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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에 시장 되다-144화 (145/279)

144. 더 중요한 건 언제나 현장 - 2.

경찰관까지 나타났지만, 말리는 사람들에게 붙들린 두 상인은 이제 몸이 아닌 말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야, 이 빌어먹을 새끼야. 이 호···!”

“뭐? 이리 와! 이리 오라고, 자식아! 오늘 끝장을 보자.”

인도에 오가는 사람이 많아, 차도에 나서 말싸움을 하는 상인들을 지나치며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싸움 구경이 재미있다지만, 몸싸움도 아닌 상스러운 욕 배틀에 관심을 보일 이들은 거의 없었다.

아이를 동반한 사람들은 아이의 귀를 막고 걸음을 서두르는 그런 모습.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욕설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입을 다문 것은 잠시 지켜보던 도훈이 다가가 으름장을 놓은 직후.

“한 마디만 더해 보세요. 두 번 다시 여기 장터에는 발 못 붙이게 할 테니까.”

“너는 뭐···.”

“어떤 개···.”

두 사람을 붙들고 말리던 이들 중에 아침에 도훈을 찾아왔던 이들이 얼른 속삭여, 싸움하던 두 상인이 입을 다물었다.

싸움하던 사람 중 하나는 이른 아침에 만났던 세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 시장님 오셨습니까.”

“고생 많으십니다. 남 경사님.”

“하하. 뭐, 저희 일인데요.”

“요새 사람들이 경찰관을 너무 안 무서워하네요.”

“쩝. 그렇죠, 뭐.”

대흥시의 경찰관과 소방관들의 이름과 얼굴도 다 외운 지 오래인 도훈.

안 그래도 차가 많은 장날이라 고생하던 경찰관들을 위로한 도훈이 돌아서 싸늘한 눈빛으로 상인들을 훑었다.

“본격적으로 치고받고 하신 건 아닌가 보네요.”

흥분해서 얼굴이 벌겋긴 했지만, 코피가 터지거나 멍이 보이진 않았기에 꺼낸 말.

“... 죄송합니다, 시장님.”

싸움의 당사자들은 말이 없었고, 아침에 만났던 사람 중 하나가 도훈에게 사과했다.

“됐습니다. 제게 사과하실 필요 없고요. 시민들 다 보는 데서 민망한 소리 안 들리게만 해주세요.”

“... 네.”

“그럼.”

도훈이 돌아서 걸음을 옮기는데 생각도 못 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 씨! 웃돈까지 주고 자리 예약했는데 아직 자리를 펴 보지도 못 하···. 웁! 웁!”

우뚝.

걸음을 멈춘 도훈이 돌아섰다.

말싸움하던 한 사람의 입을 주변에서 말리던 상인이 막고 있었다.

입을 막은 사람도 주변에 있는 다른 상인들도 당황스러운 표정.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요. 제가 분명 웃돈 어쩌고, 자리를 예약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조 비서관, 들었습니까?”

“네, 들었습니다.”

“남 경사님은 들으셨어요?”

“저도 똑똑히 들었습니다.”

도훈의 질문에 답하는 영배나 경찰관의 눈초리도 어느새 싸늘하게 변한 상태.

“그 분 놔주세요.”

“... 아, 그, 그게···.”

“어서요.”

“......”

더없이 싸늘한 도훈의 말에 입을 막고 있던 사람이 낭패한 표정으로 손을 뗐고, 입이 자유로워진 상인이 분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웃돈 주고 자리 예약했다고 하셨던 것 맞죠?”

“... 아, 그게···.”

“맞아요, 틀려요?”

“... 맞습니다.”

“그 자리가 시청 천막 옆인가요?”

“... 네.”

목소리는 싸늘했지만, 도훈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다만, 그 눈빛이 점점 더 사납게 변해가고 있을 뿐.

“선생님이랑 아침에 상인 대표라고 저 만나셨던 분들, 잠깐 저랑 얘기 좀 하시죠.”

“... 저기, 시장···.”

“따라오세요. 그러시는 게 좋을 겁니다.”

말을 마친 도훈이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명의 상인이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도훈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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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대로변 안쪽에 자리한 커피숍.

자기 마음대로 아메리카노로 커피를 통일해 주문한 도훈이 입을 열었다.

“장날 자리 배정 여러분이 하십니까?”

