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났다.
테세우스는 모든 일정을 접고 일행들과 팔라카스 제국의 수도로 향했다.
지난밤에 암흑의 정수를 마시고 의식을 치른 그로서는 이제 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의식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길었지만 한나의 말대로 제왕의 권능을 얻은 그가 더 이상 그 누군가의 명령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궁에는 이미 전쟁터에서 귀환한 황제와 집정관 카르세크가 있었으니 그들을 만나서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 일은 간단히 해결될 것 같았다.
수일 후 황제 접견실.
황제 게라쿠스와 집정관 카르세크는 테세우스가 갑자기 왜 만나 뵙기를 원하는지 그 이유부터가 궁금했다.
이제 레온이 없다는 마당에 그의 위치는 특수부 검사 총관으로서 황궁의 모든 안위를 책임질 단계에 이르렀기에 혹시라도 보다 철저한 경비를 상의하러 온 줄 착각하고 있었다.
황제가 먼저 그를 반겼다.
“어서 오게나.”
“안녕하시오.”
“안녕하시오라니!”
헌데 이게 무슨 일인가.
테세우스는 허리를 굽힐 생각은 전혀 없었고 대뜸 황제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는 것이 아닌가. 이에 카르세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지금 무슨 짓인가. 감히 폐하 앞에서 무례하게!”
테세우스는 둘을 정면으로 보며 아주 똑바른 음성으로 말했다.
“두 분은 지금 이후로 내가 이 대륙에 대업을 이루는 데 일조를 해 주어야 할 것이오.”
“뭐라고!”
“이놈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황제와 집정관은 카르세크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서로의 얼굴만 멀뚱히 볼 뿐이었다.
“…….”
“…….”
다시 들려오는 그의 음성.
“이 나라는 내가 기틀을 굳히는 데 아주 튼튼한 기틀을 갖추고 있으니 그대들만 도와주면 될 것 같소.”
급기야 카르세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네 이놈! 미친 것이 분명하구나. 여기가 누구 안전이라고 그런 망발을 늘어놓는 것인가.”
황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로군.”
“목숨이 열 개라도 네놈은 오늘 아주 죽었다. 여 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급기야 카르세크가 경비병을 불렀다. 그러자 냅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삐걱―
타다닥!
헌데 뛰어 들어오는 자들은 경비병이 아닌 검은 뿔 투구에 육중한 체구를 지닌 흉측한 몰골의 존재들이 아니던가.
이에 황제와 카르세크가 기겁을 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뭐, 뭐야.”
카르세크가 차분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황궁은 이미 내 수중으로 들어왔소.”
그러자 그들은 어리둥절해 하였고 다시 노한 음성을 내뱉었다.
“무어라! 이놈이 진짜 실성해도 단단히 실성한 모양이군!”
“난 실성을 한 게 아니오. 단지 그대들에게 닥친 현실을 말해 주었을 뿐. 믿지 못하겠다면 테라스 밖을 보시오.”
황제와 집정관은 아직도 의심스런 눈길로 테라스 창을 열고 밖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궁의 연병장이 방금 전 들어온 뿔 투구의 존재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들이 서 있는 사이사이에는 특수 검사들로 보이는 시신들이 피를 토하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으니, 그제야 테세우스의 말이 실감이 났음이 분명했다.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
“아까 말한 대로 난 이 나라를 토대로 암흑 군단을 편성하고 대륙으로 뻗어 나갈 것이오. 그러니 내 말에 수긍토록하고 협조를 하기 바라오.”
결국 검술에 능한 황제가 벽에 걸린 검을 빼어 들고 반항을 하려 했다.
타닥.
스윽!
“네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는 몰라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
그러자 테세우스의 뒤에 서 있던 다크퍼스가 거의 순간 이동을 하듯 황제에게 다가가서 재빨리 그의 검을 빼앗고는 주먹으로 복부를 쳤다.
퍽―
“욱!”
그들의 굵직한 음성이 뱉어졌으니.
“네 이놈. 당장 제왕님께 무릎을 꿇지 못하겠느냐.”
“이놈들이!”
그러자 다크퍼스들 중 하나가 그의 머리채를 무식하게 잡고는 강제로 주저앉혔다.
홱!
“아악.”
데굴데굴.
그 힘이 어찌나 셌는지 거의 내동댕이쳐지는 황제.
다른 다크퍼스가 집정관의 목덜미를 잡고 패대기쳐 버렸다.
