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93화 (194/279)

193. 정말 … 했다면 – 3.

대흥시청 인근인 남가동 어느 건물 3층에 자리한 한 사무실.

사무용 집기가 대충 갖춰져 있긴 해도 ‘휑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집기에 비해 빈 곳이 넓은 것뿐 아니라 사무실에 사람이 단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일 터.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사십 줄의 여자도 일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 서핑을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인터넷 서핑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눈빛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는 여자의 표정에서는 지루함이 물씬 묻어났다.

“어휴, 오늘은 더 썰렁하네.”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사무실을 둘러본 여자가 투덜거렸다.

두 달 전에 처음 사무실을 열 때도 이렇게 썰렁한 건 아니었다.

많은 이가 모여 축하를 해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매일같이 찾아오는 이가 제법 됐다.

돈 벌 목적으로 사무실을 연 게 아닌 만큼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했기에 대접도 깍듯했고, 찾아오는 이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서 대표의 얼굴에도 오래간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사무실 대표인 강운천 전 시장의 얼굴에서 이제는 그런 웃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 솔직히 에어컨 트는 전기료가 아깝네.”

홀로 사무실을 지키는 여자가 다시 중얼거렸다.

누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고 에어컨을 켜놓고 있으라는 대표의 지시는 반갑지만, 요즘처럼 방문객이 뚝 떨어진 상황에서는 그녀도 한숨만 나왔다.

하루에 이 사무실을 오가는 사람은 다 합해도 열이 안 됐다.

온종일 사무실을 지키는 여자 본인에 대중없이 오가는 강운천 전 시장,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얼굴을 비치는 모임 대표와 1인 시위에 동참한 적극적 지지자 몇이 전부.

다시 자기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고 여겼던 강운천 전 시장도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터.

사무실이 이렇게 썰렁해진 것은 밖을 돌아다니기 싫을 정도로 날이 더워지고 있는 이유만은 아니었기에.

“어휴. 이거 나도 잘못 생각한 거···.”

띠리리리.

썰렁한 사무실과 자신의 처지를 푸념하던 여자는 오래간만에 울리는 유선 전화 벨 소리에 얼른 입을 닫고 전화를 받았다.

“네. ‘대흥시민의 공익 침해를 걱정하는 모임’ 사무실입니다.”

- 강운천 전 시장님과 통화할 수 있겠습니까?

“네? 저희 대표님은 다른 분이신데요?”

- 그건 압니다만, 그 모임 주도하는 분은 대표가 아니라 강 전 시장님이 아니던가요?

“주도는 아니고 모임에 자문해 주시기는 하는데요. 대표님은 엄연히 따로 계십니다. 무슨 용건으로 전화하신 건가요?”

- 강 전 시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했죠.

“지금은 안 계신데요. 항상 여기 계시는 건 아니라서요.”

여자가 미간을 찌푸리고 미리 입을 맞춘 얘기를 했다.

실제로는 강 전 시장이 모임을 이끌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나이가 젊은 전 비서관이 대표로 나서고 있었으니까.

내부인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외부에는 엄연히 현 대표가 이끌어가는 조직으로 알려져야 했기에 택한 방식이었다.

- 흐음. 언제 전화하면 통화가 가능할까요?

“글쎄요. 딱 시간을 정해놓고 나오시는 게 아니···.”

덜컥.

여자가 답하는데 때마침 강운천 전 시장이 모임 대표와 사무실로 들어섰다.

“아, 잠깐만요. 마침 지금 들어오셨네요. 강 자문님, 자문님 찾는 전화가 왔어요.”

“나한테?”

“네.”

여자가 강 전 시장을 ‘자문’이라 부른 것 역시 통화 중인 상대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어딘데?”

“아, 그게. 잠깐만요.”

강운천이 되묻자 여자가 아차 했다.

하도 오래간만에 걸려온 외부인의 유선 전화라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도 깜빡했던 것이다.

여자가 전화기에다 대고 물었다.

“실례지만, 어디 신가요?”

직후,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 어디요? 진, 진짜요?”

반문하는 여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린 강운천 전 시장이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어디라는데 그렇게 놀라나?”

강 전 시장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돌리고 멍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밀며 답했다.

“... 시장 비서실이래요.”

“뭐?”

“대흥시 시장 비서실이라고요.”

“......”

전화기를 내민 여자는 물론, 강운천 전 시장도 잠시 몸이 굳어질 정도로 뜻밖의 전화에 놀라고 있었다.

“안 받으실 거에요?”

“... 이리 줘.”

