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물 밑 움직임.
도훈의 취임 3주차 화요일 시청 앞 상가의 한 식당.
시청 앞이라 법무사 사무소나 은행, 병원 등이 있었고 그곳 직원들이 주요 고객인 식당.
그 식당의 구석 자리에 두 남자가 앉아 식사하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나 시장 아들이 주동했다며?”
“그랬대. 그런데 아들은 이사고 나 시장이 사장인데 시장이 몰랐을까?”
“글쎄. 어쨌든 둘 다 나쁜 놈들이지, 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먼. 부자가 나란히 검찰에 불려갔으니 더 말해 뭐하겠나. 참, 시의원 충동질해서 공사하게 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시의원 얘기는 처음 듣는지 심드렁한 표정이던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시의원 누구?”
“그것까진 몰라. 아마 지역구 의원 둘 중의 하나 아니었겠어?”
“같은 당 놈인가?”
“모르지. 난 건축사랑 짜고 쳤다는 게 가장 놀랍고 웃기더라고. 그 건축사 강 전(前) 시장 친구 아들이라잖아.”
“그러니까 전전 시장네 회사가 전 시장 친구 아들이랑 짝짜꿍이 맞아서 사기를 친 셈이네.”
어이없다는 남자의 말에 맞은편에 앉은 이가 거들었다.
“시의원도 잊지 말아야지.”
“... 하하. 이거 정말 걸작이네. 죽으라고 싸울 땐 언제고 돈 앞에서는 같은 편을 먹을 수도 있나 봐.”
“그런 인간들이 시장에 의원이랍시고 행세하는 동네에 살고 있으니, 쯧쯧.”
두 남자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숟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두 남자가 다시 식사에 집중하길 얼마.
한 사람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새 시장 말이야. 뭐 들은 얘기 없어?”
“내가 아는 건 자네도 다 알 걸?”
두 남자의 직장은 아무래도 관공서와 관계되는 일이 많아 시청과 관련된 정보는 항상 중요하게 다뤘다.
당연히, 시장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
아니, 최종결정권을 가진 게 시장이니 뭐가 됐든 시장과 관련된 건 제일 중요했다.
“예의 바르고 사람 좋다는 거 말고 다른 거 말이야.”
“원칙적인 것 같다던데.”
“흠, 그렇다지? 이번 일에 시청 직원은 관련 없는 것 같다지만, 징계위원회는 열릴 거래.”
“나도 들었어. 일이 일이다 보니 관련 부서 직원들도 별로 말이 없다지?”
“그럴 만도 하지. 압수수색까지 당했잖아.”
“그런데 시장은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며?”
“그랬대.”
시민들 모두가 알 정도로 떠들썩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조금이라도 시청과 관계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압수수색 전후의 시청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도훈이 시의회에 개원 축하 인사 하러 갔다가 양 당을 고루 까줬다는 것까지.
“아, 내가 지나가다 들은 얘기는 하나 있어.”
“있어? 뭔데?”
“별거 아니야.”
“그래도 말해 봐.”
상대가 호기심을 보이자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줄였다.
잔뜩 진지한 표정이 된 남자가 소곤거렸다.
“... 시장이 말이야.”
“응.”
“... 감자탕을 좋아한대.”
“......”
“새벽에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로 좋아한다는데?”
“......”
“훗!”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굳어진 동료에게 피식 웃어 보인 남자가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굳어졌던 남자도 곧 실소를 흘리고 숟가락을 잡았다.
“정보는 정보네.”
“그렇지? 킥킥.”
“나도 시장 얘기는 아닌데 하나 들은 게 있긴 해. 아닌가? 시장 얘기가 맞나?”
“뭔데 그래?”
동료를 놀렸던 남자가 궁금한 표정을 했다.
“시청 내에 꼭 시장 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
“... 응?”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동료가 핀잔했다.
“그게 뭐 놀랄 일이라고?”
“아니, 당연한 거긴 한데. 벌써? 너무 이르잖아?”
“킥킥! 대놓고 그런다는 게 아니고 물 밑에 그런 사람도 있을 거라는 얘기지.”
“... 사람, 싱겁기는···.”
농담을 주고받은 두 남자가 식사에 집중했다.
