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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 지드 Vs. 아라퀘스 Part.1(4권) (29/81)

Chapter 28 지드 Vs. 아라퀘스 Part.1

진행요원들이 목검 두 개를 가져와서는 지드와 아라퀘스 각자에게 건네주었다. 붉은 기사단 단장을 선출하는 것치고는 다소 맥 떨어지고 가벼운 무기랄까.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부상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그때 아라퀘스가 목검을 꽉 쥐더니만 가슴 위쪽으로 천천히 들어 올렸고 지드는 그런 그를 무심코 보았다.

그저 흔하디흔한 목검이건만 그는 매우 진중한 표정으로 검 끝부터 손잡이 밑 부분까지 아주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제 20을 갓 넘겼을 법한 어린 녀석이 흡사 세상 다 산 노인처럼 너무나도 진중한 눈빛에 입을 꽉 다문 모습은 지드로 하여금 내심 웃음을 자아내게까지 했다.

지드 역시 목검을 한 손으로 잡은 채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툭툭.

‘어린 녀석이 제법 기세가 등등하군. 후후.’

그런 그의 모습이 아라퀘스 눈에는 다소 비웃는 것처럼 보였던가. 시합 전부터 인상이 묘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 태도는 뭐죠?”

갑작스런 일침에 지드가 목검을 멈추고 멍한 반응을 보였다.

“태도라니……?”

첫 대면이라지만 지드는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가 꽤 어려 보여서 자연스레 반말부터 하고 말았다.

아라퀘스가 기분이 상한 듯 말했다.

“신성한 검술 대결을 앞두고 장난하는 듯한 태도는 삼가 주시죠.”

“장난이라고?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냐?”

“그래요.”

지드는 다소 기가 찬 듯 다시 물었다.

“왜 장난이라 생각하지?”

“상대를 눈앞에 두고 웃거나 검으로 손바닥을 내려치는 행동은 검사로서 올바르지 못한 것인 줄 모릅니까?”

“…….”

당장 대답을 못하는 지드, 그가 언제 정식으로든 공식으로든 대결을 한 경험이 있었던가. 그가 보기에 저 아라퀘스란 녀석은 필시 대결 직전의 예법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정통파 검사가 분명한 듯 보였다.

하지만 한참 동생뻘 되는 자에게 꾸지람 비슷한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하게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이 가려워서 쳤다. 어쩔래.”

“…….”

얘기해 놓고도 빤빤한 표정의 지드. 이번엔 아라퀘스가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 역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을 들었는지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상대방은 펜스 지방의 죄수 폭동을 혼자서 깨끗이 해결한 검사가 아니던가. 게다가 당시 흉악범들 모두가 너무도 참혹하고 끔찍한 꼴을 당했다는 소문은 이미 이곳 왕국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에게조차 널리 퍼져 있기에 그에 대한 소문은 무시무시한 살육 검사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막상 대하고 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랄까. 준수한 용모의 선한 눈빛하며 다소 세련되지 못한 시골풍의 순박함이랄까.

이런 검술 대결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법한 촌스런 행동거지가 아라퀘스의 생각을 다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전혀 예상 밖의 인물 같은데…… 거참.’

그런데 그런 생각은 비단 그만이 그런 생각을 지닌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곳에 참관한 사람들 역시 지드의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복장하며, 검사로서의 위풍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서민의 분위기를 잔뜩 풍기고 있었기에 저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과연 저자가 펜스 지방의 살육 검사가 맞나 하는 표정이었다.

반면 세련된 검사 복장 차림에 두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를 듯 꿈틀거리는 위풍당당한 아라퀘스.

그 누가 보아도 귀족 출신에다가 정규 검술의 모든 코스를 마스터한 듯한 인상을 팍팍 풍겼다. 그래서인가. 참석자들의 관심은 점차적으로 그에게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때 잠시 머뭇거렸던 진행자가 말문을 열었다.

“양측은 이쪽 중앙으로 나와 주시고요. 일단 대결을 시작하기 전에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웬만하면 서로 간에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건 어디까지나 시합일 뿐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실검 대신에 목검을 드린 것이기도 하고요. 자신의 실력이 안 될 것 같으면 무조건 손을 들거나 바닥에 무릎을 꿇기 바랍니다.”

아라퀘스가 지드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난 그럴 일 없을 거요.”

