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99화 (100/279)

99. ‘구일이’와 … 2.

- 우리 할아버지가 그때 대흥시장 싸대기 날린 농민입니다.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서 성질을 못 이기고 손이 먼저 나갔다고 하시더군요. 뒤에 시장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답니다. 시장님은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화낸 거 충분히 이해하고 계속 죄송하다고 했대요. 어쨌든, 그날 우리 할아버지 논에 오염물질 흘려보낸 건 대흥시 사람이라면 이해 못 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우리 할아버지 포함해서요. 시장이 현장에서 그런 일까지 감수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했으니까 사고가 그걸로 끝났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화학물질이 하천을 타고 어디까지 흘러갔을지 누가 압니까? 만약 그랬으면 당신들이 신중한 결정이었다고 칭찬했을까요? 시청 직원들이 우리 할아버지 달래가면서 보상도 충실히 했고, 그 논 피해복구도 했어요. 내년 초에 무슨 검사해서 화학물질이 기준 이상으로 나오면 또 복구 작업한답니다. 대흥시 공무원이 다 모범적인 이들이라서 이렇게 일하겠어요? 시장이 현장을 중시해 시민들과 자주 만나고 시민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니까 이러는 거 아닐까요? 그런 건 쏙 빼놓고 괜한 트집 잡는 기사나 쓰는 기자라는 작자나 ‘같잖은’ 댓글 놀이나 하면서 깐죽거리는 사람들, 당신들 동네 시장이나 군수는 다 우리 시장보다 일 잘해서 그러는 겁니까?

화학물질 유출 때 논이 오염된 농민의 손자가 글을 올리고, 도훈의 SNS 계정에 댓글을 달고 링크를 걸었다.

당시에 좀 떠들썩하긴 했지만,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이야기였는데 도훈의 빠른 판단과 후속처리가 훌륭했다며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 우리 시장이 취임하고 제일 먼저 한 게 뭔 줄 아냐? 전전임 시장 아들이 저지른 건설 비리를 파헤친 거야. 그 사건, 전임 시장 지인인 건축사에 전전임 시장 아들이 짜고 친 고스톱이었지. 무소속이라 그런지 봐주는 거 없이 싹 다 고소했지. 비리 몸통인 전전임 시장 아들은 감방에 갔다고. 큰 공사는 아니었지만, 비리 저지른 회사는 올가을에 공사했던 거 싹 들어내고 전부 새로 시공했어. 속 시원하지 않냐? 행정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사방공사 비리 건도 대흥시민으로 생각되는 누군가가 글을 올리고 링크를 걸어 전후 사정이 다시 알려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 우리 어머니가 대흥시에 사십니다. 시내는 아니고 변두리 농촌 마을이죠. 어느 날, 동네 어머님들이랑 보건소엘 가셨대요. 보건소에서 진료받고 시내 식당에서 시장 욕하고 있으니까, 시장이 문 열고 나타나서 자기가 시장이니까 잘못한 거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했다더라고요. 마을 사람들이 쓰는 지하수 문제 때문이었다는데, 야당 시의원이란 놈하고 수도 담당 공무원이 선거 앞두고 표 얻으려고 머리 쓰다가 사고 친 거였다죠. 시장이 그날로 해결했습니다. 오염된 지하수 정화시설 설치하고, 시의원이랑 붙어먹은 공무원 해임하고···. 이런 시장 보셨어요?

- 대흥시 사는 사람입니다. 시장님이 주민들 모임 열심히 찾아다니시는 거 맞아요. 하지만, 와서 하시는 건 자기선전이 아니라 시 행정에 참여하라는 홍보에요. 그 양반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시민이 더 열심히 참여하는 만큼 행정서비스와 주민복지의 질이 올라간다’입니다. 제 나이가 곧 쉰이고 대전 살다 이사 와서 기초단체장 여럿 경험해 봤는데, 우리 시장님처럼 열심이고 꾸준한 사람은 처음이에요. 뭘 알고서 댓글 놀이하세요.

- ... 시장님 야근 많이 하죠. 주말에도 대개 출근해 일하거나 공부하시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시장님 시청 앞에 도시락 가게랑 김밥집 단골인데, 비서님이랑 저녁 사러 번갈아 왔다 갔다 해요. 그런 간단한 일은 비서님한테 시켜도 될 텐데, ‘공무’가 아닌 건 절대 남에게 미루지 않는대요. 시청 직원인 지인에게 들으니 권위적인 모습은 본 적이 없고, 일을 잘못한 게 아닌 이상 시장님 눈치 볼 일이 없는 분위기라는데 이 기사는 도대체 어디서 듣고 쓴 건가요? 설마 소설인가요?

일요일 저녁, 아침에 출근해 오후 늦게까지 시장실에 있다가 진주네 집에 순심이를 데리러 온 도훈은 소파에 앉아 자신의 SNS 계정에 붙은 이런저런 글을 읽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

“SNS.”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갑자기 내 편이 확 늘어난 것 같아서. 그게 신기해서.”