전화를 받은 강운천이 빠르게 놀란 감정을 수습하고 전화를 받았다.

“강운천이오.”

- 시장 비서실장 송두진입니다.

“아, 누군지 알아요. 예전에 지역경제과···.”

- 아신다니 다행입니다.

강운천은 두진의 예전 직위를 아는 척해 그가 예전에 자기 밑에서 일했었다는 걸 환기할 생각이었는데, 두진이 미리 말을 잘라버렸다.

두진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싹둑 잘라버리자 강운천은 일순 화기 치밀었지만, 무턱대고 현직 비서실장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커험.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물어볼 게 있다고요? 나에게?”

- 네. 더불어 드릴 말씀도 있고요.

“흠, 글쎄요. 나는 그저 젊은 사람들에게 자문 정도 해주고 있을 뿐이라서···.”

강운천이 짐짓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두진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계속 기계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중요한 문제입니다.

“뭐, 중요한 문제니까 전화하셨겠지. 그래서 물어볼 게 뭔데요?”

강운천이 비식 거리는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그런 강운천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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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저녁. 운계면의 어느 고깃집.

홀과 벽이 없는 방으로 반씩 나뉜 고깃집의 방 쪽에 서른 가까운 사람들이 길게 테이블을 이어놓고 회식을 하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것은 강운천 전 시장.

근엄함과 친절함을 반씩 섞은 듯한 표정을 한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곁에 앉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상석에 앉은 강운천이 아닌 테이블 중간쯤에 자리한 40대의 여자.

썰렁한 사무실에서 홀로 인터넷 서핑을 하며 지루함을 달래던 여자가 아주 신이 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정말 그랬어?”

“아, 그랬다니까요. 제가 그 전화 받아서 시장님께 전해드렸었다고요.”

“흠. 그럼 강 시장님이 호통을 쳤다는 것도 진짜야?”

“네. 전화한 건 지금 시장 비서실장이었는데, 강 시장님이 사람 어떻게 보냐고, 추잡하게 만들지 말라고 버럭 고함을 치셨죠.”

“오오!”

“어디 갖다 붙일 걸 갖다 붙여야지. 강 시장님을 뭐로 보고 그런 얘기를 해요. 아주 호되게 혼을 내셨어요. 쌤통이죠, 뭐.”

여자의 말에 이야기를 듣던 사람 하나가 강운천에게 물었다.

“시장님, 진짜로 그러셨어요?”

“그랬다네. 하하. 지금 비서실장이 예전에 시청 직원이었는데, 좀 독특한 사람이거든.”

“흠.”

“뭐랄까. 되바라졌다고 할까? 성격이 강해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마이웨이’ 스타일이었지. 그래서 승진도 늦었고 윗사람들 평도 안 좋았어.”

“그런 사람이 어쩌다 비서실장이 됐답니까?”

“모르지. 지금 시장한테 잘 보였거나 지금 시장이 사람 보는 눈이 별로이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나?”

오랜 지지자에게 답하는 강운천은 두진에게 호통치던 장면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웃고 있었다.

내용은 뜨끔하고 불쾌한 것이었지만, 현 시장 측에서 반응했다는 것과 비서실장을 큰소리로 혼냈던 걸 생각하면 그간 답답했던 게 조금이나마 풀리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 시의회에서 시장님 발언하는 거 편집해서 만든 왜곡 영상에 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 관련이 없으시다면 다행입니다. 정말이시라면 좋겠습니다.

- 여쭤보고 경고도 드릴 겸 전화한 겁니다. 더는 가만히 있을 상황이 아니라서요.

조금 찔끔하긴 했지만, 무덤덤하게 ‘모른다’, ‘관계없다’고 답하던 강운천이 ‘버럭’ 한 것은 ‘경고’라는 단어 때문.

‘제깟 놈들이 어쩔 건데···.’

고소와 1인 시위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시의원인 서태기에게 매달리다시피 해 ‘약간의’ 협조를 얻었다.

정작 시의회에서는 서태기가 도훈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바람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천금 같은 기회를 살리기 위해 모임 대표를 맡긴 전 비서관에게 ‘요즘 사람들 방식에 맞춰 수를 내보라’, ‘좀 은밀한 방법도 괜찮다’고 지시한 뒤에 문제의 영상이 퍼졌다.

분명 영상은 문제가 되겠지만, 제작자나 유포자가 들통날 염려가 거의 없다고 비서가 자신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버럭 호통을 칠 수 있었던 것.

“예의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글쎄요. 지금 시장도 마냥 여유롭지는 않으니까 그렇지 않았을까요?”

“실제로는 다급했다?”