“배, 배정까지는 아니고 조정은 좀 합니다.”

“자릿세 받아요?”

도훈이 날 선 표정과 목소리로 묻자, 대표라는 세 상인이 서로 눈치를 봤고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다 받는 건 아닙니다. 사거리 가까운 자리, 좀 위치가 좋은 자리만요.”

“몇 자리나 됩니까?”

“많을 때는 스무 자리, 평균 열 두서너 자리 정도 됩니다.”

“얼마를 받는데요?”

“오천 원 정도요.”

생각보다 액수가 크지 않았지만, 도훈의 싸늘한 표정과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장날 좌판 자리 배정하는 것 가지고 큰돈이 오갈 거로 생각하지 않았던 도훈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나와 물건을 산다지만, 장이 열리는 길거리를 끝에서 끝까지 재도 200m가 조금 넘을까 말까 한 정도.

아무리 목이 좋은 자리가 유리하다고는 해도, 끝에서 끝까지 산책하는 기분으로 지나가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닐 터.

각 좌판의 매출은 모르겠지만, 많은 돈을 내고 자리를 탐할 정도로 매출에 영향을 줄 리가 없었다.

또한, 철에 따라 달라지긴 해도 시민들이 장날 많이 찾는 품목은 식재료와 관련된 것들이라고 도훈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리 때문에 큰돈이 오간다면 문제가 돼도 진즉에 됐을 터.

“그 돈 어디에다 씁니까?”

“물이랑 전기 끌어오는 가게들에 사례하고 나머지는 장 끝나고 청소할 때 씁니다. 쓰레기봉투 같은 거요. 그러고도 남으면 청소하시는 분들께 약소하나마 선물도 좀 하고요.”

“......”

“대단한 건 아닙니다. 생선이나 과일, 어느 때는 옷 같은 것도 있고요. 대개, 그날 장사가 잘 안된 상인의 물건을 사서 전하는 겁니다.”

“......”

상인들은 변명하듯 말하고 있었지만, 도훈은 진즉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얘기였다.

무기계약직 직원들에게 신경을 쓰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된 부분인데, 확인해보니 기껏해야 청소에 나선 직원 한 사람당 생선 한두 마리, 과일 한 봉지, 러닝셔츠 한 벌씩 정도가 고작이었다.

직원들이 먼저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독식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래도 과한 걸 받거나 욕심내면 안 된다’고 가볍게 주의를 시키는 선에서 끝냈었다.

청소하는 직원들도 장날 찾아오는 상인들이 형편이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도훈이 알고 있다는 것 때문인지 지금껏 문제 될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웃돈 얘기는 뭡니까?”

도훈이 추궁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고 말을 꺼낸 당사자가 입을 열었다.

“지난주에 물건을 너무 못 팔아서요. 오늘은 자리라도 좀 좋은 곳에 잡으면 달라질까 해서 웃돈을 내고 예약을 했어요.”

“얼마요?”

“만원이요.”

“......”

도훈은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옆에 앉은 영배와 혹시나 몰라 따라온 경찰관은 달랐다.

‘웃돈’, ‘예약’이라는 말을 듣고 뭘 상상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황당하다 못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훈은 상인들이 장날 장사를 마치고 미화원들에게 소소한 선물을 하는 건 알았지만, 자릿세를 받는다는 건 오늘 처음 들었다.

다행히,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란 판단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 경사님?”

“잠시만요, 시장님. 제가 몇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그러세요.”

경찰관이 나서 질문을 던졌다.

“정말 오천 원 받아서 얘기한 대로 쓰는 것 맞아요?”

“물론이죠.”

“남으면 누가 가져가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아이고, 경사님. 우리 다 떠도는 장사꾼입니다. 여기에 무슨 단체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큰 이권이 달린 것도 아닌데, 큰돈 오갈 일이 없어요. 그 날 걷은 자릿세는 그 날 다 씁니다. 맹세합니다.”

몇 가지 질문을 더 해 꼼꼼히 확인한 경찰관이 도훈에게 말했다.

“원칙적으로는 자릿세 같은 건 없어야 하겠지만, 이 정도면 사회 통념상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경찰관의 말에 상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도훈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경찰관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도, 시장인 도훈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걱정스러운 기색.

시장이 마음먹기에 따라 장사 환경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 이해가 가는 모습이었지만, 도훈은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내가 좀 오버했네.’

