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79 테세우스와의 일전 (80/81)

Chapter. 79 테세우스와의 일전

그로부터 며칠 후.

스카치오 제국에서는 롤란도 평원의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아주 성대한 축제를 벌였다.

황제는 금번 전투에서 대단한 활약상을 한 지휘관들을 위해 만찬회까지 벌여 주었다.

슈슈슈슉!

쾅―

슈슈슈!

콰! 쾅!

시민 광장에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고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뛰어나와 춤과 노래를 불렀다. 술집에는 승리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술잔을 들이키는 자들로 가득했다.

황제의 만찬회장은 황궁의 큰 로비에서 열렸는데 그는 일일이 직접 손수 술병을 들고 금번 수훈을 세운 지휘관들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주르륵.

“들이켜게나.”

“아, 네. 감사합니다.”

위스퍼가 그 첫 대상이었고 그 다음엔 지드와 대원들 그리고 아라퀘스가 그 뒤를 이었다.

만찬회장에는 원로원 의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황권의 반대 세력인 그들조차 조국을 구한 위스퍼와 그 외에 다른 지휘관들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의원들의 수뇌격인 아벨 집정관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이번 전쟁으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고 황권의 세력이 더욱 강화될 것을 예상하기에 좋은 인상일 리가 없었다.

바로 옆에 있던 의원 출신 참모 역시 툴툴한 표정이었고 마지못해 술 한 잔을 부어 들이켰다.

“크!”

그런 그의 행동에 아벨이 못 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네는 이 마당에 술이 들어가는가.”

“속이 쓰려서 한잔 하는 겁니다.”

“흠.”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한잔 하시죠.”

참모가 술을 따라주자 아벨이 술을 한잔 들이켰다. 그가 입을 닦으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훗날을 다시 도모해야겠지.”

“사실 저들 때문에 나라가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축하해 주는 수밖에 없지요.”

아벨이 체념한 듯 술 한 잔을 입에다 다시 들어부었다.

“일단은 자네 말대로 마음을 편히 가져야겠지. 하지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걸세.”

“아무렴요.”

어느덧 시간은 늦은 밤으로 흘러갔고 만찬 회장은 텅 비게 되었다.

그래도 끝까지 남아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술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바로 지드와 대원들이었다.

그들의 주량이 워낙 센지라 아직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 중 술이 가장 센 자는 바로 대장 지드와 육중한 체격의 비스크였다.

“오늘은 제가 지지 않을 겁니다.”

지드가 빙그레 웃었다.

“아무렴.”

“자, 이번으로 스물일곱 잔을 마셨으니 다음으로 건너가죠.”

“난 벌써 스물여덟 번째 잔을 준비했는데?”

“그새 한 잔 마셨단 말이오? 컥!”

비스크는 이만저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비틀거리는 상황에서 한계점까지 다다랐지만 대장은 아직까지도 멀쩡해 보이니 말이다. 어쨌든 비스크 역시 술잔을 입에다 갖다 대었고 28번째 잔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으니.

쿵!

지드의 승리였다.

대원들도 혀를 내둘렀다.

“와우, 술이 엄청 세시네요.”

공력이 초절정 상태인 그가 술을 마음대로 들이키는 일은 물 먹는 것보다 쉬웠으리라.

한편 부상 부위에 붕대를 잔뜩 감고 있는 지노는 아까부터 술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진짜 술 안 줄 겨!”

막내 아레스가 말했다.

“형님은 부상 중이라 안 된다니까요.”

“이런 치사한 놈들!”

“아무튼 다 나을 때까지 술을 입에다 대지도 마세요.”

“한 잔만 달라니까.”

“한 잔도 안 돼요.”

급기야 지노가 분통을 터트렸다.

“너희들끼리 잘 처먹고 잘살아라!”

그날, 지드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했다.

휘잉―

테라스 밖 난간에 서서 물끄러미 하늘을 우러러보는 지드, 전쟁은 끝이 났다지만 그의 전쟁은 아직 남아 있음에 마음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에르가니아

한순간도 그녀를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테세우스를 찾아서 그와 대결하고 반드시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데려오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어디서 그를 만난단 말인가.

