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65화 (66/279)

65. 사람이 사람에게… 4.

“너 이 새끼, 네가 뭔데 나서서 사람을 모함하냐고!”

남자가 고함을 치는데, 영배가 다가와 남자의 손을 풀고 도훈을 떼어냈다.

남자에 못지않게 인상을 쓴 영배가 매섭게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하,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더니 딱 그 짝이네.”

“뭐, 넌 또 뭐야?”

“뭐긴 뭐에요? 지나가다 폭행 현장 목격한 사람입니다.”

“뭐? 폭행? 그게 무슨 말 같지도···.”

흥분한 남자가 계속 소리치는데 영배가 싸늘한 말과 표정으로 남자의 말을 끊었다.

“이제 와 발뺌해 봤자 늦었어요. 이미 어제 경찰 조사에서 다 밝혀졌는데.”

“뭐, 뭐야?”

“아, 경찰관들에게 물어보세요. 아니면 바지사장 동생분께 물어보시던가.”

“영민이 이 등신 같은 새끼!”

남자가 동생을 욕하는데 지구대장이 다가왔고 도훈이 물었다.

“대장님, 저희는 이제 가봐도 됩니까?”

“네. 그렇긴 한데, 저분들 어쩌시려고요?”

지구대장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며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묻자,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오늘 노동청에서도 올 테고 경찰서에서도 올 것 아닙니까. 이번 일을 해결하려면 이들 모두 함께 있다가 대화하는 게 좋을 테니 잠시 저희가 편의를 제공하려고요.”

“아, 예.”

“참, 공장에 가서 개인 소지품을 가져와야 할 텐데, 그때 잠깐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순찰차 한 대 보내면 되겠죠?”

“그래 주시면 고맙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시장님.”

“뭐, 시장?”

중년 남자가 끼어들었고 도훈이 차분히 답했다.

“제가 대흥시 시장이긴 합니다.”

“시장이란 사람이 왜 한국 사람이 아니라 외국 놈들 편을 드는 거야? 쟤들한테 뭐라도 받아먹었냐?”

“하, 참.”

도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남자를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이것 보세요, 사장님.”

“왜?”

“여기 저 말고도 사장님 편 안 드는 사람 많아요.”

“뭐 인마?”

“둘러보세요. 진짠지 아닌지.”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다 흠칫 놀랐다.

도훈, 영배는 물론 지구대장을 비롯해 나와서 바라보는 경찰관들도 그에게 전혀 호의적인 표정이 아니었다.

가까이 섰던 지구대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쯧, 아무리 외국인 노동자라고 해도 적당히 했어야지.”

“......”

“이봐요, 사장님. 당신 지금 상습폭행으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처집니다. 그건 알아요?”

“무, 뭐요?”

“임금 체불은 노동청에서 알아서 할 테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상습폭행이나 비인간적 처우, 감금, 협박 등 경찰에서 조사할 부분이 아주 많아요. 알기나 하세요?”

“......”

“사장님 동생이 왜 어제 집에 못 가고 경찰서로 갔는지 알아요? 사안이 그만큼 심각해서입니다. 증거도 차고 넘치고 말이죠.”

“... 그, 그게···.”

당황한 남자가 말을 더듬었고, 지구대장이 한층 더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그런 짓 하면 당연히 처벌받아야죠. 하지만 피해자가 한국인이 아니면 처벌 안 받는 줄 알았어요?”

“......”

말문을 잃은 남자에게 지구대장이 쏘아붙였다.

“사장님이 현행범이 아니라 체포되지 않은 것뿐이에요. 안 그래도 경찰 조사받아야 한다고 연락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오셨으니 우리 일은 줄었네요.”

“......”

“사람이 사람에게 엄연히 해선 안 될 짓이 있는 겁니다. 상대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말이에요.”

“......”

지구대장의 매서운 눈빛에 남자가 찔끔했고, 도훈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형사 쪽으로도 문제가 있겠지만, 폭행, 감금, 협박 등에 대한 민사도 걱정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잘 아는 변호사가 있는데, 아주 유능하거든요.”

“......”

“듣자 하니, 전에도 이런 문제로 적발되신 적이 있다던데요. 그래서 동생분을 바지사장으로 앉혔고 말이죠.”

“... 그, 그게 왜?”

“전에는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은 제대로 처벌이 됐든 행정처분이 됐든 받을 각오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

말문을 잃은 남자에게 도훈이 본론을 말했다.

