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우리가 단단해져야….
같은 시각, 대흥시청 시장 비서실.
“누굴까요?”
“글쎄요.”
“......”
“이런 일을 꾸밀 사람이 딱히 생각나진 않는데, 저를 원망할 사람은 제법 될 것 같습니다. 임기 시작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말입니다.”
쓰게 웃으며 하는 도훈의 말에 홍영진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 틀린 말씀은 아니죠. 사실, 이번 지하수 건도 예삿일은 아니잖습니까?”
상하수도 사업소 감찰은 수요일 오후부터 시작됐지만, 그날 저녁 이미 시청과 의회에 싹 알려져 있었다.
가장 당황한 것은 문제의 시의원이 소속된 제1야당 지역위원회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분주히 움직였다.
어제 간부회의 결과가 알려진 다음에는 지역위원회 위원장과 소속 시의원이 계속 연락하고 접촉을 시도했지만, 도훈은 일체 무시해 버렸다.
야당이 쳤던 대형사고가 뒤늦게 들통났지만, 그렇다고 여당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목요일 오후, 일전의 부실공사 사건에 여당 현역 시의원이 직접 관련이 있고 전 시장도 부정의 혐의가 짙다는 얘기가 쫙 돌았으니까.
도훈, 영배, 두진은 그 얘기가 돈 게 분명 야당 쪽의 ‘물타기’라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실장님께도 아직 전화 옵니까?”
두진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당 지역위원장은 도훈에게 만남을 요청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한 뒤 도훈뿐 아니라 두진에게도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가 까칠하기로 유명한데도 그러는 걸 보면 얼마나 다급한지를 알 수 있다고나 할까?
“사과문은 어떻게 됐습니까?”
“어제 보고서 받아서 초안은 잡아놨는데, 아시다시피 대기 발령된 세 사람이 감사팀에 발언 번복하고 항의하고 했다고 해서 좀 확인이 필요합니다.”
어제 도훈이 상하수도 사업소 소장과 팀장 둘에게 대기발령 조처를 내리자 당사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특히,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반려 당한 소장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감사팀을 찾아가 발언을 번복하고 한참이나 변명을 했다고 도훈은 전해 들었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사과문 완성이 늦어져서 발표하지 못했다.
“보고서 중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만 해주십시오. 사과문 완성은 제가 하겠습니다.”
“직접 하시려고요?”
“네. 이래 봬도 제가 일단 작가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미팅을 마무리한 도훈은 시장실로 들어갔고, 두진이 상황을 정리했다.
“자, 들어갈 사람은 들어갑시다.”
토요일인 오늘 모두를 호출한 건 일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난밤 영배가 겪은 일을 공유하고 주의를 당부하기 위함이었다.
“홍 주무관, 고 주무관은 집에 들어가. 무슨 일 생기면 나랑 조 비서관으로 충분할 거야.”
“말씀은 감사한데, 저도 엄연한 비서입니다. 시장님부터 나와 계시는데 집에 있으면 마음이 안 편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실장님.”
진지한 표정으로 답하는 정임, 영진에게 두진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젓고 말했다.
“시장님만 나와 계신 게 아니니까 하는 얘기잖아. 그리고 나와 조 비서관은 어차피 공부해야 돼.”
두진의 말에 책상에 앉은 영배가 실없이 웃어 보였다.
정임이 조금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영배를 흘끔 하고는 말끝을 흐렸다.
“흠, 그래도···.”
“앞으로 야근이나 휴일 출근 많을 테니까 미리 쉬어 둔다고 생각해요.”
“쩝, 알겠습니다.”
정임과 영진이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비서실을 나갔다.
두진이 자기 책상에 앉은 얼마 후,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 끈질기네, 참.”
야당 지역위원장의 이름을 확인한 두진은 핸드폰을 책상에 엎어버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의자에 등을 기댄 두진의 눈에 저만치서 열심히 뭔가를 읽고 있는 영배가 눈에 들어왔다.
‘... 누굴까?’
어젯밤 일의 배후가 누구일지를 생각하던 두진이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훈이 앞서 말했던 것처럼,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계속 적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물론, 조상님의 활약으로 배후가 밝혀지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은 것뿐인데···.’
누군가와 불편해졌다고 해도, 도훈이 의도하거나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과거의 악습이나 폐단이 도훈의 손에 의해 드러났을 뿐.
‘... 우리가 단단해지는 수밖에.’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두진의 시선이 서류를 향했다.
