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4 화산파에서 가장 독보적인 검법서 (5/81)

CHAPTER 4 화산파에서 가장 독보적인 검법서

정확히 3개월 하고 15일이 지났다. 신전 뒤뜰 통나무 기둥 수련장으로부터 지드의 비명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파공음과 착지할 때 나는 경쾌한 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왔다.

탁!

홱! 홱! 홱! 홱! 홱!

타다닥!

연속 다섯 번의 돌팔매질에도 지드는 절묘한 몸놀림과 높은 도약 동작들로 모두 다 피할 수 있었다. 기둥 위에서 그처럼 고도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보법의 중간 단계에 이르렀다는 증거일 수도 있었다.

노인이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드디어 성공했군. 허허!”

그러자 지드가 지상으로 사뿐히 뛰어내리더니만 노인 앞으로 다가왔다.

“이것도 확인하셔야죠.”

노인은 그 말에 물지게에 걸려 있는 두 개의 물통을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통은 여전히 가득 차 있었다. 물을 전혀 흘리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이것으로 이번 수련은 마치겠다.”

지드는 너무 기쁜 나머지 물지게를 벗어 버리자마자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하지만 노인은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그다지 기쁜 얼굴을 하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지드 역시 뭔가 불안했는지 잽싸게 다가와서 말문을 열었다.

“이제 검법을 가르쳐 주시는 거죠?”

노인이 지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관문이 하나 더 남았다.”

얘기를 듣는 순간 지드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는지 휘청거렸다. 정말이지 검술 한번 배우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지드는 지난 기간 동안 얻어진 발전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오로지 검술에만 집착을 하다 보니 그럴 수 있다지만 현재 녀석의 성취도는 무림으로 치면 웬만한 방파 중급 무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정도에 이르려면 적어도 4, 5년에 해당하는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채 반 년도 안 돼서 여기까지 이른 것은 성취도 빠르단 소리였다.

어쨌든 이번만큼은 노인 역시 지드에게 다소 미안한 감이 있었는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번 관문만 끝내면 정식으로 검법(劍法) 과정을 시작할 것이니 한 번만 참고 견디어라.”

“…….”

지드는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옛날 같았으면 뒤로 자빠지고 고집을 부렸을 텐데.

그도 수련을 통해 나름대로 정신적인 수양을 쌓았던 모양인지, 의외로 스승의 말을 따르는 분위기였다.

이윽고 말문을 여는 지드.

“네, 그렇게 하죠.”

“이번엔 마지막 기초 과정이니 만큼 조금은 어려울 게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면 넘어야겠죠. 그나저나 어떤 관문인데요?”

“미리 준비해 놓았으니까 따라와라.”

노인이 발걸음을 옮기자 지드가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노인은 쭉 바위 산 쪽으로 향했는데, 이에 지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디 가는 거죠?”

“가 보면 알아.”

“…….”

***

웅장한 바위 산 뒤편에 동굴 하나가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하지만 입구에는 통나무들로 엮어진 문이 보였으니, 아마도 이번 수련 과정을 위한 장소일 거라고 지드는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승이 동굴 입구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툭.

문이 닫히자 동굴 안은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해졌다.

지드는 다소 불안했는지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말했다.

“여긴…… 뭡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

그때 횃불이 켜지면서 동굴 안이 확 밝아졌다. 동시에 들려오는 엄청난 소리!

퍼드덕! 퍼드덕!

뭔가가 천장과 사방 벽들을 마구 날아다니며 날개들을 휘젓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는 금세 동굴 안에 메아리치듯 확장되어 굉음으로 변했다.

지드는 겁에 질려 두 손으로 잽싸게 귀를 막고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말았다.

“헉!”

그런 그의 모습에도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벽의 횃불들을 하나 둘 밝혔다.

 네 개의 불이 비치자 그제야 넓은 동굴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려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방금 전 날갯짓했던 것들이 조그만 새들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새들이잖아?”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참새는 새들 중에서도 제일 날쌔고 빠른 것들인지라 저놈들 잡느라고 조금 고생 좀 했지.”

의아해하는 하는 지드.

“참새…… 라고요?”

“네 수련 과정을 도와줄 녀석들이지.”

“대체 무슨 말인지.”