누군가 시장을, 훨씬 심각한 표정으로 입에 올리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도 못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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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시 외곽의 한 고깃집.
2차선 지방도로 옆에 자리한 썰렁한 고깃집 내실에 세 남자가 둘러앉아 있었다.
점심 약속을 빙자한 모임이었지만, 정작 주문한 음식은 거의 손도 대지 않고 방치된 상황.
한 사람이 눈에 불을 켜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가운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 정도였습니까?”
“그랬다니까요. 난 어안이 벙벙했어요.”
“저도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직접 보질 않아서···.”
“시장이 그렇게 나와서 회의장이 아주 썰렁해졌어요. 뭐, 차 의원이 까인 건 그럴만했으니까 그렇다고는 쳐도 굳이 질문받지 않은 사실까지 알려서 분위기를 나쁘게 할 것까지야 없지 않습니까?”
“... 흐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신중한 표정의 남자.
부드러운 인상의 50대 남자의 이름은 여성식.
그의 직업은 공무원으로, 다름 아닌 대흥시 부시장이었다.
“시장님 입장에서야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감리 건, 강운천 전 시장님이 지시했다는 건 어차피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다 알려질 테니까 말입니다.”
여성식의 말에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있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 문제라는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알려질 거라도, 나중에 좀 관심이 가라앉은 다음에 알려지면 당연히 말이 덜 나올 거 아닙니까. 일을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키우냔 말입니다.”
짜증스러운 태도를 숨기지 않는 남자는 바로 3선 시의원 양상택, 그리고 그 곁에 말없이 앉은 건 재선 시의원 서태기였다.
양상택이 표정변화가 없는 여성식의 모습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 이 자식도 만만찮은 능구렁이라니까.’
여성식은 전 시장의 임기 2년 차에 4급 서기관 승진과 함께 부시장이 됐다.
그 승진에는 뛰어난 업무능력은 물론, 철저한 자기 관리가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는 평생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언행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다만, 그런 그의 태도는 4급 승진을 목전에 두고 물밑으로 여당 쪽에 접근하며 상당히 빛이 바랬다.
그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제길!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던 자식이···.’
물밑에서 여당과 순탄하게 공조해오던 여성식의 행보는 최근 달라졌다.
마치 과거 ‘자기 관리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처럼 여당 인사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으니까.
오늘의 만남도 몇 차례나 여성식이 사양하다가 겨우 이루어진 터였다.
그가 과거처럼 중립적인 행보를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의원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게 뭡니까?”
“다른 게 있겠습니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장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 제어라···.”
“제어가 그렇다면 견제라고 합시다. 아무리 젊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도 언행이 어느 정도 예상 범위 내여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건 의회뿐만 아니라 시청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 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봐요, 여 부시장!”
“생각해 보겠습니다.”
“......”
양상택은 끝내 만족스러운 답을 듣지 못하고 서태기와 함께 자리를 떴고, 홀로 남은 여성식이 차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 어찌 저렇게 감이 떨어졌는지.”
양상택의 말에 화답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주장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여성식의 서기관 승진에 양상택 등과의 관계가 도움됐던 건 분명한 사실.
그러나 낙선한 강운천 전 시장을 논외로 해도 양상택, 서태기는 더는 실세가 아니었다.
아무리 시의회에서 여당이 절대다수라지만, 초선 안준식이 의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여성식은 잘 알았다.
‘당의 주류와 너무 달라.’
지청에서 정보를 통제하고 본인이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지만, 양상택이 이미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는 것도 여성식은 알고 있었다.
상황이 그럴 진데, 눈치도 없이 시장을 견제하자는 양상택이나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서태기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 더는 함께할 이들이 아니야. 오히려 가까이하면 위험해.’
그는 마음속으로 양상택, 서태기의 얼굴에 X표를 그리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현직인 것을 고려해 적당히 상대는 해 줘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어렵지 않은 고민 후, 여성식은 다시 뭔가를 계산하느라 머리를 팽팽 굴리기 시작했다.
‘아직 시장의 성향은 확실하지 않지만, 두진 선배를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걸 볼 때 줄 세우기를 할 것 같지는 않고···. 새 의장도 그런 성향은 아니었고···.’
