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79화 (180/279)

179. 자기 관리 – 3.

“그게 아마 네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쯤 됐을 때였다. 내가 잡아 쳐넣은 조폭 녀석 하나가 만기로 출소했지.”

“조폭이요?”

“전국구 조폭까지는 아니다만, 엄연히 경찰서 조폭 계보도에 이름이 오른 놈이니까 조폭은 맞지. 내가 그놈을 직접 잡아서 감방에 처넣었으니 원한이 있지 않았겠냐? 분풀이한다고 똘마니 하나 데리고 우리 집을 찾아온 거야.”

“... 맙소사.”

“나는 출근해서 집에 없었고, 마침 엄마가 널 데리고 시장에 가서 엄마도 집에 없었어. 그런데 그 녀석들이 포기하지 않고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널 데리고 시장에 다녀오던 엄마랑 마주쳤지.”

아버지의 말에 도훈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어려서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도훈의 기억에는 없는 일.

그러나 얘기만 들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일이 아닌가.

형사에게 원한을 품은 조폭이 가족을 찾아오다니.

“그, 그래서요?”

“놈들은 엄마를 알아봤지만, 네 엄마가 조폭을 무슨 수로 알아봤겠냐? 그냥 무심히 지나치려고 했대. 그런데 네가 쮸쮸바 물고 엄마 따라 걷다가 그놈들 중 하나랑 부딪혔다더라.”

“......”

“그냥 살짝 부딪힌 게 아니었는지 너는 땅바닥에 엎어져서 먹던 쮸쮸바 땅에 떨어뜨리고 울고, 그놈은 자기 옷 버렸다고 화를 냈대. 처음에는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데, 놈이 사과를 안 받더래. 별것 아닌 일로 너무 화를 내더라나?”

“... 그리고요?”

“그놈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금방이라도 너랑 엄마한테 손찌검하려 했대. 아무리 네가 잘못하긴 했어도 바지에 쮸쮸바 묻었다고 우는 애랑 그 엄마한테 손찌검하는 놈이 정상이겠냐?”

꿀꺽.

긴장한 도훈이 침을 삼켰고, 아버지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엄마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얘기를 듣고 있는데, 내 얘기가 나오더래. 김 형사 그 새끼도 인성이 뭣 같은데 마누라랑 애새끼도 이 모양이네 어쩌네 하고 말이다. 그래서 엄마가 그놈들이 네가 실수한 것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구나 하고 알아차렸다지.”

“... 그리고요?”

“네 엄마가 마음을 독하게 먹었지. 옆에 있던 식당에 널 데리고 들어가서 넌 주방에 밀어 넣어 놓고 식칼을 들고나와서 죽고 싶으면 덤비라고 그랬다지.”

“......”

“놈들은 엄마가 그렇게 나오니까 당황해서 멈칫거렸고, 칼 든 여자가 난리 치는 걸 본 사람들이 놀라서 경찰에 신고했어. 다행히 무슨 일 나기 전에 그놈들이 도망갔고, 경찰이 왔지.”

“... 아이고.”

도훈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는 냉장고에 가서 물병을 가져왔다.

단숨에 냉수를 두 잔이나 비운 도훈이 말을 이었다.

“엄마가 그러셨다니···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데요.”

“나도 그 날, 파출소에 달려가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한테 자초지종 듣기까지는 네 엄마한테 그런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었다.”

도훈은 부모를 골고루 닮았지만, 도연은 엄마 쪽을 많이 닮았다.

도연이가 가녀린 몸에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건 전적으로 엄마를 닮았기 때문.

도훈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다정다감하고 쾌활한 모습이었지 과감하다거나 억척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가 부엌칼을 들고 조폭에게 덤볐다니···.

“... 아버지는 그런 일이 있고 나서도 계속 형사를 하셨던 겁니까?”

도훈이 살짝 비난 섞인 표정으로 물었고 아버지는 담담히 답했다.

“나도 그만두려고 했었다.”

“......”

“내가 아무리 집요하고 깡다구가 있어도, 마누라에 새끼가 위험에 질 수 있는데 어떻게 형사를 계속할 생각을 했겠냐?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고 신청을 하려는데 네 엄마가 말렸다.”

“뭐라고 하셨는데요?”

“경찰을 아예 관둘 거면 몰라도, 형사 관두고 다른 부서로 가는 건 조폭한테 기가 꺾이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형사가 됐든 파출소 직원이 됐든, 경찰이면 나쁜 짓 하는 놈은 무조건 잡아야 하는 건데 한번 조폭한테 기 꺾인 경찰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면서···.”

