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下.
월요일 아침, 대흥시 유서면 어느 고급 전원주택.
식탁에 네 사람이 앉아 말이 없는 가운데, 가사 도우미가 상차림을 마무리하고 자리를 떴다.
“드세요.”
“... 흠.”
안주인의 말에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남자.
나이는 70이 넘었지만, 워낙 몸에 좋은 걸 잘 챙겨 먹고 살아서 그런지 10살은 젊어 보였다.
숟가락을 드는 안주인도 60대였지만, 관리를 잘 받아 그런지 피부가 팽팽했다.
어른 둘이 식사를 하지 않고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어 눈치를 보던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어서 드세요, 아버님, 어머님.”
“......”
“손 가는 반찬이 없으세요? 아줌마한테 뭣 좀 더 만들라고 할까요?”
“... 아니다. 먹자.”
나이 든 남자가 무뚝뚝하게 말하고 국을 떴고, 뒤이어 다들 식사를 시작했다.
얼마간 다들 말없이 밥만 먹다가 내내 조용하던 노부부의 아들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 시장이랑 친한 것 맞아요?”
“... 맞아.”
“그런데 왜 전화를 안 받는데요?”
“보통 일이 아니니까 그런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친한 어른이 몇십 번씩 전화하는데 계속 씹는다는 건···.”
“어험!”
나이 든 남자, 나경태가 헛기침하자 아들 나영철이 입을 다물었다.
“왜 애꿎은 엄마한테 신경질이냐? 너도 끝내 시장 못 만났잖아?”
“... 그게···.”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나경태의 좀 엄한 말에 나영철이 입을 다물었다.
장혜란을 통해 시장을 만나려고 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금요일부터 직접 나영철이 나섰다.
그러나 단박에 퇴짜를 맞았고, 주말 내내 시청에 찾아가고 전화를 해도 시장은 끝내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애초에 네가 저지른 일, 뒷수습도 네가 해야지.”
나경태의 질책에 고개 숙인 나영철이 이를 악물었다.
은밀히 재하청을 통해 공사를 수주받은 건 모두 나영철의 책임으로 이루어진 일.
작년, 회사 형편이 좋지 않아 그랬다고는 해도 나경태는 시종일관 탐탁지 않아 했다.
사업비 총액 7천도 되지 않는 공사.
그때 자재를 바꿔치기해 공사비를 대폭 아꼈다는 걸 몰랐을 때도 그랬는데, 그 사실이 들통난 상황에서는 어떻겠는가.
‘... 제길, 고작 그 비에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냐고.’
홍수가 됐든, 산사태가 됐든 자연재해가 일어난 적이 거의 없던 대흥시.
과거 어마어마한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치며 전국이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난리가 났을 때도 대흥시는 평온했다.
그랬기에 부실공사를 하면서도 들킬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고.
“더 늦기 전에 시장 만나라. 만나서 통사정하든, 일 키우지 말라고 협박하든, 그것도 아니면 돈을 처발라서 입막음하든지 해. 더 늦으면 너만 손해다.”
“... 만나줘야 만나죠.”
“괜히 그러겠냐? 네가 고개 빳빳이 세우고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이니까 그런 것 아니냐?”
“... 이미 충분히 저자세로···.”
“더 숙여!”
나경태가 버럭 고함을 쳤다.
쨍그랑.
화들짝 놀란 며느리가 떨군 숟가락이 바닥에서 요란한 소리를 냈고, 나영철의 굳은 얼굴은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마를 땅바닥에 처박으란 말이다! 자존심 버리고 네가 직접 시장실에 찾아가서 무릎이라도 꿇으란 말이다!”
“......”
“잘못했으니 제발 살려달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런 시늉이라도 해야 시장이 나설 마음이 들지 않겠냐!”
“......”
“아니면 너 대신 이 아비가 가서 빌까?”
“... 아버지가 나서시면 좀 쉽게···.”
“... 허허.”
나경태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아들은 모르고 있지만, 전 시장으로서의 권위 혹은 지역의 손꼽히는 유지라는 배경을 내세워 시청을 주물러 보려고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전전 대 시장으로서 아직 시청 내에 나름 인맥을 가진 나경태.
하지만, 송두진이라는 비서실장이 이미 서슬 퍼런 감찰을 진행 중이라며 모두가 손사래를 쳤다.
지역 유지들의 저녁 식사자리를 통하려고 했더니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시장이 약속을 연기했다.