지드는 그제야 후회하고 있었다. 며칠 전 전투 막바지에 테세우스를 끝까지 쫓아가서 그와 결판을 내지 못했다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뜨겁고 열렬했던 만찬회장의 분위기에도 내심 착잡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밤하늘에 유난히 별들이 많았다.

그는 한참 동안 허공을 응시한 후에야 내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스윽―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려는 순간 왠지 가슴이 답답해 옴이 느껴졌다.

아니 압박감이랄까.

이미 초고수가 된 그일지라도 이렇게 불길한 예감은 전에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때 들려오는 테라스 문이 열리는 소리.

스르륵―

휘잉.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내실로 들어왔고 지드는 누군가 침입했음을 느끼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달빛에 비추는 검은 그림자가 하나 보였으니 지드는 더 이상 망설일 것 없다는 듯 재빨리 선인갑을 차려입고 침대 머리맡에 놓은 선인도마저 챙겼다.

“누구냐.”

그가 외치자 이미 내실 한복판에 서 있던 정체불명의 존재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날세.”

“나라니!”

지드는 재빨리 등잔불을 밝혔고 상대가 누군지 확인 해 보았다.

순간 놀라고 말았으니 그는 전혀 예상치 않은 손님이 아니었던가.

“테…… 세우스.”

한밤의 침입자는 바로 테세우스였고 혼자서 지드의 숙소로 방문한 듯 보였다.

이에 지드가 초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선인도를 빼 들어 다시 외쳤다.

“뜻밖의 방문이군. 어차피 잘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찾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직접 나타나 주다니 고마운 일이군.”

그때 테세우스가 공격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바로 앞에 탁자 의자에 앉아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무엇이 그리 급한가.”

“급하다니?”

“물론 나는 자네와 대결을 위해 찾아온 것은 맞네. 하지만 그전에 목이 마른 데 술이나 한잔 먹고 얘기나 나누는 것이 어떤가.”

“…….”

지드가 그의 표정을 살펴보니 그저 한눈에 봐도 진심 어린 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지드 역시 공격 자세를 거두고 그가 있는 중앙 탁자로 걸어갔다.

“마침 탁자에 술이 있으니 그것으로 한잔 하세나.”

“잔이 없군.”

“내 가져옴세.”

곧이어 지드가 주방으로 가서 잔 두 개를 가져왔고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툭.

마치 둘은 오랜 친구처럼 서로 술을 따라 주며 마시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석 잔을 마신 테세우스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일단 축하 인사부터 건네주어야겠군. 자네 편이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서.”

“고맙네.”

“알다시피 내가 자네를 찾아온 것은 우리끼리의 전쟁을 끝내기 위함일세.”

“알고 있네.”

“이렇게 함께 술을 마시니 마치 친구 사이 같군.”

“동감일세.”

“자, 우리 한번 허심탄회하게 한번 얘기나 해 보세나. 애초 자네와 나의 운명은 이런 수순으로 끝이 날 거라 예상은 했는데 막상 그때가 오니 이거 기분이 묘하군.”

지드가 한숨을 쉬며 한마디 했다.

“후, 미안하네. 자네 연인을 해칠 생각은 애초 없었네. 나는 그저 살기 위해 공격했을 뿐이고.”

“…….”

테세우스는 지드가 그 옛날 지드가 네온을 제압한 사실을 말하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후. 그렇게 얘기해 주니 오히려 내가 고맙군. 허나 이미 지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게나. 그때 일을 복수하기 위해서 자네의 연인 에르가니아를 데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네.”

에르가니아 얘기가 나오자 지드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녀는 어디 있나.”

“떠나보냈네.”

“떠나보내다니!”

“자넨 행복한 사람일세. 내가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그렇게도 노력을 했건만 오로지 자네밖에 없더군. 그래서 결국 가고 싶은 대로 풀어 주었지. 아마 자네를 만나러 피체 왕국으로 간다고 그랬었지.”

