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90화 (191/279)

190. 모두를 위해? - 4.

7월 하순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아침, 대흥시청 청사 입구.

출근하는 시청 직원들이 한쪽을 흘끔거리며 수군거렸다.

“오늘도 있네.”

“같은 사람은 아니야.”

“맞아. 매일 바뀌더라고. 몇 사람이 번갈아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지. 날도 더운데, 힘들지도 않나?”

“뭔 소리야? 아침하고 저녁에만 있던데.”

“응? 온종일 있는 거 아니었어? 나 점심시간에도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처음 이틀 동안만 그랬어. 사흘째부턴가? 출퇴근 시간에 집중하더라고.”

직원들이 흘끔거리는 쪽에는 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써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는 사람이 팻말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서 있었다.

- 김도훈 시장은 모든 시민을 위한 행정을 하라.

- 시민 모두를 위할 줄 아는 진실 된 시장을 원한다.

얼굴을 거의 완벽하게 가리고 청사 현관 그늘 밑에 팻말 두 개를 들고 선 사람.

그는 1인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의도는 불순해도 말은 잘 골랐네.”

“척 봐도 틀린 말을 들고 시위를 어떻게 하겠어?”

“그래도 저 말은 틀렸어. 난 지금 시장님처럼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시민을 위해 노력하는 분 처음 봤어.”

“그거야 웬만한 시청 직원은 다 인정하는 걸 테고. 저건 우리 보라고 들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거야. 그냥 트집 잡으려는 말일 뿐이라고.”

대흥시청 청사 앞에서 시위하는 게 최초는 아니었다.

다만, 도훈이 시장이 된 뒤 이렇게 사람까지 바뀌어 가며 1인 시위를 이어가는 건 처음 있는 일.

이들은 ‘대흥시민의 공익 침해를 걱정하는 모임’에 속한 이들이었다.

‘고소’가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하자 다음으로 선택한 게 1인 시위.

이들은 릴레이 1인 시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시위하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뿌리는 등 ‘홍보’에 더 주력하고 있었다.

고소 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지역 언론사가 취재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모임’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시민이 훨씬 많을 정도로 효과는 미미했다.

“주차장이 아니라 현관 앞 그늘에서 시위하라고 한 게 시장님이라며?”

“그랬다더라고. 하긴, 나라도 저렇게 죄다 가리고 뙤약볕에 서 있는 걸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아.”

“그러고 보면 시장님도 참 무던한 사람이야. 저 사람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시위하는 게 가장 기막힐 사람이 시장님 본인일 텐데.”

“누가 아니래.”

1인 시위를 하는 이들은 처음에 햇볕이 그대로 내리쬐는 주차장에 서서 시위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팻말을 들고 서 있을 뿐이지만, 구호를 외치기도 하는데 그건 바로 도훈이 그들의 눈에 띌 때.

도훈은 시위하는 이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내지 않았지만, 시위를 제지하지도 않았고 땡볕 아래가 아닌 현관 앞 그늘에서 시위하라고 ‘자리’까지 잡아줬다.

몇몇 간부가 시위하는 이들의 편의를 봐주면 안 된다고 반대했을 때는 이렇게 답하기까지 했다.

- 저만 마주치지 않으면 소리도 안 지르고 크게 업무에 방해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자기 의사 표현하는 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데 이 뙤약볕에 그늘에 계시라고 하는 게 뭐가 그리 큰 편의라고요.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세요. 1인 시위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앰프까지 동원해 시청 앞에서 시위한다고요. 그러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저분들 보면 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도훈의 말처럼 ‘모임’ 쪽에서 대규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모아 시위를 하지 않는 게 다행이긴 했지만, 그건 ‘모임’이 도훈이나 시청 직원들의 ‘업무 환경’을 생각해서 결정한 게 아니었다.

그만큼 사람들을 동원할 조직력이 없기 때문일 뿐.

대흥시가 온갖 사람이 다 사는 대도시도 아니라서 모임의 주요 인사들이 아무리 자금이 있어도 시위에 나설 사람을 돈으로 섭외하는 것은 어려운 환경이니까 말이다.

“쯧, 저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의도부터 불순한데.”