홱!
“어이쿠!”
꽈당!
“이후로 제왕님 앞에서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테세우스가 그들을 만류했다.
“살살 다루어라. 그들 역시 우리 동지가 될 테니 말이다.”
그제야 황제와 카르세크는 실감했던가.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현실을 말이다.
결국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주변만을 살피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나와 그녀의 시종 에르가니아.
“밖에는 거의 정리가 다 되었어.”
“카르발디는 어디 있지.”
“그놈은 황궁 뒤편에서 아직도 임무를 수행 중이야. 그나저나 그런 하찮은 인간 놈에게 총관이란 직책을 줘도 괜찮은지 모르겠네. 다크퍼스들이 자존심이 많이 상해하는 것 같아.”
“생각보다 영리한 자이니 지휘관 신분이 잘 어울릴 거야.”
“하기야 늘 네 마음대로니까 뭐. 쳇!”
그때 테세우스는 한나 뒤에 서 있던 에르가니아의 얼굴에 피멍이 든 것을 보고는 화를 냈다.
“너 또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또 상관이야! 내 시녀 내가 마음대로 한다는데.”
“내가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
한나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하여간 이년 때문에 나만 혼난다니까.”
테세우스가 한나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지금 이 시간 이후로 그녀를 때리거나 욕을 한다면 내게 주어진 대업이고 뭐고 간에 다 때려치울 테니까.”
한나가 불끈했다.
“너 얘랑 무슨 관계라도 되는 거야. 왜 네가 신경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
“아무튼 내 말대로 해.”
“쳇.”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카르발디.
“황궁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잘했네.”
곧이어 테세우스는 테라스 문을 열고 난간 쪽으로 나갔다.
한나와 테세우스가 그의 뒤를 따랐고 마지막으로 에르가니아 문을 나섰다.
테세우스와 한나는 오늘의 거사가 성공한 것에 대해서 무척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후 한나가 말문을 열었다.
“드디어 네 세상이 도래하는구나. 호호!”
하지만 테세우스는 금세 안색을 굳혔다.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어차피 네게 주어진 운명이잖아.”
“아버님은 오히려 어둠의 종족을 해방시키려고 스스로 희생을 하셨는데 아들인 나는 그 세력을 다시 키우려고 하다니…….”
“이렇게 생각해 봐. 현재 나카스니아 대륙에는 용족이 매우 기세등등하거든. 우리가 나서지 않더라도 결국 그들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서 혼돈을 일으킬 거야.”
“그러니까 그들을 견제하자는 그 말인가.”
“그런 것도 있고.”
“용족이 그렇게도 막강한가.”
“그걸 말이라고 해. 걔들은 한마디로 전투에 달인이란 말이야. 하여간 말도 마. 그동안 다크퍼스들이 숨어서 연합체를 결성해 무려 이만 명이 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시기를 거쳤는지 알기나 해? 그게 다 너를 위한 몸부림이었어.”
“나를 위해서?”
“그렇다니까. 어둠의 제왕이 부활한다니까 전국에 숨어 있던 그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거란 말이야. 그리고 나도 어차피 강림을 했으니까 내 영향도 없지 않아 있겠지.”
테세우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 어쩌다 내 운명이 이렇게 흘러가는 거지.”
한편,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황제와 집정관은 오히려 그들 자신의 입장이 하루아침에 이 꼴이 났는지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정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과는 대조적인 입장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카르발디였다.
인간이면서 다크퍼스들을 지휘할 수 있는 총관 자리에 오른 것만 가지고도 그는 이만저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에르가니아는 단 하루도 다리 뻗고 자는 일이 없었으니, 한나의 시달림보다는 과연 3년 후에 지드가 당당히 나타나서 테세우스를 제압하고 자신을 데리고 갈지는 솔직히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나르시오스가 부관 헬시아와 이 세계에 인간 세계에 넘어온 지 어느덧 반년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아독을 만나러 온 것이었지만 그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록 그의 막내아들 게토를 잡아 두고 이곳 남부 대륙으로 건너왔지만 아직은 그 흔적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참으로 세상은 넓고 넓었다.
아독의 장남 아라퀘스가 무작정 남부 대륙으로 갔다기에 일단 그를 찾으러 여기까지 왔다지만 바닷가에서 바늘 발견하는 격이랄까.
일단 헬시아가 일단 먼저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면서 그에 대한 행적과 정보를 얻느라 지금은 떠난 상태였다.