“경찰 조사 잘 받으시고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처벌을 최대한 줄이려면 어떻게 하셔야 하는지요.”

“... 너, 이 새끼.”

남자가 이를 갈았지만, 도훈은 더는 대화를 잇지 않고 돌아섰다.

‘어제 하신 것처럼 잘 부탁드립니다.’

- ... 오냐.

못마땅한 기색으로 답한 조상님이 남자의 몸에 쏙 스며들었다.

도훈이 부드럽게 얼굴을 펴며 자신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에게 말했다.

“자, 우리는 볼일 보러 갈까요?”

이번 사건의 그나마 쉬운 부분이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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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은 영진의 밴을 불러 노동자들을 태우고 병원부터 들르게 했다.

여덟 명 모두가 진료를 받고 진단서와 ‘장기적인 상습폭행의 흔적으로 보인다’는 의사의 소견서도 받았다.

그 후에 노동청에서 나온 이들과 함께 공장에 가 소지품도 챙길 겸 현장 점검을 했다.

당연하게도, 노동청 직원들조차 열악한 실태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과 동행한 영배가 이런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 노동청 직원들도 이렇게 심각한 경우는 몇 번 본 적이 없을 정도란다. 합법적으로 고용된 세 명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는데?

공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이나 그들이 찍은 현장 영상을 본 경찰관들이 실제 소유주나 바지사장에게 괜히 호의적이지 않은 게 아니었다.

조사를 마치고 시청에 돌아왔다가 복귀하는 노동청 직원과 도훈이 대화를 나눴다.

“사실,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공장주들이 다 저런 건 아닙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불법체류자를 찾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임금은 박하게 줘도 최소한 인간적으로 대하죠.”

“그렇겠죠.”

“이번 건은 악랄한 중에서도 아주 심각한 드문 케이습니다. 그래서 세 명이 직장을 옮기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테고요.”

“네. 그건 잘 부탁드립니다.”

“나머지 다섯 명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노동청 직원의 물음에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설득해서 자진 출국하게 해야죠.”

저만치 서서 자기들끼리 뭔가 이야기하는 외국인들을 바라보며 도훈이 답했다.

이번 사건의 정말 어려운 부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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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시청 소회의실.

“왜 우리더러 돌아가라고 하는 건가요?”

“돌아가야 하니까요.”

“우리 한국에서 돈 벌어야 해요. 그러려고 왔어요. 일이 꼬여서 불법체류자가 됐지만, 전부 우리 잘못인 건 아니라고요!”

불법체류자 다섯 명과 마주 앉은 도훈이 차분히 말했지만, 그 말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건 거칠게 반박하는 로안 말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억울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그들의 표정을 살피는 도훈은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제 여러분이 그렇게 맞는 장면을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담을 넘어서 뛰어든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어요.”

“... 그게 뭔데요?”

“로안.”

“왜요?”

“내가 담을 넘었을 때, 그러니까 로안이 땅에 쓰러져 있었을 때 손에 뭘 들고 있었어요?”

흠칫.

“그걸로 뭘 하려고 했어요?”

“......”

로안이 움찔 놀라더니 답을 못했고, 로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도훈이 말을 이었다.

“난 땅바닥에 쓰러진 로안이 뒷주머니에서 뭔가 뾰족한 걸 꺼내는 걸 확인한 다음에 움직였어요.”

“......”

“혹여 화를 못 참고 뾰족한 뭔가로 폭행하던 사람을 찌르기라도 할까 봐서요.”

“......”

도훈 뒤에 섰던 영배와 두진이 놀라 눈을 크게 떴고, 담담한 도훈의 말이 이어졌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터지기 전에 막으려고 그랬죠. 솔직히 로안만을 위했던 건 아니었어요. 폭행하던 한국인이 다치는 걸 막기 위한 것이기도 했어요.”

“......”

“로안이 일어난 뒤에 거기 길쭉한 드라이버가 있었어요. 모른 척했고 경찰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요.”

“......”

말을 잇지 못하는 로안의 시선이 정처 없이 흔들리다 도훈과 다시 마주쳤다.

로안이 힘없이 고개를 떨궜고, 다른 외국인들은 불안한 표정이 됐다.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도 경찰에 말하지 않을 테니까.”

“......”

도훈이 잠시 말을 끊고 한 사람 한 사람과 시선을 마주한 뒤 입을 열었다.

“한국과 한국 사람이 여러분에게 잘못한 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해요.”

“......”

“하지만, 한국은 그 누구에게나 무한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에요.”

