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사람이 사람에게… 2.
추석 연휴가 끝난 목요일 아침 대흥시청 비서실.
긴 연휴를 마치고 출근한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이 조회를 하고 있었다.
“... 이 건은 일단 반려하는 게 좋겠습니다. 당장, 예산을 투입해야 할 정도로 급박하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반려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이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두진의 마지막 말로 짧은 조회가 끝나나 싶었다.
“아이고, 연휴 마치고 출근했더니 영 적응이 안 됩니다.”
“호호, 며칠이나 쉬었다고 적응이 안 돼요? 조 비서관님, 아직 갈 길이 머시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 걱정 없이 쉬어서 그런가 봅니다.”
영배의 능청에 모두가 웃는데, 도훈이 입을 열었다.
“어제, 제가 우연히 외국인 노동자들과 만날 일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담담히 이어지는 도훈의 말은, 공단 공장 중 외국인 노동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그런 곳이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도훈의 말이 끝나자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두진이 물었다.
“꽤 상세한데, 누구한테 들으신 겁니까?”
“우연히, 어떤 분한테서요.”
“밝히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까?”
“그건 아닌데, 혹시 모르니까요. 그분이 이 얘기를 할 때, 기관에 신고하거나 이런 사실을 적극적으로 개선할 의지를 가진 건 아니었거든요. 자칫하면, 그분이 난처해질지도 모르니까 우선은 익명으로 알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꽤 까다로운 문제를 들고 오셨습니다.”
“그렇죠. 까다롭죠.”
미간을 찌푸린 두진의 말에 도훈이 동의했고, 두진이 말을 이었다.
“이게 사실 간단치 않은 문제라서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나 가혹 행위만이 문제가 아니거든요.”
“이를테면 불법체류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는 겁니까?”
“네.”
두진의 말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고, 영배가 끼어들었다.
“뭐, 하루 이틀 일이 아니죠. 그나마 우리 대흥시는 외국인 노동자가 거의 없긴 하지만요.”
“아예 없지는 않아요. 저도 공단 근처에서 두어 번 본 적이 있어요.”
정임에 이어 영배가 말을 계속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3D 업종에 속하잖아요. 임금도 낮고 말이죠. 적법하게 고용된 사람도 그럴 진데, 불법체류자라면··· 형편은 더 나쁘겠죠.”
“그러기가 쉽죠.”
영배와 정임의 말에 도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진이 말을 이었다.
“만약, 우리 시 공단 내 공장에서 적법하게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학대 문제가 있다면 그건 우선 노동청과 경찰에서 나서야 할 사항입니다. 그리고 혹여나 불법체류 신분인 노동자가 있다면 출입국 관리 사무소가 나서야죠.”
“맞는 말씀이긴 한데, 우리 관내에서 그런 일이 있다는데 타 기관에만 맡기고 외면할 수는 없잖습니까?”
“외면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긴 하죠.”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사정과 형편에 따라 여러 기관에 담당 업무가 나누어져 있는 상황.
지자체도 외국인 노동자를 해당 지역 거주민으로서 편의를 제공하고 관리할 책임은 있지만, 부여된 권한이 거의 없었다.
“만약 시장님께서 들은 얘기가 사실이라 해도, 안타깝긴 하지만 당장에 우리끼리 나서는 건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진짜 그럴까요?”
“담당 업무와 권한이 나누어진 상황이잖습니까. 솔직히 우리가 위법한 상황을 직접 목격한다 해도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경찰, 노동청, 출입국관리사무소와 협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흠.”
도훈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침묵했지만, 두진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도훈이 침묵하는 가운데 두진이 말을 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일단 논외로 하고, 경찰이나 노동청 쪽에 협조를 요청해 공동으로 공단을 한번 살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알겠습니다. 비서실에서 계획을 한번 짜보세요.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실행할 수 있도록요.”
“네, 서두르겠습니다.”
조회를 마친 도훈이 시장실로 들어갔고, 정임이 궁금한 표정으로 두진에게 말했다.
“시장님은 마음이 급하신 것 같았는데요.”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묶을 수는 없잖나. 나도 이 문제는 경험이 많지 않네만, 이거 자칫하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모두가 눈물만 흘리는 그런 상황이 될 수 있어.”
“불법체류자 강제추방 건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그래.”
불법체류자의 경우, 고용주의 폭력행사나 임금 체불 등 사건이 복합적인 경우가 많다.
단속을 통해 폭력 행위는 중단시키고 처벌할 수 있다지만, 체불된 임금을 받는 건 다른 얘기.
