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72 지드 Vs. 한나 (73/81)

Chapter. 72 지드 Vs. 한나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에 흑색군장 차림의 병사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다크퍼스가 아닌 함락 영토의 병사들과 시민들로서 흑마술 인간으로 전향한 군단이었다.

오늘날 어둠의 제왕 테세우스에게 충성을 받치기로 했는데 병력 규모는 무려 30개 군단으로서 100만 명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테세우스는 이 기세를 몰아서 남부 대륙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스카치오 제국을 공격할 만만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흑마술 군단 사령부 막사에는 테세우스가 곧이어 벌어질 대규모 함락 작전에 대한 회의를 열었고 각 지휘관들이 참석해 있었다.

회의는 그의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제군들이여! 머지않아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지도다. 수십 년 전 내 아버님께서 북부 대륙을 점령했듯이 오늘날 나는 남부 대륙 전역을 우리의 영토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진군을 방해하는 항거 세력이 있다. 그들은 피가로 제국으로 모여들어 우리의 영광을 저해하고 있도다. 물론 머지않아 그곳을 함락시키고 남부 대륙 전체를 흑마술 군단 지지로 세울 것이다. 알다시피 내 꿈은 여기뿐만 아니라 중부 대륙과 아버님께서 미처 뜻을 이루지 못했던 북부 대륙의 정복이다. 그때까지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이니 그 점 명심하도록.”

잠시 후 테세우스의 연설이 끝나자 누군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공격 시점은 언제입니까.”

“정확히 한 달 후에 진군 명령을 내릴 것이다. 물론 모든 병력이 그곳으로 집결할 것이다.”

이번엔 다른 지휘관이 질문했다.

“스카치오 제국은 평원 지역이 많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차 부대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인데 현재 저희에겐 전차는커녕 기병대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기 바란다. 이미 전국 함락 지역으로부터 전차들과 기병대들이 이리로 몰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말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에 걸려 있는 큰 지도에 다가갔다. 그러고는 작은 스틱을 꺼내어 다시 설명했다.

“물론 스카치오 제국을 함락시키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전쟁은 주로 대평원에서 쌍방 간의 전차 부대와 방패 군단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바로 거기에서 승부의 향방이 결정 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평원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할지라도 공성전이 남아 있기에 만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전략과 전술이 반드시 필요할진대 난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통솔할 유능한 참모를 소개할 참이다.”

그가 손을 들어 누군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막사 옆 입구로부터 한 젊은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테세우스가 그에게 말했다.

“자네 소개는 직접 하도록 하게나.”

그러자 사내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참석자들을 향해 눈빛을 드러냈다.

“우선 내 이름은 아키아라 합니다. 제왕님의 추천으로 오늘날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키아라는 말에 회의실 분위기가 술렁였다.

그가 누구이던가.

전략의 천재로서 지난번 팔라카스 제국의 참모직을 수행하면서 피체 왕국을 함락시켰던 그 유명한 자가 아니었던가.

이미 그의 명성은 남부 대륙 전체에 알려졌으니 현재 이 자리에 참석한 지휘관들이 그의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물론 테세우스는 자신의 과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그를 반드시 천거해야만 했다.

테세우스가 말했다.

“그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이 순간부터 총작전 참모직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니 각 군단장들은 나를 대신해 그의 명령을 충실히 따라 줄 것을 명령하는 바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전쟁은 전략과 전술의 싸움으로 참모 아키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소개가 끝나자 아키아는 그 자신이 직접 말문을 열었다.

“제왕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지금 이 순간부터 각 군단장들과 지휘부 관계자들은 내 명령을 들을 것이오. 나는 총작전 참모로서 모든 전술 전략 지휘권을 행사를 할 것이 그 점 반드시 명심하기 바라오.”

그의 연설이 끝나고 회의 역시 막을 내렸다.

***

그날 저녁.

테세우스의 숙소에서는 작은 말다툼 소리가 이어졌다.

“왜 요새 이상한 행동을 자주하는 거지?”

“왜 또 잔소리야.”

“내가 잔소리하지 않게 생겼어?”

테세우스에게 앙칼지게 따져 묻는 소녀는 다름 아닌 어둠의 여신 한나였다. 테세우스는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이마를 만지기까지 했다.

“나 피곤하니까 네 숙소로 돌아가.”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하시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네가 없을 때엔 에르가니아 그년도 없는 거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둘이 혹시 사귀는 거 아냐!”