“... 하하.”

“논리정연하게 또박또박 말하는데 난 한 마디도 반박을 못 했다. 원래 네 엄마가 공부 잘했었고 똑똑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던 건 알았지만, 그때처럼 그걸 실감한 적이 없었지.”

“용감하기도 하셨네요.”

“그럼. 네 엄마, 때때로는 내가 놀랄 정도로 대담한 사람이었어.”

도훈이 벽에 걸린 가족사진 속 어머니에게 잠시 시선을 줬다.

자신의 어머니이지만, 자신이 지금껏 몰랐던 모습이 있었다는 게 무척 놀라웠으니까.

여전히 미소 띤 어머니의 사진에 시선을 둔 도훈이 말을 이었다.

“그 뒤로는 별일 없었나요? 저는 기억하고 있는 게 없어서요.”

“그럴 리가 있나.”

“네?”

도훈의 시선이 아버지를 향했다.

피식.

묘한 미소를 입에 머금은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이나 후나 난 계속 집요한 형사로 살았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지만, 그땐 좀 엿 같았던 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맞는 세상이었지. 경찰, 그것도 형사 가족이라고 해도 크게 예외는 없었어.”

“... 서, 설마···.”

“물론, 네 엄마는 항상 용감했지. 너한테는 다정한 엄마이기만 했겠지만, 내가 보기엔 아마 그 사람 정도의 여장부 많지 않을 거다.”

“......”

놀라 말문을 잃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얘기를 다 하자면 아마 날을 새도 모자랄 거다.”

“......”

“어떻게, 월차까지 쓰고 왔으니 네 엄마 무용담을 이번 기회에 다 들어볼래?”

“......”

말문을 잃은 아들을 향해 아버지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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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계룡산 자락을 지나는 도로변의 한 찻집.

“여기에요, 도훈 씨.”

“오래 기다렸어요?”

“괜찮아요. 책 읽고 있었으니까요.”

“미안해요. 생각보다 오래 붙들려 있었습니다.”

“호호, 그럴 거로 생각했어요.”

부탁받은 민의당 당원대회 강연은 30분 정도로 끝났지만, 대회에 참여한 시장, 군수, 기초의원들과 인사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원래 세경과의 만나기로 한 건 내일이었는데, 그녀가 오늘 오후부터 시간이 나서 대흥도 아니고 대전도 아닌 계룡산 인근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두 사람이었다.

세경과 마주 앉은 도훈이 차를 주문했고,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한적한 찻집에서 마음껏 수다를 즐겼다.

“아, 참. 그 애견공원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시에서 정식으로 추진하기로 했고, 의회에서도 협조적이에요. 아마 늦어도 9월이면 지정될 겁니다.”

“잘됐네요.”

애견공원은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송지은 의원 쪽 제안서를 시에서 수용해 절차를 밟고 있었다.

공원을 많이 사용하는 애견인들을 중심으로 자율관리위원회도 만들어 공원을 청결하게 관리하도록 하는 등, 공원 지정 및 운영과 관련된 일이 차분히 진행되는 중이었다.

“왜 그렇게 빤히 바라봐요? 사람 무안하게.”

“아, 내가 그랬나요? 미안해요.”

도훈이 문득문득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세경이 타박했고, 도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사과했다.

“왜 그렇게 봤어요?”

“아, 그게···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나서요.”

“돌아가신 어머님이요?”

“... 네.”

도훈이 솔직하게 답했다.

목요일, 아버지와 오랜 대화를 나눈 뒤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세경을 나란히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한 것이 여러 번이었는데, 조금 전에도 무심코 그랬던 모양이었다.

“흐음,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세경의 말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가보자며 시작한 연애지만, 가족과 관련한 이야기는 오래전에 나눴다.

다정하고 쾌활한 분이었다는 말과 함께 도훈은 이미 가족사진을 세경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이번에 내가 우리 어머니에 관한 아주 놀라운 얘기를 들었거든요.”

“놀라운 얘기? 그게 뭔데요?”

“음, 좀 충격적일 수도 있는데···”

“호호. 괜찮아요. 도훈 씨도 알잖아요. 저 제법 대담한 거.”

세경이 생긋 웃으며 말하자 도훈이 잠시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게··· 우리 어머니가 말이죠···.”

담담히 이어지는 도훈의 이야기를 세경은 단 한 번도 끊지 않고 집중해 들었다.

