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4화 (25/279)

24. 사심 가득한 초대.

“... 시의회와의 협력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의회와 시청이 함께 시민과 가까워지고 시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

짝짝짝!

길지 않은 도훈의 축하 인사.

원래 월요일에 해야 했는데 압수수색이 벌어지고 시청이 어수선해 목요일인 오늘에야 이루어졌다.

간결한 시의회 개원 축하 인사에서 도훈은 ‘시민’을 중심에 두고 함께 노력하자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의장님!”

“네, 차 의원님.”

“예정에 없지만, 시장께 질문을 좀 했으면 합니다.”

발언대에 선 도훈은 담담한데, 의장석의 안준식이 미간을 찌푸렸다.

발언을 신청한 50대의 여성의원인 차혜진은 시의회 유일의 대한자유당 소속.

당이 달라도 지난주까지만 해도 딱히 이견을 보이는 일이 없던 그녀.

그런데 압수수색 이후, 누군가에게 ‘가르침’이라도 받았는지 지난 임기 시 행정부의 부정이 들통난 것이 아니냐며 매사에 ‘날’을 세우고 있었다.

안준식이 상체를 돌린 도훈과 시선을 마주했다.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안준식은 차혜진에게 발언을 허가했다.

“질문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발딱 일어난 차 의원이 서둘러 질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시장님께 묻겠습니다. 지난 월요일 압수수색은 대흥시 개청 이래 초유의 일로···.”

‘... 후우.’

자기소개도 안 하고 질문인지 발언인지를 이어가는 모습에 도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도훈의 옆에서 조상님이 히죽 웃고는 중얼거렸다.

- ... 아주 날을 잡았네, 날을 잡았어 그려.

종이를 읽어내려가는 의원의 모습.

사전에 준비했다는 게 확연히 티가 났다.

그걸 확인시켜 주는 사람이 저 뒤 방청석에 앉아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 ... 지역신문 기자까지 불러서 질문이랍시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네. 존재감 끝내준다.

‘... 기사가 나가면 더 끝내주겠죠.’

- 그러니까 말이다.

‘... 뭐, 뜻한 대로 될지는 모르죠.’

- ... 그거 아냐? 너 인마, 참 심뽀가 나빠. 킥킥!

‘... 어지간해야 맞춰주죠.’

길었던 차 의원의 ‘서론’이 끝나고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됐다.

“시장님은 이번 압수수색의 목적을 아십니까?”

“유서면 사방공사 건 조사를 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에 시행한, 그러니까 강운천 시장 임기 중의 일이죠?”

“네.”

“계약부터 감리, 완공까지 다 전대 시장 임기 중에 이루어졌죠?”

“네.”

“검찰은 건설업자와 공무원의 유착을 의심하는 것이죠?”

“그렇게 추측했던 것 같습니다.”

도훈이 순순히 답하자 차 의원이 더 기세등등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본 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이라도 부정의 의혹이 있다면 강운천 시장 임기 중에 시에서 발주한 공사들을 다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시장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술렁술렁.

차 의원의 질문에 의원들은 물론, 방청석에 앉았던 이들도 술렁거렸다.

전(前) 시장 강운천은 민의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지난 선거 전 탈당할 때까지 당적을 유지했다.

당연히 지난 시 행정의 공과는 여당인 민의당의 공과나 마찬가지.

차 의원의 질문은 부정의 여부를 확인하자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여당에 타격을 주겠다는 것.

당연히 여당 소속 시의원들은 물론, 여당 시장 밑에서 일했던 공무원들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 속이 빤히 보인다, 보여. 쯧쯧쯧.

‘... 그러니까요.’

차 의원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하고.

‘... 미안한데 난 당신 각본대로 연기할 생각이 없어. 각본에 구멍이 많은 건 둘째치고 너무 삼류야. 게다가 날 섭외도 안 해놓고 그런 눈빛 보내면 어쩌라고?’

속으로 투덜거린 도훈이 답했다.

“의원님의 지적에 일리가 있습니다.”

“... 그렇죠! 그러···.”

“그래서 검토를 해봤습니다.”

“면···. 네? 버, 벌써요?”

“네. 전 시장 임기 중 주기적 보수를 제외하고 대흥시가 신규 발주한 공사는 여섯 건밖에 안 됐거든요.”

“......”

도훈의 예상 못 한 답에 차혜진이 말문을 잃었다.

‘각성’한 송두진이 저녁마다 서류의 산에 파묻혀 일일이 확인했다는 걸 그녀가 어떻게 예상이나 했을까.

도훈과 영배도 함께 검토하며 머리를 싸잡긴 했지만, 두진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일.

어제, 늦게 퇴근해 두진의 집에 모여 이런 대화를 했었다.

- 보여주시겠다는 지옥이 야근 지옥이었습니까?

