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를 둘러싼 산등성이 어느 깊은 협곡 아래.
범상치 않은 군장 차림의 두 사내가 절벽을 미끄러지듯 바닥에 내려왔다. 그 둘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이었고 군장 여기저기가 심하게 찢기어져 있었다.
“헉! 헉! 아직 안심하기에 일러. 여기서 더 멀리 도망가야 해. 테세우스가 아직 이 근처에 어딘가 있을 게 분명하단 말일세.”
“이거 대자객 신분으로서 정말 창피하군. 더군다나 우리는 일급 계열의 자객들이 아닌가. 빌어먹을! 진작부터 그 자식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할 줄이야.”
“후우, 아직도 그가 총관의 딸 네오사온을 죽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군. 테세우스는 총관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고 네오시온과 약혼한 사이였잖아. 그런데 하루아침에 배신을 하고 네오시온마저 죽이다니!”
“사실 그가 죽였다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이 없잖은가. 반드시 그가 범인이라는 그 증거도 없고.”
그러자 한 사내가 펄쩍 뛰었다.
“이 사람이 순진하기는! 본관에서 우릴 파견해서 테세우스를 제거하라고 명했다면 이미 사전 조사가 다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잖은가.”
“그런데 왜 생포 대신에 무조건 죽이라는 거지.”
“총관이 눈이 뒤집힌 거지. 아마 다른 자객들도 그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걸세.”
“그나저나…… 오히려 우리가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렸으니!”
바로 그때였다.
스윽
절벽 모퉁이 어둠 속으로부터 누군가 나타는 것이 아닌가. 이에 두 사내들은 가까이 다가오는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 버렸다.
“테세우스!”
“젠장! 어떻게 우리를 찾아냈지?”
곧이어 들려오는 파공음과,
팍―
파팟!
“아악!”
“욱……!”
무기력하게 내뱉어진 비명들이 협곡을 타고 뻗어 나갔다.
달빛이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테세우스는 검에 묻은 피를 닦기 위해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 바짝 다가섰다.
잠시 후 그는 근처 나무기둥에 몸을 기대고는 문뜩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이지 사람 운명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고 그랬던가.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수들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대자객 신전에서 가장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그가, 이제는 오히려 그곳으로부터 제거 대상이 되어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연인 네온을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장차 장인이 될 뻔했던 총관에게 완전히 냉대받는 신세가 되었으니 현재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으리라.
그동안 네온을 죽인 자의 흔적을 찾느라 사방팔방 찾아 헤맸지만 결국 이룬 것 하나 없이 실패하였으니 이제 앞으로 걱정해야 할 일은 바로 자신의 목숨이다.
적으로 변해 버린 대자객 신전의 손길로부터 당장 벗어날 궁리부터 생각해 내야만 할 것이다.
이윽고 테세우스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대공은 붕대로 칭칭 감긴 다리를 침대 난간에 올려놓고는 불편한 몸으로 겨우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다.
순간,
삐걱 하는 소리와 테라스의 나무문이 열렸다.
바람이려니 하고 시선을 돌렸는데 이게 웬일인가. 한 존재가 살짝 머리를 내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대공이 화들짝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누구냐!”
곧바로 들려오는 차분한 음성.
“당신을 해치려고 온 게 아닙니다.”
“누구냐니까!”
“테세우스를 기억하십니까?”
“테세우스고 뭐고 썩 나가지 못하겠는가!”
그러자 사내가 탁자에 놓인 등잔에 재빨리 불을 켜고는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
“절 알아보겠습니까?”
흥분에 날뛰던 대공은 그의 얼굴을 보자 놀란 얼굴을 했다.
“너…… 는?”
“이제 기억합니까? 나는 용병단 특별 허가 신청자들 중 한 명이었지만 쫓겨났던 테세우스입니다.”
“혹시 그 일 때문에 앙심을 품고 나를 찾아온 거냐!”
테세우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설마요.”
