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당신의 … 를 응원합니다 - 2.
월요일 아침, 대흥시청 비서실.
“뭐랍니까, 실장님?”
“꼭 내릴 것까지 있냐고 그러는군. 기사 호의적으로 쓰느라 자기들도 머리 아팠다고, 웬만하면 그냥 놔두자고 하더라고.”
“흠, 하기야 저희가 봐도 딱히 흠잡을 게 없는 기사긴 하죠. 기사로 났다는 거 자체가 신기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영배의 옆구리를 정임이 슬쩍 팔꿈치로 찔렀다.
“왜···. 헙!”
움찔한 영배가 정임을 바라봤다가 정임의 눈짓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얼음장같이 싸늘한 시선을 마주했다.
“... 하, 하하. 그, 그게···.”
“흠잡을 게 없다고요, 조 비서관?”
“아뇨. 흐, 흠투성이죠. 아니 흠 그 자체죠!”
“......”
‘절친’을 살벌하게 노려보던 도훈의 고개가 돌아갔고, 영배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훈이 조금은 풀어진 눈빛으로 두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기사 안 내리겠답니까?”
“... 자기들도 좀 살자고 하더군요. 작은 언론사에서 그만큼 주목받는 기사 내기 쉽지 않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습니다만 ‘살려달라’는 태도였습니다.”
“진짜로는 뭐라고 했는데요?”
“만나서 얘기하는 거라면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그래도 내려달라고 했더니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알았다고 하더군요.”
“... 휴우.”
잔뜩 인상을 쓴 채 한숨을 내쉬는 도훈.
출근할 때부터 저 표정이었다.
그나마 하루가 지나 화가 많이 가라앉아서 저 정도지, 어제 문제의 기사를 읽고 그 회사에 전화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을 때는 거의 폭발 직전의 활화산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미치겠네.’
- 좋아서?
‘... 지금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 어, 나온다. 좋아서.
‘... 어휴!’
- 낄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그냥 즐겨. 죄도 아니잖아.
‘... 말을 말겠습니다, 제가.’
- 훗? 할 말이 없는 거겠지. 좋아서.
‘조상님!’
- 오냐. 조용히 하마. 낄낄낄!
조상님과 툭탁거리는 순간에도 도훈의 심각한 표정은 그대로였다.
기사를 내려달라는 요청에 상대가 ‘알았다’고 답했다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그 기사를 읽었다.
도훈의 열애설, 아니 도훈이 연애하는 것 같다는 기사가 나온 것은 어제인 일요일 오전.
기사를 쓴 사람은 이름도 낯선 어느 소규모 인터넷 신문사 기자로, 신문사 자체가 정치보다는 주로 문화, 연예 분야를 다루는 곳이었다.
- 모처럼 햇살이 따사로운 주말, 김도훈 시장도 데이트에 나섰다. 비슷한 나잇대의 여느 청년과 다를 바 없는 수수한 차림의 김 시장은 묘령의 미모의 여성과 함께 대흥시 인근인 대전 시내에서···.
함께 하는 내내 두 사람은 정답게 미소를 교환했고 다정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점심을 먹을 때도,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도, 서점 내부 카페에서 다리쉼을 할 때도···.
한 가지 특이한 건, 최근 민원인 관련된 미담으로 인해 김 시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았었는데, 김 시장을 알아보는 시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녹아든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애초에 김 시장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자신이 지금껏 평범하게 살아왔고,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과 소망에 눈높이를 맞추고 시 행정을 펼쳐 나가려 노력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소신 있는 시장으로서 국민의 관심을 모아온 김도훈 시장, 어느 단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사랑을 응원해본다.
이런 내용의 기사에는 도훈과 세경이 함께 찍힌 네 장의 사진이 첨부됐다.
도훈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게 분명한 것이, 세 장의 사진에 세경은 뒤통수만 나왔을 뿐이고 그나마 옆얼굴이 나온 사진은 아주 완벽하게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다.
아마, 세경 본인도 자신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나머지 사진 속 도훈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는 것이, 정말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를 한다고 ‘오해’하기에 충분했다.
한 마디로, 악의를 가졌다기보다는 적당히 도훈을 띄워주면서 사람들의 관심, 즉 ‘클릭’을 유발하는 기사랄까.
“저는 이런 기사 처음 봅니다. 정치인이 연애하는데 너무 잘 어울린다, 보기 좋다, 잘 해봐라. 이런 내용 아닙니까?”
“저도 그래요. 예전에 어느 국회의원이 임기 중에 결혼하는 게 화제가 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보도’의 영역이었거든요. 이건 보도가 아니라 칭찬? 격려? 하여튼, 이런 기사는 듣도 보도 못했어요.”