그가 에르가니아를 풀어 주었음에 지드는 내심 놀라기도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드가 진심으로 그에게 말했다.

“고, 고맙네.”

“고맙기는…… 나는 나를 원하지 않는 여자는 절대 데리고 있지 않는 성격이네. 그것도 남의 여자를 말일세. 그나저나 벌써 술을 다 마신 것 같은데.”

“그럼 시작할까.”

“조금 서두르는 것 같군.”

“풀어야 할 건 풀어야 하겠지.”

“하기야 나를 제압해야지만 그토록 그리던 에르가니아를 만날 수 있을 테니 자네의 마음이 애가 타 있겠군.”

“솔직히 사실이 그러하다네.”

“그럼 대결 장소는…….”

“사람들이 많은 이곳은 피하지.”

“어디 좋은 곳이라도 아는가.”

“적당한 곳이 있네.”

그때 지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따라오지.”

“…….”

***

사방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악 지형이었다.

이곳은 황궁 뒤편에 있는 제법 커다란 바위산 정상 위 부분으로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지드와 테세우스가 대결을 이루기에는 아주 적당한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휘잉―

한차례 광풍이 몰아치니 두 대결자들의 머리카락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참으로 긴장 된 분위기였다.

각자 초절정의 전투 기술을 보유한 그들이기에 자신감들도 각자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본다면 그리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테세우스가 바로 앞에 이상한 복장과 검을 들고 있는 지드를 바라보며 궁금한 듯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자네 힘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토록 짧은 시간에 강대한 힘을 이룰 수 있었는가. 설마하니 한나가 제압당하리라고는 끔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지드가 오히려 되물었다.

“무엇이라 생각하나.”

“…….”

테세우스가 잠시 말문을 잇지 못하자 지드가 계속 말했다.

“사실 내 원천의 기술은 다른 세상으로부터 기인된 것으로 볼 수 있네.”

“다른 세상이라니.”

“설명하자면 길지.”

“내가 알기로는 레온과 마찬가지로 공력 기술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데.”

지드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것만 가지고는 자네를 상대할 수가 없겠지. 어둠의 여신 또한 제압할 수 없었을 테고. 혹시 무공에 대해서 들어봤는가.”

“무…… 공…… 이라니.”

다른 나라 언어여선가.

발음하기도 어려웠다.

“하기야 모를 테지. 나 역시 처음에는 황당한 생각을 가졌으니 말일세.”

“어쨌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전투 기술임에는 틀림없겠군.”

“선계의 힘을 잠시 빌려 쓴다고 보면 된다.

“선계라니? 그건 또 무슨 뜻이지.”

“역시 설명하기 어려운 말이다.”

“알 수 없는 말만 하는군.”

이번엔 지드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기술은 어디로부터 기인된 것인가. 처음에는 다크퍼스 소환기술을 사용하는 하다가 이제는 그것조차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은데.”

“내 힘의 원천은 흑운성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

“흑운성?”

“내 아버님이 그랬듯이 이제는 그 뒤를 이어 내가 암흑의 권능을 지녔다고나 할까.”

“혹시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북부 대륙을 휩쓸었던 흑마술 군단의 총사령관이 바로 자네 부친이란 말인가.”

“그렇다.”

“그렇게 본다면 자네가 그 힘을 얻은 것이 어찌 본다면 숙명적이라 할 수 있겠군.”

“잘 보았네. 나는 원래 타고난 운명대로 살고 있는 셈이지.”

“…….”

지드는 잠시 입을 다물고 그가 착용한 청동 빛 군장과 청동 검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무심코 말했으니.

“군장과 검 한번 멋지군.”

테세우스가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것들 역시 잠시 후면 자네를 제압할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걸세. 그나저나 자네 역시 묘하게 생긴 검과 군장을 착용한 듯 보이는데.”

“보기에는 이래 뵈어도 자네 것에 비해 결코 만만치 않을 걸세.”

“그렇다면 기대해 보지.”

