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
끼익
청명한 하늘 위에 거북한 음을 내며 날갯짓을 하는 한 존재가 있었다.
얼핏 본다면 엄청 큰 독수리와도 같지만 그는 분영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날개에 이상한 볼륨의 군장을 착용한 인간이 분명했다.
계곡과 산 정산의 능선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비행을 하는 당당한 표정의 사내, 오른쪽 어깨와 팔에 걸쳐진 반월형 병기가 햇빛에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비교적 완만한 구릉지가 나타났고 날개달린 존재는 더욱 저공비행을 하며 착지 장소를 찾는 것 같았다.
휘리리릭. 탁!
상당히 큰 날개가 접혀지면서 사내가 지면에 내려 않았다. 은빛 머리칼을 올백으로 뒤로 가지런히 넘긴 사내의 정체는 바로 레온이었다.
늘 그렇듯 그의 당차고 자신만만한 얼굴은 항시 오만함이 잔뜩 묻어 있는 미소가 풀풀 느껴졌다.
“이게 얼마만인가. 후후.”
그가 집정관 카르세크의 부름을 받고 귀환하는 것은 오늘로서 정확히 2개월하고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언제가 이날이 올 줄 알았다.
팔라카스 제국의 최강 무인인 그가 백의종군 하며 보병 생활을 하는 것도 한계점이 있는 법.
그의 능력을 썩혀 둘 리는 없었다.
그는 바위 걸터앉은 채 저 아래 세상을 굽어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 그가 착용한 군장은 상당한 볼륨의 금속으로 각종 보호대가 장착되어 있는 예사롭지 않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반 년 전쯤일까. 그의 조부가 손수 짊어지고 와서 그에게 직접 건네주고 갔던 군장이었다.
레온은 불현듯 할아버지 생각이 났고 그때의 일을 다시금 떠올렸다.
“대체 이게 뭐죠?”
“군장이다.”
“군장이요?”
“굳이 명칭을 부친다면 말로세카의 군장이라 할 수 있겠지. 그가 평생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희대의 장비라 할까. 아마도 아독이 착용했던 하렘 군장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제작을 하게 되었다지.”
“하렘 군장이라면 단계별 변신이 가능한…….”
“그래, 이 말로세카의 군장 역시 하렘 군장에 비교할 만큼 대단한 것이 분명하다. 너도 알다시피 말로세카는 남부 대륙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능한 대장장이가 아니더냐. 그가 무려 이십칠 년 동안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어 제작한 것이라면 아마도 진짜 물건이긴 물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얘기하자면 길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을 말하자면 그건 공력기술 시전자만 작동할 수 있느니라.”
“공력기술이라니요?”
노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문을 열었다.
“말라카스 대장장이가 그 군장을 만들었어야 했던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아르게논에게 바치기 위함이었지.”
레온이 깜짝 놀랐다.
“네?”
“어차피 그는 이미 죽고 없으니 이 세상에서 공력변환기술을 다룰 줄 아는 자가 너밖에 더 있더냐. 그래서 그로부터 가져왔지.”
“혹시 강제로?”
“허허. 그건 네 녀석이 알 바 아니다. 어쨌든 그 군장의 주인이 너라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겠지.”
당시의 일을 회상하던 레온은 다시금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뭐라 중얼거렸다.
“처음 이 군장을 건네받았을 때에는 그다지 신빙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착용해 보니 엄청난 물건이야. 정말이지 조부님께서 아주 귀한 선물을 구해 주신 것이 틀림없어.”
사실이 그랬다. 그저 전설로 내려오는 하렘 군장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말로세카의 군장이 그런 능력을 지녔다니.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 군장에는 또 다른 장치가 있었으니 바로 하렘 군장의 타룬과 비슷한 병기 체계였다.
타룬이란 양쪽 어깨 보호대가 열리면서 무려 28개의 날카로운 금속성 칼날 무기가 부채꼴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 군장의 정교한 장치에 맞물려 엄청난 반탄력을 지탱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력 시전자의 의지가 가미된다면, 그것들은 목표 대상을 향해 발사가 되어 살육의 향연을 시작할 것이다.
레온은 가슴 중앙 왼쪽에 위치한 돌출 버튼 레버를 조심스럽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안전 장치 때문에 쉽사리 작동이 되지 않지만 만일 마음먹고 발사를 한다면 28개의 칼날들은 뱀처럼 요동을 치며 주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난도질할 것이다.
사실 그는 아직까지 이 무기를 사용했거나 심지어 작동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 말씀에 타룬이란 오직 살아 있는 대상에 한해서만 움직인다 했으니 실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꼬르륵.