법원에서 아무리 불법체류자라도 체불된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판례로 명시했다지만, 그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불법체류자가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부분에 대한 현실적 구제책은 없는 상황에서, 체불임금이라도 받아 한국을 떠난다면 아주 다행이라는 얘기였다.
현실이 그러니, 불법체류자가 폭력이나 임금 체불 등의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참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경찰서 외사과와 노동청에다 연락을 해보세. 아무래도 그쪽은 우리보다 경험이 많을 테니 조언을 들을 수 있겠지. 조언도 듣고 점검 일정도 짜보자고.”
“네, 실장님.”
두진의 지시를 받은 영배와 정임이 각자 전화기를 붙들고 시청 담당 부서와 경찰서, 노동청 등에 연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비서실에 더는 연휴의 영향은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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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목요일 오후 7시쯤.
“내일 뵙겠습니다, 실장님.”
“그래, 쉬게나.”
두진이 대문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조수석에서 해맑게 인사하던 영배가 도훈에게 정색하고 말했다.
“뭔 꿍꿍이야?”
“피곤해서 일찍 집에 가자는 게 왜 꿍꿍이가 돼?”
부웅.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멈췄다.
영배가 운전대에 손을 올려 차를 멈추게 한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뭘 하려고 그러는 건데?”
“아,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인마, 내가 널 몰라? 실장님은 몰라도 나는 못 속여. 네가 일이 남았는데 피곤하다고 일찍 집에 간다고? 너 같은 일 완벽주의자가? 핑계를 대도 좀 안 걸릴 거로 대라.”
“......”
도훈과 영배는 잠시 눈싸움을 했지만, 결국 이긴 건 도훈이 아닌 영배였다.
눈빛을 누그러뜨린 도훈이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그냥 찔러본 거지.”
“뭐?”
“그냥 찔러봤다고. 오후 내내 네 눈치가 심상치 않아서.”
“... 내가 뭘 어쨌다고?”
“조회 때 외국인 노동자 관련한 얘기하고 비서실에서 공단 점검 계획 잡으라고 말했잖아.”
움찔.
도훈이 움찔하는 걸 본 영배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그렇게 신경이 쓰인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한 마디도 안 묻고 넘어갈 녀석이냐? 당연히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겠지.”
“......”
머쓱한 표정이 된 도훈이 뒤통수를 긁었다.
영배의 말처럼, 오후 내내 이런저런 업무 처리 와중에도 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 관련 자료를 읽느라 여념이 없던 도훈이었다.
‘마음이 너무 급했나?’
두진의 말에 동의는 했지만, 노인에게 듣기로 가혹 행위가 하루가 멀다고 이어진다는데 차마 기다릴 수만은 없다 생각했던 도훈이었다.
도훈은 시청에 문제 적발과 해결의 권한이 없다 해도, 실제로 문제가 있는지 확인할 수는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미리 확인하면 각급 기관의 협조를 더 빠르게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즉, 오늘 일찍 마친 것은 혼자서라도 미리 공단 지역을 둘러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도훈이 퉁명스럽게 묻자, 영배가 답했다.
“뭐겠냐? 같이 가자는 거지.”
“......”
“안 가?”
“......”
도훈이 말없이 차를 출발시키고 얼마 뒤에야 입을 열었다.
“하여간, 눈치는···.”
“내가 아무거에나 눈치가 빠르겠냐? 네 비선데 당연한 거 아냐?”
“......”
불퉁한 얼굴로 차를 몬 도훈은 얼마 되지 않아 공단 지역에 도착했다.
전체 공단 지역의 입주율은 60%가 되지 않는 터라, 공단과 함께 만들어진 상가 인근을 제외하고는 공장 터도 많이 비어 있는 모습이었다.
단층건물로 1백m 길이도 되지 않는 상가는 대개 저렴한 가격대의 음식점 위주에 몇몇 가게들이 자리해 있었다.
천천히 차를 몰아 상가를 살핀 도훈과 영배는 이따금 외국인 노동자를 발견할 때마다 눈을 빛냈지만, 멀리서 살피다 이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저쪽도 아닌 것 같지?”
“응.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잖아.”
도훈이 들은 바에 의하면,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한 폭력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공장이 있다고 했다.
그런 대우를 받는 이들이 한국인 윗사람이나 동료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거나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터.
얼마간 상가와 인근을 오가던 중 영배가 푸념했다.
“야, 이렇게는 못 찾겠다. 공장을 하나씩 점검하면서 확인하면 몰라도 이 방식은 아닌 것 같아.”