테세우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헛소리!”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이젠 별 망상까지 다하는군?”

“내 육감이 맞는 것 같은데?”

“육감 좋아하시는군. 요즘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더 이상 방해하지 말고 나가 줘.”

바로 그때 막사 밖에서 들려오는 경비병의 음성.

“지금 막 동남부 영토로부터 귀환한 사령관께서 뵙기를 청합니다.”

순간 테세우스의 눈빛이 번득였다.

“동남부라면, 카르발디…….”

그가 소리쳤다.

“들라 하라.”

곧이어 휘장을 걷어 치고 들어오는 카르발디, 헌데 그의 몰골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

“갑자기 여긴 웬일인가. 자네 임무지는 어떡하고.”

그러자 카르발디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제왕님! 저를 죽여 주소서.”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왕님. 흑!”

“당장 일어나서 자초지종을 얘기해 보게나.”

그제야 일어나는 카르발디, 테세우스가 그를 데리고 중앙 탁자로 가서 함께 앉았다.

“무슨 일 있었던가?”

“저, 저기 그게…….”

한나 역시 매우 궁금했는지 그 큰 눈망울을 도르르 굴렸다. 카르발디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기 시작했다.

“지드가 나타났습니다.”

“지드라니.”

“일전에 제왕님께 패하고 도망간 그자 말입니다.”

“피체 왕국의 국왕을 말하는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놈이 다크퍼스들을 모두 죽이고 키라 왕국을 장악했습니다.”

“뭐라고! 그자가 대군이라도 이끌고 왔단 말인가!”

카르발디가 주저거렸다.

“아, 아닙니다.”

“아니라면.”

“단신으로…….”

“단신으로 자네 부하들을 모두 제압하고 키라 왕국을 함락시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테세우스는 다소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나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마디 했다.

“혼자서 전쟁을 치렀단 말이야?”

카르발디가 힘없이 대답했다.

“네.”

“그게 말이나 되냐? 얼마나 강하기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졌습니다.”

한나가 화를 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지난번에 테세우스에게 맥도 추지 못하고 놈이 얼마 되지도 않아서 갑자기 엄청난 힘이라도 얻고 돌아왔다는 거야?”

“사실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수백여 명이나 되는 다크퍼스들을 공중으로 띄워 펄펄 끓는 솥단지 물속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이번엔 테세우스가 말문을 열었다.

“공중 부양이라면 공력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거라면 나 역시 익히 아는 기술인데.”

“그 세기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요즘 동남부 영토에 갑자기 나타나서 아군들을 섬멸시킨 수호 전사라는 자가 바로 지드 그놈이었습니다.”

테세우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흠. 수호 전사라. 나도 그 소문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네만 설마하니…….”

“정예 다크퍼스들조차 그놈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하고 모조리 전멸 당했습니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이지 그자는 신기한 인물이 틀림없군. 수년 전에는 내게 제압당한 이후 제법 강해져서 돌아왔건만 이번에도 어디서 힘을 얻어 돌아왔으니 말일세. 여하튼 흥미로운 친구로군. 그나저나 자넨 무슨 이유로 살아서 여기까지 왔는가.”

카르발디가 주저거렸다.

“그놈이 저를 살려 준 이유는 제왕님께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내게 말인가?”

“그렇습니다.”

“무슨 내용인가.”

“언젠가 찾아와서 반드시 제왕님을 제압하고 에르가니아를 데려가겠다고요.”

순간 테세우스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후. 그자가 정녕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네.”

“그 열정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하겠군. 얼마든지 그래 보라지.”

이번엔 한나가 껴들었다.

“보아하니 눈에 가시 같은 놈이군.”

테세우스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신경 쓸 거 없어.”

하지만 한나는 다소 화가 난 상태였다.

“감히 너한테 도전장을 내밀다니,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직접 가서 손이라도 봐 줘야겠어.”

그 말에 테세우스의 눈빛이 번쩍였다.

“네가 직접?”

“응.”

“그러니까 그자를 상대하겠다는 말인가?”

“사실 요즘 심심해서 죽을 판인데.”

한나가 카르발디에에 물었다.

“그 자식, 지금 어디 있어.”

“아마도 키라 왕국에 있을 겁니다.”

“그거 잘됐군.”

테세우스가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정말 네가 가려고?”

“왜, 못 갈 거 있어?”