레온은 갑자기 배에서 나는 소리에 다시금 허기를 느꼈다. 그가 이곳에 잠시 안착을 한 이유는 너무도 배가 고파서였다.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 집정관이 귀환하라는 통보를 받고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쉬지 않고 날아 왔으니 이제는 지치고 피곤할 때도 되었던 것이다.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나저나 뭘 먹지.”
구을 지대 아래 숲들이 제법 넓게 조성이 되어 있었고 레온은 그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일단 날짐승이라도 사냥해서 모닥불에 구워서 되는대로 허기를 채울 생각이었다.
쩌벅쩌벅
묵직한 군장에 발걸음 하나하나에도 포스가 실린 듯했다. 예전과는 달라진 위상이랄까. 그는 자신의 모습에도 흡족했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어깨를 당당히 펴고는 다소 거들먹거렸다.
관목이 제법 우거진 곳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그때 숲 안쪽으로부터 인기척이 났으며 레온은 재빨리 큰 나무 뒤에 숨어서 뭔가 하고 살펴보았다.
한 무리의 병사들이 수풀과 나무 곳곳을 뒤지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던가.
레온은 그제야 이곳이 피체 왕국의 영토에 속하는 산악 지대임을 인식했고 인상이 굳어졌다.
‘젠장! 하필 이럴 때 나타나다니.’
배도 고프고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취하려 했건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갑자기 화가 나려고 했다.
그때 들려오는 병사들의 다소 투덜거리는 대화 소리, 레온은 일단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일세. 대체 전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지휘관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 납득이 가는 일이란 말이냐 그 말일세.”
“동감일세. 그것도 일개 장교가 아닌 군단장과 부군단장이 동시에 사라졌으니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는가.”
“혹시 자객들이 침투해서 그들을 쥐고 새도 모르게 제거하고 어디에다 묻은 건 아니겠지.”
“예끼! 재수 없는 소리 하고 있네. 명색이 그만한 위치에 오른 분들이라면 상당한 전투력을 지녔을 텐데, 그리 쉽게 당했으려고.”
“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일세. 그나저나 우리 군단 내 모든 병력이 몇 날 며칠 숲이나 뒤진들 사라졌던 그분들이 척하고 나타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어찌하겠는가. 국왕 폐하께서도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전군을 풀어서까지 산악 전체를 샅샅이 뒤지라 했겠는가.”
한 병사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휴! 대체 그분들은 하늘로 꺼졌는지 땅으로 들어갔는지 그 어떤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 보이는군.”
“어이! 이제 잡담 그만하고 계속 찾아보세.”
***
한편 레온은 저들의 대화를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군단장과 부군단장이 사라지다니…….’
그로서도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이었다.
어찌 그만한 위치에 오른 최고 지휘관들이 수천 명의 병력을 놔두고 없어질 수가 있단 말인가.
비록 적국의 상황이라지만 그로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꼬르륵.
그때 또다시 배속으로부터 신호가 들려왔으니 이내 허기를 느껴야만했다.
‘아, 내가 비록 천하의 무서울 것이 없는 무인이라지만 당장은 굶어서 돌아가실 판인데. 그렇다면 뭔가 특단의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겠군.’
그는 잠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빛을 번뜩였다.
‘가만있어 보자. 비록 여기가 적지라지만 병사들이 나뉘어져 자신들의 지휘관을 찾는 중이라면…….’
그는 더 이상 골몰 하지 않았고 나무 뒤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스윽.
병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존재에 대해 저마다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으니.
“뭐야!”
“웬 놈이냐!”
레온이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드러내었다.
“그렇지 않아도 타룬 병기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네놈들이 잘 나타나 주었군.”
범상치 않은 기도와 엄청난 기세에 병사들은 저마다 한없이 위축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더군다나 군장으로부터 나오는 포스가 가히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으니 몇몇 병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다.
“다들 조심해!”
“합공해서 칠까.”
“아무래도 적국의 특수부 검사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 상대가 아니잖아.”
병사들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들려오는 거북한 소리.
탁!
드르륵― 휘리리릭.
레온이 가슴 옆쪽 돌출 버튼을 누르자 양쪽 어깨 보호대가 열리면서 부채꼴의 병기가 활짝 모습을 드러냈다.
숲속으로 몇 줄기 비추는 햇살에 번쩍이는 기상천외한 칼날 부채들, 그것들은 마치 살아서 숨을 쉬는 듯 이상한 진동음을 냈다.
스스스스. 스스스스.
레온의 눈빛이 불을 뿜듯 강렬해졌고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오로지 공력기술을 사용할 때에만 나타나는 그만의 특유한 인상이었다. 곧이어 타룬의 서슬이 시퍼런 칼날들이 등 뒤로부터 각자 발사되는 것이었다.