그래서인가.
나르시오스는 게토와 함께 이곳저곳 여행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휘잉―
한줄기 초여름의 미풍이 꽃잎을 무수히 흩날리고 있었다.
과연 말로만 듣던 대로 인간 세상은 나카스니아 대륙에 비해서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던가.
그 모든 것이 알록달록한 풍경을 지니고 있었으니 마치 꿈결에서 본 듯한 멋진 세상이었다.
그가 앉아 있는 둔덕 아래 흘러가 녹색의 강줄기와 우거진 숲 지대는 마치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 보였다.
“정말 좋군.”
나르시오스가 계속 감탄하고 있을 때 바로 옆에 게토는 먼 길을 와서 그런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문득 나르시오스는 지난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불사의 용이 되기 전, 정령과 용족 사이에서 태어난 그저 별 볼일 없는 잡종 소리를 듣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때 우연찮게 한 인간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한 인간 종족이려니 하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가 이리스의 전설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기절초풍한 적이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인간 세상에서 아독이란 이름을 가지고 살다가 다시 이곳 세계로 넘어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아주 독특한 인간이랄까.
그는 자신이 이리스로 활약한 시절을 전혀 기억도 못하는 상태였다.
나르시오스는 그때의 일들을 천천히 그려 보았다.
***
초원의 바람이여!
옛날 옛적의 신비한 전설을 내게 들려다오.
대지를 울리고 하늘을 찢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득실대는 곳,
인간 종족을 위해
한줄기 빛이 음습한 대륙을 비추었다네.
잔잔한 호수의 물결이여!
지나간 전설을
너의 맑고 투명한 수면 위로 보여다오.
인간의 육신이
산을 만들고 그 핏물로 수많은 강을 이루었던 대륙.
바로 이곳에 한줄기 소낙비가 내려와
거짓말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 전설.
아! 이리스의 전설을 들어본 사람이 있다면
그의 노래나 함께 불러 보세나.
나무 밑동에 등을 기댄 채 잠을 청하던 아독의 귓가를 간질이는 노랫소리.
천사의 목소리처럼 보드라워 마치 심장이라도 어루만질 듯한 축복의 노래였고, 잠결이지만 그 선율이 너무 좋아 깨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훗! 뭐, 뭔 소리야!”
아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결코 꿈속에서 들을 만한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횡.
하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가 없었고, 아독은 그 노래가 정말로 꿈속에서 들은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러다 문득 주변을 다시 보게 되었다.
세상은 너무나도 밝았다.
태양이 작열하는 하늘.
눈부신 황금을 닮은 대지의 빛깔.
이곳은 마치 천국인 양 제각각 선명한 색상이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낮이란 말인가. 와우. 마치 그림을 그려 놓은 듯 모든 사물이 선명한 색을 가지고 있다니.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붉은 바위가 오늘은 연한 보랏빛으로 보이다니. 게다가 초록빛의 잎사귀에 간간히 섞여 있는 푸른 빛 잎사귀는 뭐란 말인가.”
더구나 하늘마저 연한 옥색과 푸른빛이 절묘하게 범벅이 되어 황홀한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대는 참으로 여유로운 인간이구려. 요즘같이 이런 혼돈의 세상을 그토록 맑은 눈동자로 찬양하듯 바라보니 말이오. 후후, 아직도 세상을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는 자가 있다니 이거 반가워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그때 들려온 낯선 목소리.
순간 아독은 극도의 경계 태세를 취하며 나무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목소리가 나무 위에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타다다닥!
“뭐, 뭐야!”
건물과 비교하자면 약 5층 높이의 엄청나게 크고 기묘하게 생긴 나무였다.
발 디딜 가지조차 없는 나무였다. 날개가 없는 존재라면 올라간다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이번엔 또 어떤 놈이지! 빌어먹을, 당장 정체를 밝혀라!”
“…….”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 아독이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거기 나무 위에 숨어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당장 모습을 보여! 만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나무를 통째로 날려 버리겠다! 젠장.”
“…….”
“어라!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진짜 각오해라.”
아독은 검을 뽑아 들려고 했다. 그 순간 나무 위에서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음성이 들려왔다.
“후후, 나무를 통째로 날려 버리겠다고. 이것 참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오는군. 고작 인간 주제에 그런 능력이 있을 턱이 없겠고, 그저 성질만 고약한 본성을 갖춘 가엾은 영혼이라.”
스스스스.
