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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무공 한번 배워 볼 텐가 (3/81)

CHAPTER 2 무공 한번 배워 볼 텐가

어느덧 해가 서산의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다.

지드는 벌써 여러 시간째 한 장소에 조용히 앉아서 뭔가 깊은 고심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버텨 볼 텐가.

사실 그가 이곳에 미련을 두게 된 계기는 아까 낮에 보았던 노인 때문이었다. 깊은 산중에 사람 하나 있음이 그렇게 큰 힘이 될 줄은 몰랐었다.

더군다나 노인은 성질이 괴팍해 보였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물론 조금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툭!

결국 등에 멨던 배낭을 바닥에 풀어 놓는 지드. 어차피 독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에야 이번만큼은 무언가를 얻어 가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불타올랐다.

어차피 하류검사!

돌아가 봐야 천대와 멸시만 받을 뿐, 아까 낮에 만났던 기묘하게 생긴 노인이 무슨 짓을 하든 차라리 죽더라도 여기서 죽는 게 낫다 싶었다.

***

늘 이런 식이었다.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지드는 어제 내렸던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뭐든지 준비성 없이 대충 넘어가려는 습관이 지금의 낭패를 맛보게 할 뿐이었다.

애초 집을 나오기로 결정한 이상 최소한 식기라든지 여타 혼자서 지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 등을 가져왔어야 하는데 그의 배낭 안에는 옷가지, 모포 그리고 비를 가릴 만한 천막 한 조각이 전부였다.

그나마 챙겨 왔던 이틀 분의 식량은 어젯밤에 다 먹어치운 데다 산악 지역에서 지내 본 경험이 전무한 지드였다.

수련은커녕 당장 먹을거리를 찾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 굶어죽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이다. 지드는 내심 한탄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탁!

홧김에 애꿎은 배낭을 발로 차 버리는 지드, 하류검사가 아니라 인생 전체가 하류 습성이 진하게 배여 있는 느낌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재능만큼은 존재했다. 역설적일지 모르겠지만 매사 준비성 없고 진지함 없이 편한 대로 살아온 대신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얻어진 능력이랄까.

잔머리.

잔머리에도 급수가 있다면 지드의 수준은 거의 대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삶을 여태껏 버텨 온 것도 그때그때마다 반짝하는 잔머리 덕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지드 스스로는 자신이 퍽 총명한 줄 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날 오후.

강가 둔덕과 숲 지대로 이어지는 경계 가운데에 제법 큰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는데 비를 가리는 지붕이 천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지라 지드는 일단 그곳을 숙영지로 삼았다.

가져온 그늘 가리개는 칼로 잘라서 각 양옆에 쳐 놓았으니 그런대로 지낼 만했다. 대충 거처를 완성하자 가장 중요한 식량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사나운 짐승이 가득한 숲속으로 들어가서 사냥하기는 좀 그랬는지 강을 살펴보기로 했다.

첨벙첨벙.

강 수위는 허리춤까지 올라왔지만 이상하게도 투명한 물속에는 물고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상류지역인데다가 저만치 보이는 곳이 강이 흘러가는 폭포 지점이라서 그런가?

지드는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폭포 아래 제법 넓게 펼쳐 강줄기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와우!”

곰들이 강 곳곳에서 물줄기를 헤치고 올라오는 연어들을 잡느라 정신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바로 여기 폭포수 아래가 강 수원의 마지막 종착지인지라 해마다 이 시기에 곰들은 연례행사처럼 기다리고 있다가 영양가 많고 맛있는 연어 잔치를 벌이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야만 충분한 단백질과 지방질을 축적하여 겨울 내내 충분히 잠을 잘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지드 입장에서 본다면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그야말로 식량들이 잔뜩 널려져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곰들 때문에 걱정스러웠지만.

잠시 후.

슥!

강가 수풀 틈으로 갈색 머리가 조심스럽게 내밀어졌다. 지드였다.

지드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저 앞쪽 유독 덩치 큰 곰 한 마리가 자신의 영역을 넓게 차지하고는 계속해서 연어를 툭 쳐서 강가에 던져 놓으니 나름대로 연어를 훔쳐 오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담력이 약한 지드는 막상 행동하기가 겁이 났는지 선뜻 나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걸리면 죽음인데…….’

가장 좋은 자리에서 자신의 영역을 차지한 곰은 강 하류의 곰들과는 그 겉모습이 달라도 한참 달라 보였다. 뭐랄까, 차원이 다르다고 할까.