“이 동굴 안에는 정확히 백 마리의 참새가 있다. 너는 맨손으로 그 참새들을 모두 잡아야지만 이번 과정을 끝마칠 수 있을게다.”

 순간 지드는 고개를 바짝 쳐들고는 사방과 위쪽을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동굴 치고는 엄청나게 넓은데다가 그 높이만 하더라도 15m에서 20여 m 정도다.

하물며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천 마리의 참새들을 맨손으로 잡으라니? 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제법 머리 회전이 빠른 그로서는 이번 과정이 꽤 어려울 것이라 느꼈다.

“이번 수련은…… 좀 그런데요.”

그러자 노인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철편 갑옷을 벗는다면 몸이 한결 가벼울 것이다.”

그 말에 지드는 귀가 솔깃했지만, 그래도 이건 승산 없는 게임이라 확신했다.

“사람이 어찌 저렇게 높은 천장을 뛰어올라서 참새들을 손으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무리라고요.”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할 셈이냐? 네 녀석의 그 몹쓸 성격이 어느 정도는 고쳐졌나 했더니만, 아직도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게로군.”

“과소평가가 아니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제가 동작이 아무리 빠르고 날쌔다 할지라도 인간이 뛰어오르는 높이에는 그 한계가 있는 법이고요, 설령 벽을 이용해서 순간적으로 타고 올라간다 할지라도 그때는 이미 참새들이 사방 허공으로 흩어져 있을 것 아닙니까.”

노인이 혀를 찼다.

“쯧! 그동안 주둥아리 나불대는 것만 늘었군.”

노인은 말이 끝나자마자 도포 안쪽으로부터 하나의 책자를 꺼내 지드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뭐죠.”

“보법에 관한 비급서이니라.”

“보법…… 이요?”

지드는 무심코 낡은 고서를 집어서 살펴보았다. 표지 상단에는 무슨 제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거의 지워져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하단에 새겨진 글씨가 눈에 띠었다.

華山派

“화…… 산…… 파?”

지드는 지난 반년 동안 제법 한어(漢語)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인지 간단한 정도의 문자는 읽을 수 있었다.

“그 안의 내용을 제대로 익힌다면 새들 잡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드는 여전히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이 책에는 날개라도 만들어서 허공을 나는 법이라도 적혀 있답니까.”

“그동안 내공심법을 폼으로 익힌 것이 아니다. 구결 운용에 따른 운기 조식의 과정에 들어간다면 네놈의 사지(四肢)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능력을 낼 것이여.”

“…….”

내공심법이란 말에 지드는 더 이상 반문을 하지 않았다. 철편 갑옷을 착용하고 물지게마저 진 채 자유자재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 그 덕분이란 것을 얼마 전부터 조금씩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스승의 말대로 무조건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녀석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던가.

“그나저나 여기 적힌 화산파는 무슨 뜻인지요?”

노인이 대답 대신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허허.”

“왜 웃죠?”

“운 좋은 줄 알아라.”

“뭐가요.”

“이 과정이 끝난 후에는 그야말로 화산파 최고의 검법들을 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수련은 그날 그 시간부터 시작되었다. 상당히 난해한 과정이었는지, 이번에는 노인이 직접 수련 과정에 개입을 하여 지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처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끝날 무렵에서조차 지드는 보법에 관한 운용 구결의 입문을 겨우 시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사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한어(漢語)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랄까, 하루에 절반은 비급서를 붙잡고 매달렸고 그 절반은 동굴에서 새들과 씨름을 해야만 했다.

가끔 스승은 동굴 안을 확인해 보며 혹시라도 시름시름 앓거나 죽어 버린 참새들을 거두고 새로운 놈들로 물갈이하곤 했다.

그래서인가, 지드는 매일같이 쌩쌩한 놈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

또다시 수개월이 지났다.

지드가 산에 들어온 지 근 1년이 되었고 그의 나이 26살이 되는 시점이었다. 요즘 들어서 동굴 안에서 아예 눌러 사는 것처럼 생활하는 지드의 움직임은, 더도 말고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밤낮없이 공부하고 수련한 덕분이었다. 제법 쌓여 가는 내공에 간단한 구결 정도는 쉽게 운용할 수 있을 정도이니 보법 비급서를 통한 스승의 속성 가르침이 팍팍 잘 먹혀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짹짹!

