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99화 (200/279)

199. 진심에는 진심으로 - 4.

시의회가 정회되고 밖으로 나온 도훈의 앞을 누군가 막아서고는 대뜸 얼굴 앞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낯이 익은 지역 언론의 기자였다.

“시장님, 아까 파격적인 발언을 하셨는데요.”

“... 네, 그랬죠.”

“그런 발언을 하신 어떤 의도가 있습니까?”

“제가 하고 싶어서 발언한 게 아니라 질문에 답한 겁니다. 시장의 공식적인 판단이 아닌, 개인적인 판단을 말씀드린 거고요.”

“흠, 과연 그럴까요?”

“오늘 그 얘기만 한 게 아닌데, 다른 주제와 관련된 질문은 없으십니까?”

“하하. 저는 그 말씀이 제일 관심이 가는데요. 시장님이 괜히 그 말씀 하신 것 같지도 않고요.”

질문하던 기자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도훈을 바라봤지만, 도훈의 담담한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제가 어떤 의도가 있었다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기자회견 같은 걸 했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기자님과 대화하다 이야기를 꺼냈겠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시의회에서 개인 견해라는 걸 전제로 한 발언이라고 해도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니잖습니까? 아무리 대형사고를 친 시의원을 대상으로 했다고 해도요.”

“저도 웬만하면 그런 발언 안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만한 경우가 아니라서요.”

“그 부분은 공감하는데요.”

“그걸 고려해서 생각해주세요.”

“몇 가지 더 질문을···.”

기자가 질문을 이어가려는데 영배가 끼어들었다.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차라리 비서실을 통해 정식으로 취재 요청을 하시죠. 시장님은 또 일정이 있으십니다.”

“에이, 점심시간이잖아요.”

“네. 점심시간이라 점심 약속이 있으십니다. 그러니 지금은 비켜주세요.”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영배는 살짝 기자의 몸을 밀어내며 틈을 만들었고 도훈이 걸음을 옮겼다.

얼마간 걷던 도훈이 옆에서 걷는 두진을 흘끔 했다.

얼굴이 조금 굳은 것이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두진이 도훈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회피해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죠? 아마도 다수는 아니겠지만 비판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감수해야죠.”

좀 불만스럽다는 말투의 두진에게 도훈은 담담히 달래듯 답했고, 그런 도훈의 모습에 두진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두진은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지만, 조금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기자를 떨쳐낸 영배가 따라붙어 뭐라 말을 하려다가 두진의 뚱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두진이 도훈에게 그런 표정을 하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두진의 예상처럼 ‘시의원 제명’을 말한 도훈을 비판하는 이가 실제로 나타났다.

바로 그날 오후 시의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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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이나 시의원이나 시민의 투표로 선출되는 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시장과 시의회는 서로 협력할 의무도 있지만,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관계이기도 하다. 즉, 일반적이라 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라는 거다. 최근 불거진 시의원의 행위가 공분을 자아내기 충분한 것은 맞다. 하지만, 시장과 시의회의 그런 특별한 관계를 생각하면 사건을 전해 들은 사람 중 대다수가 문제의 시의원을 비난하는 현 상황에서 굳이 시장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경솔한 발언이었다.

오후에는 출석 요구를 받지 않았던 도훈은 저녁 즈음에야 차혜진 의원이 했다는 발언의 요지를 전해 들었다.

영배를 통해 차 의원이 시의회에서 했다는 말을 들은 도훈이 담담히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쩝. 그래서 그런지 몇몇 의원이 공감대를 표했답니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일인데, 괜히 시장까지 한마디 거들어서 일을 키우냐고요.”

“......”

영배의 말에 도훈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고, 그런 도훈을 두진이 안쓰럽다는 듯 바라봤다.

“아마, 지역 언론에 기사도 나올 겁니다.”

“그럴 테죠.”

여전히 담담한 도훈의 모습에 두진은 결국 쓰게 웃고 말았다.

그런 두진을 향해 도훈이 말을 이었다.

“그러라고 한 말인데요, 뭐.”

도훈은 오늘 시의회 답변석에 서면 안준식이 그런 질문을 할 걸 알고 있었다.