“......”

“여러분도 알잖아요. 한국 사람 중에 좋은 이도 나쁜 이도 있다는 걸, 한국에도 부자가 있고 가난한 이도 있다는 걸요. 한국 사람끼리도 충분히 많은 문제를 겪으며 살아간다는 걸요.”

“......”

침묵하던 한 사람이 항변했다.

“한국, 부자잖아요? 나눠줄 수 있잖아요?”

“맞아요.”

“너무해요.”

항변에 이어 다른 이들이 동조했지만, 도훈은 담담히 답했다.

“여러분의 나라에도 부자는 있어요. 그렇죠?”

“... 그, 그래요.”

“그들에게 나눠달라고 하면 당연히 나눠줘요?”

“......”

“나눠주지 않는다고 욕한다고 치죠. 그게 옳아요?”

“......”

“마찬가지예요.”

“......”

“한국이 필요해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엄연히 법에 따른 제한이 있어요. 여러분이 잘 알겠지만 말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다섯은 최소한 3년 이상 한국에 머무른 사람들.

당연히 도훈의 말을 알아들음은 물론, 한국을 겪을 대로 겪은 이들이었다.

“여러분이 부당하게 대우받고 폭행당한 일까지는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

“하지만 여러분이 불법체류자라는 건 내가 도와줄 수 없어요. 나뿐 아니라 그 누구도요.”

“......”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여러분 자신뿐이에요. 각자의 나라로 돌아감으로서요.”

“......”

다시, 도훈이 말을 끊고 외국인들과 차례로 시선을 맞췄다.

도훈이 시선이 여전히 고개를 떨어뜨린 로안에게 고정됐고, 그가 차분히 말했다.

“로안, 고개 들어서 날 봐요.”

“......”

“로안.”

로안이 고개를 들었고 도훈과 시선을 마주했다.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도훈이 말을 이었다.

“불법체류자인 여러분은 또 어제 같은 상황에 부닥치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 그렇겠죠.”

“또 그런 상황이 닥쳐왔을 때 선의를 가진 한국 사람이 나서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

“아니, 그냥 어제 내가 없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봐요.”

“......”

도훈이 로안부터 시작해 다시 다섯 사람과 시선을 차례로 마주했다.

반응은 다양했다.

눈을 질끈 감거나, 자포자기한 듯 한숨을 내쉬거나, 고개를 말없이 떨구거나···.

“난 분명 어려움에 부닥친 여러분을 돕겠다는 선의를 가진 사람이지만, 이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이기도 해요.”

“......”

“여러분이 받아야 할 임금을 받고 폭행당한 것에 대한 응분의 보상을 받는 것까지는 기꺼이 돕겠습니다.”

“......”

“하지만, 그다음은 여러분이 귀국하도록 설득하는 게 내 일이에요.”

“......”

“다행히 다음 달부터, 그러니까 월요일부터 불법체류자 자진출국 기간이에요. 뭔지는 알죠?”

외국인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도훈이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끼리 상의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도훈이 영배와 두진에게 나가자고 눈짓하는 데 로안이 말을 걸었다.

“시장님.”

“네.”

“우리가 스스로 출국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신고라도 할 생각이에요?”

다섯 외국인과 영배, 두진의 시선이 일제히 도훈을 향했고, 도훈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네.”

“... 정말요?”

“네.”

“......”

“아까 말했던 것처럼, 여러분이 체불된 임금과 폭행에 대한 보상을 받을 때까지는 설득할 겁니다.”

“......”

“하지만, 그 절차가 끝나면 더는 설득하지 않을 거예요.”

“......”

외국인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침묵했고, 도훈이 몸을 돌려 회의실을 나왔다.

“휴우.”

도훈이 허파가 텅 빌 정도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씁쓸한 표정의 도훈에게 두진이 비슷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하신 겁니다.”

“... 네. 점잖고 훌륭한 협박이었죠.”

“시장님.”

“... 죄송합니다.”

“......”

“해야 할 일을 한 건데, 기분이 좀···.”

“이해합니다. 그리고···.”

두진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저어 그의 말을 끊고는 표정을 수습했다.

“잠깐 여길 지켜주시겠습니까?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야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도훈이 걸음을 옮겼고, 영배가 두진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얼른 뒤를 따랐다.

“안녕하세요, 시장님.”

“안녕하세요, 이 주무관님.”

마주치는 직원들과 담담히 미소를 교환하며 인사하는 도훈의 뒷모습을 두진이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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