홱! 홱! 홱! 홱!
파파파팟― 퍽!
“악!”
팍!
“컥!”
숲속 한복판에서 도륙의 향연이 시작되었으니 피 보라가 사방으로 튀었다.
무기들은 단 한 번 병사들을 휩쓸고 지나갔고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레온의 어깨 쪽으로 돌아가서 다시 부채꼴을 이루었다.
휘리리릭!
레온이 뭔가 장치를 작동시키자 무기들은 어깨 쪽으로 쏙 감추어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두툼한 금속 보호대로 돌아왔다.
방금 전 수십여 명의 병사들을 제거한 레온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보였다.
“쳇! 놈들이 약해서 병기를 시험해 보기도 전에 끝이 나다니.”
탁탁.
화르르!
모닥불에 구워지는 노릇노릇한 고기 냄새가 레온의 허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잠시 후 꼬치에 끼워진 고기들을 입속으로 마구 집어 처넣었다.
우걱우걱!
쩝쩝! 꿀꺽―
불에 탄 부분이든 뭐든 간에 무려 열 개나 되는 꼬치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레온, 그의 표정은 마냥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뒤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윽―
그러고는 뭔가 결심을 굳힌 듯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확실한 검증을 하고 나서야 이곳을 떠나야겠다. 어차피 이곳 지역 곳곳에 병사들이 수색 작업을 하느라 제법 많이 있을 테니까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야겠어.”
식사로 허기를 채웠고 체력 보충까지 한 그는 이제 본격적인 살육을 하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굳힌 것 같았다. 집정관에게 돌아가기 전에 자신의 진정한 전투력을 시험해 본다고나 할까.
비록 이곳이 적지 한복판이라지만 마치 살인 게임을 하기라도 하는 듯 그의 표정은 매우 태연하다 못해 여유롭게 보였다.
“슬슬 시작해 볼까.”
그로부터 3일 후.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 피체 왕국 제3군단은 최고 지휘관 둘을 잃어버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는 수많은 병사들이 그 누군가에 의해서 철저히 도륙당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처절한 수난 시대를 겪고 있는 듯 보였다.
사건 발생은 군단장과 부군단장을 찾기 위해 산악 지대를 수색하는 병사들을 대상으로 일어났는데 대부분 속수무책 무엇인가에 사지가 절단되어 무참한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이 소식은 당장 피체 왕국에게 전해졌고 즉시 본국으로부터 부랴부랴 파견 나온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국왕 지드와 기사단장 아라퀘스 그리고 역사 종족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원들이었다.
대체 누가 이토록 엄청난 일을 자행하는지 직접 추적함과 동시에 반드시 찾아내서 더 이상 살육을 저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이 당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날 태양이 중천에 떠 오른 시점에 이르러서야 지드와 일행은 수많은 사건 현장들 중에 가장 희생자들 숫자가 많은 어느 사건 현장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숲속 공터에 널브러진 시체와 모습과 무더운 날에 썩어 가는 시신들로부터 코를 막고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누가 이런 잔혹한 짓을 했는지 분노가 더욱 앞섰다.
“대체 누가!”
지드와 아라퀘스는 바로 앞에 목이 분리된 시신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정말이지 너무도 깨끗하게 절단되었는지 피마저도 별로 흘러나오지 않은 듯 보였다.
수급(首級)은 몸통으로부터 대략 2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두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순식간에 당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아라퀘스가 직접 손으로 목 부위를 만져 보며 말했다.
“검술에 상당한 경지에 이른 자의 소행 같습니다.”
그러자 지드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이상이라 보는데.”
“…….”
상당한 경지보다 그 이상이라니, 아라퀘스가 다소 의아한 얼굴을 했다. 다시 들려오는 지드의 음성.
“이건 그저 검술로 일일이 목을 베고 사지를 절단한 것이 아니란 뜻이다.”
“무슨 뜻인지요?”
“대충 내 생각을 말하자면 살육을 한 자는 한 명이지만 무기를 여러 개 사용한 것으로서 일종의 공력기술을 시용한 것 같단 말일세. 그렇지 않고서야 무려 백여 명이 되는 병사들이 일시에 눈을 뜨고 앉아서 당할 리는 없지 않겠는가.”
지드 역시 공력기술 시전자이기 때문에 상대의 검술 유형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라퀘스가 물었다.
“공력기술이라면 폐하께서 시전하는 바로 그 검술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다른 공력기술자의 소행이…….”
“나 이외에 공력기술을 사용하는 자가 한 사람 있지.”
아라퀘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존재가 있었다.
“혹시…… 레온?”