다른 루트를 뚫으려고 했지만, 애초에 시장과 거의 접점이 없던 터라 신통치가 않았고 금요일 오후 신흥 건설이 부실공사와 관련 있다는 게 알려진 뒤부터는 그의 전화를 받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인구 5만도 되지 않는 작은 시일 뿐이지만, 시장이 인상을 쓰니 사방이 숨을 죽였다고나 할까?
타지에서 굴러온 지 5년도 안 된 서른다섯 애송이일 뿐이건만, 시장이라는 직함을 다니 그딴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 그래서 시장이 되고자 했거늘.’
도무지 체면을 상하지 않고 시장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 자신이 나서봤자 아들과 똑같은 입장일 터.
현실이 그런데 마흔 넘은 아들은 사고를 제대로 쳐놓고 철없는 소리나 하고 있었다.
위이이잉.
나경태가 고개 숙인 아들을 노려보고 있는데 식탁 위에 놓인 나영철의 핸드폰이 울렸다.
미동 없는 나영철 대신 며느리가 핸드폰을 받아 식탁을 벗어나다가 멈춰 섰다.
“황 부장님, 지금은 좀···. 네? 뭐, 뭐요?”
“... 무슨 일이냐?”
나경태의 물음에 돌아선 며느리는 크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 그게 회사에···.”
“회사에 뭐? 말을 똑바로 해.”
신경질적인 나경태의 물음에 며느리가 더듬더듬 답했다.
“... 거, 검찰이 들이닥쳤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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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시 건설교통과 행정‧시설팀 사무실.
팀장을 비롯한 직원 전부가 한쪽 구석에 몰려선 가운데 시청 직원이 아닌 네 남자가 직원들의 책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죄지은 사람인 듯 위축된 모습의 행정‧시설팀 직원들 앞에 법무팀 직원 하나를 대동하고 선 송두진은 차갑게 얼굴을 굳히고 낯선 남자들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이 주무관, 잘 찍고 있지?”
“예, 실장님.”
송두진의 물음에 그의 곁에 선 법무팀 막내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는 손에 핸드폰을 들고 낯선 이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들을 훑던 두진이 눈을 번득였다.
“거기! 그 서류 좀 봅시다.”
두진의 말에 남자가 인상을 썼다.
“자꾸 이렇게 공무집행방해 하실 겁니까?”
“말은 똑바로 해야지. 누가 공무집행을 방해한다는 거요? 영장에 적힌 대로 공무집행을 하는 건지 확인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댁이 챙긴 서류가 압수수색영장에 적힌 내용에 포함됩니까?”
싸늘한 두진의 말에 남자가 서류 제목을 확인하고 찔끔했다.
“아니, 이게···. 시, 실수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보이는 건 무조건 다 챙겨갈 거 아닙니까? 컴퓨터 하드도 복사해 가면서 말이오!”
“커, 커험!”
“수사하는 거야 좋은데, 우리 일은 할 수 있게 해줘야지. 안 그렇소?”
“... 무, 물론이죠.”
두진이 법무팀 막내에게 촬영까지 시켜가며 감시하는 이들은 검찰 수사관.
오늘 아침 출근 시간에 맞게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는 중이었다.
기획감사실 감사팀도 압수수색대상이지만, 거긴 범위가 단출해 금방 끝났다.
어쨌든, 검찰 압수수색은 대흥시 개청 이래 초유의 일로 청사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뒤숭숭하고 싸늘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신들의 자리를 검찰 직원들에게 내주고 밀려난 행정‧시설팀 직원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구속이라도 된 것처럼 창백하고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네들도 거기서 눈 똑바로 뜨고 쳐다봐. 불필요한 것 압수당하는 일 없게 말이야.”
“... 예, 실장님.”
“엉뚱한 것 압수당하면 불편한 건 자네들이야. 그러니 잘 지켜봐.”
“... 예.”
기어들어가는 듯한 직원들의 목소리에 두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가 왜 그래? 아침 못 먹었어? 아니면 죽을죄라도 지었어?”
“아, 아닙니다.”
“그럼 허리 펴고 고개 빳빳이 세우고 바라보라고! 죄지은 게 없는데 뭐가 그리 겁나!”
쩌렁 실내를 울리는 두진의 호통.
거기에 답한 건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맞는 말씀이네요.”
어느새 나타난 도훈이 문가에 서 있었다.
두진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묵례했고, 역시 묵례로 그에게 답한 도훈의 시선이 직원들을 향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한 직원들에게 도훈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지난 금요일에 실장님께 감찰 결과 들었습니다.”
“......”
