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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예상치 못한 사건 (16/81)

Chapter. 15 예상치 못한 사건

앞으로 이틀 후 최종 본선 시험이 열리기까지 여덟 명의 통과자들은 원래 있던 숙소로부터 중앙 건물의 귀빈 숙소에서 지내야 했다.

호위검사들은 담 하나 사이를 두고 바깥 건물 숙소에서 최종 통과자가 가려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는 본래 없었던 규정을 대공이 일부러 만든 것으로써, 보다 주의 깊게 후보자들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7호와 8호는 높은 담을 바라보며 제발 대장님이 아무 탈 없이 끝까지 통과하여서 용병단 창설 허가증을 가지고 문을 나서기를 기도할 뿐이다.

8호가 마음을 졸이며 말했다.

“아무 일 없으셔야 할 텐데…….”

8호에 비해 7호는 비교적 무덤덤한 기색이었다.

“별일 있겠냐?”

“도대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 용병단 특별 허가 신청자들이 56명이었고 한 달여의 시험 과정을 거쳐 8명이 가려졌건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이틀 후 열리는 시험 과정에서 또다시 절반이 탈락된다니, 정말이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힘듭니다.”

7호가 빙그레 웃었다.

“오호라! 우리 귀족 자제 분께서 이제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으신 모양이군요? 후후!”

굳어지는 8호의 인상.

“귀족 얘기 안 하기로 약속해 놓고 또 빈정거릴 겁니까!”

“내가 언제 약속했었냐? 그냥 생각해 본다고 그랬지.”

“그만둡시다. 그 심술통이 또 발동했나 본데 난 아예 상대하고 싶은 생각 없소.”

“와우! 우리 귀족 나리께서 진짜 화나셨나 보다.”

결국 8호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바짝 들고 7호를 노려보았다.

“계속 그럴 거요!”

“어라! 주먹으로 꽉 한 대 때릴 기세네?”

“참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아서라,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동생이 형 때리는 거 아니다.”

7호는 한 팔로 8호의 목을 은근슬쩍 휘감았다.

“자식이 말이야!”

“이거 놓지 못해요? 젠장!”

“젠장이라니! 형한테 욕하는 거 아니다.”

“형은 무슨 얼어 죽을 형! 에이씨!”

“지금 에이씨라고 했니?”

“이참에, 우리 그냥 친구 먹지요?”

“친, 친구라고! 너 정말!”

“형님이 너무 철없이 놀아서 그러오. 나이 차이도 고작해야 두 살인데 말이오. 사실 개월 수로 따지면 일 년은 될까 몰라!”

“차라리 나를 패 죽여라!”

“…….”

***

짹짹.

본관 건물을 중심으로 꾸며진 이곳 정원은 바깥보다는 훨씬 섬세하고 아름답게 조경(調經)되어 있었다.

자신들이 거느리고 온 호위검사들과 차단된 후보자들은 각자 배정된 방과 정원의 제한된 구역 내에서만큼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세 번 있는 식사 시간에는 야외에 마련된 넓은 탁자에 모여서 함께 음식을 들어야만 했다.

태양이 중천에 오른 한낮이었다. 천막으로 가려진 식탁 위에는 온갖 진귀한 음식들이 가득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종들이 분주히 날다 놓은 덕분에 이들은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의자들 간격이 다소 좁은 관계로 덩치가 큰 후보자들은 옆 사람 때문에 포크로 고기 하나 찍어 먹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특히 그들 중 가장 육중한 체격의 바쿠어스는 가뜩이나 팔 하나 들어 식사하는 것이 껄끄러웠건만 바로 옆에 앉아 있는 허름한 차림새를 한 녀석이 그렇게도 눈엣가시로 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후보자들 사이에서 ‘운 좋은 녀석’이라 불리는 바로 하류검사 지드였다.

전형적인 하류 복장에 행동마저 위축이 되었는지 다른 후보자들과 거리를 두고 조용히 지내는 모습이 정말로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올라온 듯 보였다.

그때였다.

남부 지방 도끼로 유명한 바쿠어스가 갑자기 식사를 하다말고 옆에 지드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안 되겠다. 너 이 자식, 나 다 먹은 다음에 먹어라! 에잇!”

홱! 쿵!

바쿠어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드가 앉아 있는 의자를 손으로 잡고 뒤로 내던지듯 했다.

“어이쿠!”

쨍그랑!