“그가 돌아온 것 같은데.”
“그자가 어찌 아군 진영 한복판에서 에서 이와 같은 일을 대담하게 저지를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전투력에 자신이 있어도 말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지드 역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긴 산악 지대로서 그가 집정관의 진영으로 가려면 그야말로 적의 한복판을 뚫고 수십 일을 걸어서 가야 하거늘 너무도 당당하게 병사들을 살육하면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던가.
비록 병사들을 도륙했지만 이쪽에서도 상당한 고수들이 즐비한 가운데 추적 망을 좁힌다면 그물에 걸려든 사냥감 신세가 될 것이 자명한 일인 것이다.
아라퀘스가 다소 흥분한 듯했다.
“그놈이 실성이라도 했나요.”
“스스로의 전투력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래도 그렇지요. 놈이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제아무리 날뛰어도 절대로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너무 장담 말게나. 내가 아는 레온이라는 자는 무척 영리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가 그 어떤 대비책도 없이 이곳에 들어와서 겁도 없이 살육을 자행한다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 아마도 무슨 이유가 있을 테고 이곳을 쉽게 벗어날 자신만이 방법이 없지 않고는 그처럼 대담한 일을 저지를 수는 없는 걸세.”
“…….”
듣고 보니 그 얘기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단 여기서 나누어 따로 추적함세. 자네는 기사단원들과 함께 동쪽 구릉지를 살펴보고 나는 서쪽 협곡과 능선을 뒤져 보기로 하지.”
“네, 알겠습니다.”
휘잉―
그처럼 강렬했던 태양이 서산으로 서서히 기울질 무렵이었다.
아라퀘스와 단원들은 드디어 구릉지에 도착했고 완만한 경사의 바위 지면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부기사단장 키나는 아라퀘스 옆을 바짝 따라가며 궁금한 점을 물어 보기 시작했다.
“레온이란 자는 누구죠?”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랄까, 지금 자신들이 누굴 추적하는지 그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라퀘스가 그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는 팔라카스 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무인(武人)이라 하지요. 최근에는 테세우스란 자가 그와 쌍벽을 이룬다고 그랬는데 아직은 그의 위치가 더욱 확고하다고나 할까요. 지난번 황궁 습격 사전 당시 모든 책임을 지고 잠시 물러나 있었는데 아마도 집정관이 그를 다시 불러들인 것 같소.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곳을 지나가다가 우리 병사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고.”
“아까 얘기 듣기로는 그가 공력기술자라 그랬는데 폐하의 그 기술과 같은 것인가요?”
“솔직히 나 역시 그자와 직접 대결해 본 적이 없어서 뭐라 확실하게 설명을 해 줄 수는 없지만 같은 맥락인 것 같소.”
“그럼 그자도 물체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겠군요.”
“불행한 일이지만 그 기술로 우리 병사들을 도륙한 것 같소.”
“정말 무시무시한 자가 틀림없군요.”
“내 말 명심해서 들으시오. 만일 그자와 만나게 된다면 그대와 단원들은 무조건 내 뒤로 피하기 바라오. 그대의 전투력으로는 역부족일 테니까.”
키나가 다소 걱정스런 눈망울을 굴리며 말했다.
“그럼 혼자 싸울 건가요.”
“그래야겠죠.”
“그건 안 돼요. 상대가 어마어마한 고수인데 우리들도 도와야죠.”
아라퀘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후후. 그 마음은 고맙게 받겠소. 하지만 난 원천기술 제삼 장 파동역발검을 익혔으니까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키나는 그래도 걱정스러웠는지 어두운 표정을 했다.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역사 종족 지대를 나와 세상에 첫발을 디딘 이후 지금까지 아라퀘스의 각별한 신경으로 지금까지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잘 적응해 올 수 있었다.
정말이지 믿음직한 사내랄까. 어느새 연정이 쌓이면서 이제는 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니. 그녀가 낯을 붉히며 말했다.
“저어, 손잡아도 돼요?”
아라퀘스가 당황스러워 했다.
“뒤에서 단원들이 보고 있는데…….”
그러자 키나가 싱그러운 미소를 흘렸다.
“그들도 우리가 사귀는 건 알아요. 후후.”
“…….”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아라퀘스와 단원들은 저지대의 관목이 우거진 숲 지대로 들어섰다. 이곳은 수풀들도 꽤 많이 자라 있었으니 검으로 장애물을 쳐내 가며 길을 만들어 지나가야만 했다.
홱! 삭―
아라퀘스의 경쾌한 검 놀림이 순식간에 길을 훤하게 터 주었다. 이들은 대략 30여 분을 전진한 끝에 제법 넓어 보이는 공간을 발견했고 일단 그곳에서 쉬어 가기로 결정했다.
