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그의 또 다른 얼굴 - 3.
일요일 오전, 대흥시 의용소방대 사무실 앞 공터.
날이 추운데도 열이 넘는 사람들이 여러 조리기구 및 식재료 사이에서 맡은 역할을 하는 가운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 하나가 이리저리 오가며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밥은 다 됐지?”
“조금만 더 뜸 들이면 돼요.”
“불고기는 안 모자라?”
“괜찮을 것 같아요.”
“다 된 건 얼른얼른 안으로 옮겨. 빨리 담아야지 잘못하면 밥때 놓치겠어.”
“아, 대장님이 정신 사납게 안 하면 더 빨리 담을 거예요. 저리로 좀 가 계세요.”
“... 어, 알았어.”
밖에서는 음식을 만들고 사무실 안에서는 도시락에 밥과 음식을 담고 1인분씩 보자기로 싸느라 분주한 의용소방대원들 사이에는 봉사단체 운영진과 회원들도 여럿 자리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소방대원들보다 봉사단체에 소속된 이들이 훨씬 많아서, 봉사단체가 의용소방대의 집기와 시설을 빌려 사용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 저희 초창기 활동할 때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초창기에는 저렇게 밥이랑 반찬 몇 가지 직접 만들어서 들고 나르기 바빴었거든요.”
“... 네.”
의용소방대원들과 봉사단체 회원들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두 남자는 봉사단체 회장과 도훈이었다.
회장은 일손이 남아 일을 거들지 않는 게 아니라 감기에 걸려 작업장에서 떠밀려난 상황.
감기 때문이 아니라 엊그제 터진 일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지 그의 얼굴이 무척 좋지 않았다.
그간 자신들이 ‘저질 식재료’로 만든 도시락을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전달했다는 게 왜 충격적이지 않겠는가?
그건 회장뿐만 아니라 다른 운영진과 회원들도 마찬가지여서, 몸은 고생이지만 이렇게라도 도시락 봉사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는 걸 위안 삼는 분위기였다.
“다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님.”
“아닙니다. 잘못한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그 사람 말고 다른 분들의 선의까지 의심해서는 안 되죠.”
“... 시장님.”
“어휴, 그런 눈빛 부담스럽습니다.”
도훈의 말에 회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금요일, 도훈에 의해 도시락 공장이 저질 식재료를 써왔다는 게 발각됐다.
쌀이나 냉동육 등 도시락에 들어가는 일부 반찬에 오래되고 보존기한을 넘긴 식재료를 써왔다는 게 밝혀진 것.
특히, 냉동육 등은 포장된 박스를 바꿔치기하는 형식으로 감독기관의 눈길을 피해왔다.
확인된 바로는 냉동 보관된 지 무려 2년이 넘은 닭고기, 돼지고기 등이 사용되기도 했다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그 사람들은 어찌 됐습니까?”
“어제 긴급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명했습니다. 두 번 다시 우리 단체에는 발도 못 붙이게 할 겁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고소도 할 겁니다.”
“... 네.”
도훈이 언급한 ‘그 사람들’은 봉사단체 회원 중 도시락 공장의 공장장과 ‘짜고 친’ 회원 두 명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납품된 도시락 중 극소수였던 정상적인 도시락만 골라 검수를 받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 대가로 두 사람이 얻은 건 본인 혹은 가족이 수확하는 농산물을 공장에 식재료로 납품하는 것이었다.
이번 일이 들통나며 납품은 끊겼고 법적 책임도 져야 할 테지만, 사는 동네에서조차 ‘죽일 놈’ 소리를 듣고 있는 게 가장 난감한 일일 터.
그나마 그 두 회원 말고는 봉사단체 사람 중 이 일에 더는 가담한 이가 없다는 게 다행이랄까.
“도시락 업체 선정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서두르지 않을 생각입니다. 일단 저희도 경찰 조사에 협조하기로 했잖습니까. 그 조사 결과 나온 다음에야 그런 걸 할 자격이 있겠죠. 운영진은 어제 조사를 받았고, 회원들도 나눠서 전부 다 조사를 받을 겁니다.”
“... 네.”
부실 식재료는 대흥시의 도시락 공장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었다.
부실 식재료를 공급한 업체가 대전, 충남의 다른 식품업체 여럿과도 거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전지방경찰청과 충남지방경찰청이 합동으로 수사하고 있었다.
사실, 이 도시락 공장에 저질 식재료를 납품하고 돌아가던 차량을 붙잡은 것도 도훈이 대전에서 근무하는 아버지 후배 서진 누나 남편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위이이잉!