“얼마든지.”

“서론이 길었지? 슬슬 시작할까.”

“좋다.”

테세우스가 먼저 청동 검을 뽑았다.

슥―

그러자 지드 역시 선인도를 빼 들었다.

착!

그때 다시 들려오는 테세우스의 음성.

“단 한 번의 격돌로 승부를 내면 어떻겠는가.”

“무슨 뜻이지.”

“어차피 자네와 내 능력은 강대한 수준이니 여타 잔기술 따위는 쓰지 말고 승부수를 띠우자 그 말일세.”

“그거 좋은 제안이군.”

“그럼 시작하지.”

“자네부터 하게나.”

“동시에 하는 것이 공평하다 생각지 않는가.”

“그럼 그렇게 하자고.”

그 둘은 말이 끝나자마자 검들을 들어 하늘로 향했다. 우선 테세우스의 진영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만 천둥과 번개가 쳤다.

번쩍―

우르릉! 쾅!

쏴―!

세상은 어두컴컴해졌고 때 아닌 장대비마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여파는 지드가 있는 주변 지역에서는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지드의 선인도로부터 빛이 뿜어 나와 주변을 청명한 날씨로 유지시켜 주고 있었던 것이다.

쨍!

정말이지 그 누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어찌 어둠과 광명이 이처럼 극명하게 대립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때 테세우스가 크게 외쳤다.

“어둠의 힘이여! 내가 들고 있는 이 청동 검에 모든 힘을 모으리라.”

지드 역시 뭐라 크게 외쳤다.

“선계여! 그곳의 힘을 빌려 저 암흑의 세력을 물리치고자하니 나를 도와주소서.”

번쩍!

테세우스의 청동검 주위로 어둠의 안개가 소용돌이치듯 빨려 들어왔다.

슈슈슈슈슈―

순간 그의 몸이 일순간에 확 거대해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지옥에서 온 거인 전사처럼 말이다.

쿵쿵!

그 거대한 덩치가 검을 앞세워 지드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지드는 역시 허공으로 검을 휘둘러 빛의 힘을 모았다.

파파파팟!

그의 주변으로 무수한 섬광이 일어났고 선인도가 눈부시게 빛이 났다. 그 역시 저 앞서 돌진해 들어오는 테세우스를 향해 돌격했다.

타다닥!

곧이어 둘 사이에 엄청난 충돌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천지가 요동칠 대단한 격돌이었다.

청동검과 선인도가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일었고 그 여파로 대지가 흔들렸다.

“이얏!”

슥!

“헉!”

붕!

“에잇!”

비록 테세우스가 거대해진 체구라지만 놀랍게도 지드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백중세를 이루었다.

테세우스가 놀라 외쳤다.

“나를 상대로 이 정도일 줄이야!”

지드가 응수했다.

“뭘 이걸 가지고 놀라기는.”

타다닥

“이얏!”

지드가 지면을 박차고 고공으로 올라 수직 일 검을 날렸고 이에 테세우스가 청동검으로 그의 검을 막았다.

둘은 이미 얼굴에 땀방울 맺히고 초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때 테세우스가 갑자기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짓더니만 이상한 자세를 취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

착착착착!

갑작스레 그의 군장이 변형을 일으켜 등 위로부터 금속 날개가 확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휘리리릭!

슈슈!

그와 동시에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지드는 닭 쫓던 개 모양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상공의 한 점이 되어 버린 그이 모습을 확인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선인갑을 착용한 그로서 가만히 지켜볼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면 나도!”

도약 한번으로 순식간에 백여 미터 상공으로 치솟아 오른 지드, 어느새 테세우스가 그의 코앞에 있었다.

“구름 뒤에 숨으면 내가 못 찾을 줄 알고?”

이에 믿기지 못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테세우스.

“자네도 날 줄 알았나. 세상에 어떻게 날개도 없이…….”

“자! 이제 2차전을 시작해 보세나.”

“…….”

챙!

창!

파팟―

두 번째 격돌은 한마디로 공중전이었다.