“…….”

테세우스는 잠시 숙고하더니만 눈빛이 반짝였다. 아니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가. 가뜩이나 요즘 들어서 무척이나 성가시게 하는 그녀에 대해서 무슨 빌미건 잠시 멀리 떠나 있게 하려던 참이었는데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마침 잘됐군.’

한나는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열의만 앞세웠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목을 가져올 테니까.”

“정 가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하지만 조심해야 할걸? 카르발디 말에 의하면 그자는 상당히 강해졌다던데.”

그녀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봤자지.”

“하기야, 어둠의 여신께서 직접 나서 주신다면 뭐 쉽게 해결이 나겠지.”

“대신에 내가 이 임무를 수행하고 오면 내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줘.”

“소원이라니?”

“나를 여왕으로 맞아 달라 그 말이야.”

“여왕이라면…… 혹시.”

그녀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식을 올리잔 말이야.”

“지금 결혼 얘길 하는 건가?”

“그, 그래 맞아.”

“…….”

당혹스러워 하는 테세우스.

“그, 그건 생각해 봐야 하겠는데.”

순간 한나의 눈썹이 팍 치켜 올라갔다.

“혹시 에르가니아 그년 때문에 주저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냐.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서.”

“아무튼 내 청을 들어줘야 할걸? 너와 나는 원래 이런 운명이었어.”

“운명이라니!”

“흑운성의 기운을 받은 어둠의 제왕은 반드시 어둠의 여신인 나를 배필로 맞아야 한다는 사실. 호호.”

“…….”

테세우스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수일 후.

테세우스는 자신의 막사로 에르가니아를 불러들였다. 오늘 아침에 키라 왕국으로 떠난 한나가 없는 틈을 타서 그 둘은 또다시 만남을 가졌던 것이다.

여전히 서먹서먹한 둘의 관계, 에르가니아는 요즘 들어서 테세우스와 대면하는 것이 점차적으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어둠의 제왕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항시 자신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테세우스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한 가지 해 줄 말이 있어서 그대를 불렀소.”

“…….”

하지만 에르가니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매우 불안한 기색을 했다. 혹시라도 어디선가 한나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랄까. 테세우스는 그런 그녀의 속을 읽었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후. 걱정하지 마시오. 한나는 당분간 다른 곳으로 가 있을 테니.”

“아, 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최근에 지드가 키라 왕국에 나타나서 그곳을 점령하고 그대를 구하겠노라고 공언을 했소.”

지드라는 말에 에르가니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드 님이요!”

그녀의 반응에 테세우스가 씁쓸해 하였다.

“거참, 그자 얘기를 하자마자 화색이 도는군요.”

“…….”

에르가니아가 애써 흥분된 기분을 누르고 침묵을 지키자 테세우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너무 좋아할 거 없소이다. 어차피 그는 조만간 제거 될 것이니 말이오.”

제거라는 말에 그녀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제거라니요!”

“한나가 왜 이곳에 없는 줄 아시오?”

순간 그녀의 심장이 철렁했다.

“설마.”

“한나는 지드가 있는 그곳으로 오늘 아침에 떠났소. 아마도 수일 내에 그자의 수급을 가지고 여기로 돌아올 것이오.”

“그녀가 직접 갔단 말인가요?”

“어둠의 여신인 그녀가 나섰다면 이미 이 싸움은 끝난 거나 다름없소.”

순간 에르가니아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

‘아.’

“그대에게 좋지 않은 소식인 줄 알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소이다. 내가 직접 상대해 주면 좋겠지만 난 바쁜 몸이라서 할 수 없이 한나를 보낸 것이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지드 그자를 잊기 바라오.”

그때 에르가니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탁!

“그 얘기를 하려고 저를 부른 건가요?”

“그렇소.”

“제가 아는 한 지드 님은 절대 패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만 한나는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어둠의 여신이라 말이오. 그대도 알다시피 엄청난 전투 기술을 지닌 그녀라오.”

에르가니아는 무척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

홱!

휘장을 걷고 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테세우스는 무덤덤한 반응만을 보일 뿐이다. 그리고 잠시 후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그자가 없어지면 그때에는 마음에 돌아서려나…….”

***

왕실 테라스 바깥에서 저 넓은 연병장을 바라보는 지드, 모든 것이 허망했다. 키라 왕국의 왕실에는 지드 혼자만이 남아 그 큰 자리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크퍼스들의 만행은 극에 달했는지 국왕과 왕족 그리고 대신들마저 그 씨를 말려 버렸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휘잉.

