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6 지드 Vs. 레온 그리고 테세우스……
삭!
“아아.”
슥!
“억!”
한 마을에서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다.
검고 칙칙한 군장에 빨간 깃털이 달린 투구의 사내들이 남자들만 한곳에 모아 놓고 사정없이 검을 휘둘러 피를 사방으로 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자들과 노인 그리고 아이들이 절규하며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었다.
이들은 메티시아 부족민으로서 레온과 그의 수하 특수 검사부에 의해 대낮에 봉변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온은 촌장으로 보이는 한 노인의 멱살을 심하게 위협을 했다.
“빨리 불지 않으면 이 마을 사내놈들은 물론이고 여자 아이들마저 모두 씨를 말리겠다!”
“저, 정말 모릅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보나! 네놈들은 아크누스 기병대에 말을 공급하는 부족이건만!”
“그들은 항상 거처를 옮겨 다니기에…….”
짝!
순간 레온이 노인의 뺨을 때렸다.
“욱!”
데굴데굴.
“감히 뉘 앞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지금부터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지 않을 경우 아이들을 한 명씩 사자 밥으로 보내 버리겠다!”
“살, 살려 주세요. 그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죄가 없다니! 너희 같은 인간들이란 태어난 그 자체가 죄란 말이다. 자! 애새끼들을 당장 앞으로 끌고 나와라.”
레온이 명령하자 검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과 엄마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살려 주세요. 제발. 어린 애들이 뭘 안다고…… 살려 주세요!”
레온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것들이 누굴 허수아비로 아나! 좋다. 더 많은 희생을 당해야지 불겠다 이거지?”
레온은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 중 아무나 하나를 골라서 마당 한복판으로 데리고 나왔다.
“당장 나와.”
“살려 주세요, 엉엉.”
“나를 원망하지 말거라. 네 에비와 어미가 불지 않으니 자식인 네놈이 대신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겠지.”
“엉…… 제발.”
레온이 검을 들어 아이의 목을 내려치는 순간 여자들 중 누군가 재빨리 앞으로 뛰쳐나와 막아섰다.
“넌 뭐야!”
“우리 아들을 살려 주세요! 흑……!”
레온이 아이의 엄마를 은근슬쩍 살펴보더니만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살려 달라고? 물론 그렇게는 못하지, 후후.”
그가 다시 검을 들려는 순간 엄마가 외쳤다.
“제가 아크누스 기병대가 있는 곳을 알고 있어요!”
“…….”
레온의 눈빛이 반짝였다.
“뭐라!”
“제 자식만 살려 준다면 모두 말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정말이냐.”
“네! 정말이고말고요. 서, 서쪽 지역 아란츠 호숫가 숲속에 있어요!”
“아란츠 호숫가라…….”
“며칠 전 그곳으로 숙영지를 옮겼으니까, 분명 지금도 그곳에 있을 거예요…… 이제 제발 살려 주세요!”
“레온의 화색이 밝아졌다.
“오호라.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군.”
“흑, 이제 말했으니 아이를 풀어 주세요.”
레온이 잠시 고민에 잠기는 듯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부관이 다가와서 그의 의중을 물었다.
“총관님, 어떻게 할까요.”
사악한 미소를 짓는 레온.
“어떡하기는! 늘 하던 대로 하는 거지.”
“그럼 이들 모두를…….”
“없애버려. 마을도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
“네,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을은 다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수순으로 제일 먼저 촌장의 목부터 달아났다.
삭―
툭!
“모두 제거하라!”
삭!
“컥!”
푹!
“살려 주세요! 아악.”
“어디를 도망가, 빌어먹을!”
레온은 학살 현장을 생생히 지켜보면서 큰 소리로 떠들었다.
“감히 팔라카스 제국에 대항을 하다니, 간땡이가 부은 것들 같으니라고! 오로지 피로서 갚으리라!”
참으로 인정사정없는 무지막지한 자였다.