어제 시장실을 찾아온 안준식이 미리 자신이 그런 질문을 할 거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두진이 화들짝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제 오전, 시장실.

소파에 앉자마자 안준식이 꺼낸 이야기에 두진이 깜짝 놀랐다.

“의원님, 그 질문이라면 어떻게 답하든 분명 뒷말이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네?”

“뒷말이 있고 어떤 반향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걸 노리고 시장님께 질문하려는 거고 말이죠.”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훈은 말이 없었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두진에게 안준식이 설명했다.

“서태기 의원을 비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무척 크고, 당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합니다.”

“그럴만한 일이잖습니까. 괜히 민의당 지역위에서 고소까지 한 게 아니죠.”

“네. 그런 상황인데도 정작 의원들은 제명까지는 심하지 않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흐음.”

아무리 서태기가 막장 짓을 했다고는 쳐도,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 민의당 소속이었다.

사고를 쳐서 당에서 제명까지 됐고 제명 이후에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지만, 동정여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강운천, 양상택, 서태기 등과 오래전부터 행보를 함께해 온 이들 중 아직 민의당 당원인 이들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일부 당원들 말고도, 민의당 소속 시의원 중에도 서태기를 시의회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확실히 말하는 건 안준식과 송지은 정도.

얼마 전까지 거의 서태기와 행보를 함께했던 장민호는 물론, 의장인 심남진도 제명까지는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

서태기와 전혀 친하지 않은 차혜진도 어차피 법적 처벌을 받을 것 같은데 굳이 제명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는 부정적인 태도란다.

서태기에 대한 시민의 여론이 매우 나쁜 지금, 굳이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속내는 그렇다는 것.

당연히 지금 상태에서는 누군가 서태기의 제명안을 발의해도 통과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장님의 발언을 통해 일을 키우겠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러고 싶습니다.”

“아니, 왜 그런 역할을 시장님이 맡아야 하는데요?”

“시장님이니까요.”

“네에?”

“그리고 제가 아무리 떠들어도 시장님이 한번 말씀하시는 것보다 반향이 작을 테니까요.”

안준식이 말없이 듣고만 있는 도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시장과 시의회의 관계는 독특하죠. 그걸 생각하고 시장님 개인만 놓고 보면, 이 일에서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대처라는 걸 저도 잘 압니다.”

“......”

“하지만, 대흥시 시의회나 시민을 위해 어떤 게 더 좋은지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용인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시의원을 시의회가 제명해 시의원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고 잘못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선례를 만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중 어떤 게 시민에게 좋은 쪽이겠습니까?”

“당연히 전자겠네요.”

“그게 제 생각입니다.”

도훈이 잠시 안준식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의원님 혼자 힘으로는 그게 어려우실 것 같습니까?”

안준식이 머쓱한 표정이 됐다.

조금 전 그는 분명 자기 입으로 도훈의 입장을 잘 안다고 했다.

설사 도훈이 협조한다고 해도, 그 전에 시의회를 구성하는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해야 더 의미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만남을 청해 이런 얘기를 꺼낼 정도로 안준식은 올바른 선례를 만들고 싶었다.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 시장의 발언을 통해 일을 키워 소극적인 시의원을 압박하는 방법을 써서라도.

“저 혼자가 아니라 저와 신길영 의원, 송지은 의원 셋이 나서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미 의원들끼리 이 일로 얘기를 해봤거든요.”

“그러셨어요?”

“네. 두 번이나요. 저희 셋 말고는 그냥 법에 맡기자는 생각입니다.”

“흐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도훈이 잠시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의장님은 하필 이런 문제에 그 소극적인 성격이 발동하셨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부담을 느끼는 게 무리가 아니긴 한데···.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저는 차혜진 의원이 부정적이라는 것도 좀 놀라운데요. 차 의원이랑 서 의원이랑 별로 사이 안 좋잖아요.”

“그러게요. 그래서 저는 가능할 거로 생각했는데, 차 의원의 반응이 예상 밖이라서요.”

“네.”

도훈이 다시 안준식과 시선을 맞췄다.

잠시 말없이 안준식을 바라보던 도훈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내일 오전 시의회에 나가겠습니다.”

“시장님. 잠깐···.”

두진이 끼어들려 했지만, 도훈은 가만히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고는 말을 이었다.