목구멍에 음식이 들어가기도 전에 바닥에 자빠지는 신세가 되고 만 지드, 그는 무척 황당하고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쿠어스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적반하장이랄까? 오히려 바쿠어스가 더 화가 난 듯 뭐라 하는 것이 아닌가.

“애초부터 하류검사 따위가 껴서 함께 밥 처먹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 빌어먹을 놈이 자기 분수도 모르고.”

그는 뭐라 시부렁거리면서도 조금 넓어진 자리를 모두 차지한 자체를 매우 기쁘게 생각했고 본격적으로 먹는 데에만 열중했다.

“흐흐, 이제 좀 식사할 기분이 드는군.”

한편 지드는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더니만 근처 분수대 벤치로 향했다. 식사 도중에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는 팽개쳐지는 수모까지 당하고도 그다지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이곳에 있는 동안 표 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참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사실 그의 삶 대부분이 방금 전과 같은 대접을 받고 살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그다지 욱하거나 자존심 상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 옛날에 힘들었을 때 일들이 떠오르는 정도의 씁쓸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식사 시간이 끝나자 후보자들은 물줄기들이 하늘 위로 시원스레 뻗고 있는 분수대로 모여들었다.

각자 자신들의 숙소로 들어가기 전, 가을의 상큼한 공기를 들여 마시며 아름다운 정원으로부터 풍겨 오는 꽃향기를 맡기 위함이었으리라.

지드 역시 하늘 넝쿨로 그늘이 진 정원 나무 울타리에 등을 기대고는 나름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쿠어스라 불리는 무지막지한 자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식사마저 하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지금 이 순간 가을의 정취를 느낀다는 자체에는 무척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 좋다.’

그때 지드는 바로 앞, 분수대 주변에서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는 후보자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호기심이 발동했던가.

‘과연 누굴까?’

대공이 그렇게도 찾기를 원하는 흑검사, 지드 역시 일일이 살펴 가며 의심되는 자를 나름대로 가려내려고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드는 잠시 상체를 고쳐 잡고 그들 하나하나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일단 맨 오른쪽부터 그의 눈에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저자의 이름은 메시이고 출신국은 중부 대륙에 위치한 아르카도 제국이라 했지. 그렇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저자가 가장유력할 텐데…… 비록 성장하고 자란 곳이 다른 나라라지만 일단은 의심이 가는 후보자들 중 하나라.’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젓는 지드.

‘하지만 너무 뻔히 드러나는 것이 이상하군. 신분을 숨기고 은밀히 숨어온 자가 저렇듯 신상 자료에 자신의 출신 국을 솔직하게 까발릴 수 있다는 건지.’

지드가 이번엔 그 옆 있는 후보자를 바라보았고 이내 미소를 머금었다.

‘집정관의 딸인 테스는 일단 제외. 그리고 그 옆의 무식한 인간도 일단 제외.’

무식한 인간이란 아까 전에 자신을 집어 던진 바쿠어스였다. 남부 대륙에서 도끼 살인귀로 유명하니 만큼 그가 중부 대륙의 흑검사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리가시 용병단의 돌격 대장이었다는 스카페트 역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리가시 용병단에 가서 그의 신원을 확인해 보면 당장 그 진위 여부가 가려질 텐데 그마저 신원을 조작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공 역시 정부로부터 파견 나온 사람이니까 이미 그런 조사는 철저히 다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 다음에는 에르가니아 무치 바가스와 카르발디 그리고 테세우스 이렇게 세 명인데. 일단 에르가니아는 제외.’

제 눈에 안경이랄까. 그녀가 절대 흑검사일 리 없다고 아예 단정을 해 버린 것이다.

결코 그 표정으로부터 사나움이나 거친 요소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햇살에 부서지는 그윽한 미소만이 지드의 심장을 더욱 뛰게 만들 뿐.

지드는 이번엔 뭔가 어두운 포스가 팍팍 느껴지는 긴 흑발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자는 테세우스라 했지…… 저자 역시 유력한 후보로 보이는데. 정말이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부담을 팍팍 주는군. 그 대자객으로 보일 정도니 말할 필요도 없나.’

과묵한 인상에 하루 종일 말수도 없어 다른 후보자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는 카리스마적 인물, 지드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엄청난 포스가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사실 지금 당장 그의 정체가 흑검사라 할지라도 그리 놀라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드는 마지막 후보자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카르발디.’