“그럼 무슨 일 때문에 이런 한밤중에 침입을 했는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라? 할 말이 있다면 내일 날이 밝을 때 당당하게 찾아와라.”
“그렇게 하지 못할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부득이 이 야밤에 올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연이라니?”
테세우스가 잠시 주저하더니만 결국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대공께서는 이미 제 정체에 대해서 알고 계시라 생각합니다. 저는, 대자객 신전 소속입니다.”
대공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계속해서 들려오는 테세우스의 음성.
“…….”
“하지만 지금은 대자객이 아닌 그들로부터 쫓기고 신세지요.”
대공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 사정을 내게 밝히는 이유가 뭔가.”
“저를 받아 주십시오.”
테세우스로서는 대자객 신전의 표적이 된 이상, 대등한 세력을 가진 특수검사부에 전향을 하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그가 내린 특단의 방법이랄까. 아니 그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대공 자라투스의 특수검사부와 대자객 신전은 예전부터 상생 상잔의 관계를 맺어 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그 이면에는 전혀 다른 알력이 작용한다는 것은 알 만한 자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제국 특수검사부가 꺼려하는 숙청에 관한 일 등을 대자객 신전에 하청을 주는가하면 대자객 신전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을 제거할 때 특수검사부에서 대신 처리하는 관행 따위로 미뤄 보면 그랬다.
또 한편으로는 그 속을 들여다보자면 그 누구보다도 서로에 대한 견제 활동이 극에 달할 정도로 심했다.
특히 요즘 들어서 특수검사부에서는 너무 커 버린 대자객 신전의 세력이 심히 부담스러워 한 번쯤은 기회를 봐서 눌러야 할 것이라는 소문도 자자했다.
테세우스로서는 대공이 자신을 받아들여 줄지 기대를 걸어 볼 만했다.
한편 대공은 잠시 창밖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골몰하는 것 같았다.
다년간 특수검사부 수장으로 지내 오면서 그는 중년이 되도록 제법 많은 일들을 경험해 왔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당황스런 일은 처음이던가.
당장 답을 주기보다는 일단 냉철한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하하하, 자네 인상을 보니 만일 내가 거절할 시에 나를 죽일 것만 같군.”
테세우스는 정곡을 찔린 듯 당황했다.
“…….”
그때 대공이 웃음을 멈추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리 가까이 와 보게나.”
테세우스가 멈칫거리자 대공이 다시 말했다.
“앞으로 특수검사부를 위해 큰일을 할 사람인데 이리 와서 손 한번 잡아 봅세나.”
“그렇다면 저를…….”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있군. 특급계열 소속 대자객이 직접 찾아와서 전향(轉向)을 하다니…… 허허, 이보게.”
“네?”
“우리…… 술이나 한잔 할까?”
***
세상천지가 온통 황궁을 중심으로 생겨났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건물들이 주변 천지 여기저기에 우뚝 솟아들 있었다.
이곳은 수도 중심부로서 황궁을 비롯하여 각종 의회 실들과 그 기능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건물들 그리고 신전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그 웅장함에 감동적인 순간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테세우스는 앞서 가는 대공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쉽사리 고공 건물들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공은 아직 부상이 낫지 않았는지 목발을 짚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기세는 당당해 보였던가. 테세우스는 한편으론 어제 같이 술을 마셨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또 테세우스는 이곳에 발을 들여놓고는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처럼 새로운 세상에 절로 위축되고 있음을 느껴야만 했다.
그의 활동 지역이 주로 낙후된 지방 도시였던 이유도 있었던가.
과연 남부 대륙의 패권국이었다. 오랜 세월 막강한 국력으로 수많은 군소 동맹국들의 제왕으로 군림해 온 것이 결코 과장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대공이 걸음을 멈추고는 저만치 떨어져 오는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천하의 대자객이 이런 정도의 모습에 놀라면 안 되지.”