엄청난 몸집에 붉은 털, 게다가 한쪽 눈마저 없는 광폭한 인상은 그저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런 녀석이 잡아 올린 연어를 낚아채야만 하니 사실 이 짓은 목숨을 건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당장 굶어 죽을 판인데.

지드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드는 아주 조심스럽게 수풀을 가르고 연어들이 팔딱팔딱 뛰는 강가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붉은 곰은 여전히 연어 사냥하는 데 정신이 없었으니 이대로 살금살금 가서 한 마리만 슬쩍 해 오면 되는 일이었다.

슥.

운이 좋았는지 지드는 연어 한 마리를 가슴에 안을 수가 있었고 다시 뒤쪽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였다. 허벅지만 한 연어가 갑자기 요동을 쳤다. 지드는 당황하여 그만 연어를 놓치고 말았다.

팔딱!

“어이쿠!”

털썩.

그때 애석하게도 사냥에 열중해 있던 붉은 곰이 지드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곰은 지드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지드는 심장이 철렁했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붉은 곰!

첨벙첨벙!

지드는 바닥에 떨어진 연어를 다시 집어 들고는 수풀 속으로 줄행랑을 쳤다. 붉은 곰은 흥분했는지 울부짖기까지 했다.

크앙!

지드는 혼비백산하여 무조건 앞만 보고 뛰었다.

“아이고, 사람 살려!”

하지만 이걸 어쩌나. 냅다 뛰어간 방향이 안타깝게도 막다른 길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곳은 아까 조심스럽게 내려왔던 바위 절벽이 아니던가.

“젠장!”

순간 지드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절벽 아래 보이는 바위 틈새였다. 뒤에서는 붉은 곰에게 거의 잡힐 듯 거리가 좁혀져 있었으니 연어를 안은 상태에서 절벽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그가 선택한 곳은 좁은 바위 틈새였다.

크아앙!

“헉!”

곰의 앞발이 그의 뒤통수를 치기 일보직전! 지드는 틈새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갈 수 있었다. 찰나 발톱을 드러낸 곰의 앞발도 보였다. 앞발이 지드의 목덜미를 향해 힘차게 휘둘러졌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천운이 따른 모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입구 틈이 비좁았는지 곰의 몸통이 막혀 앞발 역시 지드의 코앞에서 멈추었다.

하지만 지드 역시 뒤로 더 이상 물러날 공간이 없었고 눈앞에서 마구 휘젓는 곰의 무시무시한 발톱만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가슴 안쪽에는 아직도 팔딱팔딱 뛰는 연어가 안겨져 있었다.

제법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참으로 끈질긴 놈이 아닐 수 없었다.

고작 연어 한 마리 훔쳤다고 이리도 치사하게 나온단 말인가. 붉은 곰은 벌써 여러 시간째 바위 틈새 입구 앞에서 아예 코를 들이박고는 지드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끔벅거리는 눈꺼풀이 졸린 듯 보였지만 그 눈매만큼은 자기 식량을 훔쳐 간 인간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듯 맹수의 흉폭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 보이는 바깥은 어느덧 해가 져 버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무섭기도 하고 배도 고프니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드는 이를 악물고 참기로 했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깨고 나면 곰이 포기하고 사라져 있겠지 하는 바람으로.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가 우는 늦은 밤, 아니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이른 새벽녘이랄까. 지드는 비린내가 코를 찔러 문득 잠에서 깼다.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니 온통 캄캄했고 가슴에는 커다랗고 미끈미끈한 연어 한 마리가 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지드는 전방의 입구를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무언가가 입구 앞을 가로막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절망의 그늘이 또다시 엄습해 왔다.

“빌어먹을!”

곰 새끼가 아직도 가지 않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성질 같아서는 이빨로 저놈의 주둥아리와 대갈통을 마구 물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연어 수십 마리 중 고작 한 마리 집어 왔다고 어찌 저리도 집착을 한단 말인가.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

그때 지드는 한여름 밤에 점점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생선 한 마리를 꼭 안고 바위틈에 처박혀 있는 자신의 신세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조차 박대 받는 기분이랄까.

정말 더럽다 못해 한탄스러웠고 눈물마저 찍 나오려고 했다. 급기야 그는 입구 쪽에다 분통을 터트리듯 뭐라 외쳤다.