뭉게구름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검들을 부딪치는 두 명의 전사.

그 누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아마도 천계 전사들끼리 경합이라도 벌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얏!”

삭―

“헉!”

공중전 역시 백중세를 유지했다.

그나마 날개를 지닌 테세우스가 자유로이 고공비행을 하면서 보다 많은 기술을 펼칠 수 있었던가.

하지만 지드는 공중에 그렇게까지 오래 머물 수가 없었으니 그저 도약의 힘으로 잠시 머무른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지면으로 낙하하는 지드.

“잠시 후에 다시 보자.”

슈슈슈슈―

빠른 속도로 하강하는 지드, 그를 위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테세우스의 얼굴이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이때가 기회이다.’

그는 이미 지상으로 내려가서 저 밑의 한 점이 되어 버린 지드를 향해 급속도로 향했다.

휘리리릭―!

내려가는 가속도를 이용하여 그를 단번에 박살 낼 의도였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드는 한번 내려간 지상에서 다시 도약할 생각이 없었는지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다.

파파파팟!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지드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순간이었다.

그때 들려오는 테세우스의 음성.

“이제 결판을 내겠다!”

그러자 지드 역시 짧게 말했다.

“나도!”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상공 어디에선가 섬광이 일었다.

번쩍―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으니 한줄기 번개가 지면에 거의 다 내려온 테세우스를 내리친 것이 아닌가.

그 충격으로 그는 강하게 튕겨 나갔고 근처 절벽에 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콰쾅!

우르르!

그 충격이 어찌나 컸는지 능선 한쪽이 허물어졌고 바위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잠시 시간이 흘러 먼지가 제거되자 상황은 잠잠해졌다.

지드가 급히 그쪽으로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지점, 바로 그곳에 테세우스는 온몸이 까맣게 탄 채 두 눈을 뜨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는 숨을 거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

그제야 지드 역시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털썩!

승부는 지드의 승리로 끝이 났다.

같은 시각.

스카치오 제국 아라퀘스의 숙소에서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라퀘스는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테라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휘잉―

시원한 밤공기가 얼굴을 관통이라도 하는 듯 차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가슴은 갑갑했던가.

“왜 이러지…….”

그는 문뜩 난간 아래 정원을 바라보았다. 헌데 누군가 멀뚱히 서서 있는 것이 아니던가.

비록 달빛 아래라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낯이 무척 익은 얼굴이었다.

수초도 흐르지 않아 깜짝 놀랐으니 정체불명의 존재는 바로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 게토였다.

“게토!”

아라퀘스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분명 게토가 틀림없었다.

헌데 게토는 어깨가 축 늘어지고 힘이 빠진 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

“게토! 너 게토 정말 맞지.”

“…….”

아라퀘스는 혹시나 자신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지하고 눈을 비비며 다시 살폈다. 비록 수년 전 헤어져 청년으로 커 있다지만 자신의 동생이 틀림없었다.

“게토! 네가 웬일이냐.”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게토 뒤에서 나타나 그의 뒷덜미를 잡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아라퀘스는 어리둥절한 채 당장 2층 테라스 위에서 뛰어내려 그쪽으로 달려갔다.

타다닥!

“게토!”

방금 전까지 동생이 서 있던 자리를 서성이는 아라퀘스.

도대체 누가 갑자기 나타난 동생을 끌고 갔단 말인가. 그때부터 아라퀘스는 정원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진짜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내가 헛것이라도 본 것일까.”

그때 어디선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을 찾고 싶거든 정원 맞은편 숲속으로 오너라.”

곧바로 반응하는 아라퀘스.

“누, 누구냐.”

“내가 자네 동생을 데리고 있다.”

“대체 누구냐니까!”

“…….”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아라퀘스는 방금 전 음성대로 숲속으로 재빨리 향했다.

찌르르―

가을 밤 풀벌레들이 정신없이 울어 대었다. 그 가운데 수풀을 헤치고 동생을 찾아 해매는 아라퀘스, 어느 지점에 이르자 제법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근처 바위에 어슴푸레한 2명의 존재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 둘의 모습은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달빛 아래 바위 위의 두 존재들 중 하나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동생 게토였고 그 옆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함께 있었다.