그러자 지드 역시 응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말걸, 요놈아.”

“…….”

느닷없이 나온 비속어 때문인지 아라퀘스가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지드는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만하게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울컥했던 것이 분명했다.

아라퀘스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더니만 진행자에 말했다.

“내가 꼭 저런 자와 시합을 해야만 합니까? 생각 같아서는 당장 여길 떠나고 싶은데요.”

진행자가 그를 나무랐다.

“국왕 폐하와 많은 귀빈들 앞에서 쓸데없는 생각 마시오.”

이번엔 그가 지드를 바라보며 타일렀다.

“그리고 여긴 국왕 폐하와 여러 귀빈들이 직접 참관하는 자리이니 그런 말투는 삼가고 목소리를 낮추세요. 시합에 대한 예법을 지키기 바랍니다.”

그러자 지드가 실실 웃으며 미안해했다.

“후후. 알겠소.”

순간, 아라퀘스의 한마디.

“예법에 ‘예’자도 모를 것 같은데요.”

지드는 결국 불끈하고 말았다.

“뭐, 뭐야? 이 자식이!”

“저 보시오. 마치 시정잡배처럼 행동하지 않습니까.”

진행자는 둘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무작정 시합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럼 지금부터 시합을 속행할 테니 각자 준비하고 시작하시오.”

진행자가 뒤로 물러나자 그 둘은 서로 목검을 쥐고 눈을 마주 노려보았다.

지드가 한마디 했다.

“먼저 덤벼.”

“덤비라니요?”

“덤비라고, 애송아.”

아라퀘스가 이번에도 혀를 끌끌 찼다.

“이제 보니 당신 이런 공식적인 대결 처음 하는 거 맞지요? 시합 시에 준수해야 할 사항을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사실이 그랬다. 평생 하류검사로 살아 왔으니 예법이고 나발이고 알 게 뭐란 말인가.

“대결이 시작되었으니 덤비라는데 뭔 말이 그렇게도 많으냐. 나 참, 싸움 한번 하기 더럽게 힘드네.”

“그 말투 말이오. 마치 하류검사를 상대하는 것 같소.”

하류검사라는 말에 지드가 불끈하고 말았다.

“너, 너! 지금 하류검사라 했냐!”

“분명 그리 말했소. 당신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진짜 하류검사 같단 말이오. 쯧쯧.”

“너 그 표정, 하류검사를 우습게 여기는 것 같은데.”

“뭐, 하류검사 따위와 상대할 기회는 없었지만 우습게볼 생각은 없습니다. 그나저나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다 그러는 겁니까?”

“너 한번 하류검사에게 뒈져 볼래?”

아라퀘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체 뭔 말을 하는 건지…… 설마 당신이 진짜 하류검사라는 겁니까?”

그때 지드가 무슨 이유인지 주변을 슬쩍 살펴보고는 아라퀘스에게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 하류검사다, 이 자식아! 어쩔래!”

“…….”

결국 말문을 잇지 못하는 아라퀘스, 그는 더 이상 못 들어 주겠다는 듯 뒤로 물러나더니만 목검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착!

“실없는 소리 이제 그만하고 당장 검을 들어 공격 형태를 취하시죠!”

스윽.

지드는 그의 동작을 살펴보았다. 헌데 조금은 이상해 보였던가.

“그 동작은 대체 뭐냐? 마치 술 취한 듯 비스듬해 보이는데.”

사실이 그랬다. 아라퀘스의 발검 동작은 그 어깨 기울기부터 한쪽으로 처져 있었으니 정통 검술과는 거리가 먼 듯 보였다.

“남한테 신경 쓰지 말고 당장 시합에나 임합시다.”

지드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누가 뭐라나, 지금 하고 있잖아.”

이번엔 아라퀘스가 지드의 발검 자세를 보고는 맥 빠진 반응을 보였다. 시합에 임할 준비는커녕 한쪽 다리를 흔들며 검은 아예 바닥에 대 놓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누구 놀리는 거요! 바닥에 검 끝을 향한 자세로 뭘 하자는 건데!”

“이게 공격 자세다.”

“지금 장난하는 거요!”

“그 자식 진짜 말 많네.”

“그렇다면 각오하시오.”

“하든지 말든지!”

결국 아라퀘스가 목검으로 들고 먼저 공격해 들어왔다.

“조심하쇼!”

“생각해 주는 척하네. 쳇!”

