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59화 (160/279)

159. 각자의 신념 - 2.

도훈이 주민센터에서 시민과의 대화 행사를 한 이틀 뒤 아침,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원봉사과장이 찾아왔다.

두진과 함께 시장실에 들어선 과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민원실에 항의 전화가 한 통 왔었습니다. 내용이 뭐냐면···.”

과장의 말이 끝나고 도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두진이 입을 열었다.

“대상자가 고정임 주무관이라고요? 확실한 겁니까?”

“네. 고 주무관을 콕 찍어서 이야기했습니다. 차마 민원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하겠습니다만, 화가 많이 난 건 분명한 것 같더군요.”

“민원인이 왜 화를 낸 겁니까? 고 주무관이 괜한 이유로 사람 화나게 할 그런 친구가 아닌데···.”

“민원인 말로는 고정임 주무관이 자기에게 폭언을 하고 협박도 했다는데, 솔직히 그건 과장도 아주 한참 과장한 것 같습니다. 다만, 고정임 주무관에게 확인하니 민원인과 실제로 전화 통화는 두세 번 정도 했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된 거냐면···.”

과장의 설명은 이랬다.

이틀 전, 주민과의 대화 때 동네에 형편이 안 좋은데 몸까지 불편해진 노인을 살펴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있었다.

주민센터 담당 직원이 당일 오후 바로 노인을 찾아갔다.

돌봐줄 사람도 없고 경제 사정도 나빠 병원도 못 가고 있다는 노인의 사정을 확인하고 병원이라도 데리고 가려고.

결론만 말하자면, 첫 방문은 실패.

담당 직원이 국민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제도의 혜택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노인은 끝내 거부했다.

하지만, 담당 직원도 프로.

그는 퇴근 후 다시 노인을 찾아갔고 이번에는 마침 집이 근처였던 고정임도 함께했다.

직원이 정론으로 노인을 설득했다면, 정임은 사근사근하게 노인을 다독였다.

재산을 물려받자 연락을 끊다시피 한 자식이 있는 노인이다.

당연히 마음에 상처가 있을 수밖에.

어쨌든, 그런 주민센터 직원들의 노력은 끝내 성공해 노인은 다음 날 오전 병원을 찾았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수술까지 할 필요는 없이 약물 처방이 내려졌지만, 얼마간 아픈 부위를 고정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아파도 무릎을 쓸 수 있을 때와 무릎을 아예 굽히지 못할 때의 불편은 차원이 다를 터.

“그래서 어르신이 약만 먹고 무릎에 보호구는 안 하겠다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의사가 그러면 치료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남의 도움을 받게 될까 봐 거절하셨다는 겁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노인은 약 꼬박꼬박 먹고 조심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끝내 보호구를 안 하고 병원을 나섰다.

치료는 물론이고 노인의 생활환경이 마음에 걸린 담당 직원은 고심하다 노인의 자식들에게 연락했다.

자식들은 노인의 현재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심드렁하게 반응했단다.

직원이 자식들과 통화할 때 마침 정임도 함께 있었는데, 반응이 제일 불량했던 큰아들과의 통화에 끼어들게 됐다나?

“끼어들어요?”

“고 주무관 말로는 큰아들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너무 못돼서 도저히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임 씨가 욕이라도 해줬다는 겁니까?”

“욕은 안 했고, 아버지 건강은 챙겨야 할 거 아니냐고 따지고 이런저런 호소도 했답니다. 함께 있던 복지팀 직원에게 확인했는데 욕은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여하튼, 고정임은 ‘욱’하는 마음에 나서서 큰아들과 통화를 했는데 그걸 불쾌하게 여긴 큰아들이 민원실로 전화해 당장 고정임을 징계하라는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만약, 시에서 징계하지 않으면 언론에 알리겠다고 했다나?

“이런 민원을 심심치 않게 받아서 그러려니 하는 편인데, 이 민원인은 정도가 좀 심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장님께 일단 알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민원인이 언론을 이용하겠다는 건 마음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공무원을 곤란하게 만드는 건 다른 방법도 많았다.

민원실에 전화하는 것도 있겠고, 인터넷으로 시청, 도청 혹은 그 상위 기관에 문제 제기할 수도 있다.