“젠장! 이 치사하고 더러운 곰 새끼야! 난 지금 굶어 뒈지기 일보직전인데 요거 한 마리도 못 주냐? 이거 좀 같이 나눠 먹자는 데 뭐가 그리도 억울하냐! 이 빌어먹을 곰 새끼야!”

지드는 말하면서도 너무나 격앙되고 흥분했는지 연어를 들어 올리더니만 그 비린 몸통을 아작아작 씹어 먹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안에서 굶어 죽을 마당! 잘 먹고 죽은 귀신 때깔이라도 곱다던데 생선이 썩기 전에 실컷 먹고 나 뒈지자. 흑!”

우적우적. 쩝쩝!

꿀꺽.

그동안 세상 살아오면서 겪었던 서럽고 원망스런 일들마저 봇물 터지듯 했다. 그야말로 지드는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어 계속해서 연어를 무식하게 씹어 삼켰다.

비린내고 뭐고 없었다. 그런 몸부림은 스스로에 대한 자학에 가까웠는지 대가리마저 마구 흔들며 마치 개처럼 연어의 몸통 여기저기를 물어뜯었다.

“어차피 개 같은 내 인생!”

정말 스스로를 그렇게 느꼈던가.

 “그래 난 지금부터 개다. 왈! 왈!”

비린 생선을 날 것으로 물어뜯고 먹으며,

마치 개라도 된 양 왈왈 울부짖는다.

한마디로 실성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 입구로부터 들려오는 낯익은 음성!

“그 안에서 뭐 하는겨?”

순간 지드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

“미쳤냐?”

그제야 지드는 음성의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존재는 지난번 만났던 그 노인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여기 있었단 말인가!

“미쳤냐고 묻잖아!”

“……아니요.”

“그럼 나와 봐.”

지드가 바위 틈새로부터 조심스럽게 주변 눈치를 살피며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바로 앞에는 노인이 뒷짐을 진 채 마치 미친놈 보듯 자신을 살피고 있었다.

노인은 아까 지드가 혼자서 떠든 내용을 모두 들었는지 갑자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 훔쳐 먹을 게 없어서 짐승 것을 훔쳐 오다니.”

“…….”

노인은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고는 강둑 언덕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는 지드, 아까부터 미리 입구 앞에 서 있었던 걸까?

그럼 왜 인기척도 없었을까.

그때 다시 노인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왕 뭘 훔쳐 올 때에는 퇴로를 확실히 확보한 뒤에 하는 것이 좋을 거여. 바위 절벽이 뻔히 가로막고 있음을 알고도 그런 무모한 짓을 하다니, 어째 이 세계 인간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없는고. 쯧!”

며칠 후.

지난번 연어 사건 이후 지드는 처음으로 녹슨 철검을 들고 강가 모래무지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검술 수련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손에는 2년 전 거금을 들여 구입한 어느 가문의 비전이라는 검술 교습서가 들려 있었으니,

지드는 그 책 내용대로 기본자세부터 착실히 시작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던 것이다.

태양은 강렬하게 내리쬐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이었다.

이렇게도 좋은 날, 강물에 첨벙 뛰어들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드는 내심 강한 의지를 불태우며 뜨겁게 달구어진 검의 손잡이를 과감하게 잡았다.

검을 멋지게 들어 올리려는 순간, 오른편 강둑 바위 위에 누군가가 있음을 발견한다.

‘……노인.’

자그마한 체구의 그는 똥 싸는 폼으로 쪼그리고 앉아서는, 지드가 뭘 하나 노골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아닌가.

이에 지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담도 어느 정도 느꼈는지 가슴 부위까지 올렸던 철검을 내렸다. 그러고는 멋쩍은 듯 발로 땅을 툭툭 차며 일부러 딴청을 했다.

‘구경이라도 났나?’

지드는 그가 가 주기만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딴 짓을 했다. 하지만 노인은 마치 공연장에라도 온 듯 여전히 쪼그리고 앉아서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찌 남의 일에 저리도 관심이 많은지, 벌써 한 시간 째다.

지드는 사람이 저런 자세로 저렇게 오래 견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정말이지 같은 자세를 계속 취하고 있었다.

결국 지드가 참다못해 제법 정중히 말했다.

“다른 곳으로 가 주면 안 되겠습니까!”

노인이 짧게 답했다.

“싫은데.”

“싫다니요! 남 뭐 하나 엿보는 것이 취미인가 보죠?”

“응.”

“…….”

