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My Way - 3.
출근한 도훈이 자신에 대한 직원들의 새로운 평가를 듣고 쓰게 웃고 난 몇 시간 뒤.
대흥시 금선면의 어느 조용한 레스토랑 내실에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오셨어요.”
“네.”
“송 원장님이 조금 늦으신다고 하셨어요. 먼저 식사 주문하죠.”
“그러죠.”
방금 도착한 사람까지 일곱 중 여섯 명이 모인 가운데, 한 사람이 벨을 눌러 웨이터를 불렀다.
주문을 마치고 웨이터가 물러난 뒤에야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저는 주말에 끙끙 앓았어요.”
“몸살이라도 나셨어요?”
“몸살이 아니라 금요일 날 간담회 이후에 너무 분해서요. 화가 가라앉질 않더라고요.”
“지금은 좀 괜찮으세요?”
“어제 낮에 오늘 약속 잡았잖아요. 그러고 나서야 좀 견딜 만하더라고요.”
“저도 그랬어요. 몸이 아프기까지 한 건 아니었지만, 답답하고 얹힌 것 같았거든요. 마치 체한 것처럼요.”
한 명이 입을 열자 다들 앞다투어 공감을 표했다.
체한 것처럼 물만 마셨다느니,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느니, 잠자리에 누우면 간담회 장면이 떠올라 도통 잠을 못 잤다느니.
사립 유치원 원장들은 도훈과 잠깐 대면했던 게, 그에게 정곡을 찔렸던 게 어지간히도 분했던 모양이었다.
침묵하고 있던 게 언제냐는 듯 수다를 떠는 이들을 지켜보던 차혜은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 모였잖아요.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죠.”
“... 맞아요.”
오늘 이들이 모인 이유는 시청의 결정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하면 시청의 유, 아동 지원책에 제동을 걸 것인가를 상의하자는 것인데, 모이기로 한 뒤 두통이 사라지고 체증이 사라진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최소한 오늘 이 자리에서는 ‘공격’ 방법을 논의할 테니까.
말하자면, 도훈에게 당한 것을 통쾌하게 갚아 줄 궁리를 하자는 것만으로 울화가 가라앉았다고 할까.
“전에 자주 써먹던 방법은 어렵겠죠?”
“아무래도 그렇죠. 아직도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과거에 당국과 마찰이 생겼을 때 어린이집에서 가장 손쉽게 꺼내던 대응은 ‘집단휴원’, 혹은 ‘폐원 고려’.
하지만, 지난 법 개정으로 인해 객관적으로 정당하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집단휴원이나 폐원 시도에 대한 행정 처분이 대폭 강화됐다.
휴원 혹은 폐원은, 시도하기는커녕 말만 잘못 꺼내도 된서리를 맞기 십상이니 일단 논외.
“제가 좀 고민해봤는데요. 급식실 리모델링은 어떨까요?”
“리모델링? 그건 왜요?”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묻는 원장에게 말을 꺼낸 당사자가 싸늘하게 웃으며 답했다.
“급식실을 리모델링 하면 당장 급식을 못 하잖아요. 리모델링 기간에 식사는 도시락을 싸 보내야 할 거 아니에요. 학부모들이 하루 이틀은 할 수 있겠지만,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편하지 않겠어요?”
“그거 나쁘지 않네요. 혹여 도시락이 어렵다면, 외부업체에 맡겨도 되고요. 그 비용은 일부 학부모에게 부담시키면 될 테고···. 시설환경 개선하려고 리모델링 한다는 데 뭐라고 하겠어요.”
상상만 해도 즐겁다는 표정으로 원장들이 ‘대책’을 논의했다.
그들이 대책이랍시고 논의하는 것의 대부분은, 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불편해하고 힘들어 할 것인지와 일맥상통했다.
전에는 유치원에서 해결해 주던 걸 직접 해야 하는 부모들이 견디다 못해 시청을 성토할 테니까.
“호호호!”
“오호호호!”
한참 떠들던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주말의 화병 혹은 체증이나 두통은 싹 사라졌다는 표정.
원장들이 실제 실행 여부는 상관없이 상상만 해도 즐겁다는 듯 웃는데, 누군가 모임에 늦는 사람을 언급했다.
“송 원장님이 많이 늦으시네요.”
“그러게요. 원래 시간을 칼 같이 지키시는 분인데.”
“그러니까요.”
의례적인 말이 오가다 한 사람의 말에 시선이 집중됐다.