금요일 저녁 ‘구일이’ 주인 딸을 시작으로 도훈을 옹호하는 글들이 SNS 계정에 달리기 시작했다.

‘소나 어쩌고’ 하는 댓글이 달리기 전이나 후나 이런 일은 처음이라 좀 어리둥절한 도훈이었다.

“네 편이라서가 아니라 네가 있지도 않은 일로 비아냥을 당하는 게 보기 싫었겠지. 물론, 네 편도 좀 있겠지만.”

“......”

“물론, 이런 사람도 있을 거야. 네가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대흥시 사람이 욕하는 건 몰라도 다른 동네 사람들이 엉뚱한 이유로 비아냥거리는 건 못 참는 그런 사람.”

“마음에 안 들어도 내 새끼다. 내가 혼내는 건 몰라도 밖에 나가서 얻어맞고 다니는 건 안 된다. 뭐 이런 거냐?”

“비슷하네.”

“... 하하.”

어설프게 웃고 난 도훈이 다시 핸드폰 액정에 시선을 고정했다.

현장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시민 모임에 찾아가 많은 얘기를 하면서도, 시민들에게서 잘한다거나 칭찬하는 말을 많이 듣지 못한 도훈인지라 간간이 올라오는 옹호의 글을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로웠다.

어쨌든, 그런 글들이 차례로 올라온 영향인지 ‘소나 나르고 있었겠지.’라는 댓글이 달리는 속도가 확 줄었고, 이미 달았던 댓글을 지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옹호 글을 보고서도 비아냥으로 일관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도훈이 일절 여기에 대응하지 않으니 재미가 없는지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았다.

핸드폰에 정신이 팔린 절친을 보고 진주가 피식 웃었다.

자기라도 나서서 댓글전쟁을 해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녀였는데, 도훈이 취임 전에 못 박은 일 때문에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 친구로서 조언은 대환영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사절이야. 그리고 혹시, 무슨 상황이 와도 나 돕는다고 팔 걷어붙이지 마라. 너한테 해장국 얻어먹는 것만 해도 은혜야, 은혜.

당시에 진주는 ‘나 챙기기도 힘든데 너까지 챙길 정신 없다’고 웃어넘겼지만, 도훈은 진지하게 여러 번 다짐을 두었었다.

자기도 스스로 조심하겠지만, 혹시 모르니 도훈 때문에 진주 가족에게 영향이 가는 일이 생기면 꼭 얘기해 달라고 말이다.

‘하여간 남한테 손해 끼치는 거 정말 싫어한다니까. 난 남도 아닌 친군데.’

속으로 중얼거린 진주가 도훈에게 질문했다.

“밥 먹고 갈 거지?”

“밥? 아침에 밥 새로 했는데. 집에 가서 먹을래.”

“그냥 여기서 먹고 가. 네 몫까지 생각해서 준비했는데.”

“... 국 있냐?”

“응. 지금 다 끓여간다.”

“뭔데?”

“황탯국.”

“그거라면 먹고 가야지.”

“잠깐만 기다려. 금방 되니까.”

“응.”

액정에서 눈도 떼지 않고 답하는 절친의 모습에 피식 웃은 진주가 주방으로 향했다.

도훈이 비아냥 당하기 시작한 뒤로 오래간만에 후련한 기분인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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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점심시간, 대흥시청 비서실.

도훈의 SNS 계정에 옹호 댓글이 달리거나 도훈을 지지하는 글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고 링크를 거는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 이거 참,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그러게 말입니다, 실장님. 전에 시장 당선 직후에 핫했을 때도 SNS 방문자는 많았는데, 이렇게 글이 많이 달리기는 처음입니다.”

“허허, 시장님 칭찬 글이 막 달리니까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두진, 영배, 영진 세 사람이 제각기 핸드폰을 들고 앉아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웃고 있다는 것.

지난주, 침울하던 비서실 분위기는 주말이 지나고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네. 죄송합니다만, 시장님이 이 일로 방송이든 신문이든 인터뷰 안 하신다고 하셨어요. 네, 아는데요. 지금 연락 오는 방송사하고 신문사도 다 거절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하고 전화를 끊은 정임도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번엔 어디야?”

“CBC요.”

“TV, 라디오?”

“TV요. 뉴스에 내보낼 멘트 하나만 따자고 난리네요.”

“허허.”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시작된 언론 매체들의 인터뷰 요청 전화는 벌써 열 통이 넘었다.

도훈은 직접 인터뷰하는 건 거절하고, 정 시청 쪽 입장이 듣고 싶다면 두진이나 공보팀장을 통하게 했다.

덕분에 두진과 공보팀장의 목소리가 몇몇 방송에 나갔고, 신문기사 서너 개에 이름도 실렸다.

