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33화 (134/279)

133. 과유불급 - 3.

금요일, 세 명의 최종 후보와 최종에서 탈락한 다른 세 명을 다 만난 뒤에도 도훈은 쉽사리 한 사람을 골라내지 못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의견은 너무도 쉽게 한 사람으로 좁혀졌다.

“저는 원 주무관에게 한 표 주렵니다. 업무 평가나 기타 평판 등을 생각했을 때 가장 나은 것 같습니다. 물론, 시장님 ‘덕질’ 한다는 얘기에 좀 놀라긴 했는데 순수 개인 취미라면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진)

“저도 지연이요.” (정임)

“저도 원지연 씨에게 투표하겠습니다. 이유요? 음, 솔직히 말하자면, 그분과 일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영배)

“... 저는 기권하겠습니다. 저라도 기권해야 시장님이 부담을 덜 느끼실 것 같습니다.” (영진)

비서실 직원들은 원지연에게 몰표를 던졌다.

기권한 영진도 아마 다른 직원들의 표가 원지연에게만 몰리지 않고, 도훈이 원지연을 좀 난감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면 그녀에게 표를 줬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주말 동안 원지연에 관해 좀 알아봐 달라는 도훈의 은밀한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홍영진이 모은 원지연에 관한 정보는, 일요일 저녁 장문의 메시지로 도훈의 핸드폰에 도착했다.

- 깔끔한 일 처리에 대인관계가 무난하다는 평이 대부분입니다. 그간 거쳤던 부서 중 부서장이 아쉬워하면서 보내지 않은 사람이 없다네요. 간부라면 누구나 능력 있는 직원을 곁에 두고 싶어 하니까요. 지금도 비슷한 게, 원 주무관이 비서실에 지원서 냈다는 얘기 듣고 공보팀장이 정말 아쉬워하고 있답니다. 아, 그리고 원 주무관이 팬 어쩌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아마도 정말로 개인적인 취미일 뿐인가 봅니다.

그런데도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털어버리지 못하는 도훈은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정임과 시장실에 단둘이 마주 앉았다.

“시장님, 원지연 씨는 공사 구분이 아주 철저한 사람입니다. 제가 아무리 원지연 씨와 친하다지만, 그런 거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추천하지 않았을 거예요.”

확신한다는 정임에게 도훈이 반론을 던졌다.

“... 흠. 하지만, 지금까지는 ‘덕질’의 대상인 사람과 매일 얼굴 마주치며 근무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금요일 날 들어보니까 지금까지는 그 취미생활의 대상이 대개 연예인이던데요. 원 주무관이 비서실로 오면 저와 매일같이 얼굴 마주치게 될 텐데, 그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렇기야 하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원지연 씨가 어떻게든 비서실에 들어올 생각이었다면, 면접 때 시장님 광팬이라는 걸 밝히지 않지 않았을까요?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더라면, 아마 비서실로 발령이 났을 테고 그다음에 모두에게 비밀인 채로 신나게 ‘덕질’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그건 그러네요.”

도훈이 인정하자 정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 보세요. 원지연 씨, 자기한테 불리한 내용이라고 숨기는 그런 캐릭터 아니에요. 불리할 걸 뻔히 알면서도 드러냈단 말이죠. 그리고 원지연 씨는 저랑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독신주의라고 얘기하고 다녔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런 사실이 퍼지기 전에 두어 명 원지연 씨에게 대시했다가 ‘뻥’ 차였어요. 그중 하나는 시장님보다··· 훈남이라고는 못하겠는데, 시장님과 비슷한 수준의 훈남이었어요. 그런데도 일고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박에 퇴짜를 놨죠.”

“... 하하.”

“그리고, 시장님은 비서실에 개인적인 일 절대 안 맡기시잖아요. 그런데 뭐가 걸리시는 건데요? 순전히 공적인 관계일 뿐인데요.”

“......”

정임에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도훈은 얼마간 침묵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혹시나 문제 생기면 정임 씨 원망할 겁니다.”

“그러세요. 물론,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요.”

“거기에 더해서 정임 씨를 다시 비서실로 불러들일 겁니다.”

“그러세요. 역시,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요.”

“... 하하.”

너무도 단호한 정임의 답에 도훈은 손을 들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생각보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고정임의 후임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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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비서실에서 고생 많았습니다.”

“...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난 1년간 정임 씨가 있어서 무척 든든했습니다. 초짜 시장에 초짜 비서관이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고마워요.”

“... 네.”

도훈이 내미는 꽃다발을 받아드는 정임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6월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 비서실 회식에 정임의 환송식과 원지연의 환영식을 겸한 자리.