테세우스가 재빨리 자세를 고쳐 잡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누가 놀랐답니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으니 냉큼 가세나.”
잠시 후 대공은 미로처럼 얽힌 길을 가더니만 어느 빽빽한 건물 사이에 더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테세우스는 그를 따라가면서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는 목적지가 특수검사부가 맞을진대 저만치 우뚝 솟은 국가 건물 대신에 구불구불 어딘지도 모르는 밀집 지역으로 자꾸 기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체 말수가 없는 테세우스는 그저 대공을 믿고 따라가기로 했고 드디어 인적이 거의 없는 듯, 지저분하고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지금이 한낮이지만 빽빽한 건물들의 비좁은 틈에 위쪽 층층마다 연결된 줄에는 빨랫감들이 즐비하게 널렸으니 테세우스는 그제야 이곳에 일반인들의 주거 환경 구역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결국 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여긴 어디죠.”
대공이 답했다.
“내 관할 지부가 여기 있다네.”
“관할 지부라니요?”
“특수검사부 말일세.”
“네?”
테세우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특수검사부가 이런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대공이 주변을 살펴보더니만 손으로 앞에 있는 무언가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그저 막다른 골목의 벽이 뒤집히며 열리는 것이 아닌가.
덜커덩―
“자, 들어오게나.”
테세우스는 조금 놀란 얼굴이었고 대공의 뒤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덜커덩 하고 닫히는 비밀 문!
안은 보기보다 너무도 달랐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 열댓 명 정도가 부산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예사롭지 않은 군장 차림새들이었고 각자 검들의 형태도 제각각의 독특하게 보였는데 테세우스는 한눈에 그들이 특수검사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어느 방에선가 대공이 잠시 기다리라기에 테세우스는 탁자에 앉아서 멀뚱거리고 있었다.
특수검사들은 그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듯 각자 일에 집중했다. 잠시 시간이 흘러서야 대공이 손에 찻잔을 들고 탁자로 다가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일단 여기 차부터 들게나.”
“아…… 네.”
그는 자리에 앉더니만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큰소리로 불렀다.
“카이!”
그러자 누군가 손에 서류 뭉치를 잔뜩 들고는 허둥지둥 뛰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자네 하던 일 멈추고 잠시 앉게나. 잠깐이면 되네.”
“아, 네.”
카이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고 맞은편 테세우스를 발견하고는 대공에게 물었다.
“이 친구는 누구죠?”
“앞으로 우리와 함께 일할 사람이네. 내가 직접 고른 인재지. 이름은 테세우스일세.”
순간 카이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직접요?”
“특채라 할 수 있지.”
“얼마나 대단한 친구이기에 수장님께서 직접 데리고 오셨답니까?”
“앞으로 참모인 자네와 이 친구가 좌우에서 나를 보필해야 할 것일세.”
카이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대체 뭡니까. 들어오자마자 수장님의 날개 역할을 맡다니요! 저 친구의 출신 성분과 경력부터 궁금해지네요.”
“그건 자네가 알 거 없네.”
“네?”
“사실 가까운 친척의 부탁이 있었기에 내 곁에 두기로 한걸세. 그러니 자네가 이해 좀 해 주게나.”
그러자 카이는 그제야 이해가 가는 듯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그랬었군요?”
“쉿! 어디 가서 얘기 하지 말게나.”
“잘 알겠습니다. 후후!”
대공은 테세우스가 대자객 출신임을 당분간 철저히 숨기기로 했고 대신 친인척 관계로 특채했음을 공공연한 사실로 알릴 생각이었다.
대공은 탁자에 어지럽게 흩어진 서류들을 살펴보더니만 이윽고 카이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왜 이리 정신없는 건가. 게다가 이 서류들은 다 뭐지?”
“수장님 안 계시는 동안 일이 터졌지 뭡니까.”
“일이 터지다니!”