사내들은 물론이거니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피의 제물로 픽픽 쓰러졌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로서는 큰 수확을 거두었다.
아크누스 기병대가 있는 장소를 알아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칼차크 종족으로서 용맹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 전투력이 뛰어난 대에다가 병력의 수도 4,000여 명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현제 레온과 그의 소수 정예 검사들만 가지고는 임무를 수행하기가 매우 벅찬 일이었다.
레온이 당장 부관에게 명령했다.
“자네 당장 본진으로 가서 병력을 요청하고 오게나.”
“어느 정도 말입니까.”
“정예군 오천 명이면 충분하겠지?”
“네, 알겠습니다.”
“당장 서둘러라! 놈들이 또다시 이동이라도 한다면 골치 아프니까.”
잠시 후 부관이 말을 타고 냅다 마을을 떠났다. 레온이 나머지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원군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숙영을 하며 지낼 것이다.”
이미 초토화가 되어 버린 마을에는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건만, 레온은 굳이 이곳에서 야영을 할 생각이었다.
***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원군이 마을에 도착했다. 헌데 레온은 원군 대장을 보고는 마치 똥 씹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야, 넌.”
“뭐긴 뭐야. 아크누스를 토벌하러 온 거지.”
“하필 왜 네놈이냐.”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더 있더냐.”
“빌어먹을!”
하필 집정관은 레온이 가장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테세우스를 보냈던 것이다.
참으로 기분 더럽게 나쁜 일이었다.
테세우스 옆에는 어린 소녀가 말을 타고 있었는데, 그 말고삐를 잡은 것은 시종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 시종은 머리에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런 광경에 레온이 한심하다는 얼굴을 했다.
“네놈은 전쟁터에 여자들을 데리고 다니는 취미가 있나 보군.”
“그야 내 마음대로지.”
“뭐라고! 이거 완전 미친 작자로군.”
“미치고 안 미치고는 내가 스스로 판단할 일, 자네가 상관할 일은 아닐세.”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오는군.”
사실 레온은 테세우스가 여자 둘을 옆에 대동하고 다니는 그런 모습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그는 자신과 직급이 같은 총관이니 일단은 뭐라 할 말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공을 빼앗길까 봐 그게 두려웠으리라.
“아크누스 기병대는 내가 발견했으니까 너는 병사만 건네주고 뒤로 물러나 있으시지!”
그러자 테세우스가 의외의 대답을 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지.”
레온이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했다.
“정말이냐?”
“내 성격상 남의 공이나 가로채는 짓은 곧 죽어도 싫거든.”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하지만 자네가 좀 버거워 보이면 그때에는 내가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지.”
레온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후후, 그런 일은 없을 걸세.”
“사람 일이야 한 치의 앞도 내다보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법이지.”
“헛소리 말고 병사들이나 인계하고 뒤로 물러나시지.”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할 참이었네.”
그 이튿날 오전 그란츠 호숫가 근처 숲 지대에는 레온과 수하들이 수풀 안에 숨어서 저 아래 넓은 공간의 아크누스 기병대의 숙영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레온이 회심의 미소를 지은 채 부관에게 말문을 열었다.
“공격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우리부터 지휘관사로 보이는 곳으로 밀고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병사들의 포위 진영은 잘 이루어졌겠지.”
“저희들의 진격과 함께 동시에 숙영지로 밀어닥칠 것입니다.”
“이거 생각보다 쉽게 놈들을 척결할 수 있겠군. 제아무리 용맹한 아크누스 기병대일지라도 이렇듯 쥐도 새도 모르게 기습 공격을 한다면 정신 차리지 못하고 당할 게 자명한 사실이지. 후후.”
레온은 벌써부터 전투에 승리를 거둔 것처럼 좋아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좋다! 지금 바로 그때이니라.”
그러자 부관의 명령은 바로 옆에 있던 나팔수가 진격 명령의 신호를 울렸다.