그만 할 말을 잃고 마는 지드. 대체 생긴 것 자체부터 기묘한 영감이, 하는 행동도 영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한눈에 봐도 심술이 덕지덕지 달린 고집불통 노인이라는 것을 그냥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짜 이러실 겁니까?”

“내가 뭘.”

“신경 쓰여서 수련하기가 좀 그렇잖아요.”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하려던 거 해 봐.”

“거기서 빤히 쳐다본다는 것 자체가 방해가 아니고 뭡니까?”

“수련하는 녀석이 왜 남의 눈치를 보냐. 그냥 자기 할 일 하면 되는 거지.”

“…….”

생긴 대로 괜히 심술을 부리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여기가 주인 없는 깊은 산중이니 다른 곳으로 가라 할 권리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저 영감이 지켜본들 별 상관도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은 그저 수련에만 집중하면 그만인 것이다.

척!

지드는 바위 앞에 검술 교본을 첫 장을 잘 보이도록 펴 놓고는 거기 나온 그림대로 철검을 들어 올려 본격적인 수련에 임하기로 했다.

첫 시작인 만큼 다짐도 새로웠다. 꽉 다문 입술과 결의에 찬 눈빛도 부족해, 지드는 검과 하나가 되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서 수직 일도 동작에 집중시켰다.

힘이 너무 과했던가!

온몸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고 기다란 검날은 자연스럽게 떨림 증세가 일어났다.

부들부들!

정말이지 오늘만큼은 꾀를 부리지 않고 나름대로 익혀 왔던 기본자세에 전력을 다하기로 했던 지드였다.

얼굴은 빨개졌고 굵은 핏발마저 툭툭 튀어나왔다. 어쩌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노인을 의식해서인지 평소 때보다 의욕이 큰 것 같았다.

드디어 지드가 검을 머리 위로 서서히 들어 올리고 수직 일도를 하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았다.

그때, 지금껏 잠자코 있던 노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조금 더 힘쓰면 똥 싸겠군.”

“…….”

정말 작은 목소리였는데 지드의 귀에는 크게 들렸던가. 갑작스런 방해에 지드는 흐름이 끊겼는지 그만 검을 지면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철렁!

지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냅다 검을 집어서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

그러자 노인이 외쳤다.

“어딜 가는 거여?”

“신경 끄시죠?”

“웬만하면 거기서 계속하지그래?”

“영감님이 방해했잖아요!”

그러자 노인이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내가 언제?”

“방금 전에요!”

그제야 노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걸 들은 거여?”

“관두죠, 내가 딴 곳으로 가면 그만이니까.”

“그 자식, 귀도 밝네그려.”

“…….”

지드는 더 이상 말대꾸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삭! 슥!

지드의 철검은 제법 무거운 중급이라 할 수 있다. 길이 또한 웬만한 어른의 어깨 높이까지 오니 그럭저럭 긴 편이었다.

비록 지드가 하류 계열에 속하는 검사라지만 양손으로 검을 잡고 이리저리 휘두를 정도의 실력은 있었다. 물론 그의 검 동작들은 하나같이 제각각이었고 너무 힘을 주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무겁고 느리게 보였다.

붕! 부웅!

검날이 허공을 가른다지만 마치 쇠몽둥이 느낌이 난다고 할까. 정말이지 섬세한 구석은커녕 당장 무기를 뺏고 그만두게 하고 싶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나름대로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다.

애석한 일이지만 그는 자신이 수련 교본에 나와 있는 동작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일종의 자아도취랄까?

“하하, 됐어! 바로 이 동작이야! 젠장, 이렇게 쉬운 걸 지금에야 깨닫다니!”

지드는 흡족한 얼굴로 교본의 첫 장을 넘겼고 이어 두 번째 장들의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첫 장을 쉽게 마스터했으니 해 지기 전까지 아예 두 번째 장까지 습득을 해 버릴까? 흐흐!”

바로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성.

“놀고 있네.”

“…….”

이번엔 또 뭐란 말인가.

순간 지드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혹시 영감이 어디선가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체 뭡니까!”

“…….”

지드는 노인을 찾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노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말 따라다니면서 이럴 겁니까? 남의 뭘 하든 말든 도대체 영감이 무슨 참견입니까!”

“…….”

“왜 아무 말이 없습니까!”

“…….”

노인의 음성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가 버린 모양이었다.