“두 달 전 원로원 상정 의결에서 투표에 부친 용병 거주지 폐쇄건 말입니다. 그게 드디어 내달부터 시행되거든요.”
“시행이라고? 그렇다면 군대를 풀기 전에 특수검사부에서 할 일들이 많겠군.”
“많다 뿐입니까? 용병 거주지 내에서도 자신들을 몰아칠 것을 알고는 서로 결속력을 다지고 항거할 지휘 체제까지 구성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는데 일단 저희가 그들 우두머리들부터 철저히 깨 놓아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놓인 서류들은 바로 요주의 인물들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놓은 것들입니다.”
대공이 서류 하나를 집어 들더니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거 꽤 골치 아픈 작업이겠군.”
“용병 거주지 내에서도 특히 하류 구역 출신자들의 항거가 엄청 드셀 겁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나 할까요.”
“지부 모임은 언제인가.”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 때문에 제1지부 수장께서 오늘 밤 전체 지부 회의를 열기로 하셨습니다.”
순간 대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1지부의 사적인 명령이겠지!”
“사적이든 공문이든 어차피 회의를 가져야 하잖아요.”
“내 말은 엄연히 본부장이 있는데 어째서 그 자식이 사사건건 다른 지부들에게 부하들 다루듯 명령을 내리냔 말인다.”
카이가 빙그레 웃었다.
“또 혈압 오르시겠네요. 제1부 수장이 황족 출신에다가 그야말로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검사들을 추려서 자기 지부로 데려갔으니까, 현재로서는 거기가 본부나 마찬가지겠지요.”
“빌어먹을!”
“그나저나 이걸 어쩌죠. 제가 할 일이 많아서, 수장님 회의 참석 때는 다른 검사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후…… 아니, 그건 필요 없네.”
“필요 없다니요?”
“여기 테세우스와 갈걸세.”
“네?”
그날 저녁 테세우스는 특수검사부가 흡사 점조직처럼 각각 7개의 독립적인 체계로 나뉘어져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각 수장을 위시해서 검사들 간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엄청난 것임을, 그리고 그것이 대자객 신전과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부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 세력에 엄연한 본부장 있을 텐데 제1지부 수장의 독단적인 회의 주선으로 7개 지부 수장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모습에는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대공의 뒤에서 호위검사 자격으로 서 있으며 한참 진행을 이끌어 가는 제1지부 수장 카르세크라는 자를 눈여겨 볼 수 있었다.
그의 뒤에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검사가 버티고 서 있었는데, 멋들어진 군장 차림에 은발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깨에 있는 반월형 병기는 한눈에 봐도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수장이 연설하는 동안 혹시라도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며 냉기를 팍팍 쏟으며 참석자들을 하나하나 노려보고 있었다.
“이번 용병 거주지 철거 작업은 군대가 나서기 전에 우리가 사전에 그 싹들을 철저하게 잘라 놔야만 할 것이오. 난 이미 그곳에서 집단 선동을 일으킬 위험인물들을 가려 놓았고 조만간 작전을 시행할 참이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라도 이번 일에 있어서 다른 지부 수장들께서 작전 계획이 있다면 모두들 취소하기 바라오.”
그 말에 회의장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르세크가 연단 탁자를 세게 쳤다.
쾅!
순간 좌중이 잠잠해졌고 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우리 1지부가 먼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데 문제 있소이까.”
“…….”
아무도 반문하는 자들이 없었다. 카르세크는 수장들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자신의 의지를 더욱 굳혔다.
“특수검사부가 7지부 체재로 나누어졌지만 사실 제대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곳이 몇 개나 있습니까. 굳이 말하자면 우리 1지부와 2지부 정도만이 정예랄까. 요즘은 2지부마저 시들시들하지만요. 그 외에 지부들은 왜 존속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수행 평가가 형편없다지요. 대체 하는 일들이 뭐요! 사실 올해 상정의결기간 중에는 내 직접 지부 축소 안건을 원로원에 올릴 예정이었는데 당신들 밥줄 끊어질까 봐 차마 그 짓은 못하겠더군요. 제발 좀 예산만 축내지 말고 어느 정도 수행들은 좀 합시다.”