타다닥.

“에잇!”

“헉!”

붕! 휘리리릭!

현란한 발검 동작에 이은 엄청난 파공음이 쉴 새 없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둔탁한 음이 들려왔으니, 한쪽이 된통 당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빠― 아아악!

쿵!

아라퀘스의 검은 힘과 속도를 앞세워 강력한 힘을 만들어 냈고 지드가 미처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그를 사정없이 가격해 버렸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지드는 뒤쪽으로 무려 10여 m를 날아서 붉은 기사단들 한가운데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아고고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 대는 지드. 설마 하니 자신이 이렇듯 무기력하게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가. 그는 아픈 부위를 만지작거리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어떻게 된 거지?’

한편 지드 주위를 둘러싼 붉은 기사단들은 딱딱한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그가 필시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라 여겼는지, 저마다 동정 어린 인상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궁중 참관자들 역시 방금 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저마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말인즉슨 이번 대결은 아라퀘스의 승으로 싱겁게 끝날 것이라 아예 단정 짓는 것 같았다.

“뭐야, 너무 간단하잖아? 그래도 펜스 지방 살육 검사라고 꽤 기대했는데.”

“흠. 그러고 보니 그깟 죄수들 소탕한 일 가지고 우리가 너무 과대평가했는지 모르지. 게다가 아라퀘스는 무려 일곱 개 왕국의 고수들을 무너트린 무적 검사가 아닌가. 아마도 그가 승리를 거둔 것이 당연한 일이겠군.”

그때 붉은 기사단 틈을 헤집고 헤라가 지드에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그제야 지드가 상체를 일으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괜찮아.”

“정말요?”

“괜찮다니까. 우욱!”

“……아닌 것 같은데요?”

“그만 좀 말하고 당장 나 좀 일으켜 줘라.”

헤라는 다소 당황한 나머지 그의 한쪽 팔을 잡아 일으키기 시작했다. 순간 지드가 신음을 흘렸으니, 하필 부상 부위를 만질 게 뭐란 말인지!

“아악! 거기 말고.”

“아…… 미, 미안해요.”

“목검 좀 집어 주겠니.”

“아, 네…… 여기요. 저, 저기, 근데 싸울 수 있겠어요?”

헤라가 걱정스런 투로 물어보자 지드가 눈빛을 반짝이며 다시 목검을 꽉 쥐었다.

“물론이지.”

“웬만하면 항복하는 게 어때요? 상대가 너무 강한 것 같아요.”

그러자 지드가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후후. 시합이 너무 싱겁게 끝이 날까 봐 초반부터 일부러 연막작전을 펼치고 있는 내 깊은 속뜻을 알기나 해?”

하지만 헤라는 지드에게 그런 깊은 뜻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고통을 억지로 감추려는 듯 입을 악물고 있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기에 말이다.

“웬만하면 그만 포기하세요. 그러다 죽겠어요.”

바로 그때 중앙으로부터 시합 진행자의 음성이 크게 들려왔다.

“지금부터 셋을 셀 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여기 아라퀘스의 승리를 선언하겠습니다.”

그 말에 좌중이 잠잠해졌다. 과연 붉은 기사단 중앙으로 떨어진 후보자 지드가 등장할지 말지 모든 귀추가 그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이어 들려오는 진행자의 매정한 카운터.

“하나! 둘! 세…… 엣.”

“잠깐만요!”

저벅저벅.

붉은 기사단 사이로 지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소 어정쩡한 걸음으로 중앙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팔은 부상이라도 당한 듯 축 늘어져 있었고 왼손으로 목검을 잡고 있었는데, 표정이 창백하고 잔뜩 굳어진 것으로 보아서 고통을 억지로 참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쨌든 그의 등장으로 시합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던가. 진행자가 다소 불안한 안색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괜찮다마다요.”

“그럼 시합을 다시 속행할 테니 준비를 갖추시죠.”

이번엔 아라퀘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지드에게 동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이건 진심 어린 충고인데 그냥 포기하는 것이 좋을 듯싶네요.”

지드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구 맘대로?”

“그래도 난 당신이 펜스 지방 살육 검사라서 초반부터 강공을 펼쳤는데 이제 보니 제가 너무 심하게 대한 것 같아서, 원.”