뿌우우―
뿌우우―!
“총공격!”
와아아아아아아아―!
타다닥!
특수 검사 100여 명이 비호처럼 언덕 아래 숙영 진영으로 무섭게 달려 나갔다.
그러자 숲 지대에 숨어 있던 나머지 병사들 역시 그들과 함께 무기를 앞세워 전력 질주했다.
와와!
타다닥―
잠시 후 뒤편에서 궁수들이 불화살을 날렸으니 숙영 막사부터 불태울 작정이었다.
홱! 홱! 홱! 홱!
화르르!
때를 맞추어 개미떼처럼 달려드는 팔라카스 제국의 특수 검사들과 정규군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삭 삭
여기저기에서 지휘관들의 함성과 병사들의 무기를 휘두르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숲 지대를 진동시켰다.
“…….”
하지만 너무 조용했던가.
뭔가 이상했다. 활활 타오르는 막사 안으로부터 놈들이 허둥지둥하면서 모습을 드러내야 정상이거늘, 상황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부관이 뭔가 낌새를 알아차린 듯 레온에게 외쳤다.
“적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말에 레온의 심장이 철렁했다.
“뭐라고!”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지.”
“빌어먹을!”
“당장 후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다, 일단 뒤로 빠져라.”
바로 그 순간 사방으로 둘러친 언덕 위로부터 아크누스의 기병대가 말을 타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그리고 들려오는 외침.
“선두 부대는 창을 던지고 궁수들은 일제히 활을 쏜다.”
순간 허공을 가로지르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홱! 홱! 홱! 홱!
팍!
“욱!”
퍽!
“악!”
제국군은 미쳐 뒤로 돌아서기도 전에 역공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피를 터하고 픽픽 쓰러졌다.
휘이잉!
와아아아!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대지를 진동시키듯 무려 4,000여 기병대원들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검을 마구 휘둘렀다.
기습을 하려다 오히려 기습을 당한 상황인지라 병사들은 우왕좌왕 정신들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파팟!
“컥!”
파파파팟―!
“억!”
레온은 너무 다급한 나머지 말로세카 군장의 날개를 활짝 폈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특수부 검사들 역시 앉아서 그대로 당한다기보다는 기병대원들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반격을 가했다.
과연 전투력이 남달랐던가. 유독 그들 주변만이 기병대원들이 접근조차 못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대비책이 있었던가.
착! 착! 착! 착!
어느 지점에서인가. 사람도 없는 공간으로부터 창들이 저절로 고공으로 뜨더니만 특수 검사들을 향해 살벌하게 돌진했다.
홱!
“악!”
팍!
“억!”
창이 가슴을 뚫고 등 뒤로 나올 정도로 엄청난 파워였다.
제아무리 날고기는 특수 검사들이라 할지라도 정체모를 힘에 조종되는 창에 피를 토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제야 레온은 상대방이 공력 검술 시전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혹시…… 지드 그놈이!”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레온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고는 날개를 펼쳐 공중 위로 솟아오르려 했다.
휘리리릭―
그 찰나에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이 어느새 날아와 레온의 군장과 부딪치는 것이 아닌가.
슉!
쾅!
“크악!”
엄청난 충격에 날개 한쪽이 부러지면서 지면으로 곤두박질치는 레온.
정말이지 그로서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는 못쓰게 된 날개를 접고 신형을 추슬러 곧바로 반월형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어디 숨어 있는 거냐, 이 빌어먹을 새끼야!”
그제야 레온은 상대가 지드라는 것을 확신한 모양이었다.
“당장 나와!”
레온이 사방을 둘려 보며 발악을 하듯 소리를 지르자 곧바로 응답이 왔다.
“나 여기 있다.”
스윽
수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낯익은 사내, 그는 피체 왕국의 국왕인 지드였던 것이다.
레온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허걱!”
