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화산파(華山派)는 천하의 명산인 수려한 서악 화산의 정기를 배경삼아 각 봉우리에 뿌리를 내려 성장해 왔다.
구파 중에서도 제법 높은 자리를 차지해 왔으며 또한 오악검파(五嶽劍派)의 수장이자 하나의 문파로서 특히 무림에서는 검공에 조예가 깊어 화산검파(華山劍派)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 거대한 문파가 오늘날 마교의 엄청난 대군에 밀려 그 존재 가치마저 지워질 위기에 몰리리라고는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휘잉―
바위산 정상 부근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딛고 서 있는 노인, 그는 저 아래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는 본산 건물을 바라보며 통한의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설마하니 마교의 세력이 이곳까지 뻗칠 줄은 몰랐다. 장문인 목유성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또 탄식할 뿐이었다.
‘아……! 이 일을 어찌할꼬.’
자신의 대에 이르러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화산파가 끝장나게 생겼으니 혀 깨물고 자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나 당장 죽을 생각은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으니.
그는 애써 정신을 차리고는 바로 앞에 있던 돌탑을 완력으로 부쉈다. 그 안으로부터 조심스럽게 흑단목 상자를 꺼내 들고 뭐라 중얼거린 것도 잠시, 그는 한 손으로 상자를 품에 안은 채 다른 손으로는 흰 천으로 둘둘 말린 검을 쥐고 바위 산 정상 너머로 홱 사라졌다.
***
신비한 안개가 서려 있는 협곡, 그곳은 화산파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존재했던 성역으로서 위급한 상황에 오직 장문인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시조께서 신기의 영기가 가득 흐르는 대지에 정확한 혈을 찾아내어 결계 진법을 형성한 것이 바로 이 협곡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조화로 우연찮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대가 만들어졌다.
더욱 믿어지지 않는 일은 선대 장문인들 중 누군가 이미 저곳을 통해 다른 세계를 여행했다는 것, 그리고 그와 같은 기상천외한 경험은 오직 후대 장문인들에게만 은밀히 전해 내려갔다.
결계 진법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만든 것으로서 20년이 지나면 절로 풀리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세계로 이동했던 자는 반드시 20년 후에 원래 세계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었다.
잠시 후, 결계 안으로 들어온 목유성.
그의 앞, 사람 키 높이 정도의 허공에는 영롱한 빛이 감도는 조그만 통로 공간이 보였다.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바로 앞에서 잠시 멈칫거렸으니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장문인 목유성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화산파(華山派)의 모든 역사와 정수가 담긴 비급서들과 보검 하나를 추려서 다른 세계로 피신하려 했음이다.
전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지금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단 20년만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당장 보물들을 마교인들에게 빼앗기지 않아도 되었다.
결국,
그는 굳은 결심을 한 채 푸른 공간으로 뛰어 들었다.
구멍이 그를 완전히 집어 삼켰다.
푸른빛은 금세 사라졌다.
파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