“솔직히 심하긴 심하더군. 나 역시 너의 발검 자세가 형편없어 보였기에 방심을 했건만 설마 하니 엄청난 발톱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후후, 생각도 못했어. 이 음흉한 자식 같으니라고.”

그러자 아라퀘스가 자신의 손을 들어 보이더니만 어울리지도 않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손톱은 있을지언정 발톱은 없는데요.”

“…….”

순간 지드는 울컥했다. 이제는 같잖게 농담까지 던지는 꼴을 보니 녀석은 아무래도 자신을 한없이 업신여기는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녀석의 검술 원류가 궁금했는지 무심코 물었다.

“방금 전 나를 쓰러트린 것이 무슨 기술이냐?”

“대답하지 않겠소.”

“뭐라!”

“난 패배자와 긴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뭐! 아직 시합도 끝나지 않았건만 패배자라니!”

“보아하니 영 가망이 없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만.”

“…….”

지드는 더 이상 말을 삼갔다. 처음에는 젊은 녀석이 제법 호기가 있어 보였고 자신만만한 자세에 호감이 가는 듯했는데 이제 보니 아주 시건방진 인간이 아닌가.

바로 그때였다. 놀랍게도 지드는 방금 전까지도 고통스러워 축 늘어진 어깨를 바로 세우더니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까지 빙빙 돌리는 것이었다.

홱! 홱!

“이제 몸도 풀었겠다. 슬슬 시작해 볼까.”

그런 그의 모습에 아라퀘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애써 고통을 참으며 연극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어차피 승부는 났으니까. 만일 지금 시합을 포기하지 않으면 진짜 크게 당할 수 있음을 미리 경고 드리지요.”

“너, 지금 협박하는 거냐?”

“진심으로 드리는 충고입니다.”

그러자 지드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처음으로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웬만하면 나이도 한참 어린 네 녀석의 체면도 살려 줄 겸 적당히 백중세를 유지하며 시합을 끝내려 했다. 근데 네놈 하는 꼴을 보니 한 번쯤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해야 정신을 차릴 것을 알겠구나!”

아라퀘스는 기가 막혔다.

“없는 실력이 당장 생기기라도 해서 나를 이길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세상일은 알 수 없는 법!”

“이제 보니 정신 상태도 이상한 사람이었군요? 그대야말로 말하는 투나 행동거지로 보아서 영락없는 하류검사 출신 같고, 나이는 얼추 삼십 대? 나이에 비해 아직 세상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한 풋내기 같으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군요.”

“젊은 녀석이 한참 형뻘인 나 같은 사람에게 그리 함부로 말을 내뱉는 게 아니다.”

“사람도 사람 나름 아닐까요?”

“정말 듣자듣자 하니까!”

그때까지 지켜보던 국왕이 중단된 시합을 기다리다 못해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허허, 그자들 말 많네. 대결을 말로 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시합을 속행하지 않겠는가! 붉은 기사단장 선출식이고 뭐고 다 없었던 일로 해야겠군. 안 그래도 요즘 계속되는 연회로 피로해 죽겠구먼. 아함, 졸려라.”

이에 진행자가 부랴부랴 시합자들에게 달려와 말했다.

“당장 대결하란 말이오! 국왕 폐하 성격이 워낙 급하셔서 조금만 지체했다가는 당신 둘 진짜 쫓겨날 수 있단 말이오.”

진행자가 뒤로 물러서자마자 아라퀘스가 지드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다소 지연된 시합을 끝내려는 듯 속전속결을 하려는 의도였다.

타다닥!

“이얏!”

이에 지드가 처음으로 목검을 들어 올렸으니 아까와는 사뭇 다른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사실 아까 격돌했을 때 그는 무공에만 의존한 보법 형태의 자세를 취하고 적당히 맞서려 했었다. 그런데 설마 하니 녀석의 목검이 절묘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자신을 10m 뒤로 패대기쳐 버릴 줄이야!

무려 2갑자의 내공을 가진 그 자신을 종잇장처럼 날려 보냈으니, 녀석이 국왕과 대화할 때 들었던 원천 기술인지 뭔지 하는 전투 기술은 아마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지드는 공력변환기술과 무공이 어우러진 융합 기술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눈빛은 벌써부터 불덩이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자, 오너라!”

탁!

파바바밧!