“그러게요. 아무리 봐도 시장님의 화제성을 노린 기사인데, 시장님이 호감을 얻고 있다 보니까 비난은 못 하겠고 아예 대놓고 ‘응원’하는 식으로 쓴 것 같은 느낌입니다.”
영진, 정임, 영배가 한마디씩 하자 두진이 말을 보탰다.
“허위사실 유포라고 압박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언론중재위원회 같은 곳에다 중재 요청할 그런 성격도 아니고···. 하하, 나 참···. 그나마 순순히 내리겠다는 게 다행이지.”
‘낯선’ 종류의 기사다 보니 온라인상에서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한다거나 사람들이 엄청나게 관심을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해당 언론사가 지금껏 내보낸 그 어떤 기사보다 조회 수가 많은 건 맞고, 어제 오후부터 지금까지 주요 포털에 기사가 올라가 있어 많은 사람이 본 것 맞긴 했지만.
어떤 네티즌은 비서실 직원들이 간파한 것처럼, 기자와 소속 신문사의 노림수를 파악해 이런 댓글을 달기도 했다.
- 하, 요즘 유명하다는 사람 이름을 빌려 ‘장사’를 해보시겠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쁜 짓, 혹은 정치적으로 거론할만한 일을 하는 현장을 잡을 자신은 없으니 우연히 걸린 데이트 장면이라도 써먹어 보자? 애라, 니들이 그러고도 기자냐? 이게 기사로 나올 얘기나 돼?
기사에 달린 댓글 중 도훈의 심정을 그대로 담아낸 것도 있었다.
- 댁들은 이걸 기사랍시고 써서 장사할 자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김도훈 시장도 ‘턱도 없는’ 기사로 사생활이 국민에게 알려지는 걸 거부할 자유가 있어요. 이거 기사 쓰기 전에 김도훈 시장님 동의받았나요? 아무리 봐도 국민의 알 권리 운운하기엔 무리한 소재 같은데요? 김 시장이 연예인도 아닌데.
이렇게 기자와 소속 언론사를 비난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보기 좋다’, ‘잘 됐으면 좋겠다’, ‘모자이크 지우면 엄청난 미인일 것 같다’는 종류의 댓글이 많았다.
어쨌든, 꽤 많은 사람이 기사를 읽었고 그중 적지 않은 사람이 그 기사를 퍼 날랐다.
덕분에, 도훈의 공식 SNS 계정에는 하트가 잔뜩 들어간 ‘축하한다’, ‘잘 어울린다’는 댓글이 넘쳐나고 있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도 여파가 있었다.
- 조만간 같이 얼굴이나 보자. (아버지)
- 일단 축하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어째 요새 오빠 소식을 전부 ‘다른’ 언론을 통해 듣는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 (도연)
“휴우.”
아버지와 동생 외에도 메시지는 많이 왔지만, 떠올리고 싶지 않은 도훈이었다.
“시장님, 이거 SNS에 공식 멘트는 하나 정도 올려야 할 것 같은데요. 기사는 그쪽에서 내린다고 쳐도, 시장님 계정에 축하한다고 댓글 쓰는 사람에게 뭐라고 해명은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고민 중입니다.”
도훈이 냉큼 알았다고 하지 않고 ‘고민 중’이라고 답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제, 영배가 알려준 기사를 확인하고 해당 기자, 언론사에 전화했다가 통화를 못 한 도훈은 다음으로 세경에게 전화했다.
도훈이 기사가 났다는 걸 알려주자, 당황한 세경은 기사를 확인하고 전화하겠다 답했고 한 10분쯤 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도훈은 자기 때문에 난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 부닥치게 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사진을 통해 세경을 알아보긴 힘들겠지만, 토요일에 그녀가 도훈을 만났던 건 업무의 일환.
당연히 강정문뿐만 아니라 도청 직원 중 누군가는 도훈과 함께 있는 사람이 세경임을 알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도훈의 사과에 대한 세경의 반응이었다.
- 음···. 기사가 좀 놀라고 당황스러운 건 맞는데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요. 호호!
웃기까지 하는 게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듯하달까.
- 기자가 응원한다고까지 한 걸 보면, 저랑 시장님이 함께 있는 게 제법 그림이 된다고 여겼다는 거잖아요. 진짜 연인처럼요.
이 대목에서 도훈은 긴장했었다.
세경이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 저보다는 시장님께서 좀··· 그러실 수는 있겠네요. 이건 제가 아니라 시장님 이름값을 노린 기사 같거든요. 나쁜 내용은 아니지만, 굳이 기사로 낼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황당하다고 할만하잖아요?
우려했던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도훈이 안도하는 순간.