도훈이 비서실에서 떠날 때 관행적으로 주어지던 승진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 말했을 때, 아주 ‘쿨’ 하게 웃어넘기던 정임은 소박한 꽃다발에 눈물을 보였다.

그녀의 환송식이기도 한 자리라 정임의 남편까지 초대되어 함께 한 자리.

장소는 비서실 회식 단골장소인 실내포차였다.

“건배!”

“건배!”

쨍!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비운 일곱 사람.

떠나고 새로 들어오는 걸 기념하는 자리이지만, 영원한 이별도 아니고 자리를 옮겨봤자 같은 대흥시 안.

꽃다발을 받고 눈시울을 붉혔던 정임도 환하게 웃고 있는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정임 씨. 동사무소로 나갔다고 저 ‘쌩’ 까면 안 됩니다.”

“에이, 저를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말을 하세요. 조 비서관님이야말로 이제 ‘식구’ 아니라고 모른 척하지 마세요.”

“하하! 정임 씨야말로 저를 어떻게 보시고? 대흥시 공무원이면 다 우리 식구 아닙니까?”

“그럼요. 자, 식구끼리 다시 건배하죠!”

“건배!”

쨍!

도훈은 단숨에 잔을 비우는 원지연에게 말했다.

“지연 씨, 건배라고 무조건 비울 필요 없어요. 우리 비서실 음주할 때 제1원칙은···.”

“마시고 싶을 만큼만 마신다, 맞죠? 마시기 싫으면 아예 안 마셔도 되고요.”

“네, 맞습니다.”

“저도 알아요, 시장님. 그 정도는 고 주무관에게 진즉에 들었습니다. 사실, 저 술 좋아해요.”

“오오! 그거 좋네요!”

도훈은 담담히 웃기만 했고, 영배가 환호했다.

그간 정임에게 ‘술, 담배 좀 적당히 하라’는 얘기를 집중적으로 들었던 게 영배였다.

도훈도 술을 자주 마시지 않지만 좋아했고 담배야 적당히 즐기고 있지만, 아무리 도훈이 권위를 세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정임도 도훈에게 ‘대놓고’ 잔소리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어쨌든, 술을 좋아한다는 원지연이라면 잔소리를 ‘안’, 최소한 ‘덜’ 할거라 여긴 모양이었다.

술잔이 돌고 취기가 적당히 오르기 시작할 무렵, 원지연이 정임과 자리를 바꿔 도훈과 마주 앉았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저야 말로요.”

쨍.

건배한 두 사람이 술을 비웠고, 원지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덕질’은 절대 티 안 나게 하겠습니다.”

“... 안 하시겠단 말은 안 하시네요.”

“취미인데요. 취미를 금지당하느니 차라리···.”

“네. 알겠습니다. 그냥 취미 하세요.”

“하하, 네.”

포기하니 좀 마음이 편해졌달까?

도훈은 ‘광팬’을 눈앞에 두고도 담담히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개인적인 질문 한 가지만 해도 됩니까?”

“얼마든지요.”

“제 어디가 원 주무관의 흥미를 끌었나요?”

반짝, 반짝.

그 질문이 ‘광팬’ 스위치를 켜기라도 한 것일까?

갑자기 원지연이 도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음, 외모는 기본이고요. 성격도 좀 일반인과 다른 면이 있었던 거요.”

“... 일반인과 다르다뇨? 저 아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솔직히 그건 아니죠. 일반인은 열 받는다고 시장에 출마하는 일은 안 하잖아요. 그것도 무소속으로.”

“......”

“그다음으로는 생각보다 시장직을 능수능란하게 수행하셨던 거요.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잖아요. 같은 초선이긴 하지만, 의원들도 다 ‘발라’ 버리셨고.”

“... 그 표현은 좀 그렇지 않아요?”

“딱 들어맞는 표현이잖아요.”

좀 어이없어하는 도훈에게 원지연이 생긋 웃으며 대꾸하고는 말을 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여러모로 사람의 흥미를 끌 만한 점은 충분히 갖추셨어요.”

“... 하하.”

“아마 시장님이 언론에 일부러 재미없게 인터뷰하시지 않았으면 저 말고도 팬이 많이 생기셨을 걸요? 하지만, 전 그렇게 하신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왜요?”

“음, 초선의 젊은 시장이 너무 튀면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기 쉽지 않을까 생각해서요. 이따금 시장님이 언론에 등장해도, 시장님은 그게 잊히길 바라지 키우려고 하시질 않잖아요. 그게 오히려 호감이 된다고 생각해요.”

