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32화 (233/279)

232. 묻어가기 - 3.

‘유서면 주민과의 대화’ 행사가 열리고 3주 조금 넘게 지난 어느 날.

‘시청 최고의 소식통’ 홍영진이 오래간만에 별명에 걸맞은 정보를 물어왔다.

“... 진짭니까?”

“그것까진 확인해드릴 수 없지만, 이 이야기를 제게 해준 사람이 대자당 지역위원회 사람들과 아주 관계가 좋습니다. 그 점을 놓고 생각해보면,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 흐음.”

도훈이 ‘설마’ 하는 듯한 표정을 했고, 영배와 지연도 마찬가지.

유일하게 ‘그럴 수도 있겠다’는 표정인 건 두진이었다.

“실장님은 진짜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네.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요?”

“대개 정치인들이 그렇거든요. 특히 선거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할 즈음이라면 더욱 그렇죠.”

“정치인이요?”

“차혜진 의원도 정치인 아닙니까? 그리고 그 당 지역위원회에 정치인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전혀 없을 리가 없죠.”

영진이 전한 이야기는 차혜진과 도훈의 화해.

정확히 얘기하자면, 대자당 지역위원회에서 차혜진에게 도훈에게 사과하고 화해하라고 강권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차혜진은 그 권유를 완강히 거부하는 중이고 말이다.

“이제 선거 1년 정도밖에 안 남았습니다.”

다음 지방선거는 2022년 6월 1일에 시행된다.

2021년 4월 말인 지금, 13개월이 남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선거에 출마를 고민하는 사람과 세력의 머릿속에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될 때였다.

당사자인 차혜진은 물론이고, 지방선거에 출마를 준비하는 대자당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현재의 대흥시민의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도훈에 대한 지지도 조사 같은 걸 해본 적은 없지만, 대개 호의적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터.

의회에서 유일한 대자당 소속 의원이니 현 대자당 대흥시 지역위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는 차혜진이 도훈과 일언반구도 섞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쁜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물론, 시의회 등 공적인 자리에서까지 그랬던 건 아니지만, 지난 몇 달간 차혜진과 도훈이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한 게 차혜진 의원의 새 보좌관이라고 합니다.”

“... 보좌관이요? 혹시 그 ‘이 뭐’라던 젊은 여자 말입니까?”

“맞아요, 조 비서관.”

“허허.”

영배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두진이 담담히 말했다.

“홍보전문가라고 엉뚱한 짓만 하는 것 같더니, 보좌관이 맞긴 맞나 보군.”

“... 그런 겁니까?”

“당연하지. 우리가 조사해 본 적은 없지만, 시민들 사이에 시장님의 지지도는 꽤 높을 거야. 그런 시장님과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전적으로 그쪽 손해야. 누가 됐든, 다음 선거를 생각하면 그 관계부터 개선하는 게 맞아.”

“제 지지도는 모르겠고, 관계 개선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듣고 있던 도훈이 입을 열었고 모두가 고개를 차례로 끄덕였다.

“차 의원이 저와의 화해를 거부하고 있다고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차 의원답네요.”

도훈이 쓰게 웃었고 영진이 말을 이었다.

“사실, 요즘 차 의원이 시장님과 찍은 사진 가지고 홍보에 목매달고 있지만, 그 전제조건이 우선 화해하는 거였다더라고요.”

“... 화해가 전제조건이었다?”

“네. 이 전략을 제시한 사람이 그 보좌관인데, 시장님과 화해하고 차 의원과 시장님이 좋은 관계라는 걸 홍보하는 식이었답니다.”

“흠. 얘기를 듣고 보니 그 전략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느껴집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전략을 마지못해 받아들인 차 의원이 카메라 앞에서 화해한 시늉은 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겠죠.”

영진의 말에 영배가 미간을 찌푸리고 끼어들었다.

“시늉은 무슨요. ‘연기’가 맞죠.”

“하하. 그게 더 정확할 것 같네요. 어쨌든, 그래서 더 역반응이 큰 것이고요.”