속으로 중얼거린 도훈이 입을 열었다.

“경찰관의 판단이 옳겠죠.”

도훈의 말에 상인들이 표나게 안도했다.

“다만, 앞으로도 우리 시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계속 오늘처럼 처리할 테니까 분란 안 나게 신경 쓰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시장님.”

아침에 불퉁거렸던 세 대표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저희 미화원들에게 지나친 선물은 하지 마시고요.”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암요. 그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도훈이 말을 이었다.

“장사 잘하시고요. 지금처럼 문제 되지 않을 수준으로 잘 협의하세요. 혹시 장 문제로 애로사항이 있으면 뭐가 됐든, 시청에 이야기하세요.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저희도 협조할 테니까요.”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시장님.”

“감사합니다!”

도훈이 웃돈을 내고 자리를 예약했다는 상인을 흘끔 하고 마지막 말을 했다.

“오늘 저 사장님 예약비는 돌려주시는 게 좋겠네요.”

“물론이죠!”

“그러겠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바쁘신데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커피값은 제가 냈으니 목들 축이시고요.”

대꾸하는 상인들에게 정중히 인사한 도훈이 자리를 떴다.

이동 시장실로 향하는 도훈의 표정에 씁쓸함이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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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이른 저녁.

“표정이 왜 그런가?”

“그냥 기분이 좀 그러네요.”

“오후 내내 그런 것 같던데?”

“하하, 표 안 내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보였습니까?”

“나도 자네를 1년 넘게 겪었네. 그 정도는 알아채야지.”

두진의 말에 도훈이 쓰게 웃었고, 영배가 도시락을 뜯으며 입을 열었다.

“아마, 상인들에게 잠깐 고압적인 모습 보였던 게 마음에 걸려서 저러는 걸 겁니다.”

“아, 낮에?”

“네. 그 뒤로 저랬으니까요.”

야근을 위해 도시락을 사 왔건만, 오늘따라 입맛이 쓴 도훈이었다.

“행정에서 현장이 참 중요하죠, 실장님?”

“물론이지. 현장에 근거하지 않는 정책은 다 쓰레기야.”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도훈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아마, 오늘 상인들 얘기를 직접 듣지 않고 보고를 받았다면 대뜸 화부터 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릿세나 웃돈이란 단어만으로 화를 낸 뒤, 자초지종을 듣고는 멋쩍어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글쎄, 모를 일이지. 보고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면 화낼 수준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 테니까. 자네, 화 잘 안 내잖아.”

“......”

잠시 침묵하던 도훈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시장이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두진과 말없이 영배를 바라봤고 영배가 어깨를 으쓱했다.

두진은 상인들이 싸웠을 때 도훈과 함께하지 않아 영배에게 짧게 얘기만 전해 들었다.

영배가 한 얘기에는 도훈이 저렇게 ‘자기반성’을 할 장면이 없었던 것.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 건가?”

두진이 묻자, 도훈은 심호흡한 뒤 표정을 바로 하고 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민에게 예의 갖추고 현장을 살피길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기고 있는 것뿐이에요.”

“진짠가?”

“네.”

낮에 잠깐 흥분해 고압적인 모습을 보였던 건, 외지 상인이라고 은연중에 대흥 시민보다 무조건 뒷줄에 놓고 생각하려 했던 때문이 아닌가 하는 반성.

시장 ‘씩’이나 되니, 상인들이 자율적으로 정한 소소한 규칙조차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설레발을 친 게 아닌가 하는 반성.

주변에서 띄워주는 사람이 많으니, 대흥시의 현장보다 사무실 혹은 언론매체와 상대하는 일을 우선시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

그런 반성들을 오늘 내내 하는 도훈이었다.

도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두진이 말을 이었다.

“언제 어디서 누굴 상대하든, 현장의 시민들에 근거한 말과 일을 한다면 최소한 중간은 갈 수 있네.”

“... 네.”

“그걸 잊어버리지 않는 한, 아무리 젊은 초짜라지만 자네는 웬만한 정치인보다 더 잘할 거야.”

“... 네.”

“밥 먹자고. 그래야 일할 거 아닌가.”

“그래야죠.”

도훈이 도시락을 손에 들었다.

소소한 사건 덕분에 잊지 말아야 할 걸 다시 확인한 그의 눈이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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