바로 그때였다.
제5지부 수장 자라투스가 욱하는 성격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말이 있소.”
카르세크는 그를 보는 순간 인상이 일그러졌다.
“또 당신이요!”
“신임 검사들의 배정 부분에 있어서 제1지부 수장께서 독점을 하고 수재들을 모두 빼 가는데 어찌 다른 지부가 임무를 제대로 하겠소이까.”
카르세크가 성질을 버럭 냈다.
“빼 가다니요! 무슨 말을 그리 천박하게 하시! 신임 검사들은 배정을 받기에 앞서 서류에 희망 배속 근무지를 대부분 제1지부로 선택하였기에 난 그들의 요청을 들어 주었을 뿐, 그런 일은 없소이다.”
“희망 배속 근무지가 한쪽으로 몰릴지라도 형평상 각 7개 지부에 고르게 배정되어야 하는 거 아니오? 이왕 나온 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소. 현재 그대 뒤에 서 있는 검사는 최근 수년간 열린 크고 작은 검술 시합들에서 모든 우승을 독차지했던 독보적인 기재이건만 어찌 이번에도 그대 지부에 배속될 수 있는 겁니까!”
카르세크가 순간 당황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거야 본부에서 정한 일이지 나와는 상관없소.”
“이제는 본부 탓을 합니까? 오늘 회의도 본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대가 일방적으로 개최한 것이 아니오!”
그가 다시 탁자를 내리쳤다.
쾅!
“그래서 지금 어쩌자는 거요!”
그가 강력하게 나오자 대공 역시 잠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끝까지 맞붙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날 회의는 다소 험악한 분위기에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뒤끝이 강하게 남았던가. 대공과 테세우스가 건물 계단을 내려오는 저 밑에서 제1지부 수장 카르세크와 그의 든든한 호위검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테세우스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려가시죠. 제가 뒤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대공은 계단 아래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카르세크가 대공에게 다가오더니만 회의장과는 달리 아주 거친 말투를 내뱉었다.
“원로원 믿고 사사건건 대들다간 언제 인생 종칠지 모르는 일이오.”
“지금 협박하는 거요?”
“당신 따위에 협박이라니. 마음만 먹으면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짓밟을 수가 있소이다. 대공이란 꼴 같지 않은 지위 때문에 그 동안 예의를 차려 주었지만 앞으로 또 나섰다가는 언제 어느 야밤에 레온이 그대의 침대 머리맡에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오.”
카르세크의 뒤에 있던 은발 머리 레온이 눈을 휘 번득거리며 대공을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듯했다.
그러자 대공 뒤에 있던 테세우스가 당당히 말했다.
“대공께서는 편히 주무셔야 하니까 대신 내가 상대하지.”
레온과 테세우스가 서로의 눈을 노려보았다.
엄청난 공력이 실린 레온의 눈빛은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력했지만, 테세우스 역시 무시무시한 살기가 팍팍 솟구쳐 나오니 그야말로 그 둘은 서로 임자를 만난 듯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계속해서 포스를 뿜어낸다.
카르세크는 대공의 호위검사가 레온에 맞서 전혀 흔들림이 없자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어디서 쓸 만한 놈 하날 얻은 모양이군.”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등을 홱 돌려 자기 갈 길을 갔고 레온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 그들의 뒤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대공이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느낌이 어땠는가.”
“느낌이라니요?”
“팔라카스 제국 최강 레온을 마주 대한 느낌말일세.”
테세우스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일 뿐.
“글쎄요.”
“제아무리 날고 기는 검사랄 할지라도 보통 레온 앞에 서면 대부분 위축이 되는데 과연 자네는 다르군.”
테세우스가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저를 받아 주신 보답이라 생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