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시정(市政) 과외.
결과적으로, 송두진과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송두진의 집은 물론, 그 동네 슈퍼 막걸리를 동내다시피 하며 이어진 술자리 막판에 도훈은 원하던 이야기를 끝내 들을 수 있었으니까.
“내가 알기로 이OO, 김XX, 서@@, 김$$은 여당이랑 친하고, 야당이랑 친한 사람들은···.”
시청 간부들의 성향과 일부 간부들의 정치권 줄 대기에 대한 일목요연한 ‘강의’를 들은 것만으로 훌륭한 성과였다.
하지만 성과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부하고 싶거나 물어볼 게 있으면 언제든 와. 대신 끝나고 마실 막걸리랑 안주는 알아서 조달해 오도록.”
도훈, 영배가 연달아 던지는 시정 관련 질문에 충실히 답하더니 술자리를 파하며 송두진이 했던 말.
단답형으로 일관하던 양반의 그런 전격적인 태세 전환에 영배가 그 이유를 물었고, 송두진이 탄식하듯 답했다.
“내가 개에 약해.”
“예?”
“내가 개에 약하다고. 특히 셰퍼드.”
“......”
뚱딴지같은 말에 이어진 그의 설명은 이랬다.
어려서부터 개, 그중에서도 셰퍼드를 특히 좋아하던 송두진은 그림 같은 잔디밭이 있는 집에서 셰퍼드를 키우는 게 오래전부터 꿈이었단다.
그래서 공무원 박봉을 알뜰살뜰 모아 마당 넓은 주택으로 이사했는데, 가족들이 꿈의 실현을 도와주질 않았다나?
“저 안에 있는 고양이 다섯 마리, 다 길냥이들이었네. 이 집에 이사 온 뒤 우리 딸들이 불쌍하다고 한 마리씩 집에 들이기 시작했지. 원래는 더 많았는데 다른 집에 입양 보내고 더러는 나이 들어 죽고 다섯 마리가 남았어.”
지금은 외지에 사는 송두진의 두 딸이 받아들인 고양이들.
덩치 큰 셰퍼드가 있으면 그 고양이들이 위험할 수 있다고 딸들이 난리를 쳐서 송두진은 꿈(?)을 실현하지 못했단다.
“작은 개를 잠시 키웠던 적도 있지. 그런데 고양이들 등쌀을 견디질 못하더라고. 그렇다고 쪽수에 밀리지 않게 개도 ‘떼’로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잖나.”
‘개 아빠’ 그중에서도 ‘셰퍼드 아빠’를 꿈꾸던 송두진은 그렇게 강제적으로 ‘고양이 아빠’가 됐단다.
딸들이 대학과 직장 때문에 독립해 나갈 때마다 고양이 데리고 가라고 항의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질 않았다나?
“... 그래서 나랑 와이프가 키우고 있지. 쟤들 사룟값이랑 병원비 같은 건 딸들에게 받아. 허허, 우리 용돈은 몇 번 받아 본 적이 없네만, 고양이들한테 들어가는 돈은 단 한 번도 빠트린 적이 없다네.”
이제는 철든 딸들도 부모님께 진심으로 죄송해하고는 있다는데, 한번 품에 안은 생명을 내쫓을 수는 없는 일.
송두진은 ‘개 아빠’의 로망을 가진 ‘고양이 아빠’.
도훈이 아무 생각 없이 꺼낸 그림 같은 마당과 개 이야기, 뒤이어 보게 된 사진에 마음이 흔들렸단다.
“개 키우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말이 있거든. 뭐, 꼭 요즘에도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이건 송두진이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였고, 진짜 이유는 송두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비밀엄수를 전제로 그의 부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바깥양반이 선거운동 때부터 시장 총각 마음에 들어 했어요. 그 양반 말이 최소한 저놈은 표 얻으려고 사기는 안 친다나? 하여튼, 저 양반 성화 때문에 나도 시장 총각 찍었잖아요.”
여하튼, 그렇게 아주 어이없는 이유(?)로 도훈은 송두진의 철벽 방어를 허물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사실, 도훈이 송두진에게 고문 역할만 바랬던 건 아니었다.
수요일 오후의 만남 이후로도 영배와 저녁마다 찾아가길 계속해 오늘로 나흘째.
두 딸이 독립해 나간 뒤 부부만 살아 적적했다며, 송두진의 부인이 도훈과 영배를 무척 반겨 매일 찾아갈 수 있었다.