“안 그래도 요즘 그다지 의욕이 없어 보이셔서 좀 걱정인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작년부터 유치원 운영부터 시작해서··· 매사에 좀 시큰둥해지셨다고나 할까요? 모임에도 자주 늦거나 아예 안 나오시기도 하고···. 예전에는 안 그러셨잖아요.”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이들이 언급하는 송 원장이란 사람은 사립 원장 중 최연장자로, 지금이야 2등도 못하고 있으나 한때 대흥시 사립 유치원 중 가장 잘 나가던 곳의 운영자였다.
차혜은 등의 젊은 사람들이 더 큰 규모의 유치원을 열기 전까지는 명실상부한 대흥시 사립 유치원 계의 ‘원탑’이었다고나 할까.
“그게 아마 유치원이 아니라 자녀분들 때문일 거예요.”
“아, 들은 적 있어요.”
그 송 원장이라는 사람의 남편이 재작년에 사망했는데, 그 이후로 자식들이 유산 분배 문제로 다툼을 벌인다는 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
자식들의 재산 싸움이 오래가니 그 스트레스로 유치원 운영에도 흥미를 잃고 ‘살맛이 안 난다’는 얘기를 이 모임에서도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세상 참···.”
누군가 그렇게 탄식하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부인 하나가 들어섰다.
“늦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어서 앉으세요.”
“식사 아직 안 하셨죠? 뭐로 드실래요?”
원장들이 선배를 챙기는 모습을 보이는데, 송 원장이 담담히 웃더니 입을 열었다.
“식사는 됐고, 여러분께 할 말이 있어서 늦게라도 왔어요.”
“저희에게 할 말이요?”
“네.”
원장들의 시선이 집중됐고, 송 원장이 짧게 한마디를 했다.
“... 했어요.”
그 한마디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원장들 모두가 금요일, 도훈에게 ‘그러시던지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충격을 받았으니까.
“... 저, 정말 그러실 겁니까?”
“네, 이미 마음먹었고 통보도 했어요.”
“... 송 원장님.”
“최소한 여러분에게는 선배 된 도리로써 직접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왔어요. 아마, 오늘이 모임에 참여하는 마지막 날이 되겠네요.”
“......”
충격받은 원장들이 말문을 잃었다.
즐겁게 ‘대응’을 논의하던 그 표정은 충격과 경악에 일그러진 상태로.
한참이나 이어지던 침묵을 깬 건 차혜은.
“... 그 결정 바꾸실 생각은 없으세요?”
“네, 없어요.”
“그럼 앞으로 뭐 하시려고요?”
“내 인생 살려고요.”
“......”
“자식들 싸움 지켜보고 있자니 남편 거 말고 내 명의로 된 것도 나중에 저런 분쟁의 씨앗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하나도 안 물려줄 생각이에요. 내 말은 귓등으로 안 듣는 자식들은 싸우든 말든, 남은 내 인생 적당히 즐기며 살다가, 죽고 나서 남는 건 어디 기부라도 하려고요.”
담담한 말투지만,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본 차혜은은 송 원장이 결심한 걸 바꾸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더 암담한 심정이 됐다.
대책을 논의하자고 모인 자리에서 상황이 더 안 좋아질 얘기를 듣고 말았으니.
다른 원장들도 차혜은과 비슷한 생각인지, 누구도 평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후배 원장들을 바라보며 송 원장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여러분도 너무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마세요.”
“......”
“아이들 잘 돌보는 거, 솔직히 돈이 되기도 하지만 덕을 쌓기 좋은 일입니다. 안 그래요?”
“......”
“지나치면 과하다는 말이 있죠. 사람 욕심이 가장 대표적인 게 아닌가 생각해요. 내 자식들을 보고 있자니, 혹시 내가 예전에 저러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린 애들을 볼모로 말이죠.”
“......”
“난 왜 이걸 진즉 깨닫지 못했는지 후회가 돼요.”
“......”
“이만 가볼게요. 다들 건강하세요.”
송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실을 나갔지만, 충격받은 원장들 모두 석상이라도 된 듯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어떤 생각이 차혜진의 뇌리를 스쳤다.
자신들을 대하던 시청 직원의 전반적인 태도나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 도훈이 간담회 때 전혀 흔들림 없이 담담한 모습을 보이던 것.
그 뒤에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건 아닐까.
‘... 설마.’
차혜은이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다른 원장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내실에 앉은 모두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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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퇴근 직후, 시청 앞 한 삼겹살집.
“술은 적당히만 드시고, 고기 많이 드세요. 이번 일로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도훈의 선창에 잔을 들고 화답하는 이들은 사회복지실 보육팀 직원들이었다.
도훈이 옆에 앉은 실장과 팀장과 건배하며 말을 이었다.
“저 때문에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시장님.”