그때 나무 위에서 한 인영이 마치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동작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런 도구나 날개 같은 것도 없건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높은 곳에서 공기처럼 가볍게 하강할 수 있단 말인가!
아독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잠시 방심하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존재를 자세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체 뭐야, 이 자식…….’
그래, 그게 첫 만남이었지.
“그런데 성함이……?”
“나는 나르시오스야. 너는?”
“아독이라 합니다.”
“아독이라. 괴상한 이름이군.”
***
나르시오스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자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처음 만날 때만 하더라도 내 부하 하나 생겼다고 좋아 했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내가 시종이 되어 버렸으니. 후후, 하기야 이리스의 환생자인 그에게 뭘 더 바라겠어. 살육의 대명사이자 모든 마물이 벌벌 떠는 아주 흉악한 존재인데.’
어쨌든 나르시오스와 아독의 인연으로 그렇게 맺어졌다.
지난 일들이 어느덧 추억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니, 참으로 앞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독을 찾아왔지만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시간들이 결코 나쁜 기억만은 아니었다.
“후후. 그때가 좋았는데.”
나르시오스는 다시 눈앞에 펼쳐진 강줄기를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하게 숨을 들이켰다.
아직도 옆에서 졸고 있는 게토.
세월이 흘러 아독의 아들과 함께 이런 여행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로부터 수일 후.
아라퀘스의 행방을 찾아 떠났던 부관 헬시아가 돌아왔다. 나르시오스가 그녀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수고 많이 했다. 그런데 뭣 좀 알아 낸 거 있어?”
“네.”
“정말인가?”
“일단 아라퀘스는 서부 지역 피체 왕국이라는 곳에서 기사단장을 역임했습니다.”
“오호라.”
나르시오스가 흥분을 했다. 게토 역시 형의 소식을 듣자 눈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문이 조금은 흐려졌다.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행방을 알 수 없다니.”
“얼마 전 팔라카스 제국과 전쟁이 있었는데 대패를 하고는 온 나라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그에 대한 흔적도 사라진 상태입니다.”
“거참, 우습군. 하필이면 그런 일이 생기다니.”
“아마도 피난민들과 산악 지대로 숨어든 것 같습니다 헌데, 그것보다도 아주 놀라운 정보가 있습니다.”
“놀라운 정보라니?”
좀처럼 내색을 않는 헬시아의 표정이 굳어졌으니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녀가 계속 말문을 이었다.
“아무래도 어둠의 제왕이 부활을 한 것 같습니다.”
순간 나르시오스가 깜짝 놀랐다.
“어둠의 제왕이라니!”
“늘 우려하셨던 대로 결국 론의 아들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아마도 어둠의 여신 한나가 그를 찾아서 청동 군장과 청동검을 주어 암흑의 정수마저 마시게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최근 팔라카스 제국의 동향이 좀 이상하다고나 할까요.”
“설마 그곳을 본거지로 삼는 건가.”
“제대로 보셨습니다.”
“아! 우리가 한발 늦은 것 같은데.”
“어차피 벌어질 일 아니온지요. 흑운성의 기운은 이때쯤 한번 강력한 힘을 그에게 부여한다고 했으니 이제는 불사의 용이신 군주께서 나설 차례가 된 것 같습니다.”
“흠.”
나르시오스는 그저 가벼운 한숨을 내쉰 채 멀리 산등성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말문을 열었다.
“자네는 당장 나카스니아 대륙으로 가서 마룡 선발진을 불러오게나.”
헬시아가 깜짝 놀랐다.
“마, 마룡! 하필 마룡이라니요.”
“그곳과 이 세계로 통하는 통로가 극히 한정이 되어 있기에 몸집이 큰 용족 정예군들이 내려오기에는 아직 가능치 않다. 그렇기에 그들을 부르자는 것이다.”
“그래도 단순무식하기로 서러울 정도로 아주 잔혹한 마룡 선발진들이 인간 세계에 내려온다면 순식간에 혼란을 초래할 텐데요.”
“그들의 목표는 인간이 아니라 다크퍼스이니까 별 상관없다. 그리고 혼돈은 이미 론의 아들이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머지않아 차원의 통로가 완전히 열리는 날에는 용족 정예군을 출동시킬 것이다. 그전에 마룡들이 적당히 견제를 해준다면 그보다 좋을 게 어디 있겠는가. 자! 내 뜻이 이러하니 당장 내 명령대로 하게나.”
그제야 헬시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