홱! 퍼드덕!

“또 잡았다.”

지상에 가뿐히 내려앉은 지드, 그의 양손에는 참새 두 마리가 쥐어져 있었다.

현재 그가 잡은 참새들은 약 92마리 정도였으니 오늘 안에 잘하면 그토록 지루했던 새 잡기 수련 과정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타다닥!

순간적인 도약으로 벽면의 돌부리를 딛고 허공을 솟구쳐 오르는 지드!

그 반동의 힘은 근 20여 m 천장까지 달했고 전광석화와도 같은 몸놀림은 참새들보다 빨랐는지라 한번 휘저으면 반드시 참새 한 마리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얏!”

퍼드덕!

“또 잡았다!”

그날 오후.

지드는 드디어 백 마리의 참새들을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정확히 6개월 하고 7일이 걸렸다.

감격의 순간에는 스승도 자리를 함께 했으며 그 역시 제자의 빠른 성취에 이만저만 기쁜 것이 아니었다.

처음 지드를 제자로 삼았을 때만 해도 과연 제대로 수련 과정을 받아들일지 의문이었지만, 놀랍게도 녀석은 모든 과정을 이겨 냈던 것이다.

지난 시절 하류검사로 살아 왔던 처절함이 알게 모르게 몸에 사무쳤던 것이 분명했다.

노인과 지드가 어두운 동굴 밖을 나섰을 때였다. 세상은 노을로 온통 붉게 물들었고 서편 하늘에는 양떼구름들이 대이동을 하고 있었다.

지드에게 있어서 오늘처럼 아름다운 날은 처음이었으리라. 그의 인생을 통틀어서 이처럼 보람을 느낀 적은 처음일 테니.

노인이 말문을 열었다.

“내일부터는 검법을 시작하자꾸나.”

“…….”

검법이라는 말에 지드는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지드는 그렇게도 배우고 싶어 했던 검술을 시작한다 하니 실로 감격에 겨워 눈물이 글썽였다.

“우냐?”

“아니…… 요.”

“사내자식이 계집애처럼 울기는.”

“안 울었다니까요! 정말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목소리가 컸던가. 노인이 깜짝 놀랐다.

“아니면 아닌 거지, 소릴 지르고그려!

“…….”

이튿날 오전.

신전 안, 노인과 지드가 가부좌를 틀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노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근엄해 보였는데, 검법을 시작하기 전에 지드의 마음가짐을 확실히 해 두고 싶었는지 몰랐다.

“지금까지의 수련 과정은 오로지 검법을 시작하기 위한 입문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시작할 과정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그는 말하다말고 가슴 안쪽으로부터 책자 두 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지드는 자연스럽게 책들의 표지에 눈이 갔다. 오른쪽에 보이는 조그만 책자는 자하신공(紫霞神功)이라 적혀 있었지만 왼쪽의 낡은 책자 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노인이 조그만 책자를 먼저 집어 들어 설명했다.

“자하신공(紫霞神功)이란 앞으로 검법 과정을 수련함에 있어서 병행할 내공심법이니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검법서인데…….”

노인은 말하다 말고 들고 있던 책자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그 옆의 낡은 책자를 집어 들었다.

“너는 이걸 구경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이야. 모든 무림인이 이 전설 속 화산의 검법 비급 얻는 것을 평생소원으로 여길 정도이니.”

책자를 조심스럽게 집어 드는 노인의 손과 손목이 가늘게 떨렸다. 과연 어떤 검법서이기에 평소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스승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곧이어 그가 다시 말문이 열었다.

“이 책은 십사수매화검법(十四手梅花劍法)이 담겨 있는 비급이니라.”

십사수매화검법이라는 말이 지드에게는 얼른 와 닿지 않았는지,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데요?”

“검법이라 하지 않았느냐.”

녀석은 여전히 혼란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어(漢語) 공부를 해 왔기에 어느 정도 한자를 읽고 그 뜻을 알 수 있다지만, 듣도 보도 못했던 생소한 꽃 이름에 대해서는 알쏭달쏭한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매화라는 단어는 꽃 화(花)자가 들어간 걸로 보아서 무슨 꽃 같은데, 그게 검술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흠, 그러니까 그게 말이여.”