지드는 기분을 잡쳤는지 책을 덮고 돌아 갈 준비를 했다. 그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렸고 뭐라 씨불이기까지 했다.

“앞으로 수련도 마음 놓고 못하게 생겼네! 이거,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안 되겠어.”

그 이튿날 오전.

오전의 햇빛 아래 제법 가파른 바위 절벽을 오르는 지드, 오늘만큼은 노인의 방해를 받지 않으려는 듯 한적한 수련 장소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은근한 미소마저 번졌으니 아마도 자신을 찾으려고 허둥대는 노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던 모양이다.

“후후!”

정상 부근을 거의 다 올라갈 무렵이었다. 고작해야 30여 m밖에 안 되는 높이지만 그로서는 낑낑대며 겨우 도착했던 것이다.

이제 마지막 고지에 한 팔을 올려놓고 정상에 등극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군가 바로 위에서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가.

“흐흐.”

순간 지드는 깜짝 놀라 위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노인이 언제 올라와 있는지 씩 웃고 있었다.

“헉!”

지드는 당황한 나머지 손을 놓쳤고 균형을 잃어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아아악!”

***

낡은 신전이었다.

가슴 부위를 하얀 천으로 돌돌 만 청년과 그를 돌보는 노인이 보였다. 청년은 지드였다.

노인은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지드의 부상당한 몸 여기저기에 손수 구한 약초 즙을 바르고 있었다. 다행히 부상 정도는 그리 심하지 않았지만 노인은 뭔가 충격을 받은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볼 때부터 정상적인 놈은 아니라고 여겼지만, 녀석의 신체 또한 가관이로다.”

노인은 약초 즙을 다 바른 뒤에 이번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팔과 어께 부근의 근육을 직접 만져 보거나 눌러 보며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지드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가슴 부위가 하얀 천에 꽁꽁 쌓인 채 침대에 누워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긴 어디지.”

“깼군.”

그제야 눈앞에 노인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고 지드는 깜짝 놀랐다.

“헉!”

“뭘 놀라는 겨.”

“내,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죠?”

“절벽에서 떨어져 뒈지기 일보직전인 네놈을 내가 이리 데려왔다.”

순간 지드는 가슴 부위의 통증이 심하게 올라옴을 느꼈다.

“욱!”

하지만 반면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드는 억지로 몸을 꿈틀거렸다.

“저 여기서 나갈 겁니다!”

“가만있어, 아직 뼈가 붙지도 않았구먼.”

“…….”

노인의 말에 지드가 잠잠해졌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르는가 싶더니만 노인이 무슨 이유인지 지드를 노골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드는 그런 노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애써 그 눈길을 피했다.

이윽고 들려오는 노인의 음성.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지난 십칠 년 동안 오로지 무림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는데, 네 녀석을 보니 조금 갈등이 생기는구나.”

“…….”

저 이상하게 생긴 영감이 이번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말 지드는 노인의 이상한 억양과 처음 들어보는 말뜻에 쉽사리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을 치료해 준 것은 고마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경계의 눈빛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노인이 지드의 몸을 천천히 훑어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네놈의 신체가 탐이 난다, 이 말이야.”

순간 지드가 경악에 찬 얼굴을 했다. 설마하니 저 노인이 엉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혹시 변태!’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때 노인이 손으로 지드의 팔뚝을 만지려 했다.

지드는 기겁을 하며 외쳤다.

“헉! 만지지 마요!”

“갑자기 왜 그러는 겨.”

“내 몸에 손끝 하나 대면 진짜로 가만 안 있을 겁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허허, 미친놈.”

노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은근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지드는 더욱 불안해지기만 했다.

“영감! 그렇게까지는 안 봤는데 이제 보니!”

그때, 노인이 갑자기 진중한 얼굴을 했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 말이야, 무공(武功) 한번 배워 볼 텐가.”

무공.

무공이란 단어의 뜻을 모르는 지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노인이 뭔가 수작을 부린다고 느꼈는지 다시 발작을 했다.

“무공인지 뭔지 그딴 거 다 필요 없으니까 당장 보내줘요!”

노인은 지드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문서답했다.

“이 세계에도 이런 독특한 근골이 존재하다니, 거참 정말 신기한 일이야.”

노인이 잠시 뭔가 숙고하는가 하더니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이렇게 된 바에, 뭐 이 세계에서 제자 하나 만드는 것도 괜찮을 법한데.”

지드는 대체 저 영감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여전히 멍한 심정이었다.

“제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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