헌데 단원들 중 하나 맞은편 바위 위에 누군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저기 누가!”
그의 외침에 일제히 시선이 그리고 향했다. 곧이어 아라퀘스와 키나가 함께 그쪽으로 다가갔다.
두툼한 군장 차림의 사내가 대자로 누워 있었는데 온통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모습이 금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람에 너풀거리는 은발 아래의 얼굴 용모에 아라퀘스는 깜짝 놀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저, 저자는!”
키나가 물었다.
“아는 사람인가요?”
“저, 저자가 바로 레온이오!”
“네?”
아라퀘스는 일전에 특사 대행으로 국왕을 방문했던 레온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곱게 빗어 올린 은발 머리에 백옥 같은 피부에 거만한 인상을 뇌리에서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편편한 바위 위로부터 상체를 일으키는 은발 사내.
“이게 누구신가.”
그 역시 아라퀘스를 알아보는 듯했다. 당시 검을 뽑아 자신의 목 줄기에 대고는 위협을 했던 근위대장이 바로 저 청년이 아니던가.
언제가 한번 만나면 손 한번 봐 줘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 만난다고 했던가. 하하! 어쨌든 그동안 병사들만 상대하느라 무척 시시했고 지루해지려던 참이었는데 그래도 웬만한 전투력을 갖춘 놈들이 나타난 것 같아서 다시 기분이 좋아지려 하는군.”
그가 바위에서 훌쩍 뛰어 내렸다.
착!
“근위대장에, 그 뒤쪽 놈들은 아마도 대원들이 분명하겠군? 그렇다면 당장 한판 뜨자고. 과연 피체 왕국의 근위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죽겠으니까!”
그는 이들이 기사단원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아라퀘스가 키나를 비롯하여 단원들에게 당부했다.
“모두 뒤로 물러들 나라. 저자는 내가 상대할 테니까.”
그러자 레온이 피식 웃었다.
“주제에 대장이라고 멋부리기는. 내가 한 가지 충고 하겠는데 웬만하면 함께 덤비지 그래. 그래도 될까 말까 할 텐데 객기 부리기는.”
아라퀘스가 검을 뽑았다.
스윽!
반면 레온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에게는 반월형 병기뿐만 아니라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바로 타룬이었다.
아라퀘스가 원천기술 제1장 신체발검의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척!
묘한 비틈 자세에 뒤틀린 손목 형태에 이어 원천기술 제2장 원천분산의 동작까지 단번에 이루어졌다.
그런 그의 모습에 레온이 이상한 동물 보듯 말했다.
“대체, 뭐야? 그 개폼은!”
그는 타룬 작동 대신에 자신의 주무기였던 옛날 반월형 병기를 꺼내 들기로 했다.
스윽―
“보아하니 대충 이걸 사용해도 될 것 같은데?”
아라퀘스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몸놀림이 엄청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타다닥!
“이얏!”
깡!
“헉!”
깡!
“뭐야, 이 자식!”
타다닥―
몇 번의 충돌로 재빨리 뒷걸음을 치는 레온, 그의 표정이 몹시도 놀란 기색을 하고 있었다. 그 강도와 빠름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상상이상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원천기술의 속도와 파괴력은 일반적인 개념을 수배 이상이 상회하는 것으로서 그 차원부터 다른 검술이었다.
레온은 군장을 얻기 전에 반월형의 강력한 힘으로 최고의 무인이란 소리를 들어왔었다.
헌데 손이 저릴 정도로 상대의 가공할 만한 공격에 잠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법이군, 제법이야.”
그는 애써 침착한 어조로 말했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싸움에 돌입하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결국 반월형의 가장 무시무시한 기술을 사용하기로 했으니.
“이거 한번 받아 보시지.”
스르륵―
신기하게도 반월형은 단번에 완벽한 원형으로 변했고 저절로 그의 손을 떠나 강력한 기세로 발사되었다.
파파파팟!
하지만 아라퀘스는 검을 중앙으로 들어 올려 정면 대응을 할 생각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그곳으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곧이어 강렬한 충돌이 이어졌다.
깡, 깡!
쇳소리끼리 나는 굉음이 숲속을 진동했고 불꽃마저 팍팍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
원형의 병기는 레온의 공력기술로 조종되어 그야말로 사방 여기저기에 틈이 생기는 대로 공격했고 아라퀘스 역시 검으로 현란한 동작을 보여 주며 막아 냈다.
파팟! 깡!
홱!
깡!
잠시 시간이 흐르자 레온은 오히려 공격 입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자신의 원형 병기를 상대로 저처럼 서커스 공 다루 듯 가볍게 쳐내는 존재는 처음 목격했기에 말이다.