“별말씀을요.”
겸양의 말을 하는 두 사람에게 도훈이 친근하게 웃어 보인 뒤 말을 이었다.
“요즘 직원들 사이에 저를 호평하는 얘기가 도는 모양인데, 제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다 두 분과 직원들 덕분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 하하하.”
“... 하하. 저희보다는 이 주무관 공이 크죠.”
팀장의 말에 남자 직원 하나가 얼굴을 붉혔다.
그는 다름 아닌 학부모 간담회 날 계장과 함께 참석해 원장들에게 쩔쩔맸던 담당자.
그 날 고생했던 것도 있지만, 오늘 시장이 식대를 책임지는 부서 회식을 하게 된 이유 중 그가 ‘비밀리에’ 세운 공이 있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 주무관님.”
“아닙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다고는 해도, 그 상황을 만드는 데 큰일 하셨잖습니까.”
“감사합니다.”
쨍.
도훈이 손을 뻗어 내민 잔에 자기 잔을 부딪치며 담당자가 쑥스럽다는 표정을 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이 주무관의 아이가 송 원장이 운영하는 사립 유치원에 다니는데, 아내를 통해 원장이 유치원 운영에 관심이 없고 매사에 무기력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러다 새해 초에 아내 대신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원장과 마주쳤고, 우연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의 업무가 보육과 관련한 것이니 원장과도 대화가 통했다.
그러다 ‘다 버리고 어딘가로 훌쩍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다’는 송 원장의 탄식을 듣게 됐는데, 작년 말부터 교육부와 교육청이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정책을 때마침 떠올렸다.
그건 다름 아닌 사립 유치원을 국가나 지자체가 매입해 공립으로 전환하는 것.
이름하여 ‘매입형’ 공립 유치원이라는 이 방안을 원장에게 설명하고 혹시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던 것.
실제로 유치원 일에도 흥미를 잃고 있던 송 원장은 이 주무관을 통해 이 정책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됐고, 고민 끝에 유치원을 국가에 매각하기로 했다.
이 주무관과 송 원장이 그런 논의를 해온 것은 당연히 극비.
도훈조차 그 이야기를 학부모 간담회를 열기 전에야 처음으로 전해 들었다.
매각이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지난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었고, 오늘 송 원장이 교육지원청 담당자와 직접 만나 의사를 전달했다.
다시 말해, 대흥시에서 규모가 ‘제법’ 되는 사립 유치원 하나가 공립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중개는 했으나 유치원 원장과 논의하는 상대가 시청이 아니고 최종 운영 책임도 시나 도가 아닌 국가가 지게 될 터.
즉, 대흥시에 국립 유치원이 생기는 것이고 당연히 사립 유치원들의 입지는 더 좁아지게 될 터.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선거 때 도훈의 낙선운동을 하는 건 막지 못할지라도, 국공립 유치원이 늘어나니 사립 유치원을 압박해 실질적인 복지 개선이나 부모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좀 더 쉬워질 터였다.
오늘의 회식은 그걸 축하할 겸, 초기 공립 유치원 논의 과정에서 잠시 배제됐던 직원들에게 도훈이 사과하고 위로도 할 겸 해서 열린 터였다.
“제가 오래 버티고 있으면 다들 눈치 보실 테니까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격려금 봉투를 전하고 도훈이 일어섰다.
밖으로 나와 구석진 곳을 찾아 담배를 빼 든 도훈에게 두진이 질문을 던졌다.
“이 주무관과 송 원장 사이의 일을 모르셨다고 해도 시장님 태도나 말씀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도훈은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아마 그랬을 겁니다.”
“하하, 직원들 평가가 과한 것만은 아니었네요.”
도훈의 손에 든 담배에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내고 있던 영배가 맞장구를 쳤다.
“실장님이 잘 모르셔서 그렇죠. 저는 시장님 학창 시절에 패기 충만한 모습 많이 봤습니다.”
“이를테면?”
“하하, 한둘이 아니죠. 그러니까···.”
영배가 말을 잇지 못한 건, 도훈의 눈이 가늘어지고 눈빛이 심상찮게 변한 걸 목격한 때문.
“... 하하, 나, 나중에 조용히 말씀드릴게요.”
“사람 실없기는.”
두진이 영배를 타박했고, 도훈이 피식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그의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다.
“김도훈입니다.”
모르는 번호를 확인하고 답한 도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어디··· 시라고요?”
상대가 뭐라 말하는 게 두진과 영배에게도 희미하게 들리는 게 잘 안 들려서 다시 묻는 건 아니었다.
“거기서 왜 제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도훈을 두진과 영배가 궁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저녁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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