“글쎄. 알아주는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저 말을 들먹거리는 사람이 몇 있다고는 하던데?”

“무슨 말? ‘모든 시민을 위한 행정’이라는 말?”

“응. 시의원 중에 몇 사람이 말은 틀리지 않는다고 한다는 것 같아.”

“뭐? 허, 참.”

헛웃음을 흘린 직원이 걸음을 멈추고 한쪽을 바라봤다.

웅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번듯한 대흥시 시의회 건물이 보였다.

“가지가지 하네.”

‘썩소’를 날린 직원이 다시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불과 몇 시간 뒤, 시의회 건물 안에서 누군가 비슷한 표정으로 같은 말을 중얼거릴 건 예상도 못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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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가지가지 하네.”

시의회 본회의장 뒤편 대기석에 앉은 영배가 중얼거렸다.

답변석으로 나가는 도훈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거기엔 팻말을 벽에 기대어 세워놓고 의자에 앉아 있는 이들이 십여 명 앉아 있었다.

모임의 배후 혹은 실세라는 강운천 전 시장이나 나경태 전전 시장의 아들은 보이지 않지만, 대표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한껏 경직된 표정을 한 사람들.

‘... 성질나 미치겠네, 진짜.’

본회의장에 오기 30분쯤 전에 ‘모임’ 사람들이 몰려왔다는 건 의회 직원의 연락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도훈이 본회의장에 입장하기 전에 심남진 의장이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고 직접 설명했었다.

‘모임’ 사람들의 요구 외에,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방청은 보장되어야 하지 않냐는 일부 의원들의 두둔이 있었다는 것도.

그나마 심 의장이 ‘순간이라도 시의회 진행을 방해하는 언행을 하면 즉각 퇴장시키겠다.’ 미리 경고해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는 게 다행이랄까.

도훈에게 흠집을 내겠다는 의도로 고소에 1인 시위를 하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끝내 의회에까지 나타났다.

‘그래도··· 저 사람들보다 당신들이 더 나빠.’

의원들이 앉은 곳을 바라보던 영배가 이를 악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도훈이 시의회에 불려온 것이나 ‘모임’ 사람들이 저렇게 자리하고 있는 건 저 의원 중 일부가 요구해 관철한 것이라니까.

그런 일을 주도한 사람이 막 질문대에 서고 있었다.

“서태기 의원님, 질의하십시오.”

“네, 의장님.”

못마땅한 기분을 애써 참는 심남진의 말에 서태기가 담담히 답했다.

시의회에서 시장에게 질의할 게 있다고 서태기가 말했을 때 심남진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시장이 시의회에 출석해 시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건 전혀 색다를 게 없으니까.

뒤늦게 서태기의 의도를 눈치챈 건 시의회 방청석에 나타난 이들을 봤을 때, 그리고 그들의 방청을 허가해야 한다고 ‘일부’ 의원들이 강하게 주장했을 때였다.

“시장님께 질의하겠습니다.”

“네.”

“요즘 1인 시위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죠?”

“글쎄요. 걱정까지는 모르겠고, 신경을 쓰고 있기는 합니다.”

“허허. 그래요? 본 의원은 시장님이 배포가 크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이실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청사 코앞에서 시위하는 분들이 있는데, 걱정은 안 하신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심남진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도훈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냈다.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담담한 얼굴이 더 심남진의 미안함을 부추겼다.

부의장 신길영은 화가 난 걸 감출 생각이 없는지 아주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고, 안준식은 대놓고 씩씩거리는 모습.

‘의회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됐나.’

심남진이 가만히 속으로 탄식했다.

안준식이 나섰던, 의회 전체의 통일된 입장을 표명하려던 일은 결과적으로 진척이 전혀 없었다.

‘좀 더 두고 보자.’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장표명이 지지부진한 것만으로도 한숨 나오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심남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분명 당내 입지가 약해진 게 영향을 끼쳤을 거야.’

안준식의 문제 제기로 서태기와 장민호가 상당히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는 건 심남진도 알고 있었다.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용진조차 날 선 눈빛을 보내고 있으니 다음 선거 때도 공천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처지.