“이거, 생각보다 괴물 같은 놈이군.”
만일 저자가 좀 더 일찍 팔라카스 제국에 동장했더라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렸을지도 몰랐다.
현재 테세우스의 출현만으로 벅찰 정도인데 잠시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라퀘스가 원천분산의 힘을 극대화 시켜 병기를 있는 힘껏 내리치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이얏!”
홱!
깡! 파파파팟!
원형 병기가 방향을 틀어 레온에게 발사되어 오는 것이 아니던가.
“헉! 뭐야!”
황당한 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자신의 분신 같은 병기가 어떻게 방향을 돌려 자신을 공격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상대방도 공력기술자란 말인지.
하지만 그를 더욱 경악케 한 것은 그저 속도와 파괴력의 물리적인 검의 힘만으로 자신의 병기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여 방향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돼!”
파파파팟!
어쨌든 일단 피하고 볼일이었다.
털썩.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 주저앉았고 병기는 아까 자신이 누워서 휴식을 취했던 바위와 충돌하고 말았다.
쾅! 우르르.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먼지를 일으켰다. 바닥에 주저앉았던 레온은 뒤를 돌아다보며 무척 당혹스러워 했다.
그제야 상대방의 전투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이 나고도 남았으리라.
‘와우.’
비록 적이지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는 자신만큼 멋지고 강력한 기술을 쓰는 존재가 없다고 여겼는데 오늘부터는 그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맞은편에 당당히 서 있는 청년의 모습은 자신의 오만함을 능가하는 대장부다운 당당함이랄까.
지금 보니 같은 남자로서도 호감이 갈 정도로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물론 레온이 위기 상황에 몰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부리는 데에는 확실히 믿는 비장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난데없이 박수를 쳤다.
짝짝!
“와우! 정말 대단하군. 세상에 오로지 신체의 동작과 물리적 힘만으로 공력기술 시전자인 나를 이처럼 의기소침하게 만들다니 말이야. 대체 그 전투 기술 이름이 뭔지 무척 궁금하군.”
레온이 말하다 말고 손으로 군장 가슴 부위 돌출 버튼을 눌러 작동시켰다.
툭!
스르륵. 휘리리릭!
어깨 보호대가 열리면서 서슬이 시퍼런 28개의 칼날이 부채꼴처럼 활짝 펴졌다.
순간 아라퀘스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저건…….”
그가 충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저와 같은 군장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바로 아버지가 착용하셨던 하렘 군장이 아니던가.
어깨 뒤쪽 부채꼴 모양의 타룬은 나카스니아 대륙에서 모든 마물들이 벌벌 떨며 두려워했던 바로 그 병기가 아니던가.
‘저자가 어떻게! 하렘 군장은 분명 아버지가 잘 보관하고 계실 텐데…… 그렇다면 저건 모조품일 수도.’
하지만 모조품이기에는 뒤쪽의 타룬의 병기가 꿈틀거리며 마치 살아 있는 듯 보이니 아마도 그 누군가가 하렘 군장과 비슷하게 만든 아류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편히 두고 볼일은 아니었다. 타룬 흉내를 낸 병기 일지라도 그 강도는 그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레온이 말문을 열었다.
“굳이 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네놈이 보기보다 강하니 나로서는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난 며칠 동안 이곳에서 살육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이 무기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나름대로 검증을 얻기 위해서였거든. 그런데 병사들이 너무 쉽게 죽어 나가니까 그다지 가치를 모르겠더군.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렇게 강자가 나타나 주었으니, 이젠 내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후후!”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공력기술로 타룬의 칼날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라퀘스가 역시 이번만큼은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는지 그의 원천기술 제3장 파동역발검의 동작을 취해 보였다. 어차피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었다.
만일 타룬의 28개의 칼날 한 개라 놓친다면 뒤쪽의 단원들 생명이 위험해질 것이다.
그때 강력한 파공음이 들려 왔다.
홱! 홱! 홱! 홱!
슈슈슈슈슈슈―
등 뒤로부터 28개의 칼날들이 일제 뽑혀 아라퀘스를 향해 집중적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어 아라퀘스의 외침이 숲속을 울렸다.
“원처기술 제3장 파동역발검. 이얏!”
홱!
파파파팟!
속도와 파괴력에 공간 에너지의 일종인 파동 질료를 가미함으로써 전투력을 무려 열 배 이상 끌어 올린 가공할 만한 위력을 창출해 내는 파동역발검!