이번에도 역시 아라퀘스의 목검이 연속적으로 휘둘러 치면서 강력한 파장과 파공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확히 네 번의 허리 비틀기에 이어 손목까지 비틀어 희한한 검술을 선보이니, 제아무리 안력이 높은 지드로서도 뻔히 눈앞에서 보고도 당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헉!

‘대체 무슨 검술이기에 이리도 드세단 말이지!’

파파파팟!

휘이잉.

팍! 팍!

“어이쿠! 큰일 날 뻔했다.”

지드는 아까와는 달리 아라퀘스의 공격을 겨우겨우 피해 내고 있었다.

만일 공력변환기술을 익히지 않았다면 승부는 아까 끝났을지 몰랐다.

녀석의 실력은 레온이나 테세우스에 버금간다고나 할까?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눈앞에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어찌 이런 초절정의 고수가 되었는지 이제는 그게 궁금해질 뿐이었다.

순간 들려오는 녀석의 외침!

“대체 시합을 하자는 거요, 말자는 거요? 공격할 생각은 않고 방어만 하니!”

“남이야 뭘 하든 말든.”

“이번에는 강공으로 들어갈 테니 알아서 피하시오.”

“예고하지 말고 제발 그냥 싸우자! 나 참, 시끄러워서.”

탁!

휘리리릭.

파팟!

그때 지드는 들고 있던 목검을 앞쪽 허공에 살짝 띄워 올렸으니 그 역시 이쯤에 승부를 보려는 생각이 분명했다.

공력과 내공이 만들어 낸 융합 포스라 할까. 화산검법의 현란함에 공력변환기술의 절묘함이 어우러진 전투 기술은 그가 이 세계에서 3년의 혹독한 수련을 통하여 창안한 것이었다.

웅!

한 차례 진동음이 일더니만 지드의 목검이 주인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라퀘스의 목검이 강력한 기세로 돌진해 들어오자 놀랍게도 목검이 스스로 알아서 막아 주는 것이 아닌가.

파파파팟.

탁! 탁! 탁! 탁!

주인은 가만있는데 목검이 허공에 절로 떠서 막는 형상이라! 이에 아라퀘스가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빠지려 하자 지드의 목검은 그 틈을 이용하여 그의 손목을 쳤고 그의 복부마저 강하게 때려 버렸다.

탁!

“뭐야!”

한 차례 가격을 당한 아라퀘스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휘청거렸는데 절로 움직이는 지드의 목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번엔 그야말로 강력한 공력을 품고는 인정사정없이 그의 가슴팍을 세차게 쳐 버렸다.

빡!

“억!”

홱!

꽈당!

아까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으니, 이번에는 아라퀘스가 뒤로 10여 m나 날아가서는 붉은 기사단 틈으로 곤두박질쳐 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를 살펴보니 과연 아라퀘스는 선혈을 토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컥! 컥!”

첫 번째 지드가 처했던 상황과는 달리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이 틀림없었다.

기사단들 중에 누군가 외쳤다.

“당장 들것을 가져오시오! 사람 죽게 생겼습니다.”

그 충격이 어찌나 강했던지 아라퀘스는 거의 반죽음이 되어 컥컥거리고 있었으니 그 누가 봐도 제법 심한 부상을 입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곧이어 진행자가 달려갔고 살펴본 결과 그 역시 아라퀘스가 더 이상 대결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진행자는 일단 시합의 승자를 지드라고 선언했다.

“지드 후보자의 승을 알립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와 함성들.

짝짝!

와와!

그들은 아직도 뇌리 속에 방금 전 지드의 기상천외한 검술에 대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편 중앙에 멀뚱히 서 있는 지드, 그는 자신이 그를 그리 만들어 놓고도 뭔가 믿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적당히 혼만 내 주려 했건만 힘의 조율이 서툴렀는지 상대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았으니 다소 소심한 그로서는 이만저만 착잡한 심정이 아니었다.

‘자식이 건방지게 굴지만 않았어도…….’

그때 들것에 실려 나가는 아라퀘스, 아예 정신을 잃었고 입가에는 토해진 피로 낭자했다.

국왕을 비롯한 수백여 명의 귀빈들. 그리고 붉은 기사단 모두의 시선이 지드에게 향했다.

공력검술의 개념을 모르는 그들에게는 방금 전 지드가 시전했던 검술이 신비하게 보였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꼈으리라.

수백의 흉악범들을 절단 냈던 펜스 지방의 살육 검사의 전투 기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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