“그러게.”
영배에게 답한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애초에 시청에서 파악하고 있는 대흥시의 외국인 노동자의 숫자가 1백에 못 미쳤고, 이따금 두 사람의 눈에 띄는 이들은 다행히 악랄한 처우를 받는 것은 아닌 듯했다.
“흐음.”
도훈은 가방에서 공단의 공장 위치도를 꺼내 확인했다.
“... 구석진 곳만 살펴보고 돌아가자.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봐.”
“그래.”
도훈은 상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 공장들을 살피고 돌아가기로 하고 차를 몰았다.
점찍은 다섯 곳의 공장 중에 세 곳은 잔업을 하지 않는지 불이 꺼져 있었고, 한 곳은 마당에서 회식을 하는데 외국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은 켜져 있는데 이쪽에서는 보이는 게 없네.”
마지막으로 확인하려는 공장은 야산 옆에 자리해 있었다.
불이 켜진 채 공장 기계가 가동되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정문 쪽에서는 보이는 게 없었다.
“저쪽으로 돌아 가봐야겠어.”
“... 길이 있어?”
“있겠지.”
도훈이 차에 비치된 손전등을 꺼내 들고 앞서자, 영배가 한숨을 내쉬고 뒤를 따랐다.
한참이나 헤맨 두 사람은 한 사람이 겨우 걸을 작은 길을 발견했다.
길은 야산으로 이어졌고 얼마간 걸으니 공장 뒤편으로 이어져 담 너머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담 너머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도훈아.”
“... 어. 나도 보고 있어.”
어느새 핸드폰을 꺼내 들고 동영상 촬영을 하며 도훈이 답했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기계음 때문에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중년의 한국인이 외국인이 분명한 세 명을 세워놓고 뭐라 소리를 지르며 가슴이며 어깨를 퍽퍽 치는 게 분명히 보였다.
“아이고.”
한동안 묵묵히 바라보던 영배가 인상을 쓰고 소리를 낸 건 중년인이 세 외국인의 ‘조인트’를 깠기 때문.
셋 중 둘은 휘청거리긴 했어도 버텨냈는데 한 사람이 주저앉았고, 중년인은 주저앉은 왜소한 체격의 남자에게 거듭 소리를 지르더니 뺨을 내려쳤다.
싸늘했던 도훈의 눈빛이 달라진 건 바로 그때였다.
“형, 이거 들고 있어.”
“어?”
“이거 들고 찍고 있으라고.”
“야, 어쩌려고 그래?”
“저러다가 무슨 일 나겠어.”
“... 야, 도훈아.”
“아, 얼른 들어.”
도훈의 노기 섞인 말에 영배가 핸드폰을 넘겨받았고, 도훈이 공장 담을 향해 직선으로 달렸다.
수풀을 헤치고 담에 도착한 도훈은 곧장 담을 뛰어넘었고, 어둠 속에서 담을 넘어 나타난 도훈의 모습에 때리고 맞던 모두가 놀랐다.
“당신 뭐야?”
중년인이 물었지만, 도훈은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여전히 쓰러져 있는 외국인에게 다가갔다.
“당신 뭐냐고!”
움찔.
도훈에게 소리친 중년인이 흠칫 놀란 것은 도훈의 눈빛 때문이었다.
귀기.
혹시 모를 상황에서 후손을 보호하기 위해 조상님이 도훈의 몸에 깃든 상태라 도훈의 눈에 섬뜩한 귀기가 실려 있었다.
“어···.”
눈빛에 질린 중년인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했고, 도훈은 중년인을 노려본 채 그대로 걸음을 옮겨 쓰러진 외국인 노동자에게 다가갔다.
쓰러진 채 코피를 흘리던 그는 도훈과 시선을 마주하고 뜨끔하더니 손에 들었던 걸 떨어뜨렸다.
남자 옆에 도착한 도훈이 누그러진 눈빛으로 핸드폰을 꺼내며 입을 열었다.
“우리말 할 줄 알아요?”
“... 네.”
도훈이 키패드의 숫자를 세 번 눌렀고, 외국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신고하면 안 돼요! 우리···.”
“당신이 걱정하는 일 안 일어나요.”
“예?”
“당신 걱정하는 일 안 생긴다고요.”
“... 진짜로?”
“네.”
외국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도훈이 단호하게 답했고, 그 사이 핸드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 경찰입니다. 무슨 일이세요?
당황한 눈빛의 외국인에게 도훈이 차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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