노인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과연 이 세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연의 흐름에 편승한 매화의 오묘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결국 노인은 별다른 설명 없이 열네 개의 초식 명칭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제1수 매류통천(梅流通天)

제2수 매영만천(梅影滿天)

제3수 냉매섬개(冷梅閃開)

제4수 냉매섬락(冷梅閃落)

제5수 한매동개(寒梅冬開)

제6수 한매청고(寒梅淸高)

제7수 설매창연(雪梅蒼然)

제8수 설매제한(雪梅制寒)

제9수 오매쟁속(五梅爭速)

제10수 칠매쟁수(七梅爭秀)

제11수 노매미려(老梅美麗)

제12수 동매잠춘(冬梅潛春)

제13수 선매청고(仙梅淸孤)

제14수 매화란구주(梅花亂九州)

노인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열네 개였는데, 지드는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대충 들어보니 매화꽃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대부분 시적 의미를 담고 있음이 분명하건만, 저게 어찌 검술과 관계가 있는지 아리송해했다.

스승 역시 그런 지드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밖으로 따라 나오너라. 내 직접 보여 주마.”

잠시 후 지드는 호기심 어린 눈길로 스승의 검법 동작들을 집중해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내심 잔뜩 기대했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지드의 표정에 어두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검술 동작은 마치 힘없는 갈대가 바람에 줏대도 없이 이리저리 기울어졌고 쓰러지는 모습 같기도, 비틀거리는 동작은 흡사 술 취한 사람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더군다나 검술을 하는데 왜 저리도 시끄럽게 떠드는지. 노인이 떠든 말은 다음과 같았다.

매류통천(梅流通天)! 매영만천(梅影滿天)!

매화의 꽃잎이 하늘에 닿으니 환영이 천지를 뒤덮는다.

냉매섬개(冷梅閃開)! 냉매섬락(冷梅閃落)!

얼었던 꽃이 반짝 활개를 치는가 하더니 이내 사라지도다.

한매동개(寒梅冬開)! 한매청고(寒梅淸高)!

겨울 매화는 다시 피어오르고 맑고 청결함을 간직하리라.

설매창연(雪梅蒼然)! 설매제한(雪梅制寒)!

눈 속의 묻힌 꽃잎이 빛을 내니 엄동설한이 무색하고

오매쟁속(五梅爭速)! 칠매쟁수(七梅爭秀)! 노매미려(老梅美麗)!

다섯 개 혹은 일곱 개의 매화 꽃잎들이 어우러져 서로의 빼어남을 견주지만 그중 가장 먼저 개화한 꽃이 제일 아름답더라.

동매잠춘(冬梅潛春)! 선매청고(仙梅淸孤)!

봄의 훈훈함이 그마저 가려 준다 하지만 신선의 매화는 늘 푸르고 청정하리라.

매화란구주(梅花亂九州)!

아홉의 모든 꽃잎들마저 이에 가세하니, 세상은 매화꽃으로 만개하리라!

노인이 동작을 끝내고 검을 내려놓자 지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설마하니 스승이 검술이 아닌 광대들이 공연하는 것 비슷한 검무(劍舞)를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그의 얼굴은 실망감으로 가득했고 한숨마저 내쉬기에 이르렀다.

지난 1년 동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열심히 수련에 임해 왔건만 고작 저런 춤이나 배우려고 여기까지 참고 견디어 왔던가.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휘청거릴 판이었다. 지드가 제아무리 하류검사 출신이라지만 이 세계의 검술 맥락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즉, 오로지 강함과 파괴력을 기본으로 하는 힘의 검술이 만연한다는 사실을.

현재 대륙에 퍼져 있는 검술은 크게 지면의 포스를 이용한 상승검술과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흑검술로 나뉜다.

그리고 얼마 전 중부 대륙 아르카도 제국의 아독이라는 특출한 흑검사가 북쪽의 혼용 검술을 도입함으로써 세상은 화려한 마법 검술 시대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

물리적인 검술의 최고조를 상승검술이라 하는데 대부분의 상승검사들은 이때부터 흑검술에 입문하기 위한 제1공격 수련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로지 극소수만이 포스의 검강을 만들어 낼 뿐이다. 그래서일까, 훗날 흑검술 제5공격 이상 시전자인 실전 흑검사들은 제국에서 몇 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거의 독보적인 존재이자 태산과도 같은 엄청난 위상을 갖게 된다.