“저, 잠깐 전화 좀 받겠습니다.”
“네. 그러시지요.”
회장의 곁에서 멀어지며 도훈은 난감한 표정이 됐다.
원래대로라면, 어제 도훈은 세경의 어머니를 찾아가 인사를 드릴 예정이었는데 이 일로 그러지를 못했으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세경도 이해했지만, 그녀에게 미안하고 그녀 어머니께 죄송한 건 그대로였다.
“... 네, 세경 씨.”
- 바쁘죠? 오늘도 도시락 준비하는 곳에 나갔어요?
“뭐, 그렇죠. 날이 추워서 여러 사람이 고생하는데 시장이 뒷짐 지고 구경만 할 수는 없잖아요.”
- 여하튼, 도훈 씨도 못 말려요.
“그러게요. 뜻한 건 아닌데 여러 사람에게 폐만 끼치고 다니고 있네요.”
도훈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아 있는 걸 세경은 놓치지 않았다.
- 호호! 설마 아직도 신경 쓰고 있어요? 이번 주 약속 못 지킨 거?
“... 조금요.”
- 흐음. 제가 전화하길 잘했네요. 엄마가 아주 잘했다고 이런 일이라면 충분히 미루고도 남는다고 전하라고 하셔서 전화했어요.
“네?”
- 조금 전에 TV 뉴스에 나왔거든요, 도훈 씨가.
뉴스라는 말에 ‘아, 드디어 보도됐구나’ 싶었던 도훈은 뒤늦게 자기가 나왔다는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 뉴스에 제가 나왔다고요?”
- 자료화면에 나오던데요. 냉동탑차 옆에서 살벌한 눈빛을 하고 선 도훈 씨가.
“......”
- 호호, 멋있었어요.
“......”
말문을 잃었던 도훈은 세경과 얼마간 더 통화한 뒤 의용소방대 사무실로 들어갔다.
구석에서 일을 돕는 영배의 옆구리를 찔러 한쪽으로 데려간 도훈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형, 엊그제 찍은 영상 어쨌어?”
“... 어쩌긴? 시청에 있지.”
“정말? 누구한테 내준 게 아니고?”
“내주긴? 원본은 그대로 있어.”
“... 원본? 그럼 복사본을 만들었단 말이야?”
“당연한 거 아니냐? 하나씩 복사해서 경찰에게 줬지. 그래야 수사자료나 증거로 쓸 거 아니야.”
“......”
“바쁜데 겨우 그거 물어보려고 불렀냐?”
“... 어.”
“싱겁긴.”
“......”
투덜거린 영배가 말문을 잃은 도훈을 놔두고 일하던 자리로 돌아갔다.
금요일 현장에 언론사가 없었으니 당연히 뉴스에 자신의 얼굴이 나갈 일은 없을 거로 여겼던 도훈이었다.
그런데, 경찰 측에서 자료 영상을 제공할 것은 예상치 못했다.
‘... 아, 놔···.’
축가 영상 소동 이후 ‘얼굴’에 민감해진 도훈.
자신의 얼굴이 나간 뉴스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도훈의 마음에 왠지 모를 불안함이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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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동 트럭의 짐칸을 열자 보시는 것처럼 내부에 접힌 포장용 박스가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도시락 공장에 납품된 냉동육과 다른 식재료들이 원래 담겼던 박스들로, 박스에 적힌 유통기한이 최소 1년, 길게는 2년이 넘게 지난 것들도 있습니다. 단속을 피하려고 이른바 ‘박스 갈이’를 한 것입니다.
“... 참, 내···.”
뉴스 영상을 잠시 정지시킨 도훈이 떫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냉동탑차 내부를 보여주는 화면 구석에 차갑게 굳어진 자신의 얼굴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화가 나도 무척 났다는 게 그대로 느껴지는 그런 얼굴이랄까?
“뭐, 영상이 좀 낫네.”
“... 뭐가?”
“실제보다 영상이 덜 무섭게 느껴지거든. 저 때 네 눈빛 장난 아니었어.”
“내가?”
“응. 나조차 눈빛 마주치기가 꺼려지더라고. 오죽했으면 그 자리에 나왔던 지구대 팀장님이 ‘눈빛으로는 고참 형사 뺨칠’ 수준이라고 했겠냐.”
“... 쩝.”
금요일, 도훈과 직원들은 새 물건이 납품된 직후에 도시락 공장 창고를 덮쳤고, 두진이 대전지방경찰청 형사와 함께 납품하고 돌아가던 냉동탑차를 잡았다.