“본회의장 답변석에 서서 의원님의 질문에 답하도록 하죠.”

“... 감사합니다.”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의원님의 생각에 저도 동의하니까요. 하지만···.”

“......”

“그 이상으로 적극적인 역할은 하기 어려울 겁니다.”

“네. 이해합니다. 저 나름대로 생각한 게 좀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들어보고 싶은데요.”

“협조해 주시는 데 그 정도는 일도 아니죠. 그러니까···.”

두 사람이 안준식의 ‘계획’에 대해 잠시 논의했다.

기자를 미리 부르고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듣더니, 옆에서 지켜보던 두진이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를 마친 안준식이 몸을 일으키더니 도훈에게 묵례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시장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도훈과 인사한 안준식이 두진과도 인사했다.

안준식은 두진의 불만 가득한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

안준식이 나간 얼마 뒤, 두진이 입을 열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이네.”

“네. 저도 알아요.”

“알면서 도대체 왜···?”

“하지만, 안 의원의 말은 틀리지 않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 글쎄.”

“그리고 제가 그런 발언 한다고 꼭 욕먹을 게 확실한 건 아니잖아요. 서 의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무척 높은데.”

“소수라 하더라도 비판하는 사람 분명히 있을 거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이야기하나? 뻔히 알면서 책잡힐 일을 하는 거 아닌가?”

“... 하하.”

“생각이라도 좀 해보겠다고 답해야지. 거기서 그렇게 선뜻 승낙해 버리면 어떻게 해?”

답답하다는 듯 타박하는 두진을 향해 도훈이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안 의원이 진심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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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에서 안준식의 질문에 대한 도훈의 답변, 그리고 그 답변에 대한 의원들의 반응이 지역 언론에 기사로 나왔다.

- ... 한편, 이런 김도훈 시장의 발언에 대해 몇몇 시의원은 진의는 모르지 않지만, 경솔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차혜진 의원의 경우···.

워낙, 서태기가 질 나쁜 짓을 했고 그에 대한 시민의 여론이 나빴는데 이 기사가 인터넷으로 퍼지며 서태기 의원 혼자가 아니라 시의회까지 같이 욕먹는 분위기가 됐다.

- 동병상련이라 이건가? 같은 시의원이니 처지를 이해한다는 거야, 뭐야? 이건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시의원 하나 자체적으로 정리 못 하는 게 무슨 시의회고 의원이라고! 시장님까지 저런 말을 할 정도로 대다수 시민이 공감하는 이슈라는 거 몰라!

서태기 퇴진 SNS 시위를 최초로 시작했던 조 위원과 그녀의 친구들이 먼저 시의회에 분노를 표시했고, 시위에 참여했던 이들을 필두로 여러 사람이 비슷한 의견을 표했다.

졸지에, 시의회는 파렴치한 시의원 하나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는 ‘시민과 소통능력 제로’인 시의회로 비판받기 시작했다.

물론, 시민 다수는 도훈의 말이 틀린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굳이 시의회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할 필요까진 없었다는 이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시장과 시의회의 관계를 생각해 좀 더 신중해야 했다느니, 괜히 일만 더 시끄럽게 만든다며 핀잔하는 사람도 있긴 있었다.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좀 오버했다’고 충고하거나 ‘인기 좀 있다고 할 말 못할 말 못 가리는 거냐’고 비판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네.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하겠습니다.”

그런 시민을 만날 때마다 도훈은 일절 변명하거나 ‘당위’를 논하지 않고 그렇게 답했다.

여하튼, 도훈의 답변으로 좀 분위기가 환기되더니 더 많은 시민이 시의회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전, 충남 지역 TV 뉴스에서도 이를 다뤘다.

- 대흥시 현직 시장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시의회에서 현직 시의원의 제명이 필요하다고 답변을 했다는데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시내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도훈의 시선이 TV를 향했다.

- ... 시의원의 파렴치한 행위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었다는 반응이 많지만, 시장으로서 경솔한 행동이었다는 비판이 일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도훈의 행동이 좀 경솔했다고 생각한다는 시민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 쩝.”

“휴우.”

자초지종을 아는 두진과 영배가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TV를 바라보는 도훈의 담담한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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