그가 말했다.

“용케도 찾아 왔군.”

아라퀘스는 일단 동생의 안전을 살펴보고 다급하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기에 제 동생과 함께 있는 거요!”

“인질로 데리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군.”

“인질이라니!”

그러자 사내가 직접 대답하는 대신 게토에게 말을 건넸다.

“자, 네가 설명을 해 주어라.”

그제야 말문을 여는 게토.

“형!”

“게토! 대체 어찌된 영문이냐!”

“나 진짜 인질로 잡혀 있어. 형하고 흥정하기 위해서 나를 데리고 온 거야.”

“흥정이라니.”

“여기 이 사람 말이야. 사실은 나카스니아 대륙에서 온 용족 대장 나르시오스인데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서 알고 싶대.”

“나, 나르시오스!”

“그 말에 아라퀘스가 소스라치듯 놀랐다. 아버지에게 얼마나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이름이던가.

그 옛날 아버지와 인연을 맺었었다는 신성 아케이튼의 아들 나르시오스, 그가 훗날 불사의 용으로 무적을 자랑하는 강대한 힘을 얻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가 자신의 동생을 잡고 이곳으로 찾아올 줄은 정말 몰랐었다. 이번엔 나르시오스가 직접 말했다.

“자! 대충 내용을 들었다면 대답을 해 보실까.”

“대답이라니!”

“자네 아버지 아독에 대한 행방을 말해 보게나. 그는 지금 어디 있지.”

그러자 게토가 껴들었다.

“형, 얘기하지 마! 이 자는 아버지한테 복수하기 위해 행방을 묻는 거야.”

“복수라고……?”

순간 나르시오스가 게토의 입을 틀어막았다.

스윽―

“웁!”

“이보게, 아라퀘스. 지금 당장 자네 아버지의 행방을 말하지 않으면 동생의 숨이 끊어질 걸세.”

“아, 안 돼.”

나르시오스의 손이 게토의 코와 입을 막고 있었으니 결코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웁! 웁!”

아라퀘스가 절규하듯 외쳤다.

“제발 동생을 놔주시오!”

“아독의 행방을 알려 주면 그렇게 해 주겠다.”

“…….”

아무런 대답이 없자 나르시오스의 음성이 거칠어져 갔다.

“진짜 동생이 죽는 꼴을 보고 싶다 그 말인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가 게토의 목을 비틀려는 순간이었다.

“에잇!”

“잠깐만요!”

“뭔가.”

“아버님은 아스티안 신전에 계십니다.”

“아스티안 신전이라고.”

그제야 나르시오스는 꽉 붙잡고 있던 게토를 느슨하게 놔주면서 다시 물었다.

“정말인가.”

“그렇소.”

“거긴 왜 있지.”

“차원의 틈새를 막으시려고요.”

“차원의 틈새라…….”

나르시오스는 이제 납득이 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이제 동생을 놔주시오.”

“어차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자네 동생과 정이 좀 들었었거든. 후후.”

그는 정말 게토를 순순히 풀어 주었다. 그리고 사라지는 형체.

“아무튼 고맙네. 이제야 아독을 만날 수 있겠군.”

팟!

곧이어 아라퀘스가 게토를 부축해 일으키며 그를 살폈다.

“게토!”

“형.”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만지며 감격의 포옹을 했다.

***

그 이튿날 이른 새벽.

지드의 방문을 황급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드가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물었다.

“누구냐.”

“저! 아라퀘스입니다.”

“새벽부터 웬일이지?”

“저기…… 드릴 말씀이.”

“일단 들어오게나.”

곧이어 숙소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라퀘스, 한데 그의 옆에는 앳된 청년이 서 있었다. 지드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옆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아라퀘스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말문을 열었다.

“제 동생입니다.”

“갑자기 동생이라니.”