너무도 의연하게 다가오는 한 인물, 그는 군장 차림도 아닌 그저 평복으로서 뒷짐을 쥐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벅저벅.
“오, 오지 마!”
레온이 소리쳤다.
하지만 지드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는 하얀 치아마저 드러냈다.
“하하, 드디어 만났군!”
“이 빌어먹을 자식! 치사하게 숨어서 날 기다리다니……!”
“치사하고 비열한 것이라면 네놈의 전공이 아닌가. 죄 없는 사람들을 마구 학살하는 살인마 같은 놈. 이제 그 대가를 철저하게 받을 것이다.”
레온이 당혹스러워했다.
“그럴 능력이나 있나!”
“물론 있지. 이제 네 날개가 부러졌으니 지난번처럼 도망치는 수는 없을 것이다! 후후.”
“…….”
레온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의 수하들과 병사들은 이미 도륙을 당한 상태였고 이제 자기만 남은 듯했다.
하지만 레온이 어떤 인물인가. 팔라카스 제국의 최강 무인으로서 이 정도 위기는 어떡하든 넘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 있었다.
착!
반월형 무기를 앞세워 기세등등한 음성으로 외쳤다.
“덤벼라.”
그러자 지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까짓 장난감은 집어치워라! 옛날 같으면 조금 거북스러웠겠지만 지금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레온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가. 미련 없이 무기를 버렸다.
툭!
물론 그가 믿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말로세카 군장에 숨겨진 28개의 칼날 병기, 타룬이었다.
“너 오늘 잘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이 무기들을 쓰려고 기다려 왔는데 말이야.”
지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난번 아라퀘스를 공격했던 바로 그 괴상한 병기를 말하는 거군. 당시 부기사단장 키나가 그 칼날에 관통 당해 전사까지 했지.”
지드는 말하면서도 복수심에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레온은 그런 그의 심정을 알기나 하는 걸까. 여전히 비아냥거리면서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흐흐, 그 아라퀘스가 뭔가 하는 자식의 여자 말이지? 하하! 사내놈이 오죽 못났으면 자기 연인 하나 살리지 못하고.”
순간 지드의 얼굴이 팍 굳어져 버렸다. 마치 지옥의 사자라도 된 것처럼 살벌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였다.
“방금 전 그 말에 책임질 준비는 하고 있겠지?”
“책임은 개뿔! 너나 뒈질 준비를 하라.”
레온은 말이 끝나자마자 타룬 병기를 작동시켜 곧바로 발사해 버렸다.
착! 착! 착! 착!
홱! 홱! 홱! 홱!
파파파팟―!
헌데 눈앞에 믿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바위라도 산산조각 낼 듯 엄청난 기세로 발사되었던 28개의 타룬 병기들이 지드 바로 앞에서 멈추어 선 것이 아니던가.
레온은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뭐야!”
“뭐긴 뭐야. 네놈의 무기들이 나를 공격하기 싫은 모양이겠지.”
“이, 이건 말도 안 돼.”
“물론 말도 안 되겠지.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 자! 이것들을 돌려주겠다!”
지드는 말이 끝나자마자 허공으로 손을 한번 휘둘렀다.
스윽―
그러자 타룬 병기들이 방향을 바꾸어 레온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홱! 홱! 홱! 홱!
파파파팟!
“아아아악―!”
곧이어 숲 지대에 레온의 비명이 크게 울려 퍼졌다.
애석한 일이지만 28개의 병기들이 그의 신체 각 부분에 고슴도치처럼 박혀 버린 것이 아닌가.
“컥! 컥!”
입가로부터 핏물을 줄줄 흘리며 비틀거리는 레온.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연신 두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넋이라도 나갔던가.
“아아.”
그때 지드의 안광이 폭렬했으니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얼굴이었다.
“벌써부터 엄살떨기는. 지금부터 시작인데.”
그때 레온의 몸에 박혀 있는 타룬 무기들이 제자리에서 저마다 비틀어지는 것이었다.