“아마도요. 아니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강운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소에 1인 시위, 시의회에서의 공격도 통하지 않아 좀 암담한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

그런 고전적인 공격에 도훈이 끄떡도 하지 않을 줄, 그럴 수 있을 정도의 평판을 만들어 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새로운 공격법에 더 흥미가 갔다.

- 시장님, 저도 뒤늦게 깨닫는 겁니다만, 요즘 시대에 적합한 방식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대표를 맡긴 전 비서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길 백번 잘했다 생각하는 강운천 시장이었다.

1차에 이어 2차를 준비하자고 했을 정도로 그 효과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나 잠깐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네.”

“그러세요.”

밖으로 나온 강운천은 가게 건물을 돌아 으슥한 뒷골목으로 들어가다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모임’ 대표와 마주쳤다.

“왜 그러나?”

“아, 예. 말씀하신 일로 통화하려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요.”

“그래?”

“네. 오후부터 여러 번 걸었는데 계속 안 받네요.”

“바쁜가 보군.”

대표가 말한 ‘말씀하신 일’이란 2차 영상의 제작과 유포.

1차 영상은 사이트에서 내려갔지만, 퍼 날라진 것들이 여전히 돌고 있어서 효과는 만점이었다.

정작, 대흥시의 평범한 시민들의 반응은 거의 없어도 인터넷에서 뭣 모르고 현 시장을 ‘까는’ 이들이 상당했기에.

“나중에 다시 해 봐.”

“예, 시장님.”

“그리고 2차 이후로도 계속 준비하는 게 좋겠어.”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강운천이 가만히 속삭였다.

그 영상이 강운천의 지시로 만들어졌다는 건 본인과 모임 대표만 아는 사실.

몇 안 되는 지지자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비밀을 유지해야 했다.

자칫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강행한 이유는 단 하나.

정말 시장이라는 자리가 간절했으니까.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 굳이 1인 시위 계속 이어갈 것도 없을 것 같아. 소스를 만들기 위해 이따금 사람 모으는 게 낫지 않겠나? 날도 더워지는데.”

“이를테면, 치고 빠지기를 하자는 말씀이네요.”

“맞아.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좋은 생각이신 것 같긴 한데, 아마 비용이 더 들 겁니다. 지난번은 처음이니까 싸게 해준다고 했던 거라서요.”

대표의 말에 강운천이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괜찮네. 나 그 정도 능력은 있어. 그리고 급하면 나 시장 아들을 통해도 되고. 아마 그 친구도 지금 꽤 기분이 좋을걸.”

“네.”

‘나 시장 아들’이란 부실 공사 건 등으로 감방에 다녀온 뒤 도훈을 향해 이를 바득바득 가는 나경태 전전 시장의 아들 나영철을 말하는 것이었다.

‘모임’의 목적을 설명하고 협력을 제안했더니 적당히 자금을 지원하는 건 물론, ‘때’가 되면 직접 몸으로 뛸 수도 있다고 강운천과 짝짜꿍을 맞춘 나영철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헛똑똑이 자식이지.’

물론, 선거가 다가와도 나영철을 밀어줄 생각은 전혀 없는 강운천이었다.

강운천은 ‘모임’ 대표로 앉힌 비서관에게는 ‘너를 밀어주겠다’고 했지만, 만약 일이 잘되면 스스로 나설 생각도 하고 있었다.

곧 70대가 되지만, 자신은 아직 정정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백세시대 아닌가. 아직 뒷방으로 물러나긴 이르지.’

“어쨌든, 그렇게 미리 얘기해 놓게.”

“알겠습니다. 소스는 저희가 직접 찍은 것 말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도 좀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생각이야. 그래야 우리에게 의심의 눈이 쏠리는 걸 막을 수 있겠지.”

담담히 웃으며 대꾸한 강운천이 대표에게 담뱃값을 내밀었다.

“한 대 피겠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자네 담배 피우잖아? 아, 내 앞이라 그런가? 괜찮아. 자네 엄연한 대표 아닌가. 난 자문일 따름이고.”

“... 그럼 한 대 피우겠습니다.”

강운천의 눈치를 살핀 대표가 담배를 받아들었고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웠다.

“모처럼 담배가 맛있네.”

“하하, 네.”

그런 두 사람 뒤편 허공에서 누군가도 중얼거리고 있었다.

- 그래. 너희 덕분에 다음 제사상은 정말 푸짐하고 맛있을 것 같다.

자신들이 ‘작업’을 의뢰한 업체가 이미 오늘 오후에 경찰에 털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강운천과 대표가 맛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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