수십 년의 공무원 생활로 사람과 상황을 파악하는 건 달인이나 다름없는 여성식.
‘가만, 그러고 보니 이거···?’
여성식이 그간 간과하고 있었던 것에 생각이 미쳤다.
‘분위기상 양상택과 서태기는 다음이 위태롭다. 눈치 없이 따라다니는 장 뭐라던 시의원도···.’
여당 내 개혁적 흐름이 커지며 양상택 등의 구 세력이 밀려나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건 단순한 당내 세력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유권자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지고 있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속단하기 이르지만, 다음 선거에서 현 여당 시의원 둘 혹은 셋의 공천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은 컸다.
‘참신한 인물들로 교체될 확률이 높지만, 세상엔 항상 반대급부라는 게 있지.’
젊고 참신한 새 인물의 등장을 유권자들은 환영할지 모른다.
다만, 모든 유권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각 정당도 그걸 잘 안다.
때문에, 정치권에는 여야를 막론해 경험 있고 안정감 있는 공직 경력자의 수요가 항상 있다.
‘... 딱 나 같은 사람 말이지.’
정년 퇴임까지 3년이 남았으니 그림도 자연스럽다.
밑바닥인 9급부터 시작해 4급 부시장까지 오른 흠집 없는 경력의 행정가.
짜릿.
한 가지 깨달음이 여성식의 뇌리를 스쳤다.
자신의 관운(官運)이 정년퇴직으로 꼭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자리가 꼭 시의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 시장과 의장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4년의 성과에 따라 둘의 행보가 달라질 터.
그리고 마침 자신은 그 둘의 성과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 일단 안 의장은 무조건 가깝게 지내야 할 상대다.’
안준식은 지역구 국회의원과 가까운 건 물론, 개혁적인 여당 주류에 속한다.
막판에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로써는 당연히 그와의 거리를 좁히는 게 옳은 선택.
물론, 노골적인 접근은 역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여성식은 그 정도로 하수가 아니었다.
‘안 의장은 그렇고 시장은···.’
시장이 성공하면 시장 자신도 좋고 시민도 좋지만, 여성식이 딱히 득 될 게 없다.
시 공무원에 대한 평가야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사건’ 하나로 순식간에 뒤집히는 게 민심.
오히려 시장의 실패가 자신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여성식은 잘 알았다.
‘... 시장이··· 만만찮은 것 같긴 한데.’
여성식의 노회한 눈으로도 도훈의 ‘빈틈’을 본 적이 없었다.
말단 직원에게도 존대함은 물론 태도도 항상 정중했다.
머리도 비상해, 시장이 회의에 참석했던 부서 직원들은 그가 모르는 게 없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더군다나···.
‘송두진 선배가 비서실장이니까···.’
송두진이 비서실장임을 알고 일부 시청 간부들이 몸을 떨었을 정도.
그만큼 송두진이 능력 있고 무서운 인물임을 여성식은 잘 알았다.
‘나중을 위해 간부들을 추스르는 게 먼저인가?’
전 시장 때 여당에 치우친 간부가 제법 됐다.
전 시장의 낙선으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지만, 그들이 나서면 시정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다시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시장이 뭔가 하고자 해도 간부들이 호응하지 않으면 공무원 사회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렇긴 한데···.’
여성식은 도훈과 송두진을 떠올리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한 번 시험해 볼 필요성은 진즉부터 느꼈지만, 둘 다 섣불리 건드릴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항상 도훈의 한 발짝 뒤에서 헤실대는 누군가의 얼굴.
도훈, 두진은 몰라도, 그 사람이라면···.
“... 한번 슬쩍 건드려 봐? 가만, 내가 할 필요도 없잖아?”
조금 전까지 시장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던 양상택을 떠올린 여성식.
뒤이어 시장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깨 이를 갈 누군가가 생각났다.
슬쩍 시장을 타격할 뒤탈없는 방법을 찔러주면 바로 행동에 나설 정도로 분노하고 있을 사람.
“어찌 귀띔한다?”
누군가의 웃는 얼굴을 생각하는 여성식이 담담한 미소를 흘렸다.
평생 공직에 머물며 봉사하다 뒤늦게 욕망의 눈을 뜬 한 공직자가 그렇게 조금씩 변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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