스윽
고통에 찬 비명이 더욱 애절하게 들려왔다.
“커어어억!”
“어떤가, 느낌이.”
“살려 줘.”
“살려 달라니? 말도 안 되지. 네놈은 내 불쌍한 백성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원흉이 아닌가. 네가 내 입장이라면 살려 주겠냐!”
“제발!”
“안 된 일이지만 넌 이미 죽은 몸이야. 의식만 살아 있지.”
스윽.
그때 무기들이 한 번 더 뒤틀려졌다.
“컥!”
털썩.
결국 숨이 끊어지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레온, 실로 대 사건이 일어났음이 틀림없었다.
팔라카스 제국의 최강 무인인 레온이 이렇게 어느 이름 모를 숲에서 온몸에 칼날을 박은 채 그 삶을 마쳤으니 말이다.
상대는 피체 왕국의 국왕 지드로서 그의 공력기술에 여지없이 무너졌던 것이다.
지드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주검의 표정을 살펴보며 뭐라 중얼거렸다.
“그나마 죗값을 치르고 죽었군.”
그는 허탈하다는 듯 허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후…….’
바로 그때였다.
뒤에서 느닷없이 박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니던가.
짝! 짝! 짝!
“제법이군. 자네가 레온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니 이거 정말 놀라군 놀라워.”
지드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으니.
“너는……!”
상대는 바로 테세우스였다. 언제 나타났는지 혼자서 우두커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팔짱을 낀 채 지드 앞으로 걸어왔다.
저벅저벅.
“오랜만이군.”
“…….”
지드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지난번 자신을 제압한 뒤에 죽일 가치도 없다며 살려 준 그 장본인이 다시 나타났으니 말이다.
다시 들려오는 테세우스의 음성.
“이제는 나와 어느 정도 겨루어 볼 실력을 갖춘 듯 보이는데 한번 시작해 보게나.”
그저 실실 여유부리며 말하는 그로부터 엄청난 기세가 느껴졌다.
저벅저벅.
그가 착용한 군장부터 눈에 들어왔다.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다소 검은 황금빛이랄까.
등 뒤에 착용한 검 역시 군장과 한 세트로 같은 색상에다 무척 육중해 보였다.
지드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초반부터 전력을 다하기로 했고 두 손을 슬며시 들어 올려 공력기술을 시전할 준비를 하였다.
그때 테세우스가 다가오다가 어느 지점에 멈추어 서서 제법 침착하게 말문을 열었다.
“소문에 들어 보니 최근 자네의 전투력이 상당히 강하다고 하더군. 이거 은근히 기대가 되는걸?”
지드 역시 지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 옛날과는 다르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지난번 내 소환물이었던 다크퍼스를 제압했고 지금은 레온마저 저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자신만만해 할 만도 하겠지.”
“이번엔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야 언제든지 각오할 준비는 되어 있다네. 자!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초반 공격부터 강하게 나와 준다면 고맙겠군. 레온이 당한 정도에 나는 끔쩍도 하지 않을 테니!”
정말이지 자신만만하다 못해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다고 할까.
지드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다지만 테세우스 역시 만만치 않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공력기술자인 지드는 웬만하면 상대방을 한번 보고 대충 그 힘의 세기를 판단하거늘 테세우스만큼은 지금으로서 전혀 파악이 되고 있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가 착용한 청동 군장과 청동검이 눈에 거슬릴 뿐이었다.
‘싸우지도 않고 위축이 되다니. 나 참, 이런 경우는 최근에 들어서 처음이군.’
그가 손을 들어 허공으로 두어 번 휘저었다.
스윽―
그러자 주변에 있었던 바위들과 심지어 굵직한 나무마저 뿌리가 뽑힌 채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우두두둑!
두둑―
슈슈슈슈!
잠시 후 테세우스 주변으로 바위들과 나무들이 둥그렇게 형성이 되었다.