그래도 탈당까지 했던 전 시장과 이렇게 은밀히 손발을 맞출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서태기가 강운천 전 시장과 성향이 비슷하고 친분도 깊었다고는 해도, 이건 도의적으로 할 짓이 아니질 않은가.

아무리 ‘증거’가 없다고는 해도,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장민호 의원이야 서태기 의원이라는 끈이라도 붙잡고 싶은 거겠고. 차 의원은··· 그냥 시장이 당하는 게 좋은 건가? 쯧쯧.’

흥미진진한 눈빛을 한 차혜진을 바라보며 심남진이 다시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서태기가 장황했던 발언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근엄한 표정을 한 서태기가 질문을 마치자, 도훈이 질문의 요점을 재확인했다.

“지금 의원님 말씀은 모두를 위한 행정이라는 말이 기본적으로 옳은 게 아니냐, 그리고 지금의 시 행정이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으니 시정의 방향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냐 이런 뜻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답변을 드리지요.”

물을 마셔 목을 축인 도훈이 답을 시작했다.

“모두를 위한 행정이라는 말은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표현을 한 건, 행정이라는 건 다양한 정책 하나하나가 모여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국민 모두의 삶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행정에 영향을 받으니 모두를 위한다는 건 대전제로서 맞는 말이 아닙니까?”

서태기가 살짝 이죽거리는 듯한 태도로 반문했지만, 도훈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중앙과 지방정부를 막론해 행정서비스는 국민과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행정은 개별 정책을 통해 구체화 됩니다. 그런데 어떤 정책은 그 목표가 뚜렷해야지 애매해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해, 중앙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지만, 지방정부는 그 지방에 특화된 정책을 수립하는 게 맞습니다. 당연히 정책의 목표가 다르다는 겁니다.”

“그걸 몰라서 묻는 게···.”

“모르신다는 게 아니고 부당하게 혼용하신다는 거죠.”

파르르.

말을 잘린 서태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지만, 도훈은 모른 척 다시 물을 마셔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보육정책은 현재 아이를 키우는 시민과 곧 아이를 가질 계획인 시민들의 요구와 수요를 반영합니다. 하지만, 어르신들과 관련된 정책에서는 보육과 관련된 시민들의 요구와 수요를 중요한 요인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걸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지금 괜한 말 돌리기를 하는 거 아닙니까?”

일이 예상대로 풀리지 않자 당황했는지 서태기가 살짝 얼굴을 붉히고 반박했지만, 도훈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그럼 보다 알기 쉽게 예를 들겠습니다. 무주택자를 위한 정책에서의 다주택자, 빈곤층을 위한 정책에서의 부유층,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에서의 재벌 대기업, 봉급생활자를 위한 정책에서의 자영업자 등.”

“......”

“먼저 언급한 이들에게 정책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맞춰진다면 나중에 언급한 이들은 논의 과정에서 상황과 형평성을 고려하는 정도는 하겠지만, 곧바로 정책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 그,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제가 나중에 언급한 이들이 행정에서 소외됐다고 비판하는 게 타당한 것일까요?”

“......”

서태기의 눈초리가 매서워졌지만, 도훈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의원님의 질문은 현재 시청 청사 앞에서 1인 시위하시는 분들의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시에서 시행 중인 어떤 정책이 자신들의 요구와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면, 정책 자체가 맞느냐 틀리냐를 떠나 ‘그분들의 말’은 옳을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시 행정 전반을 뭉뚱그려서 그렇게 비판하시는 건 맥락을 잘못···.”

“아, 그쯤 하세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서태기가 신경질적인 태도로 도훈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서태기는 도훈이 하고 싶은 말은 웬만해선 참지 않는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저는 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아, 제가···!”

“......”

“... 됐다고 하잖습니까?”

성질이 났는지 목소리를 높이려던 서태기는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걸 깨닫고 애써 성질을 죽였다.

도훈을 의회에 불러내 적당히 망신 줄 절호의 기회라 여겼지만, 전세는 정반대였으니까.

그러나 서태기는 또 다른 걸 잊고 있었다.

지금 이 회의장에서 자신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게 생각보다 여럿이라는 것을.

#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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