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My Pace.
“시장님께 묻겠습니다.”
“......”
“최근 시장님의 시정 장악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 금시초문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훈은 차혜진이 뭘 물으려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 저 사람은 또 그걸 어떻게 알았대?’
‘아차’ 싶은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본 의원이 받은 제보에 의하면 시청의 주요 간부들이 시청 외부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모르셨습니까?”
“네. 몰랐습니다.”
웅성, 웅성.
차혜진과 도훈을 제외한 모두가 놀랐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가볍게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의장석의 안준식이 정숙하라 말할 것도 잊고 굳어진 가운데, 차혜진이 사람들의 반응이 마음에 든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모인다는 것을 모르신다니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도 전혀 모르시겠군요?”
“당연하죠.”
“그리고 누가 거기에 참석하는지도 모르시겠네요?”
“네, 모릅니다.”
계속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도훈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차혜진이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는 질문을 이었다.
“시장님, 제가 좀 의외라서 그런데, 전혀 놀라지 않으시는 것 같네요. 맞습니까?”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하···. 시정을 제대로 펴려면 조직을 제대로 장악해야 하는 건 기본입니다. 간부들은 그중 핵심이고요. 그런데 시 간부들이 시장 모르게 모임을 하고 있다는데 놀랍지 않다고요?”
차혜진의 날 선 질문에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여당 시의원들은 물론, 영배를 비롯한 직원들까지 모두가 침묵한 상황에서 시선을 도훈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그의 대답 내용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달라질 테니까.
‘기본적으로 차 의원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모임 자체도 모임에서 논의하는 그 무엇도 해라, 하지 말라 강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도훈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우선, 확인차 저도 몇 가지 의원님께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세요.”
“시청 간부들이 모임을 한다는 것 확실합니까? 직접 확인이라도 하신 겁니까?”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만, 확실하다고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럼,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확인하셨습니까?”
“... 강하게 추측 가는 바는 있습니다만, 역시 확인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차혜진이 조금은 방어적인 모습으로 답했고, 도훈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시 간부들이라고 사적인 모임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위법도 아니고요. 모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아, 근무 시간에 그러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
“시 주요 간부들이 비밀리에 사적인 모임을 열었다지만, 그 자리에서 정책 협의를 할 수도 단순한 친목 도모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위법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기본권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 뭐라고요?”
발끈하는 차혜진을 향해 여전히 담담한 도훈의 말이 이어졌다.
“설사 그 자리에서 저에 대한 온갖 욕이 나왔다고 해도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듣지 않는 곳에서는 나라님도 욕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문제가 되려면 악의적 목적을 가진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언이 확인되거나 공무원으로서 공익에 반하거나 품위를 해치는 어떤 구체적 행동을 계획했다거나 실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 이거 보세요, 시장님. 지금···.”
“무엇보다도, 차 의원님은 지금 확인되지 않은 모임에서 나왔다는 확인되지 않은 발언에 근거해 시정 장악력을 의심하고 계십니다.”
“......”
“차 의원님의 질문에 답하려면 시장의 능력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제 말이 틀렸습니까?”
반박하려는 차혜진의 말을 단박에 끊고 이어진 도훈의 담담하지만 싸늘한 말.
움찔.
일순 돌변한 도훈의 눈빛을 마주한 차혜진이 움찔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누군가가 속으로 ‘어설프다’고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다시 묻겠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 아, 아니요.”
도훈의 기세에 눌린 차혜진은 자기도 모르게 아니라고 답했고, 그것으로 승부는 났다.
“... 제 질문은 끝났습니다. 차 의원님 질문 다시 받겠습니다.”
도훈의 말에도 차혜진은 말이 없었고 안준식 의장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몸을 돌린 도훈이 지긋이 바라보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차 의원님, 질문 더 있으십니까?”
“... 아니요.”
“시장께서는 내려가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차혜진의 어설픈 도발은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났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웅성, 웅성.
조용해졌던 회의장이 다시 부산해졌고, 차혜진을 제외한 의원들도 황망한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그들에게는 차혜진과 도훈 사이 싸움의 승패보다 그 화제가 더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저거 진짤까?”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 허허, 이것 참.”
의원석과 방청석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의 시선은 도훈보다는 차혜진을 향해 있었다.
그녀에게 다들 질문을 던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의장석의 안준식 역시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잠시 정회합니다.”