어쨌든 지드는 내공이 실리지 않은 스승의 검법 동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애석한 일이었다.

십사수매화검법에 공력이 가미되어 제대로 시전된다면 이 일대가 매화 잔상과 향기로 가득함과 동시에 쑥대밭, 아니 초토화가 된다는 엄청난 사실은 오로지 시간이 지나야지만 깨달을 일이었다.

노인이 지드에게 다가왔다.

“봤느냐?”

“네.”

“어떠하냐?”

“그냥 그런데요.”

“그냥 그렇다니……?”

“솔직히 말씀 드려도 됩니까.”

“말해 봐라.”

“춤 동작 같았습니다. 게다가 흐느적거리는 것이 피죽도 못 먹은 사람이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겨우 검을 이리저리 휘두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허허, 제대로 보았군. 매화 검법의 오묘하고 유려한 검무 동작들은 짐짓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법이지. 불어오는 미풍에 살랑거리는 매화 꽃잎들, 말 그대로 자연의 흐름에 편승하여 인간이 감히 생각지도 못한 절묘하고 깊은 움직임들을 만들어 주는 거다.”

지드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대체 뭔 말이래요?”

노인은 뒷짐을 진 채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 세계에서 포스를 이용한 검술이 성행한다면 무림이라는 곳에서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이라 할 수 있는 내공을 이용한 검법이 주를 이루지. 네 녀석이 비록 이 곳 출신이라지만 어차피 나와 연을 맺은 이상 무림의 법칙을 따라야 할 것이여. 그런고로 오늘부터 십사수매화검법을 수련함에 있어서 화산파 최고의 내공심법인 자하신공을 익혀야 할 게다.”

“…….”

지드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스승이 뭐라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마음이 흔들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현재까지의 성취만으로도 하류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으니,

이왕 가는 거 끝까지 가 보기로 스스로 굳게 결의를 했다.

***

또다시 1년이 지났다.

지드의 나이 27세였다. 최근 들어서야 그는 십사수매화검법이 그토록 신비한 검술임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자하신공의 내공이 쌓여 갈수록 매화검법 역시 정비례하듯 일취월장했으니, 이제는 수련에 맛이 들려 밤낮없이 무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자하신공 수련 중 보랏빛 연무가 처음 피어올랐을 때에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감탄을 자아냈고, 십사수매화검법 1, 2초식인 매류통천과 매영만천을 시전할 때에는 매화 꽃잎들의 잔상(殘像)이 허공에 나타나 그야말로 뒤로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가. 지드는 자신이 수련하는 검술이 북쪽 대륙에서 유행하는 마법 혼용 검술과 그 맥락이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 보았다.

세월은 유수와도 같다 했던가.

무더운 여름이 훌쩍 지나가고 어느새 찬바람이 쌩쌩 부는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지드의 일상은 늘 똑같았다. 십사수매화검법의 극성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절반의 성취는 이룬 셈이라 할 수 있었다.

무림의 기준으로 본다면 지나칠 정도로 빠른 진전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은 무슨 이유인지 지드와 함께 신전 뒤쪽 바위산에 올라갔다.

지드는 스승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니 내심 의아스런 표정이었다.

“어디 가는 거죠?”

“가 보면 안다…….”

평소 때와는 달리 스승은 다소 목소리에 힘이 없다고나 할까. 한숨마저 가늘게 내쉬었으니 지드는 점점 불안하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벌써 정상에 도착했다.

스승님은 뒷짐을 진 채 머나먼 산등성이를 바라볼 뿐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지드는 내심 갑갑함을 느끼면서도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한 산맥 줄기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경치 한번 좋군.”

그때 들려오는 스승의 진중한 음성.

“요즘 수련 과정은 할 만한가?”

그 질문에 지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별로요.”

“별로라니?”

“그다지 뚜렷한 진전이 없습니다.”

“현재 십사수매화검법은 어디까지 익혔는가.”

“오 수까지입니다.”

“오 수까지라…… 내공의 부족함이 원인이겠군.”