- ... 야근 지옥? 야근은 그냥 기본이야.

- ......

- 부서마다 각자의 지옥이 다 따로 있다네.

- ......

- 야근수당 타 먹으려고 별의별 꼼수를 다 쓴다는 비판이 많지. 사실인 경우도 많고.

- ... 그렇죠.

- 하지만, 애초에 일 제대로 하려면 업무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다네. 지금 우리처럼 말이야.

두진은 도훈과의 대화 이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반면에, 직원들에게는 그들의 ‘상식’이 정말 상식적인지 의심해보라 말하고 행동했다.

즉, 도훈과 직원 중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달까?

다만, 업무가 끝나면 도훈, 영배와 그날 파악한 문제점에 대해 훨씬 깊이 있는 토론을 했다.

퇴근이 늦어졌지만, 도훈과 영배 모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필요성은 두 사람이 더 잘 알았으니까.

‘... 하다 보면 시간은 줄어들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도훈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차혜진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살펴본 결과, 딱히 의심 가는 바는 없었습니다.”

“......”

“이미 지난 시의회에서 확인했던 것처럼요.”

“......”

지난 시의회 다수파는 그녀가 소속된 대자당이었다.

그 의회에서 ‘문제없다.’고 했었던 사안임을 깨우쳐 준 것.

“그래도 의회에서 재검토를 원하신다면 자료를 제출하겠습니다.”

“......”

“그 건 관련해 직원 감찰도 했습니다. 몇몇 실수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업체와 유착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

“좀 더 정확을 기하기 위해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의장석의 안준식이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답변이 됐습니까?”

“... 네.”

차혜진이 낭패한 표정으로 의석으로 돌아가는데 도훈이 의장의 허가를 받아 말을 이었다.

“검찰은 압수한 자료의 분석을 마치고 곧 소환조사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시 소속 공무원 소환은 검토하지 않고 있답니다.”

“오!”

“그렇지!”

대다수가 반색하는 가운데, 두 사람의 얼굴이 똥 씹은 듯 일그러졌다.

클라이맥스 대목에서 무대에서 밀려난 차혜진과 의원석의 3선 의원.

그러나 이어진 도훈의 말에, 반색하던 다수도 표정이 달라졌다.

“부정의 혐의는 없으나 문제는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공사의 감리를 한 건축사무소에 몰아준 것입니다. 감리를 외부에 위임할 필요가 없는 공사도 그리했더군요. 다만, 이것은 강운천 전 시장의 강력한 지시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부분은 건축사무소를 수사하면서 의혹을 해소해달라고 검찰에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멍.

“이상입니다.”

의회장이 조용해진 가운데 담담한 도훈의 시선이 안준식을 향했다.

아까와는 조금 다르지만, 여전히 묘한 표정의 안준식이 말했다.

“... 퇴장하셔도 좋습니다.”

-----

어딘가로 향하는 관용 승합차 안.

“... 꼭 그래야 했··· 습니까?”

“뭐가요?”

“... 회의장에 있던 사람 거의 전부가 시장님의 말에 기분 나빠졌을 겁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겠지만요.”

존재감 높이려고 얕은수를 쓴 대자당 의원을 깠다.

그렇다고 민의당 편을 든 것도 아니다.

민의당 소속이던 전 시장이 수상한 짓을 한 것 같다고 대놓고 말했으니까.

말하자면 고루 깠달까?

“사실이 그런 걸 어쩌라고요?”

“... 휴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 영배.

“어쨌거나 그 일은 우리 손을 떠났으니까 다른 일에 집중하죠.”

“... 곧 시끄러워질 텐데요?”

“우리야 관련 없잖습니까. 소환될 사람도 없는데···.”

“......”

영배가 말문을 잃었다.

감찰로 직원들에게 큰 문제가 없다는 걸 알자마자 검찰을 끌어들인 도훈.

화요일에 신흥 건설에 ‘시방서대로 다시 공사하지 않으면 민사에서 국물도 없을 줄 알라.’고 통보한 이후 도훈의 관심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압수수색에 이어 소환장이 여럿 날아간 신흥 건설과 건축사 사무소는 난리가 났고, 시의원 하나도 지청에서 소환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소환장이 이미 발부됐다는 건 영배가 검사 선배에게서 얻은 ‘은밀한’ 정보.

어제저녁 늦게 두진의 집에서 그 이야기를 할 때 이런 대화도 했다.

“독 오른 뱀이 뭐 어쩐다고? 그렇게 어설프게 나 시장 건드려서 어쩌려고 그러냐?”

“내가 뭘? 난 그 양반 안 건드렸는데? 건드린 건 검찰이지 내가 아니잖아. 나도 똑같이 압수 수색당한 처진데.”