하얀 치아를 드러내어 활짝 웃고 있는 사내 모습이 흡사 미소년 같다고 할까, 같은 남자가 보더라도 그 해맑고 순수한 눈웃음에 매력이 듬뿍 느껴질 정도로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는 남들처럼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에르가니아에게 다가가서 계속 집적대고 있었다.

‘생긴 모습이나 하는 행동이 전형적인 바람둥이 같은데? 저자 역시 중부 대륙 메스타니아 지방 출신이라 했으니 일단은 후보자들 중에 하나로 올려놓는 것이 좋겠군.’

지드의 관찰은 그쯤에서 끝났다. 허나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말았으니.

‘과연 누굴까.’

바로 그때였다.

분수대 중앙에서 뭔가 일이 터지려 하고 있었다. 긴 흑발 사내가 벽면에 검을 세워 두고 잠시 낮잠을 청하려 할 때 덩치 큰 사내 바쿠어스가 그에게 슬금슬금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홀딱 까진 대머리에 심통이 주렁주렁 달린 그의 게걸스런 표정으로 보아서는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뭔가 시비를 걸려는 것 같았다.

저벅저벅―

그 육중한 체격이 대리석 계단을 사정없이 밟고 올라가니 군화 발자국 소리가 여기까지 크게 들려왔다. 아니 다를까, 바쿠어스는 벽면에 기대어 있는 테세우스의 예사롭지 않은 검을 눈여겨 바라보더니만 대뜸 큰 소리로 말했다.

“흠. 검 한번 멋들어지게 생겼군! 너, 이 검 어디서 구했냐?”

“…….”

테세우스는 눈을 감고 계속 잠을 청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바쿠어스가의 인상이 굳어져 들어갔다.

“어디서 구했냐고 묻잖아.”

“…….”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바쿠어스가 상체를 숙여 테세우스의 얼굴을 살폈다.

“뭐야,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다 이거야!”

그는 험악한 얼굴로 들이댔고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그러나,

“뭐야…… 이 자식, 꼼짝도 않네.”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고 눈을 감은 테세우스, 그제야 바쿠어스는 그가 잠에 깊이 든 것으로 알고 금세 인상을 풀었다.

“이제 보니 자빠져 자고 있었군. 그렇다면 어디 검이나 구경해 볼까.”

바쿠어스가 그의 바로 옆에 기대어 있는 검에 손을 갔다대려는 순간이었다.

스윽―

때마침 들려오는 차분한 음성.

“만지지 마라.”

“…….”

갑작스레 들려오는 말에 바쿠어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흘끔거렸다. 그리고 그 음성의 주인공을 찾았다. 잠에 깊게 든 줄로만 알았던 바로 긴 흑발 사내 테세우스였던 것이다.

이에 바쿠어스가 거친 말투를 내뱉었다.

“뭐야, 이 새끼! 이제 보니 자는 척했잖아?”

“잠시 명상에 잠겼을 뿐이다.”

“뭐야? 잠에 들지 않았으면서도 내 말을 씹었단 말이지. 앙?”

“이제 잠 좀 자게 해 주시지. 다른 곳으로 가라.”

“어라? 이 자식 봐라, 간덩이가 부어도 한참 부었군! 뭐, 좋다! 어차피 자는 거야 네놈 자유니까. 하지만 이 형님이 네놈의 검을 잠시 구경할 테니 그리 알아라. 흐흐!”

바쿠어스는 검을 살펴보고픈 마음이 간절했는지 우악스런 분위기에서 돌변하여 다시 검을 만지려 했다.

그때 다시 들려오는 다소 차가운 음성.

“그 검은 너 따위가 감히 만질 수 없는 영물(靈物)임을 아는 것이 좋겠군.”

바쿠어스가 결국 그 더럽고 흉측한 인상을 팍 드러내고야 말았다.

“뭣이라! 너 따위라니.”

급기야 바쿠어스는 그의 전유물인 커다란 도끼를 등 뒤로부터 뽑아 들기까지 했다.

“너야말로 뒈지고 싶은 모양이로군.”

스윽

그는 일부러 위협을 주려는 듯 도끼를 테세우스의 목에 조준한 채 내리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당장 목을 잘라 줄까, 아니면 네놈의 검을 내놓을 테냐.”

결국 테세우스가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둘 다 싫은데.”

그는 벽면에 자신의 묵직한 검을 잡고는 바쿠어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살고 싶다면 이쯤에서 그만둬라.”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그런 베짱이 나온단 말이지?”