일단 문제 제기가 들어오면 ‘절차’라는 걸 밟게 되니, 기관장인 도훈이 알고 있어야 하는 건 당연했다.

“그 통화를 옆에서 들었던 직원에게 확인하셨다고 했죠?”

“네. 말투가 좀 딱딱하긴 했지만, 문제가 될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징계할 이유가 없죠.”

“알겠습니다.”

과장이 시장실을 나가자 두진이 입을 열었다.

“고 주무관이 좀 열혈 청년이긴 하죠.”

“그 정도는 열혈 청년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재산을 물려받았으면 그게 고마워서라도 잘 모셔야죠. 어휴.”

“그러게 말입니다. 세상 참···.”

고정임의 성정을 생각하면, 순간 ‘욱’해서 나섰더라도 선을 넘지는 않았을 터.

큰아들이나 다른 자식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 든 아버지를 방치하고 있는 것부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아닌가.

민원봉사과장이 이미 확인한 대로라면, 정임에게 징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일단 신경은 쓰고 있어야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네. 좀 챙겨봐 주세요, 실장님.”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이틀이 지났지만, 다행히 민원실에 다시 전화가 걸려오는 일은 없었다.

언론에 이 일이 등장하거나 상부 기관에 문제 제기가 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정임의 일은 넘어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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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을 징계하라는 민원이 들어왔던 그 주 토요일.

2월 중순이 되었고 날도 많이 풀렸지만, 아직 공기가 찬 그런 날이었다.

도훈은 다른 주말 근무 때처럼 순심이를 진주네 집에 맡기고 시장실에 나와 있었다.

“오늘 점심은 뭐로 할까요?”

“음, 짜장면은 어때요?”

“어휴, 시장님. 엊그제 점심에도 중국관 가셨었지 않아요?”

“그때는 짬뽕이었고요.”

“제 주변에 시장님하고 조 비서관처럼 중국집 자주 가는 사람 거의 없어요.”

“하하, 입맛이 평범해서 그래요.”

지연과 이야기하는 도훈은 담담히 웃고 있었다.

오늘은 영배가 쉬는 날이라서 도훈, 두진, 지연만 나온 상황.

“농림과에서 올린 기획안 검토하셨습니까, 실장님?”

“네. 별다른 무리는 없어 보였습니다.”

“무리가 없는 건 맞는데, 굳이 손을 대야 할지 전 잘 모르겠던데요.”

“저도 그런 느낌을 받긴 했는데, 과장과 얘기를 나눠보면···.”

위이잉.

한참, 이야기하는 와중에 두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이 사람이 왜? 전화 좀 받겠습니다.”

“네.”

두진이 핸드폰을 귓가에 대고 일어났고 도훈이 다시 서류에 시선을 주는데 두진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반사적으로 도훈과 지연의 시선이 두진을 향했고, 두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 걸 발견했다.

두진은 그런 얼굴로 얼마간 통화를 이어갔다.

“어디요? 네, 알겠습니다.”

두진이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며칠 전에 그 민원 있잖습니까?”

“무릎 아픈 어르신 아들이요?”

“네. 지금 그 아들이 어르신 집에 찾아가서 소란을 피우고 있답니다.”

“네?”

“신고가 들어와 순찰차가 나갔는데, 아들이란 사람이랑 어르신이 싸우고 있다네요.”

도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와 자식들이 그렇게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 데는 사연이 있겠지만, 그것까지 알려 하지는 않았다.

정임을 징계하라고 전화까지 했었지만, 그것도 일회성으로 그쳤기에 그냥 넘어간다 싶었다.

그런데 아들이 나타나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싸운다?

“지구대장님이랑 통화하신 건가요?”

“네. 때마침 그 집에 우리 직원들이 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경찰에 신고도 우리 직원들이 했다고 하네요.”

“... 설마?”

“그건 모르겠습니다.”

도훈은 정임이 현장에 있는 거냐고 물었고 두진은 모른다고 답했다.

다만 직원‘들’이 나가 있었다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정임은 성격상 한 번 자기가 발을 들인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몸을 빼지 않았다.

“제가 전화해볼게요.”

“네.”

듣고 있던 지연이 얼른 핸드폰을 꺼내 정임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 정임이 전화를 받았다.