오늘도 송두진의 집 평상에는 한 차례 열띤 과외를 마치고 도훈과 영배, 송두진에 그의 부인까지 네 사람이 도훈과 영배가 포장해 간 회를 중심으로 한 저녁상을 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방금 도훈은 그간 혼자만 생각하고 있던 말을 드디어 꺼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아주 격렬했다.
모두가 동시에 말문을 잃었으니까.
깜빡, 깜빡.
“... 자네, 방금 뭐라고 했나?”
현실감 없는 표정으로 눈만 깜빡이던 송두진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고, 도훈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비서실장을 맡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뭐, 뭔 실장? 비서실장? 내가?”
“예, 선생님.”
“......”
멍한 송두진, 왠지 눈이 초롱초롱해진 그의 부인.
반응이 가장 의외인 것은 도훈 옆에 앉은 영배였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 뭐?”
“좋은 생각이라고요.”
“... 비서실장 내정자는 자네 아니었나?”
“하하, 맞긴 맞는데 저보다 송 선생님이 더 적임자라는 생각이 팍 꽂히네요!”
“......”
“왜 제가 이 좋은 생각을 빨리 못했을까요! 하하하.”
“... 기분 안 나빠?”
“전혀요! 하하하!”
엊그제부터 시청에 마련된 인수위 사무실에 도훈과 함께 출근하기 시작한 영배.
자료를 공부하고 직원들도 만나고 회의도 하며 보낸 요 사흘간 그가 내린 결론이 있었다.
아직, 자신은 역부족이라는 것.
시정에 임하면 어차피 시행착오를 거치게 될 테지만, 가능한 그걸 줄여야 할 터.
이론과 자료에 빠삭하다지만 시장이 초짜인데, 이론과 자료에도 빠삭하지 못한 자신이 비서실장을 맡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절친이라면서, 돕겠다고 했으면서 오히려 자신이 도훈의 약점이자 위험 요인이 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도훈의 갑작스러운 말에도 전혀 기분이 나쁘질 않았다.
“장난은 아닌 것 같고···.”
“절대 아닙니다.”
송두진이 얼굴에서 멍한 표정을 걷어내고 말을 이었다.
“내가 요즘 몸이 허···.”
“선생님 건강은 이미 사모님께 확인했습니다.”
“... 해서···.”
“약 하나 드시는 것 없는 건강 그 자체라고 하시더군요.”
“......”
말문을 잃은 송두진의 시선이 부인을 향했고, 부인은 가만히 그걸 외면했다.
잠시 그렇게 부인을 바라보던 송두진이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이유나 들어보자!”
도훈이 빙긋 웃고는 입을 열었다.
“시장과 비서실장이 둘 다 시 행정에 초짜에 문외한이어서는 안 됩니다.”
“... 그래서?”
“저는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면, 시 행정에 빠삭한 분을 고문으로라도 모시고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퇴직한 분들을 찾아뵀고 송 선생님도 만나게 됐죠.”
“...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셋 중에 왜 하필 나인가?”
“까칠하시니까요.”
“... 뭐?”
송두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그의 부인과 영배가 웃음이 터지려는지 얼른 입을 막고 고개를 돌렸다.
“커험! 까, 까칠한 게 뭐가 어때서?”
“그러니까요.”
도훈이 또 빙긋 웃고는 말을 이었다.
“간부들의 평가를 통해 선생님이 이익에 따라 줄을 서거나 부화뇌동하는 분이 아니라는 건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까칠하다는 얘기를 들으신 거죠. 거기서 큰 플러스 점수가 있었습니다.”
“... 쯧쯧, 공무원에게 까칠한 건 장점이 아니야. 공무원 생활의 최우선 원칙은 바로 적을 만들지 않는 거야. 그래야 누구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거든. 아쉽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네만.”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어떻게?”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건 자신을 숨기는 게 능숙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야 상대가 바뀔 때마다 그에게 맞춰줄 수 있을 테니까요.”
“... 그럴 테지.”
도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공무원 사회에도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 절대 넘어서면 안 되는 선 같은 게 있을 겁니다. 맞습니까?”
“그럼, 당연하지.”
“그런 걸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조화가 아니라 대립을 선택할 수도 있겠죠. 아니 선택하는 게 맞겠죠.”
“... 흠.”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건 일방적으로 상대를 따라가는 아주 수동적인 태도입니다.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
“옳은 건 옳다고 그른 건 그르다고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공무원 조직이 지난 대통령의 몰락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 흠.”
송두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도훈이 말을 이었다.
“사실, 대흥시 공무원 전원에게 그런 수동적 태도를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아마 요구해도 안 될 테고요.”
“... 그런데?”
“제 생각에는 시청 공무원 중에 그런 태도를 견지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가 최소한 둘 있습니다.”
