 나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나의 목을 가져가겠다는 망언을 해?”
파지직!
투투툭.
그의 손에 들린 와인 잔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자 덩달아 붉은 와인이 바닥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빈센은 몸을 흠칫 떨며 고개를 바닥에 내렸다.
“콘.”
“예, 마스터.”
카엔이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자 칙칙한 어둠이 내려앉은 허공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나타났다.
뼈밖에 없는 리치! 그가 바로 카엔의 가디언 중 하나인 리치 콘이었다.
작은 키에 커다란 스테프를 쥔 그는 카엔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카엔이 그를 향해 말했다.
“그것을 쓰겠다.”
“네? 하, 하지만!”
리치 콘이 몸을 떨며 되물었지만 카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히 말을 이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상관없어. 다른 드래곤들이 반발하면 슬픔을 마시는 자라는 놈들에 대해 말하면 되니까. 그들은 죽지 않는 괴물이지.”
알렉스의 기억 속에 있는 슬픔을 마시는 자들이라는 놈들은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검에 베여도 상처를 입지 않고, 죽지도 않는 존재가 괴물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리치 콘은 카엔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것이라는 이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콘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카엔의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그라운 산맥 위에 있는 몰딘 왕국의 실라카였던가? 그 성을 친다. 네가 그것들을 이끌고 가 살아 있는 생명체란 생명체는 모두 죽여라.”
“알겠습니다.”
스르륵.
리치 콘은 대답과 함께 처음 나타났던 것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똑같이 갚아주마.”
카엔의 말에 빈센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체 그것이 무엇입니까?”
“훗, 키메라다.”
“......!”
키메라는 몸의 앞부분은 사자, 가운데는 염소, 뒷부분은 뱀으로 알려져 있는 괴물이었지만 드래곤들은 무식하게 힘만 센 원래의 키메라가 싫어 그들을 본떠 수없이 많은 생명체들을 합성시키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드래곤들이 만든 키메라는 중간계를 위협할 정도로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자 중간계의 관리자인 드래곤들은 다급히 키메라 연구를 중지시키는 것과 함께 키메라를 사용하는 것을 금했다.
그런 키메라를 카엔은 쓰려 하고 있었다.
사실 드래곤들은 자신이 만든 키메라를 실험해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건 카엔도 마찬가지였는데, 마침 슬픔을 마시는 자들이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나타난 것이다.
만약 다른 드래곤들이 반발한다면 인간이 이상한 병기를 만들어 중간계를 무너뜨리려 했기에 할 수 없이 썼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이상한 병기는 당연히 세드니스를 뜻하는 것이었다.
“쿡쿡쿡, 재미있군. 근데 왜 지금 과거 그 황당했던 유희가 생각나는 걸까?”
알렉스의 기억 속에서 본 그랜드 소드 마스터 로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면서 지난 과거가 생각났던 것이다.
“유희요?”
“하하, 그래! 팔레인이라는 손톱의 때만 한 작은 마을을 청소한 적이 있었거든. 그리고 내 유희도 끝나 버렸지. 내 일생에서 가장 재미없고 짧았던 유희였지.”
“그렇군요. 헤헤!”
빈센은 싱글거리며 카엔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그것이 웃긴 이야기인지 슬픈 이야기인지는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