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39화 (240/279)

239. 감사 - 2.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감사원에서 감사를 나올 거라는 얘기는 이미 전날 초저녁부터 직원들 사이에 돌기 시작했다.

어제가 일요일이었지만, 소식이 소식이다 보니 오늘 출근해서야 감사 얘기를 처음 들은 직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일찍 출근한 시청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는 가운데, 청사 옆 자판기 앞에서도 ‘감사’를 주제로 대화하는 이들이 있었다.

“... 진짜야?”

“네. 아까 보니까 소회의실 사용 예약이 전부 취소됐더라고요. 감사원 직원들이 거기를 쓸 거랍니다.”

“... 감사원이라···. 이거 괜히 등골이 서늘하네.”

“그러게요. 어제 저도 그 얘기 톡으로 전해 들은 직후에 죄지은 것도 없는데 으스스하더라고요.”

“하하. 왜 아니겠어. 공무원인 이상, 감사를 받게 되면 누구나 비슷할걸?”

감사원은 중앙정부의 각 부처와 정부투자기관, 지방정부의 회계를 감사해 그 집행이 적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회계뿐만 아니라 공직자에 대한 직무감찰 권한도 갖고 있어 검찰, 경찰, 국세청 등과 함께 대한민국 ‘4대 사정기관’에 꼽히는 힘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회계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지거나 비위가 발각되어 감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공익감사청구’와 같이 민간인이 소정의 형식을 갖춰 요청하면 감사가 이루어지고 했다.

다만, 중앙정부 및 투자기관에 대한 감사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지자체에 대한 감사는 그렇지가 않았다.

“허. 이거 몇 년 만이지? 감사원 감사받은 게 7년 됐나? 아닌가? 8년인가?”

“... 제가 5년 차니까 저 임용되기도 전이네요.”

“그래. 감사원이 기초자치단체 감사하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거든.”

“그렇다더라고요. 알아보니까 요새는 단체장 임기 중에 별문제 없으면 감사원 감사 한 번도 안 받는 곳도 부지기수던 데요.”

“맞아.”

지자체에 회계비리나 공직자 비위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감사원이 나서는 게 일면 당연해 보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해당 지자체가 스스로 그 문제를 적발, 시정 하고 그 이전에 그런 문제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옳은 방향일 터.

민주주의 질적 발전의 한 실례로 ‘지방자치의 확대’를 꼽는 시대적 분위기도 감사원이 지자체 감사에 소극적인 것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당선된 단체장에 의한 선심성 행사, 무분별한 개발, 전횡적인 행정, 방만한 재정운용 등의 문제가 꾸준히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상’만을 운운할 수는 없는 일.

게다가, 대다수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형편없는 수준이고 일부는 국고보조금이 없으면 당장 직원들 월급 주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지자체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손 떼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나 다름없었다.

대화하는 이들 옆에서 듣고만 있던 다른 직원이 찜찜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거 어제 통보된 것 맞대?”

“어. 어제 당직실로 연락이 왔대.”

“... 허. 감사 나오기 전날, 당직실로 연락하는 경우도 있나? 그런 얘기 들어봤어?”

“최소한 나는 처음이야. 그래서 더 좀··· 느낌이 그래.”

“... 흐음.”

감사원 감사도 엄연히 행정업무이니 일반적인 절차라든가 관례라는 게 있다.

그런 걸 봤을 때 은밀히 현장을 감찰하다가 비위를 적발한 것도 아닌 데, 감사가 시작되기 전날 그것도 일요일에 당직실에 통보하는 건 이례적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직원들은 감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보다도 그 ‘이례적인 통보’ 방식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끼익.

청사 주차장에 승합차 한 대가 섰고, 낯선 사람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렸다.

“... 저 사람들인가 보네.”

“흠.”

“......”

시청 직원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감사원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청사 현관으로 줄지어 걸음을 옮겼다.

“... 왠지 무섭네.”

“괜히 그러지 마. 저 사람들도 공무원이야.”

“... 그냥 느낌이 그렇다고.”

“알겠는데, 괜한 소리 하지 말자고.”

“그래야지.”

시청으로 들어가는 일단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직원들이 소리 죽여 대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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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대흥시청 3층 시장실.