“... 그게 시장과 비서실장이라는 건가?”
“네. 행정가임과 동시에 혁신가여야 하니까요. 더 늘어나면 좋겠지만, 간부들이 어설프게 흉내 내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겁니다.”
“... 그래서?”
도훈이 다시 빙긋 웃고는 말을 이었다.
“요 며칠, 시청 직원들에게 선생님을 포함해 저희가 만난 분들의 평을 들었습니다. 다른 두 분에 대해서는 흐릿하고 무던한 말뿐이었습니다만, 선생님의 평가는 호불호가 나뉘더군요. 그리고 젊은 직원들일수록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습니다.”
“......”
“송 선생님의 원리 원칙적인 면을 젊은 후배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 그런가?”
“네. 선생님이 비서실장이 되시면 당연히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겁니다.”
“......”
겸연쩍은 표정이 된 송두진에게 도훈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분들은 선생님처럼 저희를 대하지 않으실 거거든요.”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선생님이 보시기에 저희가 시장, 비서실장으로 눈에 차십니까?”
“자네들? 택도 없지!”
단호한 송두진의 말에 영배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도훈이 또 빙긋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요. 비서실장이 되시더라도 저희를 그렇게 보시고 조금이라도 멀쩡한 시장, 직원이 되게 하려고 신경 쓰실 것 아닙니까?”
“... 글쎄···.”
“다른 분들은 매사에 좋게좋게 점잖게 임하실 테니 애초에 탈락이지만, 송 선생님은 아니죠.”
“... 자네들이 요구하면 그 사람들도 달라질걸?”
“원래 그렇게 하시는 분이 있는데요, 뭐.”
“... 끄응. 나 고양이들 밥 주고 올게.”
얼굴을 확 일그러뜨린 송두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부인은 도훈과 영배의 밥그릇에 반찬을 올려주며 입을 열었다.
“얼른 먹어요. 배고플 텐데.”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이거 총각들이 사온 거잖아.”
“하하, 그렇긴 하지요.”
“그나저나 우리 시장 총각이 이렇게 말을 잘하는지 난 오늘 처음 알았네?”
“얘가 원래 필요할 때가 아니면 말이 별로 없어요, 사모님.”
“그러니까! 인터넷에 보니까 ‘똘아이’라는 말이 많던데 전혀 아니었어!”
“... 하하.”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는 도훈에게 송두진의 부인이 배시시 미소 지었고, 푸근한 그 미소에 도훈도 격의 없이 웃었다.
“그런데 우리 남편을 고른 이유는 그게 다인가요?”
“... 부족하세요?”
“아니, 그건 아닌데··· 왠지 더 있을 것 같아서 말이에요.”
“음···. 한 가지 더 있긴 합니다.”
“어머, 그게 뭔가요?”
송두진의 부인이 눈을 반짝였고, 영배가 흥미로운 표정이 됐으며, 저만치 현관 앞에 선 송두진의 귀가 쫑긋 솟았다.
“... 사실, 제 아버지도 퇴직한 공무원이십니다. 경찰관이셨거든요.”
“어머, 그래요?”
“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30년 넘게 근무하시면서 모은 재산도 거의 없고 승진도 두 번밖에 못 하셨지만요.”
“... 그래서요?”
부인의 질문에 도훈의 눈빛이 어딘가 그윽해지더니 담담히 말을 이었다.
“송 선생님이 저희에게 과외 하실 때, 마치 퇴직 전의 제 아버지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 아.”
“뭐, 그랬습니다. 하하.”
“......”
감동한 듯 도훈에게 말없이 따스한 눈빛을 보내는 송두진의 부인.
머쓱한 표정으로 그 시선을 피한 도훈이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 들렸겠죠?’
- 오냐. 분명히 들었다.
‘... 휴우.’
- 자식, 너 글만 좀 쓰는 줄 알았더니 연기에도 소질 있다?
‘......“
전부 연기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도훈은 굳이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인재 영입을 위한 도훈의 간절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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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낮, 전북 어느 시골 마을.
“택배요!”
“나가요.”
택배 기사로부터 종이상자를 받아 든 도훈의 아버지 김인식 씨.
“... 뭘 보낸 거야?”
아들이 보낸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한 김인식 씨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놈의 자식이 아비는 안 챙기고···.”
컹!
컹컹!
“... 시끄러, 이놈들아.”
눈치 빠른 셰퍼드 두 마리가 맹렬히 꼬리를 흔드는 가운데, 도훈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김인식 씨가 개 간식이 가득 찬 종이상자를 들고 어처구니없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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