“... 헐.”

“내가 맘먹었으면 달랐지. 그 정도 건더기는 아닌 것 같아서 검찰 통한 거잖아.”

“......”

“검찰이 나 시장을 탈탈 터느냐 못 터느냐는 자기들 능력인 거고···.”

영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인마, 이렇게 발뺌하려고 기준 선배 통해서 지청 움직인 거였어?”

“그것도 있지. 주된 건 아니었지만.”

“... 얄밉게 꼼꼼한 자식.”

영배는 그렇게 혀를 내둘렀고 두진은 쓰게 웃기만 했다.

다만, 두 사람도 압수수색의 효과는 인정했다.

직원 전체가 ‘안일함’을 반성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자는 분위기였기 때문.

공무원 노조 지부조차 ‘공복으로서의 사명감을 잊고 무사안일에 빠졌던 게 아닌가 반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으니 도훈의 의도는 확실히 통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일정 누가 잡은 겁니까?”

“고 주무관이 잡았습니다. 제가 픽스했고요.”

“실장님이요?”

“네.”

지난주 외부 일정은 거의 전부 인사.

취임식 없이 취임 인사만 발표했기 때문에 직원 및 협력관계에 있는 단체 사람들과 안면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이번이 시민과 대면하는 거의 첫 외부 일정이나 다름없었는데 웬일로 도훈은 그다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인상 좀 펴시죠, 시장님.”

“... 끄응.”

영배의 말에 도훈이 못마땅한 신음을 흘리고 영배의 손에 들린 물건에 시선을 줬다.

“... 그것 좀 안 들이밀 수 없나요?”

“그럴 순 없죠. 좋은 그림이 나올 텐데.”

“그게 없으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요.”

“그러면 뭐합니까? 다른 사람이 볼 수가 없는데.”

“......”

“아시잖아요? 시장님 SNS에 왜 이렇게 칙칙하냐고 타박하는 말이 엄청나게 많다는 거?”

‘구인광고’를 목적으로 만든 업무용 핸드폰.

그것과 연결된 도훈의 ‘시장 SNS 계정’은 개통 직후만큼은 못해도, 아직 제법 많은 사람이 찾고 있었다.

취임 후부터 여러 사진을 올렸는데, 다 실내에서 시커먼 어른들과 찍은 것이라 그런지 반응이 별로였다.

물론, 임기 시작일 아침 기념사진(?)은 예외였다.

“... 그중 대부분은 여기 안 살 걸요?”

“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 몇이나요?”

영배가 머쓱한 표정으로 답했다.

“주, 중요한 건 우리 시민 중에 시장님 SNS 보는 분이 있을 거라는 거죠. 거기에도 올리고 시청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일거양득이잖습니까?”

“... 휴우.”

영배의 손에 들린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한 도훈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가는 곳은 대흥시의 한 초등학교.

그 학교 3학년 학급 하나가 시장을 초대했단다.

영배는 아이들과 함께한 도훈을 멋들어지게 찍겠다고 비품인 카메라까지 챙겨가는 중이었다.

학교에 가서가 아니라, 거기서 사진 찍겠다는 게 도훈은 무척 불만스러웠다.

‘... 애들과 사진 찍는 거, 정치인이면 누구나 다 하는 거잖아. 난 정치인 아니라고.’

도훈이 속으로 구시렁거리는 가운데 승합차는 점점 더 학교에 가까워졌다.

-----

‘눈치챘어야 했어.’

승합차가 도훈과 영배가 사는 동네로 갈 때 이상 징후를 포착했어야 했다.

‘... 단서는 다 나와 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학급 하나가 자신을 초청했다는 말에 이미 모든 힌트가 다 들어 있었다.

아닌 말로, 초딩 3학년이 새로 취임한 시장이 뭐 그리 궁금하다고 초청 ‘씩’이나 하겠는가.

사특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누군가의 아주 개인적인 욕망이 이 초청 뒤에 숨어 있다는 건 평소라면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 저 망할 놈의 사진기.’

교실 뒤편에 선 영배의 손에 들린 사진기.

저놈의 것에 신경 쓰느라 이상 징후고 단서고 다 놓치고 이 자리에 서고 말았다.

‘... 다음부터는 꼭 내가 직접 일정 챙겨야지.’

도훈이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는데 옆에 선 담임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자, 우리 시장님과 인사할까요?”

“네!”

담임 선생님의 말에 답한 반장이 벌떡 일어섰다.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싹싹하게 인사하는 십여 명의 아이들.

도훈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답례했다.

“... 안녕하세요.”

가볍게 고개 숙였던 도훈과 반장의 시선이 마주쳤다.

씨익.

친근하게 웃는 진주 아들 박준수에게 도훈은 애써 마주 웃어주고 있었다.

# 2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