‘부엌칼’ 부분에서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틀어막기도 했고, 집으로 걸려온 누군가의 살해 협박전화에 ‘당신이 우리 가족 해치겠다고 전화한 사람 중 열 몇 번째다.’라고 심드렁하게 답했다는 말에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협박 편지가 혹시 ‘증거물’로 쓰일 수도 있으니 차곡차곡 모아놨다거나, 혹여 도훈이 혼자 있을 때 해코지할까 봐 한시라도 눈에서 떼지 않으려 애썼다는 이야기 등.

엊그제 들었던 여러 이야기 중 대표적인 몇 개만 소개한 도훈은 곧 핵심을 이야기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어머니 몸 고생, 마음고생이 마음에 걸려 몇 번이고 형사를 그만두거나 아예 경찰을 그만둘 고민을 하셨는데,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관둬라’는 얘기를 안 하셨대요. 아버지께서 뭔가를 잘못해서 가족이 피해 보는 게 아닌 데다가, 나름 사명감으로 경찰생활을 하시는 건 가족이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요.”

“... 네.”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경찰은 당신께서 선택한 직업이지만, 그걸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께서 그 선택을 이해하고 지지하셨고 그에 따른 어려움을 어떻게든 감당하려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어느새 도훈의 말을 경청하는 세경의 표정이 진지하고도 진지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세경이 잔잔하게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저와 어머니를 나란히 놓고 생각했어요?”

“그게··· 내 앞으로의 인생과 관련이 있어서요.”

“......”

“아직 확실히 정하지 않았는데, 내가 앞으로 정치와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어요.”

“... 그런데요?”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정도는 아니겠지만, 내가 정치와 관련된 일을 하면 나도 내 가족도 나와 가까운 사람도 그에 영향을 받지 않겠어요?”

“......”

“정치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의 삶이 평탄하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세경 씨도 지사님 친척이니까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요.”

“음. 우여곡절이 좀 있다고는 할 수 있겠죠.”

세경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도훈이 말을 이었다.

“그래요. 만약 내가 그런 일을 하다 혹시 힘든 일이라도 생긴다면···.”

세경이 도훈의 말뜻을 드디어 완전히 이해했다.

“흠, 제가 도망갈 수도 있다?”

“도망이 문제가 아니고, 애초에 그런 일 안 겪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

도훈을 세경이 담담히 마주 바라봤다.

잠시 그렇게 빤히 도훈을 바라보던 세경이 피식 웃었다.

“도훈 씨, 혹시 본인이 생각보다 연애에 서투른 거 알아요?”

“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확 불붙은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요. 물론, 저는 좀 그런 면이 있지만, 도훈 씨는 제게 아무 생각 없이 첫눈에 반하거나 한 게 아니잖아요.”

“... 그, 그렇죠.”

“그럼 ‘연애’라는 걸 시작하기 전에 이런저런 걸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는 건데, 원래 이런 건 그때 따져볼 수 있었던 거 아니에요? 그때도 도훈 씨는 시장이었을 텐데요.”

“그, 그런가요?”

“호호. 저라면 그랬을 것 같은데요.”

“... 쩝. 할 말이 없네요.”

도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고, 세경이 환히 웃더니 말을 이었다.

“음, 도훈 씨 어머님이 대단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대단한 분이었다는 건 잘 알겠어요. 하지만!”

“... 하지만 뭐요?”

“어머님께는 못 미칠지 몰라도 저도 꽤 대담하고 용감해요.”

생긋.

말을 마친 세경이 벌떡 일어났다.

“가요!”

“... 어디를요?”

“산 근처에 왔으니 산 밑자락이라도 가봐야죠.”

“... 아, 네.”

도훈이 얼떨결에 답하고 일어섰고, 세경이 가방을 챙겨 먼저 걸으며 말을 이었다.

“열심히 걸으면 저녁밥이 맛있겠죠?”

“그렇겠죠.”

“좋아요. 오늘 저녁은 도훈 씨 집에 가서 먹죠.”

“... 네?”

도훈이 멍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세경이 살짝 눈가를 좁히고 말을 이었다.

“뭐에요? 사귀는 사람을 혼자서 과소평가해 놓고 밥해달라는 것도 못 들어줘요?”

“... 아, 아니 그게···.”

“됐고요. 밥해줄 거에요, 말 거에요?”

세경이 재촉하자 도훈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무, 물론 해줘야죠.”

“됐어요, 그럼!”

생긋.

다시 환하게 웃은 세경이 앞서 걸었고 도훈이 눈을 깜빡이며 뒤를 따랐다.

화창한 6월의 토요일 오후를 산 밑자락을 걸으며 보낸 두 사람.

세경은 그 날 저녁을 도훈의 집에서 먹었다.

그리도 다음 날 아침 겸 점심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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