“수고하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도훈과 악수한 감사팀 책임자가 시장실 밖으로 나갔고 도훈이 자기 책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그런 도훈을 바라보던 두진도 말없이 자리를 비켰다.

철컥.

문이 닫혔고 시장실에 도훈 혼자 남겨졌다.

의자에 앉은 도훈이 몸을 돌려 창밖에 시선을 고정했고, 저만치 구석에 있던 조상님이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일단, 여기 나온 사람 중에 악의를 가진 놈이 없다는 건 다행이구나.

“네.”

대흥시청에 감사를 나온 감사원 직원은 모두 여섯.

도훈이 그들을 직접 맞이한 건 아니고 조금 전 책임자와 잠시 인사를 나눴을 뿐이지만, 조상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꼼꼼히 살피고 왔다.

조상님의 판정 결과는 여섯 모두에게서 어떤 나쁜 의도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혹시라도 감사원 직원이 악의를 품고 감사 결과를 어떤 의도된 쪽으로 몰아간다면, 감사받는 대흥시청은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감사 중에 대화나 최소한의 해명은 할 수 있을 테고 결과가 나오고 그에 대해 반응을 할 수는 있지만, 이쪽이 먼저 감사 결과에 영향을 끼칠 행동을 해서는 안 되니까.

그런 처지에서, 현장에 나온 감사원 직원들에게 악의가 없다는 건 분명 다행이었다.

-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지?

“물론입니다. 제가 어린애도 아닌 걸요.”

대체로 태도가 공손하고 보통 사람과 다름없지만, 눈빛이 이유 모르게 서늘하게만 느껴지는 감사원 직원들.

하지만, 그런 눈빛을 가진 베테랑이라고 해서 현장에 투입된 이들이 모든 걸 결정하는 건 아니다.

설사, 현장에 투입된 이들의 결론이 ‘문제없음’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윗선에서 이 결론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었다.

다시 말해, 감사 결과가 최종적으로 발표되기까지 절대로 안심할 수 없다는 것.

- 손발이 묶인 채 결과만 기다려야 한다는 건데···. 이건 도마 위에서 헐떡거리는 물고기나 다름없는 신세로구먼.

“뭐, 제가 시장으로서 일을 제대로 했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 너 모르게 직원 중에 누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수도 있잖아.

“그러지 말라고 평소에 잘 관리하고 최종적으로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게 시장의 역할입니다.”

- ... 쩝. 틀린 말은 아니다만. 혹여 그런 게 밝혀지면 너 속 꽤 아플 걸?

“감수해야죠.”

담담한 후손의 얼굴을 바라보는 조상님이 피식 웃었다.

만 3년이 넘은 도훈의 시장‘질’.

처음이나 지금이나 대개 남들 앞에서는 의젓하고 태연했지만, 초기에는 속으로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적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온갖 다채로운 문제와 상황을 겪으며 빠르게 단련되어 가더니,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질 않는다.

생전에 수십 년 벼슬을 한 조상님의 경륜에는 비교하기조차 무안한 3년이었지만, 그 3년 만에 지금처럼 단단해진 후손을 보는 조상님의 마음은 매우 흐뭇했다.

- ... 얼마 안 남은 것 같군.

“뭐가 얼마 안 남았단 말씀이십니까?”

- 응?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혼잣말이었다.

속으로 생각한 걸 그대로 도훈에게 말해버린 조상님이 태연하게 얼버무렸고, 도훈이 잠시 조상님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책상 위의 머그컵을 집으려는데 개인 핸드폰이 울렸다.

위이이잉.

“... 이 양반은 또 갑자기 왜···.”

액정에 뜬 발신자를 확인한 도훈이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고,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도지사님.”

- 아, 김 시장. 하하! 잘 지냅니까?

“대체로 그런 편입니다. 도지사님은 어떠십니까?”

- 나야 잘 못 지내도 잘 지낸다고 말하는 게 몸에 밴 사람 아닙니까. 하하! 그나저나 정말 잘 지내는 거 맞아요? 오늘 감사 시작한다는 얘기 들었는데요.

“그게 아니었으면 그냥 잘 지낸다고 말씀드렸겠죠. ‘대체로’를 안 붙이고요.”

- 호오? 김 시장 생각보다 담담하네요? 천하의 감사원이 하는 감산데, 겁 안 나요?