지드가 눈짓 한번 하면 일제히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말이다.
그 누가 그런 광경을 보았다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기절초풍했으리라.
인간의 의지력으로 집채만 한 물건들을 떠올려 중력을 거스르는 행위는 도저히 현실이라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사실 테세우스 역시 지드의 가공할만한 능력에 대해서 무척 놀라는 표정이었다. 레온의 공력기술보다도 한참 위랄까.
“과연 대단하군. 그 정도 실력이니 그리도 자신만만해 했겠지? 후후!”
지드는 테세우스가 자신을 칭찬하는 듯 은근히 아래로 내려다보는 태도에 다소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왜 공격할 준비를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거지?”
“자네가 먼저 해 보게나.”
“그렇다면 기회가 없을 텐데.”
“과연 그럴까.”
“목숨은 하나밖에 없는 법! 괜한 객기 부리지 말고 맞대응을 하든지 해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그러니 얼마든지 공격을 해 보란 거다.”
“…….”
지드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손을 들어 허공에 떠 있는 것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스윽.
휘리리릭!
파바아아아앗―!
테세우스 주변의 원처럼 둘러 친 바위덩이들과 나무들이 강력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서서히 그를 목표물로 좁혀 들어갔다.
워낙 속도가 빠른지라 조금이라도 닿는다면 뼈도 추리지 못할 만큼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때 지드가 한 번 더 경고했다.
“웬만하면 움직이시지.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어 처참한 꼴을 당하지 말고.”
더욱 자신만만하게 들려오는 음성.
“계속해 보게나. 제법 흥미 있어 보이는데? 하하!”
심지어 호탕하게 웃기까지 하는 테세우스, 이에 지드의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오만한 작자 같으니! 자기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지드가 마지막 손길에 힘을 더욱 실어 실로 기공할 만한 공세를 취했다.
스윽!
파파파팟!
곧이어 회오리 안으로 파묻히고만 테세우스,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
회오리가 가라앉고 그 안의 형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간, 지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테세우스가 서 있었다.
“아니!”
더구나 테세우스가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멀쩡하게 서 있었다.
“후후, 또 다른 건 없나? 이거, 생각보다 너무 시시한데?”
“어떻게…….”
“예전 같으면 지금의 네 공격이 무척 부담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그다지 신경 쓸 조차도 없이 약해 보이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바위 덩어리들과 나무들이 엉켜서 강력한 회전판을 만들어 그를 목표로 갉아 대듯 공격을 했건만 생채기 하나 없어 보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테세우스가 앞으로 몇 발자국 다가왔다.
저벅저벅.
흙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짝짝 갈라질 정도로 힘이 실려 있었다.
“더 이상 보여 줄 게 없다면 이번엔 내가 간단한 것을 보여 주겠네.”
“…….”
지드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그가 하는 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테세우스가 검을 들어 지드에게 앞세우더니만 한마디 외쳤다.
“자고로 검사나 전사들은 검을 이용해 전투를 치러야지 진정 전투를 하는 거라 볼 수 있지! 자네나 레온처럼 공력 기술 따위에 의존하다가는 진정한 무인의 길을 갈 수 없는 법. 자, 서론이 너무 길었나!”
바로 그때였다.
그의 모습이 팟 하고 사라졌고 지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뭐, 뭐야!”
팍!
“억!”
털썩―
어느새 뒤에서 나타났는지 테세우스의 검이 등짝을 세차게 때렸다.
데굴데굴!
“컥!”
다행히 검 날이 아닌 검 면으로 가격했던가.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그 충격이 얼마나 강했으면 연신 피를 쏟고 일어나지를 못하는가!
“컥! 컥!”
테세우스가 엎드려 있는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뭐야! 이 정도 가지고 벌써부터 싸움을 끝내려는 것은 아니겠지?”
“…….”
애석한 일이지만 지드는 체념어린 반응을 보였다.