“정임아, 너 어디야?”

정임이 전화를 받자마자 지연은 핸드폰을 스피커 모드로 바꾸고 질문을 던졌다.

- 여기 그 어르···.

- 내가 우리 아버지랑 얘기하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감정이 격해지면 소리도 지를 수 있는 거지!

질문에 대한 답은 정임의 목소리에 섞여 나오는 누군가의 고성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 경찰관들 가 있는 거 아니었어?”

- 맞는데, 막무가내야. 경찰관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어.

- 선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말씀부터 낮추세요.

- 당신들이 뭔데! 여기 우리 아버지 집이잖아!

정임의 말에 섞여 들려오는 대화로 볼 때, 경찰관들이 집 안으로 들어간 상황인 듯했다.

옆에 경찰관이 있다면 당장 무슨 돌발사태가 터지거나 하지는 않을 터.

묵묵히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있던 도훈이 입을 열었다.

“정임 씨, 접니다.”

- 아, 시장님?

“네. 맞아요. 지금 위험하거나 한 건 아니죠?”

-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 말고 다른 직원도 같이 왔거든요. 어휴, 잠깐만요.

정임의 말이 아들이라는 사람의 고성에 묻혀 잘 들리지 않다가 곧 고성이 사라졌다.

- 말씀하세요, 시장님. 저 집 밖으로 나왔어요.

“하하. 정임 씨 괜찮아요?”

-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도 어디 가서 말로 싸워서 져본 적 없어요.

“오늘은 거기 왜 갔어요?”

- 복지팀 송 주무관도 이 근처에 살거든요. 어르신 어떠신가 살피러 간다길래 반찬 몇 가지 챙겨서 같이 왔습니다.

주민센터 복지팀 직원도 마침 집이 멀지 않아 함께 어르신을 찾아갔단다.

두 직원이 노인의 집에 찾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뜻밖에도 큰아들이 나타났고, 큰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보고 당장 드러누울 정도는 아니네, 어쩌네 중얼거렸다가 직원들과 말이 격해지기 시작했다나?

“아니, 무슨 그런 사람이 다 있대? 정말 그딴 식으로 말했어?”

- 어. 녹음을 못 한 게 천추의 한이야.

듣고 있던 지연이 벌컥 화를 냈고, 전화기 너머 정임도 열이 오른 목소리로 답했다.

두진도 잔뜩 미간을 찌푸렸고 도훈의 표정도 살짝 굳어진 상태.

“그분들 도대체 무슨 사연이랍니까?”

-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어르신께 묻기가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잖아요. 이웃들도 어르신이 5년 전에 혼자 이사 와서 살고 계신다는 것밖에 몰라요. 다만, 이웃들의 어르신에 대한 평은 나쁘지 않거든요. 저나 송 주무관을 대하시는 것도 정중하시고요. 그러니 사연은 몰라도 아들이라는 사람이 곱게 보이질 않네요.

“... 흐음. 그래도 선입견 갖지 말게. 말못할 가족사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네, 실장님. 저도 최소한의 선은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경찰관들한테도 막무가내니···.

두진이 끼어들어 주의를 줬고 정임이 푸념하는 듯 대꾸하던 순간이었다.

콰앙!

- 엄마야!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정임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뿐 아니라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 주변에 모여있던 도훈과 두진, 지연도 깜짝 놀랐다.

“정임 씨,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 지, 집안에서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났어요. 저 안에···.

“들어가지 마!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네가 들어가서 어쩔 건데!”

들어가겠다 말하려는 정임을 지연이 말렸고, 도훈과 두진이 얼른 말을 이었다.

“그래요. 정임 씨는 밖에 있어요.”

“경찰관이 둘이나 있다며? 고 주무관은 그냥 밖에 있어.”

- 일단 상황부터 확인해야겠어요. 다시 전화할게요.

뚝.

정임은 전화를 끊었고 도훈과 두진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즉각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연 씨, 아무래도 저기 가봐야겠습니다.”

“저도 갈까요?”

“지연 씨는 여기 계세요.”

“... 네, 조심하세요.”

옷을 챙긴 도훈과 두진이 시장실을 나섰다.

굳어진 얼굴의 두 사람이 시청 복도를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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