땅. 땅. 땅!
“비공개로 의정협의회를 개최하겠습니다. 모든 의원님은 의장 사무실로 즉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안준식이 의장석을 내려갔고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던 차혜진 역시 뒤를 따랐다.
회의장의 어수선함이 한층 커지는 가운데, 도훈이 몸을 일으켰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노골적인 혹은 은밀한 시선을 받으며 차분한 모습의 도훈이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그런 도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회 사무과장이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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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이 발칵 뒤집혔다.
도훈의 취임 이후 있었던 그 어떤 사건 때보다 더 조용하고 숨죽인 속삭임이 직원들 사이에서 넘쳐났다.
‘그 얘기 들었어?’
‘들었지. 차 의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간부 여섯 명이 만든 자리래.’
‘그래? 난 일곱이라고 들었는데.’
‘여당 시의원들도 화들짝 놀라서 진짜냐고 확인하고 다닌다던데?’
‘아닌 게 아니라 시의원들이 여기저기 전화를 엄청나게 한다고는 하대요.’
‘자네 과장님, 그 리스트에 있데.’
‘정말요? 제가 알기로는 우리 과장님은 없고 선배님네 실장님이 포함된다던데요?’
‘진짜? 출처가 어딘데?’
‘제 건설교통과 동기한테 들었어요.’
‘허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난 기획감사실 후배한테 들은 건데.’
‘직원들 사이에 도는 리스트가 한두 개가 아니라며?’
‘그렇대. 나도 옆 팀 후배하고 잠깐 얘기했는데 겹치는 인물이 한둘밖에 없더라고.’
‘어떤 리스트에는 그 모임에 참여하는 간부가 열이 넘는데요.’
‘그렇게나 많다고? 간부라고 해봤자 몇이나 된다고 열이 넘는다는 건 반이 넘는다는 말이잖아.’
‘이래도 괜찮은 거야? 시장 취임하고 이제 한 달인데···.’
‘글쎄요. 그 간부들이 무슨 꿍꿍이였는지에 따라 다르겠죠.’
‘허허, 나 이거 참.’
‘시장님이 의회에서 그런 간부들 쉴드쳐줬다는데, 시장님이 딱해요.’
‘아니, 도대체 간부들은 무슨 생각인 거야?’
달이 바뀐 8월, 전국이 남다른 폭염 때문에 숨 막혀 하는 가운데, 대흥시 시청은 직원들의 은밀한 속삭임과 간부들을 향한 시선으로 아주 묘한 분위기였다.
도훈이 시의회에서 차 의원과 설전을 주고받은 단 하루 만에 이 화제를 입에 올리지 않는 직원이 없을 정도.
수없이 오가는 속삭임 속에서 확인된 다수 직원의 생각은 셋 정도로 압축할 수 있었다.
- 한 달밖에 안 된 시장의 뭘 보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문제의 간부들이 어설프고 공직자답지 않은 처신을 했다.
- 해당 간부가 누구고 무슨 목적으로 모여 무슨 논의를 했는지 밝혀야 한다.
- 모르고 있다가 그런 간부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야 했던 시장이 딱하다.
그렇게 직원 다수의 의견이 모이며, 졸지에 밑의 사람들의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받게 된 간부들은 말 그대로 납작 엎드렸다.
용감하게 자기 상급자에게 ‘당신이 거기 포함되냐?’고 묻는 간 큰 직원은 없었지만, 하급자들의 의혹 어린 시선에 휩싸이는 것만 해도 큰 압박이었으니까.
한 가지 강력하게 의심되는 건, 문제의 모임에 누가 참석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몰라도 분명 도훈과 상관이 있고 좋은 얘기는 아니었을 거라는 것.
왜냐하면, 그 모임에 참석했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그 어떤 간부도 ‘그런 성격 아니었고, 그런 얘기 안 했다.’는 식으로 해명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한편 도훈은 일에 집중할 뿐, 그 소문에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간부든 말단이든 직원들을 대할 때의 담담한 미소도 차분한 눈빛도 그대로.
전혀 달라지지 않은 도훈의 모습을 본 직원들은 일단 안도하면서도 ‘속으로는 엄청 화가 났을 거다’라고 추측했다.
그렇게 청사가 어수선한 가운데, 많은 이들의 시선이 금요일 확대간부회의에 집중되고 있었다.
금요일 오전, 시청 소회의실 확대간부회의 자리.