상대는 그저 거대한 벽이 아니라 하늘과도 같은 존재랄까.
“졌다.”
그 말에 테세우스는 다소 허탈한 얼굴을 했다.
“지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다른 능력을 보여라.”
“방금 전에 한 공격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치다. 나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할 테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여라.”
“…….”
테세우스가 잠시 멈칫거렸다.
과연 이자를 어떡해야 할지 말이다.
그때였다.
뒤편 수풀 안으로부터 나타나는 일행들이 있었으니 한나와 그녀의 시종 에르가니아 그리고 카르발디였다.
한나가 대뜸 와서 테세우스에게 소리쳤다.
“지금 뭐 해!”
“보다시피 대결을 벌였지.”
“누구와?”
“피체 왕국의 국왕.”
“국왕이라고!”
그녀가 놀란 듯 아직도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지드를 살폈다.
“근데 얘 왜 이래?”
“대결에서 내게 부상을 입었거든.”
“원래 이렇게 약골이었나, 지난번엔 아르를 제압했다는 놈이? 하기야 청동 군장과 청동검에는 새 발에 피겠지. 인간들의 능력과 그 급수가 달라도 한참 다를 텐데. 호호.”
한편 뒤에서 이를 바라보던 에르가니아와 카르발디는 쓰러져 있는 지드를 발견하고는 무척 놀랐으리라.
특히 에르가니아에게 있어서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그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평소 무시무시한 한나의 감시받고 있는 그녀일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의지대로 하기로 했다.
“지드 님!”
타다닥
냅다 그에게 달려가 조심스럽게 부축을 하는 그녀.
“지드 님! 괜찮아요?”
그제야 겨우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는 지드, 눈앞에는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에르가니아가 자신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에, 에르가니아. 정녕 그대가 맞소?”
“네! 저예요.”
“컥! 컥! 미안하오.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모습을 보여 주게 되어서.”
“지드 님. 흑…….”
그녀는 지드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지드는 아픈 와중에도 억지로 손을 들어 그녀를 위로해 주려 했다.
“에르가니아…….”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테세우스와 한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가 매우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카르발디가 재빨리 나와서 비굴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헤헤, 저 둘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연인 사이입니다.”
한나의 인상이 팍 찡그려 졌다.
“저년이 주제에 남자 복을 있었군그래. 쳇! 빌어먹을! 야! 좋은 말 할 때 당장 이리 와!”
“…….”
물론 에르가니아가 지드의 곁을 떠 날 리가 없었다.
죽을 때 함께 죽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한 것이 분명했다.
다시 들려오는 한나의 매몰 찬 음성.
“너 정말 죽고 싶어!”
한나는 저 둘의 다정한 모습에 화가 났는지 손을 들어 진짜 공격하려고 했다.
그때 그녀를 말리는 테세우스.
“그만 해.”
“그만 하라니!”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앞으로 나서지 마라.”
“싫어.”
“싫어도 할 수 없어. 저리 비켜.”
툭!
그가 팔로 툭 치자 뒤로 밀려나는 한나.
“허이구, 이젠 폭력까지 쓰시네?”
천하가 벌벌 떠는 어둠의 여신인 그녀가 유일하게 받드는 인간이 있다면 테세우스 오로지 한 사람이었다.
그가 뭐라던 그의 말을 듣는 순종적인 여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결국 뒤로 물러서는 그녀. 이번엔 테세우스가 지드와 에르가니아에게 다가가더니만 차분한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제 보니 둘이 연인 사이였군. 후후, 여하튼 자네는 이런 상황에서 이 여인을 만난 것을 다행으로 알거라. 사실 방금 전까지도 자네를 죽이려 했지만 에르가니아 때문에 네 생명을 잠시 더 연장해 주겠다.”
이에 지드가 다소 의아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 그건 왜지…… 컥! 컥!”