“아무튼, 실제로 시장님과 화해하고 관계가 좋다는 걸 홍보하겠다는 전략이었는데, 차 의원이 실제로는 화해는커녕 카메라 앞에서 연기만 하다가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얘기네요?”

영배가 묻자 영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배, 도훈, 두진, 지연이 거의 동시에 한마디씩 했다.

“한결같기는 하네.”

“역시 차 의원이네요.”

“... 어쩐지.”

“너무 뜬금없더라니···.”

차혜진 쪽에서 도훈에게 묻어간다는 거창한 ‘전략’이라는 걸 시행한 게 한 달 가까이 됐다.

당사자인 차혜진이 동의하지 않고 시작했을 리 없으나 차혜진은 그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화해’를 시도하는 말은커녕 부드러운 눈빛도 보낸 적이 없었다.

“그 보좌관이 시장님과의 관계 개선이 없으면 이후 홍보는 뭐가 됐던 무용지물이라며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네요.”

“허허···.”

“자기 혼자서는 말발이 안 먹히니까 지역위원회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한 모양이고요.”

“다음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거기에 호응했겠군.”

“네, 그런 모양입니다.”

“허허허.”

두진이 실소를 흘리고는 도훈을 바라봤다.

“왜요?”

“... 사정이 저렇다는데, 시장님이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싫습니다.”

“... 싫으세요?”

“네.”

단호히 답한 도훈이 부연했다.

“차 의원이 저는 몰라도 예산팀장에게 개인적으로라도 사과하지 않으면 화해할 마음 전혀 없어요, 저는.”

“... 허허허. 시장님, 아무리 상대가 잘못했다지만, 특정 시의원과 계속 나쁜 관계를 유지하는 건 시장님께도 좋은 게 아닙니다.”

“모르지 않습니다만, 제 평판이나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 그게 뭡니까?”

“차 의원의 사과요.”

“... 사과요? 시장님께 말입니까?”

“아뇨. 저 말고 예산팀 직원들에게요.”

작년 예산 조정안 논의 때, 도훈도 고생했고 비서실 직원들도 고생했으나 가장 많이 고생한 건 예산팀 직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부처님’ 예산팀장이 의원들을 상대하느라 가장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생했다.

“저야 시장이니 차 의원도 선을 넘는 행동을 못 하죠. 하지만, 우리 직원들에게는 아니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선례를 만들어야겠습니다.”

“... 허허허.”

‘왕’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도훈의 모습에 모두가 잠시 할 말을 잃었고, 곧 도훈이 시장실로 들어갔다.

시장실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두진이 영진에게 속삭였다.

“홍 주무관, 방금 시장님 말씀 차 의원 쪽에 흘러들어 가게 할 수 있겠나?”

“그야 어렵지 않죠. 그렇게 할까요?”

“응. 그렇게 해주게. 냉랭한 관계가 계속되면 최초 원인 제공자가 누가 됐든 결국에 시장님께도 부담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실장님.”

영진이 답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 그 고집불통이 어떻게 나오려나?’

냉랭한 표정을 한 차혜진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린 두진이 가만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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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대흥시 운계면의 모처.

“허허, 잘 되실 겁니다.”

“아이고, 제발 그래야죠.”

“저희가 잘 보좌하겠습니다. 바닥부터 훑어서 바람을 일으켜야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위원장님.”

“하하, 잘 부탁합니다.”

상석에 앉은 남자에게 연신 자신감 넘치는 말을 하는 사람들.

상석에 앉은 건 새롭게 임명된 대자당 충남도당위원장이었고, 다른 이들은 내년 지방선거 때 대흥시 시의원이나 도의원으로 출마할 뜻을 품은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그들 모두 현직이 아니었다.

단 한 사람, 위원장 바로 옆자리에 앉아 담담한 표정을 한 차혜진을 제외하면.

“차 의원님이 혼자 고생이 많으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별말씀을요.”

비례대표로 한 번 수도권 지역구에서 한 번, 그렇게 두 번의 국회의원 경험이 있는 새 위원장은 낙하산이었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1년여 남은 시점에 도당위원장이 된 것은 가장 강력한 도지사 선거 후보라는 얘기.