장난기 어린 강정문의 목소리에 도훈이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답했다.

“그 사람들이라고 저와는 다른 상식을 갖고 살지는 않을 테니까요.”

- 하하!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하하하!

강정문과 통화하면서도 창밖 파란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도훈의 눈빛은 차분하기 이를 데 없었고 입가에도 담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런 도훈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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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 충남 대흥시 대상으로 ‘특정감사’ 실시.

- 감사원, 이례적인 대흥시 7년 만의 단독 감사 실시 이유는?

- 충남 대흥시, 오늘부터 감사원 특정감사 받는다.

꾸욱!

포털에서 검색한 뉴스의 제목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주먹이, 순간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거세게 쥐어졌다.

오늘 이른 아침, 도훈과 통화할 때는 애써 차분하게 응했던 때와는 달리 세경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 오늘부터 감사원 감사를 받아요. 통보 방식이 이례적이고 해서 좀 신경 쓰이긴 하는데, 별문제는 없을 거예요. 제 나름으로 열심히 했고, 많은 사람이 호응해 줬으니까요. 그러니까 아무런 걱정하지 말아요. 혹시, 나 말고 다른 경로로 듣게 될까 봐 미리 알리는 겁니다.

도훈에게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알았다’고 답하고 말았지만, 통화를 끊은 세경은 즉각적으로 도훈을 노리고 만들어진 문건을 떠올렸다.

사실, 그건 영배, 두진은 물론 도훈도 마찬가지였다.

문건에는 검, 경 등의 사정기관을 활용해 도훈에게 나쁜 이미지를 씌운다는 내용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통화를 마친 직후에는 애써 그런 건 아닐 거라고 믿었지만, 오후가 되자마자 그 믿음을 저버리는 상황이 펼쳐졌다.

충남권의 지역 언론사 여러 곳에서 대흥시의 감사원 감사를 온라인 속보로 올렸고, 통신사 한 곳에서 작성한 기사를 가져다 올린 중앙 매체도 있었으니까.

‘이딴 게 무슨 기사가 된다고. 제목만 아주 선정적으로 뽑아서는···. 나쁜 새끼들.’

제목만 보면 뭔가 잘못한 게 발각되어 문제가 터진 듯한 인상을 받기에 십상이었지만, 기사 내용에는 ‘대흥시가 오늘 오전부터 감사원의 특정감사를 받는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게 전혀 없었다.

‘이건 분명히···.’

누군가 손을 쓰지 않고서는, 아무리 지방 군소 언론사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일제히 비슷한 뉘앙스로 기사를 내보낼 리가 없었다.

거기에 크기는 작다지만 통신사가 기사를 내보냈고, 일부 중앙 매체가 이를 받아 썼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확실했다.

뿌득.

“... 저기, 과장님?”

“응? 아, 네.”

모니터에 정신이 팔린 채 싸늘하게 굳어졌던 세경이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부하 직원 하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제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아뇨. 잠깐 딴생각을 했어요. 무슨 일인가요?”

“말씀하셨던 보고서 업데이트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려고요.”

“네. 알겠어요.”

얼른 웃으며 답한 세경은 바로 보고서를 모니터에 띄웠지만 얼마 읽다 말고 몸을 일으켰다.

계속 도훈이 걱정되어 집중할 수가 없어서였다.

세경이 복도 끝 창가에 서서 잠시 핸드폰을 손에 들고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길 얼마.

“... 휴우. 나까지 전화해 바쁜 사람 정신 사납게 하면 안 되겠지?”

자신에게 타이르듯 중얼거린 세경이 핸드폰을 품에 집어넣고는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나온 세경.

안 그래도 연하게 화장하던 그녀의 얼굴은, 찬물 세수로 말끔해진 상태였다.

다부지게 입을 다물고 차분한 걸음으로 자기 사무실로 돌아가던 세경이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에 시선을 줬다.

남쪽.

도청 청사에서 보기에 대흥시가 자리한 방향이었다.

‘... 믿어요, 도훈 씨.’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도훈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린 세경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또각. 또각.

그녀로부터 한참 뒤편 계단 어름에서 강정문 도지사가 의미 모를 차분한 눈빛으로 세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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