테세우스는 무슨 이유인지 허공을 들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자네가 내 약혼녀 네온을 죽인 지 어느덧 십 년이 다 되어 가는군. 나는 그 때문에 대자객 신전에서 오해를 받고 오히려 내가 범인으로 몰린 적이 있었지. 그 이후로 내 삶은 엉망이 되어 버렸고 복수를 위해 자네를 찾아내어 죽이려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월등한 실력 차이에 허탈함감을 느꼈고 결국 살려 주게 되었네. 헌데 오늘 그와 같은 상황이 똑같이 반복되었음을 아는가.”
“…….”
사실이 그랬다. 지드의 인생에 있어서 대체 이 테세우스와는 악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항시 마주 대할 때마다 거대한 산맥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테세우스가 지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정확히 삼 년을 주겠다.”
“삼 년이라니?”
“네 연인을 구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그건 무슨 말인가. 컥! 컥!”
“그 안에 더 강해져서 내게 와라. 그리고 나를 제압한다면 에르가니아를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지드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무슨 수로 강해진단 말인지…… 현재 그의 능력은 한계치에 달하지 않았는가.
“차라리 나를 죽여라.”
“그렇게는 못한다.”
“왜지?”
“너 역시 내가 겪은 고통을 느껴야만 하거든. 너무 쉽게 죽이는 것은 오히려 네 영혼을 해방시키는 짓인데 내가 왜 하겠냐. 자! 네가 진정 이 여인을 사랑한다면 부디 그 시간 안에 당당히 데려가면 될 것이다.”
지드는 내심 한탄만 나왔다.
‘아.’
그때 한나가 참지 못하고 또다시 이들의 대화에 껴들었다.
“그냥 죽여 버리지, 뭐 하는 짓이야!”
데세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가만있으라니까!”
“쳇. 하여간 인간들은 못 말린다니까. 그나저나 그건 잊은 건 아니겠지.”
“잊다니! 뭐를 말이지?”
“암흑의 정수를 마시는 날이 벌써 삼 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 말이야.”
그 말에 테세우스가 눈빛을 번뜩였다.
“암흑의 정수…….”
“그날이 네 세상이 열리는 날이지. 무려 이만 명의 다크퍼스가 이 세상으로 내려 올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우린 암흑 군대를 이끌고 이 대륙을 금세 우리 영토로 만들 수 있을 거야.”
“우리 영토라고.”
“응, 그야말로 나카스니아 대륙의 어둠의 종족이 이 세계에서도 완전히 부활한다고나 할까? 호호. 네 아버지가 못다 한 꿈을 전부 이룰 수 있다고.”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또 마음 약한 소리 한다. 들리는 정보에 의하면 용족 나르시오스가 이 세계에 강림했다는 소문이 있어.”
“나르시오스는 또 뭐야.”
“지난번에 말했잖아. 불사의 용이라고. 그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녀석이지. 아마 아독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왔다지. 한 가지 다행이라면 그의 목적이 우리가 아니라는 거야.”
“내가 정수를 마시면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가?”
“그야말로 어둠의 종족 제왕으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는 거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잘된 일은 팔라카스 제국을 매개체로 네 세력을 넓힐 수 있다는 거지. 내가 보니까 제법 기반이 잘 닦여진 나라거든. 황제 녀석이나 집정관을 네 수하로 두고 말이야.”
지드와 에르가니아 그리고 카르발디마저 저들의 대화를 듣고는 경악에 찬 얼굴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떤 존재들이기에 저런 엄청난 내용을 입 밖으로 올리는 것인가.
한나의 음성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가자. 뭐…… 아쉽기는 하지만, 여기서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은데.”
잠시 후 테세우스와 일행들이 숲 밖으로 사라져 갔다.
지드는 저 멀리 끌려가는 에르가니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또다시 고생을 해야만 하는 그녀.
당장이라도 대가리를 땅에 박고 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에르가니아!”
그때 들려오는 테세우스의 음성.
“정확히 삼 년이다. 그때를 기대해 보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