이 자리에서 신임 위원장을 향해 예의 바른 미소를 보이는 모든 이들이 그걸 모르지 않았다.

다음 선거 결과가 어찌 됐든, 대한 자유당 충청남도 도당은 최소한 선거 날까지는 그를 중심으로 돌아갈 거라는 것 역시도.

신임 위원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의 바름’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 시장이 그 사람이죠? 무소속 고집하는 젊은 시장?”

“네. 김도훈이라는 이름입니다.”

“초기에는 여러 사람이 시정 망칠 거라고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제법 잘 해나가는 것 같더군요.”

“... 네, 뭐.”

어색한 표정으로 답하는 차혜진과 표정 관리를 하는 다른 이들.

“... 잘 해나가는 건 다행인데, 아쉬운 건 성향이 우리와는 안 맞는다는 건데···. 우리 쪽으로 끌어올 가능성은 없겠죠?”

“네,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혜진이 단정적으로 답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소속을 고집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기본적인 성향이 너무 다르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 여러분들, 앞으로 고생 좀 하시겠어요.”

“허허, 그렇죠, 뭐.”

“쉬운 일이 있겠습니까.”

현직 시장이 우리 편이라면 당연히 선거 때도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기에 하는 말이었고, 아쉬워하는 예비 후보자들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 글쎄요.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겠죠.”

차혜진이 답했고 다른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표정 관리를 했다.

솔직히, 차혜진은 도훈을 아주 미워하거나 싫어하고 있었으나 도훈은 그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걸 넘어서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듯했으니까.

“저런. 사이가 나쁜 겁니까?”

“... 나쁘다고까지 할 건 아니고요. 좀 데면데면한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친구 친근한 성격은 아닌가 보네요?”

“... 좀 그런 편이죠.”

“흠. 제가 한번 만나보는 게 좋겠죠?”

“... 글쎄요.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아뇨. 그래도 현직 시장 아닙니까? 인사는 해야죠.”

“... 네.”

“차 의원이 한 번 자리를 만들어보세요.”

“... 제, 제가요?”

“차 의원이 나서는 게 가장 좋은 모양새 아니겠어요? 주 중에 밥이나 한번 같이 먹는 게 어떻습니까? 차 의원도 같이요.”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위원장의 눈빛은 ‘부탁’이 아닌 ‘명령’에 가까웠다.

그래서 차혜진은 어쩔 수 없이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 알겠습니다.”

“하하, 차 의원만 믿겠습니다.”

“네.”

차혜진이 승낙하자 위원장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신임 위원장에게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차혜진 모르게 다른 이들이 부탁했기 때문이었으니까.

고집불통 차혜진이 도훈과 관계 개선을 극구 거부하고 있느니 위원장의 ‘위세’를 통해서라도 ‘계기’를 만들기로 한 것.

그리고 이 ‘계책’을 낸 게 차혜진의 보좌관 이영은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이영은에게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몰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위이잉.

- 됐어!

차혜진의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고 있던 이영은이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지. 자기보다 센 사람 앞에서는 ‘찍’ 소리도 못 하지.”

다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이런 말이나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그녀.

그래서 차혜진 의원도 다른 사람들도 이영은이 차혜진을 고용주로 존중하거나, 시의원으로서 성공하도록 보좌할 마음이 없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이영은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 문제는 시장실에서 흘러나왔다는 그 얘기인데···.”

시장에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예산팀 직원들에게 사과해야 화해가 됐든 관계 개선이 됐든 응할 마음이 있다는 얘기.

이 이야기를 대자당 지역위 사람들 대다수가 알고 있었고, 차혜진도 주워들은 눈치였다.

다른 사람들은 차혜진이 시청 직원들에게 사과해줬으면 하는 눈치였는데, 당사자인 차혜진은 모른 척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줬는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면 내 사표가 좀 더 빨라질 거야.”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이영은.

그런 그녀가 작업하고 있는 건 차혜진이 아닌 도훈에 관한 문서였다.

차혜진의 보좌관인 이영은이 작성할 필요가 전혀 없는.

타탁. 타타타탁!

다시 키보드를 두들기는 이영은의 눈이 아주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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