순식간에 숲속 공터에는 한바탕 진동음이 일어남과 동시에 폭풍이 강하게 휩쓸고 지나갔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뒤쪽의 단원들마저 허공으로 붕 떠서 저마다 공터 밖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레온 역시 뒤로 무려 10여 m나 물어나야만 했다.
“헉! 갑자기 폭풍이!”
턱.
마침 나무 기둥이 있는지라 그것과 부딪쳐서 가까스로 멈출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발사된 타룬의 병기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잠시 후 엄청난 폭풍이 지나간 후 사방을 둘러보니 완전 수풀은 온데간데없었고 관목들조차 거의 뿌리가 뽑혀 쓰러져 있었으니 초토화란 이럴 때를 두고 쓰는 말이 분명했다.
“세상에!”
하지만 무엇보다도 레온을 경악스럽게 만든 것은 타룬의 칼날 대부분이 근처 나무나 바위에 박혀 있는 채로 대롱대롱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금 전 파동 폭풍의 힘이 그것들의 방향을 딴 곳으로 유도할 정도로 강력했단 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컥! 컥!”
지면에 꿇어 앉아 심한 기침을 하는 아라퀘스, 방금 전 원천기술의 힘을 너무도 무리하게 사용했는지라 모든 기력이 고갈이 된 상태가 분명해 보였다.
레온 역시 다리가 후들 거렸으니 그 자신도 타룬의 병기에 모든 공력을 쏟아 부은 나머지 체력이 바닥이 났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레온이 좀 더 여유가 있었던가. 그는 왼쪽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칼날을 바라보며 공력의 힘을 다시 사용하려고 했다.
“저 괴물 같은 놈을 지금 처치하지 않는다면 언제가 내가 당할지도 모를 테니 말이야.”
그는 두려움이 앞선 나머지 무조건 없애버려야 한다는 일념만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결국 검이 나무로부터 쑥 뽑아지더니 그 아래 엎드려 있던 아라퀘스의 정수리 쪽을 공격했다.
그때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누군가 아라퀘스에게 달려들었으니.
“위험해요!”
팍!
“우욱!”
털썩!
아라퀘스 대신에 칼날을 심장에 관통 시킨 존재는 바로 키나였다. 그녀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그대로 숨이 끊어진 듯 보였다.
이에 레온이 인상을 팍 썼다.
“대체 뭔 놈이 방해한 거야!”
그가 다시 다른 곳에 꽂혀 있던 검 하나를 공력기술로 움직이려 했다.
마침 그때 폭풍의 힘으로 사방으로 튕겨 나갔던 단원들이 저마다 검을 들고 나타나 레온을 향해 무섭게 돌진해 들어 왔다.
“다들 합공해서 저놈을 공격해라!”
레온이 이를 악 깨물었다.
“빌어먹을!”
그는 재빨리 날개를 펼쳤고 순식간에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휘리리릭!
그때 저 아래 사방팔방에 흩어진 채 박혀 있는 타룬의 칼날이 저절로 뽑히더니만 레온에게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착! 착! 착! 착!
원래의 병기 모습을 갖추더니만 이내 보호대 안으로 숨겨졌다. 레온의 공력기술도 바닥이 난지라 저들을 공격하기보다는 당장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던 모양이었다.
그는 상공 위쪽으로 더욱 올라가 집정관이 있는 진영 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니 이곳에서의 볼일은 다 본 모양이었다.
과연 그의 귓가에 저 아래 오열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을까. 자기 대신 희생을 한 키나를 앉고 절규하는 아라퀘스의 한 맺힌 외침을 말이다.
“아아아아아아―!”
***
때마침 도착한 지드, 그는 초토화된 숲속에 도착하자마 무슨 큰 전투가 치러졌음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재빨리 아라퀘스에게 다가갔다.
“이게 무슨 일인가.”
“흑!”
다가가 보니 싸늘하게 식어 가는 키나를 안고 오열하는 아라퀘스가 보이는 게 아니던가.
지드는 얼떨떨한 가운데 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단원들이 일제히 상공을 쳐다보고 있었으니 그 역시 그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저 멀리 거대한 새 같은 것이 날갯짓을 하며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지드는 대체 저게 뭔가 하고 안력을 최대로 높여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동공이 확 팽창이 되고 말았으니.
“뭐야! 저건 사람이잖아.”
그때 단원들 중 누군가 그에게 다가와서 방금 전 일어났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드리워졌다.
레온이 어떻게 해서 하늘을 나는 능력을 지녔는지 모르지만 그가 키나를 희생했다는 자체만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오를 판이었다.
그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다가 제법 큰 바위 하나가 공터 한복판에 있는 것을 보고는 주저 없이 공력기술을 발휘했다.
우두둑!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큰 바위가 꿈틀거리며 지면으로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슉!