“지난밤에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혼자서 말인가?”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저기 일단 자세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거기서 서서 있을게 아니라 여기 의자에 앉아서 얘기하지 그러나.”

“아,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아라퀘스는 지난밤에 겪은 얘기들을 모두 말했다. 이에 지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소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을 했다.

“불사의 용 나르시오스라니…… 대체 그건 또 뭔가.”

“현재 나카스니아 대륙의 용족 대장이자 통치자입니다.”

“나카스니아 대륙이라고.”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드, 사실 그 세계에 대해서 얼핏 들은 적은 있지만 자세히 모르는 그로서는 아라퀘스의 말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아라퀘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일단 제 사정 말씀을 드리기 전에 나카스니아 대륙의 관한 역사와 오늘날까지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좋네. 말해 보게나.”

잠시 후 아라퀘스의 설명이 이어졌고 지드는 무척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의 말에 경청했다. 그렇게 해서 대략 한시각이 지났을까.

그의 말을 모두 들은 지드로서는 이만저만 신기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아라퀘스의 말 내용을 요약하자만 다음과 같았다.

***

대지의 왕인 네키르는 태초에 나카스니아 대륙에는 인간이란 종족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인간 대륙으로 통하는 입구가 바로 이곳 극단 지역에 열림으로서 인간이 나카스니아 대륙에 최초로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나카스니아 대륙의 원주인은 용족과 마물들이 틀림없었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공존의 법칙을 만들고 함께 삶을 영위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곧고 단순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용족은 다소 거친 기질에 그 능력마저 엄청나니 자연스럽게 수많은 마물들의 제왕으로 우뚝 솟아오르게 되었다.

그 후 시간이 점차적으로 흐르면서 용족은 명실상부한 나카스니아 대륙의 패권 종족으로서 강력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다른 마물들의 삶마저 자신들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했던 것이다.

이에 마물들은 용족이란 강자 앞에서 한없이 위축이 되어 반항 한번 못해 보고 그들의 노예 혹은 시종, 심지어 식량의 역할까지 하면서 비참한 위치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가. 용족의 오만은 점차적으로 놓게 쌓이면서 결국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저 위대한 신의 영역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나카스니아 대륙의 관장인 대장의 왕 네키르는 용족의 세력이 너무나도 확장되었음을 알고 오랜 고심을 하였다.

결국 용족의 천적인 태드칸 익룡을 창조하기 이르렀고 한 시적이나마 용족의 세력을 퇴보시키거나 둔화토록 해주는 효과를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용족의 잠재력은 진정 대단했다. 설마하니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신성을 스스로 창조할 줄은 전혀 예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용족의 모든 잠재력을 힘으로 표출할 수 있는 황금용. 그들 용족은 절대적인 군주를 일컬어 신성이라 불렀다. 또한 신성은 용족의 강력한 군주로서 그 세력을 더욱 넓혀 갔다.

테드칸 익룡이 제아무리 강력하고 두려운 천적이라지만 신성을 중심으로 모든 용들이 똘똘 뭉쳐 대항하니 오히려 익룡들이 소멸 당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에 대지의 왕 네키르는 너무나 커져 가는 용족의 세력을 막기 위해 또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 고민과 반항 끝에 한 가지 기가 막힌 묘안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용족과 버금갈 정도로 오만하고 끈질긴 종족이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견제 세력을 만들면 그동안 끙끙 알아왔던 일은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카스니아 대륙에는 용족을 능가하는 종족이 전무했으니 결국은 다른 차원 세계에서 강력한 종족을 찾아야만 하였던 것이다.

태초에 나카스니아 대륙이 형성단계에 이를 무렵, 신들은 북쪽 극단 지방에 여러 차원으로 갈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두었었다.

훗날 신의 계보를 이어받은 네키르가 그와 같은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고 그는 결국 이곳 극단 지방의 차원 통로로 와서 다른 세계의 종족들을 하나 둘 살펴보기로 하였던 것이다.

과연 누가 용족의 힘을 견제 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네키르는 드디어 적당한 종족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인간.