“여러분께 실수는 있을지언정 죄는 없다고 말이죠.”
“... 아.”
직원들의 시선이 두진을 향했다.
마치 은혜를 베푼 은인을 보는 듯하달까?
복잡다단한 감정이 버무려진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차갑게 굳은 표정의 두진은 검찰 직원만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내부에서 뒤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검찰이 생각보다 발 빠르네요.”
“... 죄송합니다, 시장님.”
“죄송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시장님.”
건설교통과장을 시작으로 직원들이 도훈에게 사과했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은 도훈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부정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제게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사죄의 대상은 제가 아니라 시민들이 되는 게 맞을 겁니다. 우리는 시민에게 봉사하라고 월급 받는 거니까요.”
“......”
도훈의 말에 직원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다.
- 공무원의 소명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시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수없이 듣고 말해왔지만, 지금처럼 절절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도훈이 침묵하는 직원들에게 쓴웃음을 짓고 말을 이었다.
“너무 풀 죽지 마세요. 번거롭긴 해도, 진실이 드러나겠죠. 실수한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겠지만, 범죄의 오명은 쓰지 않을 거 아닙니까?”
“... 네.”
“충격받았다고 조퇴 안 시켜드릴 겁니다. 퇴근 시간까지 칼같이 근무해야 할 테니까 이따가 점심도 든든히 드시고요. 하하.”
“... 알겠습니다, 시장님.”
도훈이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없었다.
그래도 그런 도훈의 노력만큼은 인정해주는지 시장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눈빛이 묘하게 변해 있었다.
취임 1주일 만에 자기 책임도 아닌 일로 ‘초유의 압수수색’이라는 불명예를 당한 시장.
그런 이가 화를 내기는커녕 위로를 하는데 그 누군들 마음에 울림이 없으랴.
“끝까지 지켜보고 오십시오, 실장님.”
“네, 알겠습니다.”
두진의 등에다 대고 한마디 한 도훈이 검찰 직원들에게도 정중히 말했다.
“업무에 차질 없게 잘 처리해 주십시오.”
“아, 예. 알겠습니다.”
검찰 수사관 하나가 머쓱한 표정으로 답했고, 도훈이 가볍게 묵례한 뒤 자리를 떴다.
똑바로 검찰 수사관들을 향해 선 비서실장의 날 선 뒷모습에 잠깐 시선을 준 다음이었다.
복도를 걸으며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저한테 화가 잔뜩 나셨네요.’
- 당연하지, 인마. 너 같으면 화 안 나겠냐?
‘... 글쎄요. 제 입장이랑 송 선생님 입장은 다르니까요.’
- 그건 그렇지. 나도 네 판단에 찬동했고 지금도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만, 두진이 저놈 기분은 꼭 풀어줘라.
‘네. 그래야죠.’
- 뭐, 심각한 건 아닐 거다. 그러니까 오늘 출근했겠지.
‘... 네.’
조상님에게 씁쓸하게 답한 도훈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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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 금요일 저녁, 송두진의 집.
조금 늦게 집에 들어온 두진은 얼마 뒤 자신의 집에 나타난 도훈과 대화하다 경악해 굳어져 있었다.
“... 정말인가?”
“네. 아까 선배와 통화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압수수색이 들어올 겁니다.”
“... 월요일?”
“네.”
“... 서, 설마 그래서 이번 주 내로 감찰을 끝내라는 거였어?”
“네. 검찰이 들이닥치기 전에 우리 시청의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알아야 했으니까요.”
“......”
두진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부실공사’라는 판단을 하자마자 아는 검사 선배에게 자초지종을 밝히고 상의했다는 도훈.
그리고 선배의 조언을 수용해 월요일에 검찰이 나서게 했다는 말.
즉, 두진에게 감찰을 맡기기 전에 이미 검찰에 넘길 생각을 했다는 뜻.
그리고 비서실장 ‘씩’이나 되는 두진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검찰이 나서게 했다는 사실.
어찌 충격적이지 않겠는가.
“... 다만, 이 건은 제가 검찰에 알린 게 아닌 지청에서 먼저 인지하고 나선 것으로 처리될 겁니다. 실제 지청 쪽에 정보를 주는 건 제 선배가 해주실 테니까요.”
“......”
“전 월요일에 임기 시작 1주일 만에 초유의 압수수색을 당한 시장, 그런데도 의연한 시장의 연기를 직원들 앞에서 할 생각입니다.”
“......”
말문을 잃고 도훈을 멍하니 바라보던 두진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 무서운 사람이었군, 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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