“팟캐스트가 생각보다 영향이 크네.”

“물론이죠, 실장님. 듣는 사람은 꾸준히 듣는 게 팟캐스트인 걸요. 저도 뉴스는 거르는 날이 있어도, 한 회도 빠트리지 않고 듣는 팟캐스트가 있습니다.”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게 된 것은 월요일에 업데이트된 어느 팟캐스트에서 도훈의 케이스가 언급된 영향도 있었다.

현 정부의 대북, 경제 정책 관련한 일부 언론의 악의적 보도도 지탄을 많이 받았지만, 비아냥에도 묵묵히 침묵하는 시장을 보다 못한 시민들이 나선 건 특기할 만한 현상이라 한 팟캐스트에서 이걸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일요일 오전에 도훈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도훈은 ‘믿고 지지해주시는 시민들에게 감사하긴 한데···, 실제 한 일에 비하면 칭찬이 너무 과한 것 같다.’는 짧은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도훈의 그 말이 그대로 팟캐스트에 나갔고, 팟캐스트를 들은 이들이 도훈을 옹호하는 데 일부 동참하며 관심도가 확 올라갔다.

그러니 별로 반응이 없던 주요 언론 매체들이 움직일 수밖에.

철컥.

시장실에 있던 도훈이 나왔고,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 왜 그러십니까?”

영배가 질문을 던진 건 도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우, 조금 있다가 기자 한 사람 올 겁니다.”

“기자요?”

“네.”

“어느 매체든 인터뷰는 다 거절하신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

“... 맞는데요. 이 사람하고는 약속한 게 있어서요.”

“어딘데요?”

“우리 뉴스요.”

“아.”

예산안 논의 때 우리 뉴스 기자와 협의해 자기는 쏙 빠지고 시의원들만 인터뷰하게 했던 건, 나중에 기자가 원할 때 한 번은 독점 인터뷰에 응한다는 약속을 했기에 가능했었다.

그런데 우리 뉴스 기자가 이 기회를 꼭 잡겠다며 ‘약속에 응할 것’을 요구했고, 도훈은 어쩔 수 없이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 도연이가 삐지겠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명색이 방송국 사회부 기자인데, 동생인 도연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최승범의 부추김을 받았겠지만, 도연이가 당당히 인터뷰 요청을 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한 게 바로 어제.

도연이는 몇 번이나 요청하고, 부탁하고, 매달리기까지 했다가 끝내 거절당한 뒤 벌컥 화까지 냈었다.

- 남도 아닌 동생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너무한다, 정말! 치사하다!

- 공은 공, 사는 사. 미안하다, 동생아.

모든 언론사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겨우 달래 전화를 끊었는데, 아마 우리 뉴스에 인터뷰 기사가 나면 어떤 식으로든 ‘한소리’ 듣게 될 터.

“여하튼 지금 출발한다고 했으니까 아마 한 시간 안으로는 도착할···.”

벌컥.

문이 열리는 서슬에 말을 끊었던 도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다른 비서실 직원들도 비슷했다.

“안녕하십니까!”

기운차게 인사한 건 우리 뉴스의 왕민상 기자.

“... 기자님 때문에 안녕 못 합니다. 그나저나 대흥에 와서 전화하신 거였어요?”

“하하, 물론이죠. 시장님 도망가실까 봐 미리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러십니까, 시장님. 약속은 약속 아닙니까? 독점 인터뷰 약속을 이런 때 안 써먹으면 언제 써먹겠습니까?”

“... 쩝.”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린 도훈에 비해 왕민상은 아주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취재대상이 이렇게 ‘핫’한 시점에 독점 인터뷰를 하게 되니 아주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빨리하시죠. 그리고 시간은 한 시간인 거 아시죠?”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아, 사진은 좀 찍어도 되겠죠?”

“... 꼭 찍어야 합니까?”

“에이, 사람을 인터뷰하는 건데 당연히 그 사람 사진은 있어야죠. 글만 나가면 너무 밋밋하잖아요.”

“... 한 장이면 되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석 장만 찍죠.”

“......”

도훈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왕 기자를 빤히 바라보다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하시죠. 내 두 번 다시 왕 기자님에게 단독 인터뷰 어쩌고 하는 얘기는 꺼내지 않을 겁니다.”

“에이, 왜 이러십니까?”

“... 됐고요. 얼른 시작하죠.”

“하하, 네.”

도훈이 몸을 돌렸고 왕 기자가 따라 걸음을 옮기다 문득 생각난 걸 입에 올렸다.

“아, 그거 아세요?”

“... 뭐요?”

“오전에 CH 뉴스 홈페이지 터졌대요.”

“홈페이지가 터져요? 왜요?”

“왜긴 왜겠습니까? 큭큭큭!”

도훈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직원들은 하나씩 왕 기자를 따라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8년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장 비서실에 웃음이 살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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