그들은 인간이라 불리는 존재들로서 그 외모나 사고방식 등은 흡사 태초의 만물을 창조한 신에 가장 가까운 영장류였던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종족이었다.

신의 외모를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은 아주 하찮은 하등 동물에조차 미치지 못하니 도대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잠재력이 뭔지 그게 궁금했던 것이다.

워낙 신중했던 네키르는 오랜 시간을 두고 인간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점차적으로 시간이 가면서 네키르는 인간에 대해 놀라고 또 놀라야만 했다.

가장 나약한 종족들이 도구를 이용하여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기 시작하니 말이다. 게다가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점차적으로 다듬어져 갔으니 나중에는 정교한 모양의 병기로 완성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한 다른 종족들에게는 없는 창조력, 단결력, 이성적 논리, 심지어 연금술 같은 마법까지 그 영역을 확장시키니 마치 신이 자신의 모습을 닮은 아류를 창조해 낸 종족처럼 보였던 것이다.

결국 네키르는 오랜 시간 끝에 인간들이야말로 용족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라 생각했고 바로 이곳 극간 지방 거대한 바위산 내부 드넓은 공간에 인간 대륙과의 연결 통로를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 세계가 연결이 되었고 처음 얼마간은 네키르의 교묘한 의도에 의하여 수많은 인간들이 멋모르고 나카스니아 대륙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최초로 이곳에 발을 디딘 인간들은 처음 대해 보는 마물들과 용족을 보고 혼비백산했지만 그들만의 적응력과 끈질긴 투혼, 그리고 단결력으로 삶의 방어력을 서서히 높여 왔던 것이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비록 용족이나 마물들에게 적지 않은 희생이 있었지만 인간 종족 역시 나름대로 힘을 비축해 왔으니 결국에는 청동전사 케이스탄 같은 걸출한 영웅까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야 어찌 되었던. 오늘날 아독과 나카스니아 현자, 수많은 인간들이 최후의 성지로 여기는 이곳 극단 지방의 바위 요새가 바로 태곳적 대지의 왕 네키르가 거대한 차원 통로를 열어 두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그 통로가 막혀 있었다.

아마도 두 세계 간의 접촉으로 인하여 일어날 대혼돈을 피하고 그 통로를 철저히 차단하기 위한 네키르의 의도가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훗날 알고 보니 네키르의 정체는 아독의 아버지 나카스니아 현자였고 인간들을 원래의 인간 세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각본을 꾸몄던 것이다.

물론 그의 조력자로서 아독이 큰일을 해냈음이 틀림없었다.

차원의 통로를 막았다고 확신한 네키르는 그 자신의 죄업을 씻기 위해 어둠의 종족에 심장을 받쳐야만 했고 아독과 나카스니아 주민들만이 인간 세계로 귀환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차원의 통로는 정령들의 아스티안 신전에 또 하나가 더 있었던가. 세월이 점차 흐르면서 그 틈새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정령왕 아스티안은 부랴부랴 아독에게 도움을 청했고 현재 벌어지는 차원의 틈새를 막기 위해 그곳에 가 있다고 그랬다.

헌데 용족 대장 나르시오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심각한 부상에 빠트린 아독에게 복수를 위해 그를 찾아다니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마침 지난밤 장남을 찾아내고 그의 행방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리고 아라퀘스는 지드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이른 새벽부터 이곳을 방문했던 것이다.

***

지드가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나더러 위험에 빠진 자네 아버님을 구해 달라 그 말인가.”

아라퀘스가 단번에 대답했다.

“네.”

지드가 손을 들어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심했다.

“흠.”

“제발 저와 함께 그곳으로 가서 불사의 용을 막아 주시기 바랍니다.”

“…….”

잠시 후에야 지드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나카스니아 대륙이라면 대체 어떻게 가야 하지.”

순간 아라퀘스의 화색이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제게는 그곳으로 이동하는 귀환서가 두 장 있습니다. 당장 그리로 가시죠.”

“지금 말인가.”

“한시가 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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