- 시장님 기분은 어떠세요? 저랑 함께 있는 사진 보니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저는 오히려 그게 제일 궁금한데요. 하하!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묻고 굳이 대답을 들을 의도가 아니었다는 듯 그녀가 곧장 화제를 전환하고 곧 통화를 마쳤지만, 도훈은 어제 세경이 말하고자 한 ‘핵심’이 그것이었음을 모르지 않았다.
당연히 공식 SNS 계정에 올릴 글의 내용이 고민될 수밖에.
도훈이 어제 세경과의 통화를 되새기며 난감해하고 있는데, 영배가 도훈을 부르며 재촉했다.
“시장님?”
고개를 든 도훈과 영배를 비롯한 비서실 직원의 시선이 차례로 마주쳤다.
“좀 더 고민해서 제가 직접 쓰겠습니다. 이제 우리 업무 시작하죠.”
“......”
“... 알겠습니다.”
정색한 도훈의 말에 영배는 뭐라 대꾸를 못 했고, 두진이 끼어들며 직원들에게 눈짓했다.
‘더 언급하지 마라’는 눈빛에 다들 제각기 수첩이나 서류를 챙기며 조회를 준비하는데, 유독 영배만은 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어째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기사에 나오니 기분이 묘하네.’
‘응원’ 어쩌고 하는 기사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리며 영배가 실없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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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계정에 올릴 글을 작성하기 위해 도훈은 시장실에 틀어박혀 끙끙 앓다시피 했다.
쓰고 지우고, 썼다가 지우고, 고치다 지우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다 보니 단 몇 줄짜리 글을 완성하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 내 평생 가장 어려운 글이네.”
완성한 글을 바라보는 도훈의 눈빛은 퀭했다.
정신적으로 탈진에 가까운 그런 상태랄까.
- 글 잘못 썼다가는 세경이랑 영 빠이빠이라는 걸 아니까 그럴 수밖에.
“......”
자신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말하는 조상님을 살짝 째려본 도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으니까.
세경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2시간이 아니라 2분 만에 끝냈을 글이다.
- 머릿속이 정리됐어? 하긴 이건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는 거다만.
“호감··· 이 있다기보다는 세경 씨가 무감하지 않습니다. 이게 호감이 되고 연애 감정으로 자랄 거라고 확신은 아직 못하겠지만요.”
- 그런 네 마음을 글에 잘 살렸어?
“... 어느 정도만요.”
도훈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조상님이 말을 이었다.
- 뭐, 네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만 상대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문제지.
“... 그렇죠.”
기실, 이 글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세경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나 다름없다.
도훈이 뭐라고 세경과의 관계를 해명 혹은 표현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확연히 달라질 테니까.
그래서 2분이 아니라 2시간이 걸린 것이었고.
글을 다 써놓고서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읽고 또 읽는 후손을 향해 조상님이 질문을 던졌다.
- 다 썼는데, 왜 안 올리고 망설이고 있어?
“... 자신이 없어서요.”
- 무슨 자신?
“이 글을 보고 세경 씨가 제 뜻을 제대로 이해할지 아닐지를 말입니다.”
- 흠.
글과 말은 차이가 있다.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도 그 느낌을 100% 그대로 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진지하게 ‘죽어!’ 라고 말하는 것과 장난스럽게 ‘죽어!’ 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는 천양지차가 아닌가.
- 글로 안 전하면 될 거 아니냐.
“네?”
- 얘 좀 보게. 이런 중차대한 얘기를 다른 사람과 똑같이 글로 보게 할 생각이었냐?
“... 아.”
- 인마, 너 매너가 뭔지 안다며? 이건 당연히 기본적인 매너 아냐?
“... 그러네요.”
- 글로 전하지 말고, 말로 해. 그러고 보니 대화해도 꼭 네 뜻대로 되라는 법이 없네.
“... 네?”
- 어휴. 이 답답아. 말로 해도 걔가 네 뜻을 꼭 이해하고 따르라는 법이 있냐? 걔가 ‘나는 그런 답답한 거 싫다’고 하면 어쩔 거야?
“... 아.”
- 이건 걔랑 먼저 대화하고 써야 하는 글이었어.
“......”
피식.
뒤늦은 깨달음에 도훈이 헛웃음을 지었다.
도훈의 생각에 세경이 꼭 동의하라는 법이 없는데, 순서를 뒤바꾼 채 혼자 헛수고를 하고 있었지 않은가.
- 쯧쯧, 네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문제에 정말 서툴다는 걸 나도 깜빡했다.
“... 저도요.”
담담하게 답한 도훈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란히 놓인 업무용 핸드폰과 개인 핸드폰 사이에서 잠깐 멈칫한 도훈이 개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띠, 띠띠띠, 띠, 띠, 띠.
세경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도훈이 그답지 않게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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