“알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이놈의 새끼! 목이 달아나도 그런 헛소리가 나오는지 두고 보겠다!”

바쿠어스는 도끼의 명인답게 빠른 손동작으로 휘둘러 쳤다. 그 큰 덩치가 사전 예고도 없이 기습 공격한다는 자체가 무척이나 비열해 보였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는 기습 공격 역시 정당한 전투 기술에 속할 수 있었다.

홱!

파팟!

그런데,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뒤로 물러서는 테세우스. 웬일인지 그의 굳어졌던 표정이 풀리고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마치 육중한 돼지가 무식한 도끼를 들고 설쳐 대는 꼴 같군.”

그런 비아냥거림이 바쿠어스에게는 다소 사악하게 보였던가. 그는 자신의 공격을 보기 좋게 피한 테세우스에게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오르고 말았다.

“그래, 계속해서 실실 쪼개라! 너 오늘 아주 작살을 내버릴 테니까!”

이번엔 바쿠어스가 두 손으로 도끼를 꽉 잡고는 공격다운 공격을 제대로 펼칠 모양이었다.

타다닥!

바로 그때였다.

회녹색 바탕의 제법 묵직한 테세우스의 검이 움직였다. 테세우스는 자신의 손가락을 검날에 대어 가벼운 상처를 내었고 뚝뚝 떨어지는 피를 검에 바르며 뭔가 주문을 외웠다.

“아르여, 그대의 힘을…….”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그때 신기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검신에 새겨진 기묘한 문양이 빛을 발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진동음이 울리는 것이 아닌가!

파팟―

웅!

그와 동시에 이미 휘둘러 친 도끼가 테세우스의 목을 향해 살벌한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줄기 검은 기류가 섬광과 뒤섞인 듯한 진한 회색빛을 발광했고 두 대결자의 모습을 잠시나마 가릴 정도로 크게 형성이 되었다.

그 안에서 두 대결자들이 충돌한 듯 검이 휘둘러 치는 경쾌한 소리, 이어서 뭔가 떨어지는 둔탁한 음이 들려왔으니.

툭!

칙칙한 어둠의 빛이 사라지고 다시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곳에는 바쿠어스의 흉측한 몸통만이 남아 있었다.

정말이지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데굴데굴.

분수대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커다란 대머리 수급(首級)이 있었으니 바로 바쿠어스의 것이었다.

목 없는 몸뚱이마저 균형을 잃고 앞으로 엎어졌으니, 태양빛에 눈부셨던 하얀 대리석의 분수대는 삽시간에 핏물로 붉게 물들어졌다.

“모, 목이…… 떨어…… 졌잖아.”

“저자가 사람을 죽였어!”

후보자들은 저마다 놀란 듯 자리에 일어나서 뒤로 물러섰고 이 잔인한 결과를 초래한 테세우스를 흘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정작 테세우스 본인은 검을 다시 등 뒤에 차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의 숙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몇 걸음 가는가 싶더니만 잠시 멈추고는 고개를 뒤로 돌려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후보자들에게 말했다.

“그가 먼저 공격했다.”

“…….”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없었고 그저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후보자들은 자신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저마다 당황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지드 역시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후보자들 중 한 명이 벌써부터 목이 달아나는 참극을 당했고 그 장본인은 유유하게 사건 장소를 빠져나가 자신의 숙소로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지금 이 순간 더욱 당혹스러워 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맞은편 건물 3층 테라스에서 우연찮게 지켜보게 된 대공과 총관이었다.

특히 총관은 자신의 용병 연합회 본부 앞 정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에 대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세상에!”

대공은 얼굴 근육에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입술 주변이 꿈틀거렸고 잠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자 총관이 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대공! 우리 눈앞에서 사람이 하나가 목이 댕강 베여 죽었습니다!”

그제야 대공이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리 호들갑을 떨지 마시오. 어차피 벌어진 일 아니오.”

“어찌 그리도 태연할 수 있습니까.”

“어차피 놈이 까불다가 당한 것이니 그리 신경 쓸 건 없다고 보오. 아니, 흑검사 후보자들 중 나는 아니오 하며 스스로 알아서 사라져 주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 아니겠소.”

“……그건 그렇다 치고, 그나저나 살인자를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엄밀히 본다면 그의 행위는 살인죄로 보기에는 어렵소. 상대방이 먼저 공격을 했고 마지못해 검을 뽑았으니 정당방위라 할까.”