마치 폭풍이라도 몰려오는 듯 바람마저 매우 거세었다. 지드는 머리칼을 마구 날리며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느낌에 뭔가 강력한 기운이 다가온다고나 할까.

‘이 압박감은 또 뭐지…….’

번쩍! 우르릉 쾅!

쏴―

때 아닌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비마저 퍼부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말이다. 지드는 뭔가 불안한 예감으로 재빨리 내실로 들어가서 선인갑을 차려 입고 선인도를 허리춤에 찼다.

그러고는 다시 테라스 바깥으로 나와서 눈앞 전경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맞은편 연병장 담벼락에 누군가 머리를 산발하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지드는 긴장한 마음에 안력을 돋우어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누구지.”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 검은 망토를 입은 그녀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드는 다소 낮이 익은 생김새에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곧이어 그는 그녀가 누군지 직감할 수 있었으니. 지난번 테세우스와의 일전에서 뒤에 서 있었던 한 소녀가 있었는데 바로 그녀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결론은 한가지로 추정할 수 있었으니 말로만 들어왔던 어둠의 여신이라는 존재가 분명한 듯 보였다.

안색이 굳어지는 지드.

‘드디어 올 게 오고 말았군.’

사실 지드는 내심 테세우스가 직접 이곳에 오리라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에 어둠의 여신이 왔으니 다소 의아스러울 수도 있었다.

어쨌든 엄청난 기운이 이곳까지 풀풀 느껴질 판이었다. 그저 겉으로 봐서도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무시무시한 존재랄까. 그렇지만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그의 입장으로 보자면 지금의 대결에서 이기고 테세우스마저 제압을 하여 반드시 에르가니아를 구출해야만 했다.

그때 들려오는 어둠의 여신 한나의 음성.

“네놈이 지드지?”

지드 역시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지드다.”

“제대로 찾아왔네. 다행이야”

이번엔 지드가 물었다.

“네 정체는 아마, 어둠의 여신이겠지?”

그러자 한나가 놀라는 얼굴을 했다.

“내 정체를 어떻게 알았지?”

“테세우스가 직접 올 줄 알았는데.”

“너 같은 놈이야, 내 선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 호호.”

“……과연 그럴까?”

천지가 요동을 칠 정도로 천둥과 비바람이 거세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그녀가 직접 만들어 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적어도 여신이란 칭호를 듣는 존재라면 자연의 조화를 능히 부리고도 남을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그 능력이 대체 어느 정도까지란 말인지.

그때 들려오는 한나의 웃음소리.

“호호.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목을 내놓으시지. 어차피 내게 대항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일 테니까.”

지드 역시 지지 않고 응수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뭐야?”

“어찌 싸워 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생각보다 우둔한 놈이군. 내가 어둠의 여신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버티겠다는 거야?”

“네가 어둠의 여신이든 뭐든 간에 나 역시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다. 자! 그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 내 직접 확인해 보겠다!”

한나가 콧방귀를 꼈다.

“흥!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인간이네. 그렇다면, 좋아.”

그녀가 하늘로 손을 들어 뭐라 주문을 외웠다.

“어둠의 힘이여! 내게 암흑 검을 빌려 다오! 이얏!”

번쩍! 우르릉 쾅!

또다시 엄청난 천둥소리가 들린 가운데 그 순간 그녀의 손 주위에 검은 빛이 형성되더니 이내 검의 모양을 이루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착!

난데없이 나타난 검을 얻은 한나가 더욱 의기양양했다.

“어둠의 검이 나타난 이상, 네놈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멀리 떨어진 지드를 향하여 검을 뻗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웅― 슈슈슈슈!

진동음과 함께 자그마한 흙빛 검이 길게 뻗어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수십여 m로 늘어나더니만 지드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헉!”

이에 지드가 얼떨결에 선인도를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홱! 턱!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난 암흑 검의 위력은 어찌나 강했는지 선인도를 쥐고 있었던 지드의 손아귀가 저려 왔다.

하지만 선인도 역시 일반 검이 아닌 선계의 것으로서 상대방의 기절초풍할 만한 공세를 꿈쩍도 않고 잘 막아 주었다.