납품업체가 저질 식재료와 새 박스를 싣고 와 ‘박스 갈이’를 냉동 창고 내부에서 한 뒤, 원래 식재료가 담겼던 박스는 납품업체 차량이 다시 싣고 가 다른 곳에서 불태워버리는 수법.
이 수법을 통해 문제의 도시락 공장에 저질 식재료가 납품되기 시작한 건 석 달이 조금 넘은 일이라 했다.
도박 빚에 쪼들린 도시락 공장 공장장이 식재료 납품업체의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여 시작된 일로, 공장장과 창고 직원 둘에 봉사단체 회원 둘, 거기에 저질 식재료를 은밀히 취급해 온 납품업체 측 직원 다수가 연루된 상황이었다.
- ... 이렇게 유통기한이 이미 지났거나, 해동했다가 다 팔지 못한 분량을 다시 냉동한 저질 식재료가 납품된 곳은 대흥시의 이 도시락 공장을 포함해 대전, 충남 지역의 다섯 개 업체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이렇게 저질 식재료를 납품받고 재료비를 빼돌린 사례가 더 있을 수 있다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뉴스가 끝났고 도훈이 컴퓨터를 껐다.
공중파 방송의 지역 TV 뉴스 영상에 도훈이 등장한 건 약 3초 정도.
도훈의 얼굴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었지만, 충분히 도훈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나왔다.
그나마 뉴스에서 도훈의 이름을 언급하거나 한 건 아니라는 게 천만다행이랄까?
‘설마 그 잠깐 얼굴 나왔다고 또 소동이 벌어지지는 않겠지.’
애써 ‘희망적인 결론’을 내린 도훈이 다른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왜 또 한숨이냐?”
“도시락 때문에 그래. 언제까지 의용소방대 도움을 받을 수는 없잖아.”
“... 하긴.”
도시락 배달은 명절 등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해 온 일이었다.
금요일에 현장을 덮치고, 당장 토요일 도시락부터 문제가 되자 도훈은 생각다 못해 의용소방대에 도움을 부탁했었던 것.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좋은 목적의 사업이니 의용소방대가 흔쾌히 나서줬지만, 계속 그들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었다.
“교육장님이 협조해 주신다고 했잖아.”
“다행히도 말이지. 하지만, 그것도 당분간이야.”
시청에도 구내식당이 있지만, 거긴 시청과 시의회 직원에 방문객들의 식사를 소화하기도 벅찼다.
1월인 지금, 다행히 학교들이 방학이라 급식실이 운영을 안 하는 상황이었다.
도훈은 금요일 도시락 공장의 문제를 적발한 직후, 교육장에게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고 학교 급식실 시설과 인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지 물었다.
어제와 오늘처럼 봉사단체에서 식재료를 준비하고 학교 급식실에서 밥과 반찬만 만들어주면, 도시락에 담는 거야 봉사단체 회원들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빠르면 화요일부터 늦으면 수요일부터 학교 급식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교육장의 약속을 이미 받은 상태.
문제는 새로운 업체를 선정해야 봉사단체의 일이 제대로 돌아갈 텐데, 대흥시에는 적발된 도시락 공장 말고 대량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납품하는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회장님이 대전에 있는 업체부터 알아보신다고 했잖아.”
“그렇긴 한데···.”
대전에도 도시락 업체가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내일부터도 납품을 받을 수 있을 터.
“뭐가 걸리는 건데?”
“관내에 있는 업체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데, 외부에 있는 업체라면 어떨까 싶어서···. 게다가 내가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관내 업체를 선호하는 건 형도 잘 알잖아.”
“흠, 그건 그렇지.”
시 예산이 적지 않게 들어가는 일이니, 되도록 대흥시 관내에 자리한 업체를 선정하고픈 게 도훈의 생각.
영배도 이해는 하지만, 이 경우엔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랄까?
“일단 그건 다음에 생각하고 오늘은 이만 퇴근하면 안 될까? 나 도시락 싸고 설거지하느라 좀 피곤하다.”
“아, 미안.”
도훈도 틈틈이 돕기는 했지만, 영배는 도시락 싸는 일부터 시작해 회수한 전날 도시락을 설거지하는 일까지 참여해서 피곤하긴 할 터.
“퇴근하자.”
“그래, 그러자. 아이고, 허리야!”
비서실을 나선 도훈과 영배가 계단을 내려갔다.
어느새 도훈이 걸음을 옮기면서도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