“그렇습니다. 요즘 들어서 자하신공의 심법 도중 운기가 자꾸 역행을 하니 혈이 거꾸로 돌아 오히려 맥을 위협하는 증상이 있곤 합니다. 내공 심법이 정체되어 있으니 매화검법 역시 그 한계점을 맞는 게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스승이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흠. 하긴, 그동안 내가 해 주었던 혈도 타통 등은 한시적인 것일 뿐 깊은 내공 증진에는 턱도 없지. 더군다나 이 세계에서 구한 약초라고 해 봐야 체력 보강과 원기에만 도움을 줄 뿐 내가 무공과는 상관 없달까.”

스승의 말에 지드는 요즘 들어 왜 무공의 진전이 없는지 알 수 있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이곳이 무림이었다면 만년설삼과 공청석유 등을 벌써 구해다 먹였을 텐데.”

“그것들은 또 뭡니까?”

“내공을 증진시키는 영약이다.”

“와! 그런 약들도 존재합니까?”

“…….”

스승은 잠시 말없이 다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대체 오늘따라 왜 무게를 잡는 건지. 평소 장난스런 말투도 온데간데없었다.

지드는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뭐 때문에 이곳에 올라온 거죠?”

그제야 스승이 뒤로 돌아 지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스승의 표정은 다소 근심어려 보였으니 필시 무슨 문제가 있어 보였다.

“스승님,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닙니까?”

“지드야, 만나면 헤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으로 정확히 이십 년 전, 내가 이 세계로 처음 떨어진 곳이 바로 여기였느니라. 그리고 지금은 다시 무림으로 돌아갈 시기가 되었다.”

지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돌아가시다니요!”

“지드야, 지금부터 차분히 내 말을 들어보아라.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화산파의 보물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나는 화산파 장문인으로서 마땅히 그곳에서 항거를 하며 의로운 죽음을 받아들였어야만 했지만, 마교인들이 화산파의 정수이자 보물들을 약탈해 간다고 하니 마지막에는 생각이 바뀌고 말았단다.”

스승은 말하다 말고 다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당시 회상이 괴로운 것 같았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나는 부랴부랴 화산파 최고의 비급서들만 대충 꾸려서는 결계가 펼쳐진 화산파의 성역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단다.”

그리고 그 성역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조화로 우연찮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대가 만들어진 것과, 그것을 통해 20년 동안 다른 세계로 몸을 옮길 수 있다는 것까지.

순간 지드의 눈이 동그라졌다. 마치 신기하고 기묘한 동화 얘기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대체 무슨 말씀인지…….”

“지드야…… 애석한 일이지만 바로 오늘이 결계가 풀리는 날이란다.”

“그렇다면?”

“이별의 시기가 다가왔구나.”

지드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야 갑작스레 그런 중요한 말을 하다니 선뜻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뭔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적어도 갑자기 떠난다는 통보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가 버리면 저는 어쩌라고요!”

정말이지 당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서 가뜩이나 수련의 진전이 전혀 없는 마당에 스승은 나 몰라라 하고 어디론가 사라지려 하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스승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문을 열었다.

“사실 내가 너에게 무공을 가르치게 된 이유가 있느니라.”

“이유라니요?”

“나는 이 세계에서 화산파의 보물을 지켜 줄 자가 필요했다.”

“네?”

“설령 내가 무림으로 돌아간들 혹시라도 마교의 세력이 세상을 무림을 지배하고 있다면 20년 전 그들을 피해 가지고 왔던 보물을 다시금 고스란히 뺏기게 될지 모르는 일이 아니냐. 그런고로 나는 그것들을 이곳에다 두고 몸만 돌아가기로 결심을 했다.”

스승은 말하다 말고는 바로 옆 돌무더기 앞에 상체를 숙여 그것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딸그락, 툭!

잠시 후 흑단의 나무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승은 그것을 집어 들어 지드에게 건네주었다.

“어서 받아라.”

“이건 뭡니까.”

“이 안에는 화산파 정수라 할 수 있는 검법서(劍法書)를 비롯하여 이러저러한 무공에 관한 각 비급들이 들어있다. 훗날, 내가…… 혹은 다른 누군가가 찾아올 때까지라도 맡아 주었으면 한다.”

얼떨결에 상자를 받아 든 지드.

어째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수련해도 상관은 없다.”

“…….”