마치 태산과 태산이 충돌한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한편 한나는 초반에 쉽게 승부가 날 것이라 여겼는데 지드가 선전을 하자 이만저만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뭐, 뭐야! 저놈. 감히 내 어둠의 검을.”

그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재빨리 검을 거두어 들였다.

슈슈슉.

순식간에 작아진 어둠의 검, 이번엔 그녀가 다른 한 손을 들어 저 위 먹구름을 향해 소리쳤다.

“제법 하는구나. 그렇다면 이번에 어둠의 진수를 보여주지. 이얏!”

말이 끝나자마자 손 한번 휘두르니 다시 번개가 쳤고 천둥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번쩍!

우르릉. 쾅!

헌데 그녀가 진정 보여 주려는 것은 바로 하늘로부터 퍼 붓는 장대비가 이내 검은 액체로 변하게 하여 지드를 공격토록 한 것이었다.

웅.

파파파팟!

작은 빗줄기들이 방향을 틀어 오로지 지드가 있는 곳을 향하여 수만, 수십만 개의 화살과도 같이 퍼 부어지니, 이는 그 어떤 존재라도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드 역시 지지 않고 선인도를 크게 한번 휘둘러 쳤다.

“이얏!”

붕!

파파파팟.

휘리리릭!

그 순간 지드의 앞쪽으로 하얀 빛의 방어막이 형성이 되었고 무기로 돌변하여 날아오는 검은 액체들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퍽!

픽!

우두두둑.

지드가 또다시 공격을 막아 내자 한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이제야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던가.

“이, 이럴 수가. 이건 말도 안 돼.”

그때 지드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번엔 내가 공격을 한번 해 보마.”

그가 검을 높여 큰소리로 외쳤다.

“선계의 힘이여! 한줄기 광명을 저 어둠침침한 악녀에게 비춰 주리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캄캄한 하늘, 먹구름 사이로 환한 구멍이 열리면서 빛이 모아졌다. 마치 빛과 어둠의 싸움이랄까.

이내 한줄기 빛이 그 아래 한나를 향해 강력하게 내리 쬐는 것이 아닌가.

파팟!

“아악!”

돌발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푸르스름한 광명이 한나의 몸을 덮기 일보 직전, 그녀가 황급하게 어둠의 검을 들어 막기 시작했다.

우르릉. 쾅!

두 기운의 충돌로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지지지직.

우우우우.

섬광의 한 자락이 내리쬐어 한나를 덮치려 했지만 그녀의 암흑 공세 역시 만만치 않았다.

“감히 내게 도전을 하다니! 좋다. 그렇다면 이번엔!”

그녀가 모든 에너지를 모아 다시 검을 하늘로 향했다.

“어둠은 곧 나이니 내가 너를 직접 벌하겠다.”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고 주변의 검은 안개가 똘똘 뭉쳐졌다. 그 바람에 지드의 빛줄기 공격은 무위로 끝나고 이제는 다시 공격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아.”

“애송이, 내 검을 받아라!”

그녀는 화살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로 지드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사사사사.

지드 역시 다시 검을 들어 큰소리로 외쳤다.

“번개여, 그대는 곧 빛의 화신이니 저 오만한 어둠을 벌하리라!”

그와 동시에 먹구름 사이에 거대한 섬광이 일었고 한줄기 번개가 강력하게 내리쳤다.

번쩍!

우르릉. 쾅!

우지직!

놀랍게도 번개는 돌진해 들어오는 한나를 목표로 정통으로 공격을 했으니 그 충격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다.

콰쾅!

“아아아악.”

세상을 쩌렁 울리는 한나의 비명, 그처럼 강대한 위세를 펼쳤던 그녀의 몸이 불에 활활 타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네 이놈! 어떻게 나를…… 아아아아.”

털썩.

결국 바닥으로 추락하고 마는 그녀.

지지지지.

이미 그녀는 까맣게 탄 채 연기를 뿜어내는 숯덩이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지드 역시 깜짝 놀란 나머지 어리둥절해 있었고 곧이어 지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으니.

“설, 설마 내가 어둠의 여신을…….”

승부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멀쩡한 자와 그 앞에 까맣게 탄 존재, 결국 번개의 힘이 암흑 에너지를 태운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번쩍!

우르릉. 쾅!

쏴.

폭우는 다시 쏟아졌고 가련하게 죽어 없어진 하나의 숯덩이 시신만을 말없이 적셔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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