작은 도시일 뿐이지만, 일은 언제나 넘쳐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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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은 손수 시민에게 발표할 사과문을 완성해 월요일 아침 사건의 자초지종, 시청의 조치 내용과 함께 시청 게시판과 홈페이지, 그리고 자신의 SNS에 이를 발표했다.
그 사과문은 완벽히 묻혀버렸다.
더불어, 월요일 아침 신흥 건설의 황 모 부장이 집에서 긴급체포된 사실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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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의 취임 넷째 주 수요일.
“... 상하수도 사업소 소장, 상수도 시설팀장, 관리팀장을 직위해제 및 대기발령 조치하였습니다. 그들의 징계를 논할 인사위원회는 경찰과 선관위의 1차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열 계획이며, 이때 직원 두 사람도 포함될 예정입니다.”
도훈이 잠시 말을 끊고 의원들과 방청석을 한번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영한리 지하수 오염 문제는 지하수도 정화하고 동시에 식수 사용도 가능한 방안을 업체 및 지역 주민과 협의하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시 예산 중 예비비를 투입할 예정이며, 하루빨리 결론을 내려서 더는 주민 불편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제출한 자료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보고를 마친 도훈이 의장에게 시선을 줬다.
“질문 하실 분 있습니까?”
안준식이 물었지만, 모두가 조용했다.
시의회 유일의 대자당 소속 의원도 도훈을 날카롭게 쏘아볼 뿐, 발언을 신청하지 않았다.
“시장께서는 내려가서도 좋습니다.”
도훈이 연단에서 내려왔고 안준식이 의사봉을 들고 일어서 말했다.
“점심을 위해 정회합니다. 회의는 오후 2시에 속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땅! 땅! 땅!
회의장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무거운 가운데 도훈과 비서들이 몸을 일으켰다.
“... 우리도 점심부터 먹죠.”
“네.”
“가시죠.”
“네, 시장님.”
도훈, 두진, 영배 세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의회 건물 밖으로 나온 셋은 걸어서 시청 청사 앞 상가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어서 오···. 어머, 시장님!”
“안녕하세요.”
식당 주인과 인사한 도훈 일행은 음식을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일행이 수저를 놓고 컵에 물을 따르고 있는데 칸막이 너머에서 다른 손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의원에 공무원이라는 것들이 참···.”
“다 감방 보내 버려야 해. 볼 것도 없어!”
“아, 어떻게 어르신들이 마시는 물을 갖고 그런 사기를 칠 수가 있어?”
“누가 아니래.”
영한리 일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노기가 묻어났다.
전국적으로는 다른 이슈에 묻혔지만, 대흥시 시민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
영한리 사건과 지난번 사방공사 건까지 다시 시민들의 입에 오르며 지역 정치권은 그 어느 때보다 시민들에게 맹렬히 비난받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저런 사람도 있는데···.”
“누가 아니래.”
“... 아까운 양반이 갔어.”
“... 그러게.”
칸막이 너머 사람들의 화제가 달라졌고, 도훈 일행의 시선이 저만치 떨어진 벽에 걸린 TV를 향했다.
뉴스 채널에 맞춰진 화면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정치인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빈소에 조문하기 위해 길고도 길게 줄을 선, 수많은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사람들.
진심으로 그 정치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눈물 가득한 사람들의 얼굴이 화면에 비치고 있었다.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두진이 자리를 뜬 사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혀를 차며 TV에서 시선을 돌린 영배가 중얼거렸다.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그러면 그런 거지, 한데는 뭐야?”
질문하는 도훈에게 미간을 찌푸린 영배가 속삭였다.
“저 일 때문에 엉뚱한 놈들이 숨통이 트였잖아.”
“경찰과 선관위가 나섰으니 됐어. 그리고 조금 빠르고 늦고의 차이가 있을 뿐,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될 일은 다 알려져.”
“정말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지.”
담담한 도훈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배가 미간을 펴며 중얼거렸다.
“네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다행이고···.”
“무슨 소리야?”
“아니, 난 네가 이번 일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혹시나 실망했을까 싶어서···.”
도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내가 유명해지고 싶어서 시장하고 있냐?”
“그런 뜻이 아니야. 너 말고 나쁜 놈들 말이야, 인마.”
“그 사람들이 뭐?”
“사람들이 많이 알아서 가루가 되도록 까여야 다시는 그런 짓 할 생각을 못 할 것 아니야? 난 네가 그걸 아쉬워할 것 같다는 거지.”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전혀··· 라면 거짓말이겠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야.”