“순찰 강화 협조 요청 건 어떻게 됐습니까?”
“안전센터는 특성상 외부 순찰이 어렵지만, 지구대에서는 그렇게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소방관들이 센터를 비울 수는 없겠죠. 우리 직원들의 순찰은 어떻습니까?”
“지시하신 대로 이번 주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특별한 애로 사항이나 문제가 없습니다.”
일찍 장마가 끝나고 기록적인, 아니 날마다 기록을 경신할 듯한 폭염이 계속되는 터.
한낮에 논밭에서 일하다 쓰러져 사망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간간이 들려왔다.
젊은 인구도 많지만, 농촌 노년 인구도 적지 않은 대흥시인지라 농업 활동을 하는 노인들의 건강에 당연히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시청은 물론, 각 면사무소, 동사무소에서 최소한의 인원을 번갈아 차출, 더위가 한창인 시간대에 농촌 마을을 차로 순찰하고 있었다.
지구대와 안전센터에 협조를 요청했는데, 아무래도 안전센터는 그 성격상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관용차 대신 소형차 세 대를 구매한 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시장님의 선견지명이···.”
“다행이네요. 순찰 나가는 직원들에게 물품 지원은 잘 되고 있습니까?”
시장을 칭찬하려다 말이 끊긴 자치행정과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답했다.
“무, 물론입니다. 얼음물이나 아이스 조끼를 꼭 지참하게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고생하는 거 압니다. 다만, 우리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 일이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전해주세요.”
“...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지구대와 안전센터 대원들 더위 예방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 혹시 더 있는지 물어봐 주세요. 제 업무추진비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 지구대는 알겠습니다만, 안전센터도요?”
“거기 대원들도 우리 시민들 살피느라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진작 생각했어야 하는데, 늦어서 미안하네요.”
“... 그렇게 하겠습니다.”
과장이 답했고, 도훈은 바로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다음으로··· 보건소장님, 안건 보고해 주십시오.”
“네.”
보건소장의 짤막한 보고에 이어 도훈의 질문이 이어졌다.
“보건소 환자 점검 건은 어려움이 없습니까?”
“크게 힘든 점은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분들 전화로 체크하는 정도니까요. 보건소 직원들은 경력이 꽤 돼서 단골처럼 방문하시는 어르신들은 대개 이름부터 시작해 앓고 계시는 병명 정도는 줄줄이 꿰고 있습니다. 매일 모든 분께 연락하는 것도 아니니까, 크게 어려울 건 없습니다.”
담당했던 노인이 고독사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직원을 만났던 도훈.
사후약방문일지라도 그 직원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가 여전히 담당하는 돌아가신 분과 비슷한 처지의 분들을 더 잘 살피기 위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했었다.
그 방법의 하나로 보건소에 환자 점검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달라는 주문을 했는데 다행히 보건소에서 열심히 나서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르신들이야 모두 다 좀 더 잘 살펴드려야 하겠습니다만, 보건소를 정기적으로 가시는 분들은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하니까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장님.”
“문제가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시고요.”
“네.”
“다음은··· 남가동 동장님 차례입니다.”
도훈의 호명을 받은 간부가 일어섰고, 비슷한 분위기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아파트 뒷산 공원 정비 건 말입니다. 주민 요구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부분은···.”
어떤 안건이 됐든지, 도훈은 안건의 핵심을 놓치는 법이 없었고 담당 간부는 그런 도훈의 질문에 답하느라 초집중해야 했다.
확대간부회의에서 ‘적당히’라는 게 불가능해진 건 도훈의 취임 직후부터 그랬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문제의 ‘소문’ 때문에 시장이 심기가 불편할 거라 예상했던 간부들은 도훈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 때문에, 시장의 심기 따위를 살필 여력이 더는 없었다.
“이 안건은 담당 부서에서 개선안을 좀 더 고민한 다음에 결정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지금 결정하기엔 섣부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 알겠습니다.”
“환경위생과장님은 그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좀 더 청취해서 반영하도록 하세요. 지금보다 좀 더 현실적인 개선안을 마련하려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 네.”
“그럼 다음으로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회의를 진행해 가는 도훈.
어느새 시장의 ‘심기’를 걱정하며 눈치 보던 간부들이 회의의 긴장감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그런 도훈과 간부들의 모습에 여성식은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지려는 표정을 수습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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