“그 안에 들어 있는 화산파에서 가장 독보적인 검법서도 한번 도전해 보아라. 만일 네 녀석이 운이 좋거나 능력이 받쳐 준다면 말이다. 허허,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드는 다소 정신이 혼란스러웠지만 최고의 검법이라는 말에는 눈빛이 반짝였다. 그러고는 이상하단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산파에서 독보적인 검법이 이 안에 들어 있다면 지금까지 수련했던 십사수매화검법은 뭐야? 가뜩이나 내공이 모자라서 수련의 진전이 없건만 뭘 더 배우라는 거지?’

스승은 그런 그의 심중을 읽었는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고 방금 전 흑단 상자를 꺼냈던 바로 그 돌무더기를 다시 헤치더니만 다소 독특하게 생긴 검을 끄집어냈다.

“받아 두어라.”

“이건 뭡니까.”

지드의 눈에 비쳐진 이 묵직한 검은 검푸른 빛에 양날이 무디고 끝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것이 아직은 뭔가 미완성된 느낌이 들었다.

“현철중검(鉉鐵重劍)이니라.”

“현철중검이라고요?”

지드는 검을 다시 살펴보면서 날도 서지 않으면서도 무겁고 뭉툭한 검에 다소 실망스런 기색을 보였다.

“이거, 날 좀 갈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그러자 스승이 혀를 차며 말했다.

“중검(重劍)은 날이 없고[無鋒] 대교(大巧)는 불공(不工)이라! 독고구패(獨孤求敗)께서 40세 이전에 이것을 믿고 천하를 횡행하도다.”

중검무봉 대교불공(重劍無鋒 大巧不工).

지드는 생소한 한어와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더욱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독고구패가 누구시기에 이런 볼품없는 검을 지니고 다니셨답니까.”

“그분은 무림 천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검법으로 일컫는 독고구검의 창시자이니라.”

“설마 그런 분이 이런 날도 없는 검을 사용했을 리가…….”

그때 스승은 저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다가 이내 서두르는 기색을 보였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이리 가까이 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갑자기 가부좌라니요?”

노인의 언성이 높아졌다.

“자, 시간이 없으니 어서 하라는 대로 혀.”

“아…… 네, 네.”

지드는 나무 상자를 옆에다 놓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자 스승이 그의 뒤로 다가와서 앉는 것이 아닌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잔말 말고 운기조식에 임해라.”

“네?”

“지금부터 진신내공(眞身內功)에 들어가니 절대로 사념에 들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진신내공이라는 말에 지드는 멍한 얼굴을 했다.

“설마 스승의 진기를…….”

순간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다! 당장 입 다물고 오로지 운기조식에만 집중 하도록 해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양 손바닥이 지드의 등에 밀착 되었다. 그리고 이내 화끈거렸고 순식간에 엄청난 전율이 전해져 들어왔다.

“욱!”

“조금만 참아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던가.

휘잉―

저녁 찬바람에 지드는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니 스승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바로 옆에는 흑단 나무 상자만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무림 세계로 돌아가셨단 말인가!

지드는 지끈거리는 머리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 순간 뭔가 이상한 힘을 느꼈는지 놀란 기색을 하였다.

“뭐야……?”

몸이 전보다는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랄까. 몸속 내부 곳곳이 뭔가 신비로운 활력으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녀석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다가 문득 상자에 시선이 가게 되었다.

스승의 말대로 과연 비급들이 가득했는지 이젠 그게 궁금했다.

특히 최고의 검법서가 들었다는 말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한번…… 열어 볼까?”

슥―

뚜껑이 열리면서 쌓여 있는 책자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제일 위에 놓여 있는 표지에 굵고 힘찬 먹 글씨체가 꿈틀거리듯 했으니 지드는 무심코 그걸 읽었다.

“독고구검(獨孤九劍)…….”

혹시 스승이 언급했던 독보적인 검법서라는 것이 이걸까. 지드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거렸다.

스승님이 무림 세계로 귀환하고서도 지드는 산 속 신전에서 2년을 더 머물렀다. 상자 안에 있는 비급들을 살펴보고 익히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그가 산에 오른 지 정확히 4년이 되는 날로서 하산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의 나이 이제 29세, 무거운 배낭을 짊어졌다지만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으니, 드디어 그리운 어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이 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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