공보팀 직원답게 개인적인 분석까지 섞어 말하는 원지연의 모습에 도훈이 쓰게 웃었다.

그런 도훈에게 원지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인데요. 재선을 준비하신다면, 무소속을 유지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 그건 또 왭니까?”

“어느 당에 속한다고 해도 시장님 개인이 가진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거든요. 무소속이긴 해도 시의회와 잘 발을 맞추고 있고, 아마 안 그러실 테지만 보수 야당은 마이너스도 확실한 마이너스일 테고요. 에, 또···.”

이어지는 원지연의 말을 도훈은 담담히 듣기만 했다.

다만, 그녀가 말하는 것들이 대부분 도훈도 수긍이 갈 정도의 논리를 갖춘 것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영배도 같은 생각인지, 지연의 말이 끝나자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연 씨, 선거 컨설턴트를 해도 되겠습니다.”

“헤헤. 그냥 이런저런 책 읽고 따라 한 거예요. 아무래도 공보 팀 일이 언론 관련한 게 많으니까요.”

수줍게 웃는 원지연을 보며, 도훈이 걱정했던 것보다는 비서실 직원을 잘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순간.

팍.

실내의 조명이 일제히 나갔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정전인가?”

“아닌데? 저 밖에는 멀쩡한데?”

“뭐야, 이거?”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길 건너편 건물들은 멀쩡했는데, 실내포차의 환풍기까지 꺼진 것이 아무래도 정전인가 싶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당황한 주인이 밖으로 나갔고 그걸 바라본 원지연이 뒤따라 나갔다.

도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부르려는데, 정임이 생긋 웃더니 말렸다.

“가만 놔둬 보세요.”

“... 왜요?”

“잠시 뒤에 아마 예상 못 한 지연이의 참모습을 보실 수 있을 테니까요.”

“......”

정임이 한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도훈도 다른 사람들도 그녀가 한 것처럼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 뒤, 원지연이 손에 검은 봉투를 하나 들고 들어서더니 계산대의 점원에게 건넸다.

“이거 양초에요. 보니까 이 건물만 정전됐더라고요. 이런 경우 배전반이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은데, 사장님이 한전에 전화하고 계시니까 언제쯤 사람들이 올지 곧 알게 될 거에요.”

“... 아, 고맙습니다.”

양초를 건넨 원지연이 자리로 돌아왔고 영배가 질문을 던졌다.

“뭐하고 오셨어요?”

“사장님한테 한전 정전 신고전화 번호 알려드리고 이런저런 얘기 좀 해드렸어요.”

“정전신고요?”

“국번 없이 123이 정전신고 번호에요. 사장님이랑 배전반 같이 열어봤는데, 차단기를 다시 올려도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게 전문가가 와야 할 일인 것 같더라고요.”

“또 무슨 얘기 했어요?”

도훈이 끼어들어 묻자 원지연이 말을 이었다.

“음, 언제까지 사람이 올 수 있는지 그것부터 확인하라고요. 정전이 길어지면 음식점 냉장고 안에 있는 것들은 문제가 생기잖아요. 그런데 이 위에 횟집 있잖아요. 기포기가 오래 안 돌면 고기들이 다 죽을 테니까요.”

“아, 그렇겠네요.”

“혹시나 금요일 저녁이라 출동이 늦을 것 같으면 오늘 장사를 접고 냉장고 음식이나 물고기 옮기시는 게 좋다고 말씀드렸어요. 그게 손해가 덜할 테니까요.”

“......”

“그리고···.”

무슨 정전 시 대응 매뉴얼을 달달 외우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원지연은 ‘짧고 인상적인’ 설명을 했다.

“정전 많이 겪었습니까?”

“한 번이요. 1년 반쯤 전에 당직설 때요. 사람들이 정전되면 꼭 한전에만 전화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한 번 겪은 것치고는 아주 꼼꼼하게 알고 있네요?”

“한전에서 정전 때 우선 확인해야 할 것들에 대해 홍보자료를 낸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는 거죠. 언제 어느 때 써먹게 될지 모르잖아요.”

“오늘 이렇게 잘 써먹게 되는군요.”

“헛수고가 아니라서 다행이죠.”

생긋 웃은 원지연이 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인근 가게에서 빨리 양초를 사 오느라 서둘렀고, 이런저런 말을 하느라 목이 탄 때문이었다.

‘... 훌륭해. 아니, 훌륭한 것 이상이야.’

시민의 불편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거나 어떤 상황에 필요한 조치가 뭔지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가 안내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공무원의 자질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취미 때문에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모습이라면 과유불급,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지.’

담담한 표정으로 원지연을 바라보는 도훈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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