한편 레온은 하늘을 계속해서 선회하다가 자 아래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그 역시 안력을 높여 자세히 살펴보니 피체 왕국의 국왕인 지드였다.
이내 창백하게 굳어지는 표정, 지난번 지드의 황궁 침입 사건으로 레온은 특수부 검사 수장 자리를 박탈당하고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동안 일개 보병으로 마음고생하며 두 달여를 지내 왔어야만 했던 이유가 다 저 재수 없는 자식 때문이 아니던가.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하강해서 저놈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아라퀘스와의 한바탕 튼 전투를 치렀기에 이미 공력이 바닥이 나고 없었다.
지금은 그저 말로세카의 군자에 의지해서 하늘을 나는 정도의 힘만 남아 있다고나 할까. 바로 그때였다.
지상으로부터 뭔가 발사되는 듯 보이더니만 작은 한 점이 점점 커지면서 솟구쳐 올라오는 것이 아니던가.
“저게 뭐―”
파파파팟!
강력한 파공음이 들리면서 큰 바위가 단번에 덮쳐 왔고 레온은 깜짝 놀라 거의 반사적으로 옆으로 피했다.
“헉!”
홱!
정말이지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경악의 표정으로 어리둥절해 하는 레온, 그는 방금 전 두 눈으로 큰 바위가 날아오르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도 아직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역시 공력기술자로서 물체를 조종하는 능력을 지녔다지만 설마하니 바위 자체가 이 높은 상공까지 엄청난 속도로 발사되리라고는 상상 조차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에게 있어서 당장 관심이 가는 자는 바로 그 엄청난 힘을 발휘한 저 아래 지드였다. 애석한 일이지만 아직 그의 공격이 끝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번엔 나무와 크고 작은 바위들이 지상으로부터 마구 솟구쳐 올라왔으니 말이다.
레온은 기겁을 하며 더욱 상공 위로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뭐야, 저 인간!”
파파파팟! 휘리리릭!
레온은 절묘한 비행 기술로 그것들을 요리조리 피할 수가 있었다. 어쨌든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한편 지상으로부터 연이은 공격을 시도하는 있는 지드는 이만저만 갑갑한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적을 놔두고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통한의 한으로 남으려고 했다.
대체 저놈이 어디서 저런 기상천외한 군장을 얻었단 말인지. 강력한 공력기술가지고도 넓디넓은 하늘에 떠 있는 한 점의 인간을 공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지드는 한 가지 특단의 결정으로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그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고 이내 모든 단전의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주화입마가 기승을 부릴 때 그것을 누르려고 공력의 포스로 변환 유도하여 신체 일부분인 손가락 끝으로 분출하려는 시도가 보기 좋게 들어맞았던가.
한마디로 기존의 탄지신공의 수십 배 위력에 달하는 강력한 기술과 힘을 얻게 되었고 지금 그것을 사용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곧이어 그의 손가락으로부터 가공할 만한 파장이 모아짐과 동시에 폭발하듯 뻗쳐 나갔다.
파파팟!
사사사사!
물론 그 목표 대상은 레온이었다.
레온은 이번에 아래로부터 바위나 나무 대신에 훨씬 강력한 무형이 에너지가 다가옴에 심장이 철렁했다.
“대체…… 또 뭐지?”
그는 당장 결심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도망칠 것을 말이다.
휘리리릭.
그나마 다행이라면 엄청난 파동폭풍의 에너지가 중간 쯤 왔을 때 서둘러 고공비행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저게 인간이야 괴물이야? 도대체 왜! 저토록 강해진 거야! 아아아악.”
휘리리릭!
정신없이 날갯짓을 하며 벌써 수 킬로미터는 도망친 듯했는데 공간을 허물어트리는 파장의 힘은 그의 발 밑 부분을 후끈하게 했고 결국 뭔가가 덮쳐 옴을 느껴야만 했다.
스윽─
“아악!”
파파파팟!
상공 훨씬 위쪽으로 퉁겨서 솟아오르는 레온, 그나마 다행이라면 워낙 높은 상공에 있었는지라 아슬아슬하게 파장의 범위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이 어찌나 셌던지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아서야 겨우 신형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물론 레온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멀리 도망치는 일이었다.
휘리리릭!
“빌어먹을! 나중에 어디 두고 보자.”
지드는 잠시 후 저 멀리 한 점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허탈한 심정들 느껴야만 했다.
지난 며칠 동안 아군 진영에서 병사들을 도륙하고도 모자라 부기사단장 키나마저 해한 놈이기에 반드시 복수를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여전히 키나를 껴앉고 있는 아라퀘스를 바라보며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