“그래? 그럼 됐고. 쩝. 어쨌든 저리 가시면 안 되는 양반인데···.”
“... 그러니까 말이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맞장구친 도훈이 TV에 시선을 돌렸다.
그런 절친을 흘끔 하며 영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 하여간 특이한 녀석이야.’
도훈의 정치 성향은 영배와 비슷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개혁적, 좀 더 정확하게는 진보적.
정당을 놓고 본다면 현 집권 여당보다는 진보정당 쪽이 더 가깝다.
그런 정치적 성향이 있는 사람은 도훈 말고도 많으니 영배가 도훈을 특이하다고 여기는 건 다른 부분 때문이었다.
도훈은 정치적 지향이나 이상에는 확고한데, 그 지향과 이상을 앞서서 실천하는 정치인 개인을 존경하거나 신뢰하지 않았다.
도훈이 술김에든 아니든 정치 관련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얘기하는 건 들어봤어도, 그가 정치인을 평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영배였다.
물론, 나쁜 정치인 욕하는 것 빼고.
‘진주 녀석은 사연을 아는 눈친데···.’
도훈이 군에 가기 전 휴학하고 반년 동안 시민단체 활동가 생활을 할 때 뭔가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영배가 캐물어도 도훈도 진주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영배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에 갔던 두진이 돌아왔다.
“아직도 밥 안 나왔습니까?”
“곧 나오겠죠. 아, 오나 봅니다.”
“식사 나왔습니다.”
점원이 음식을 가져오고 두진과 영배가 그걸 건네고 받고 했다.
- 여야 유력 정치인 빈소에 줄지어 조문.
그래서 아무도 TV 화면에서 한 정치인을 발견한 도훈의 눈에 일순 시퍼런 불길이 솟아오른 걸 보지 못했다.
- 쯧쯧.
그런 후손을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며 조상님이 혀를 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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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다시 걸어서 시청에 거의 도착하는 도훈 일행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시장님.”
“아, 의장님.”
“담배 한 대 피우실래요?”
“... 그러시죠.”
두진과 영배를 먼저 들여보낸 도훈은 안준식과 청사 옆 자판기로 향했다.
커피를 뽑은 두 사람이 나란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아들였다 내뱉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안준식.
“조금 전에 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신흥 건설 나영철 이사가 경찰에 체포됐답니다.”
“... 그렇습니까?”
“네. 월요일에 체포된 황 부장이라는 사람이 결국 나 이사가 시켰다고 다 불었답니다.”
“......”
영배에게 ‘작업’을 걸었던 일의 배후에는 나영철 이사가 있었다.
출장까지 가서 활약한 조상님 덕분에 이미 사실을 알고 있던 도훈은 담담하기만 했다.
“놀랍지 않으세요?”
“별로요.”
부실공사가 들통났던 그 주 주말, 아주 잠깐 나영철과 통화한 적이 있었던 도훈.
만나서 할 얘기가 있으니 시간 좀 내달라던 그의 오만한 목소리가 생각났다.
단번에 거절했더니 고압적인 목소리로 막말하던 그.
- 나이도 어린 사람이 시장이면 단 줄 알아! 이 대흥시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과 척지고 뭔들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영철과 수인사도 제대로 나눈 적 없는 도훈이었기에, 영배를 함정에 빠트려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해코지하려 한 앙심이 도대체 어디서 기인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도훈이 말이 없자 안준식이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그 화제란 게 영 엉뚱했다.
“... 인터뷰요?”
“네. 아마 조만간 비서실에 연락이 갈 겁니다.”
안준식과 친분이 있는 어떤 기자가 도훈을 인터뷰하러 올 거라는 얘기.
“주말에 저한테 전화해서 시장님에 관해서 엄청나게 물었습니다. 궁금한 게 정말 많은 것 같던데요. 아마 월요일 그 일이 아니었으면 벌써 연락이 왔을 겁니다.”
“......”
“괜찮은 사람입니다. 기자 중에 믿고 지낼만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 그 사람은 좀 다르죠.”
“......”
“인터뷰하러 오면 한 번 눈여겨보세요.”
“......”
안준식이 멀어져갔고, 혼자 남은 도훈이 피식 웃고는 중얼거렸다.
“... 저 양반이 저런 실없는 면이 다 있었네.”
정치인, 공직자가 믿고 친하게 지낼만한 기자?
그런 게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담배를 다 피운 도훈이 시청 안으로 사라졌다.
조만간 어디서 본 듯한 남자가 나타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한 채로.
그것도 전혀 예상 못 한 사람을 대동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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