“제가 보기에는 테세우스가 공격을 유도케 한 것 같은데요.”

대공이 입가에 모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의외로 순진하군요. 사건의 성립은 정황이 아닌 행위 증거가 우선이라는 사실 모르시오? 나나 그대나 도끼가 먼저 휘둘러졌고 그 다음에 검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소. 이번 사건은 이대로 종결을 지으시오.”

“그러시다면 테세우스를 그대로 놔두는 겁니까?”

“아니, 내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무슨 말씀인지.”

“그가 사용한 검술 때문이오.”

“검술이라니요?”

“흑검사는 절대로 소환 검술을 시전하지 않으니 그 역시 흑검사 후보자들 중 제외를 시키겠다는 뜻이오. 한 가지 덧붙여 말하자면 테세우스는 대자객이 분명하오.”

총관이 깜짝 놀라 외쳤다.

“대자객이라고요!”

“그는 다크퍼스 소환 검술을 사용해서 바쿠어스의 목을 벴던 겁니다. 총관도 알다시피 다크퍼스는 어둠의 사악한 힘을 불러내는 검술로서, 주로 대자객 신전 소속 일급 자객들의 전유물이 아니오.”

“그, 그러니까 테세우스가 그걸 사용했다는 겁니까?

대공은 침묵을 지키며 뭔가 골몰하더니만 다시 말문을 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를 더 이상 이곳에 머물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오.”

“당장 말입니까?”

“그가 무슨 연유로 이곳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다른 후보자들이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후보자들 역시 각자 나름대로 상당한 검술 능력을 지녔을 텐데, 대자객이 그렇게도 강합니까?”

“강하다마다! 굳이 비교하자면 흑검사에 버금간다고 할까? 내 추측이 맞는다면 테세우스는 대자객 신전 내에서도 상위 계열이 분명하오. 다크퍼스 소환 검술은 대자객 신전이 중부 대륙의 흑검사들을 상대하기 위한 방편이라 들었소. 뭐,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그런 검술을 직접 본 적은 없소이다, 다만 그리 추측할 뿐이지. 여하튼 내 말대로 하시오. 대자객이 여기 있어 봐야 오히려 흑검사를 잡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니.”

총관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검사부 수장인 대공의 정보 수집은 제국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최고가 아니던가.

그가 그렇다면 무조건 따라야만 할 것이다.

“대공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총관도 새겨들으시오. 대자객 신전과 부딪쳐 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소. 앞으로라도 그들과 부딪치는 일이 있다면 일단 무조건 피하고 보고는 것이 상책일 것이오.”

“알겠습니다.”

총관은 침을 꿀꺽 삼킬 정도로 긴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총관은 갑자기 머릿속에 뭐가 떠올랐으니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후보자 신원 자료들 중에 대자객을 제압했다는 후보를 봤던 것 같은데요?”

대공이 어이없다는 표정 가깝게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거 말이오? 후후! 용병 거주지 하류 구역 출신의 이야기가 아니오. 어찌나 황당한지 그 기록을 당장 지워 버렸다오.”

“그렇지만 그는 다른 후보자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본선까지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래도 실력 있는 검사 같은데요?”

대공이 찜찜한 얼굴을 했다.

“검사는 무슨 얼어 죽을 검사! 그저 용병들 틈에서 심부름이나 하다가 어깨너머로 검술을 배운 하류 검술일 텐데. 물론 그자가 최종 시험을 통과한 것은 나로서도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운이 좋아서 최종 후보자들 틈에 속하게 된 게 분명하오.”

얘기를 듣고 보니 대공의 말도 맞는 것 같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지만, 용병 거주지에서 열악한 하류 구역 출신의 밑바닥 검사가 날고 기어 봐야 그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총관은 왠지 모르게 그에 대해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대공께서는 그가 대자객을 제압했다는 기록이 거짓이라 확신하시는군요.”

대공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그냥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총관께서는 그 연세에 맞지 않게 무척이나 순진한가 보오. 만일 그자가 대자객을 제압했다는 내용이 사실일 경우로 드러난다면 내가 대공직을 그만두겠소. 아니 옷이라도 벗고 춤도 출 작정이오. 하하!”

그가 다소 오버된 반응을 보이자 총관이 그만 실소를 드러냈다.

“허허! 대공께서도 아니면 아닌 거지요. 뭐, 그렇게 하실 필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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