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50화 (251/279)

250. 열혈… - 2.

“시장님. 이번에는 꼭 반영해주셔야 합니다.”

“의원님. 지난 3년간 수리만으로도 크게 문제가 없었잖습니까.”

“문제는 계속 수리를 해왔다는 거 아닐까요? 별로 문제가 없다면, 매년 수리를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지금의 구조물을 허물고 새로 공사를 한다면 과연 수리할 일이 없을까요? 2, 3년은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몇 년 안에 분명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지 않겠습니까? 거긴 분명히 우리 대흥시에서 사람의 통행이 제일 잦은 곳이잖습니까.”

“그렇죠. 그러니 그 정도의 통행량을 견딜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차분한 토론이지만,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설전이기도 했다.

새로 시공하기 위해 총액 2천만 원을 반영해 달라는 요구와 수리, 관리비 명목으로 100만 원이면 충분하다는 답변.

시의회 의원들과 ‘조정’ 논의가 시작된 어느 일요일 시청 비서실의 풍경이었다.

“건축사의 의견도 수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겁니다. 건축사 한 사람만의 의견도 아니고요. 우리 도로시설팀의 견해도 마찬가지고요.”

“... 하아, 하지만 주민들은···.”

“주민들의 요구는 언제나···, 아니 대부분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 요구를 100% 수용할 수 있는 지자체는 없을 겁니다. 중앙정부도 못하는 일을 우리 대흥시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의원님도 잘 아시는 것처럼요.”

“... 쩝.”

“주변 정리에 보강 공사하고 페인트칠 예쁘게 하면 주민들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휴우. 어떻게 한 건을 안 받아 주십니까.”

하소연하듯 말하는 안준식.

도훈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 의원님이 시장 해보세요. 이렇게 안 할 수 있는지.”

“... 하하. 싫습니다. 저는 달라고 떼쓰는 쪽이 좋지 못 준다고 달래는 건 죽어도 못할 것 같습니다.”

안준식이 푸념했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두진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반 정도 끝난 것 같은데, 잠깐 쉬었다가 할까요?”

“그러시죠.”

서류를 내려놓은 안준식과 도훈이 기지개하며 몸을 풀었고, 두진은 새로 차를 타러 몸을 일으켰다.

안준식이 문득 생각난 걸 입에 올렸다.

“아, 시장님 차인호 씨 만나셨다면서요?”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무래도 우리 당과 범상치 않은 사연이 있는 분이다 보니 제가 위로라도 하려고 어제 전화를 걸었었거든요. 그런데 한발 늦었더군요.”

“늦긴요. 어제 점심을 차인호 씨 부부와 함께 먹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팬카페에 받아 주셨다면서요?”

“그건··· 그랬죠.”

차인호는 얼마 전까지 민의당 당원이었다가 이유가 어쨌든 시장과 말싸움에 주먹 다툼까지 해서 징계를 받고 탈당한 사람.

도훈은 그에게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도 있었다.

‘원인 제공은 조 시장이 했지만, 실제로 폭력이 오간 건 맞으니 시빗거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어쨌든, 도훈은 차인호와 그의 아내가 팬카페 정회원이 되는 걸 수용했다.

정치학 박사과정이라는 건 논외로 하고, 도훈의 시장 재선을 위해 썼다는 문건을 보니 그간 얼마나 도훈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자료를 수집했는지를 잘 알 수 있었으니까.

예전에 정치전문 컨설턴트 집단인 한우리 기획에서 받은 비슷한 성격의 문서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열혈 지지자’라는 혜란의 말은 거짓도 과장도 아니었던 것이다.

“제가 만나서 다독이고 나중에 다시 당원 가입할 걸 권하려고 했는데, 만나는 건 상관없는데 당원은 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더군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만나서 인사하고 식사는 한 번 하기로 했습니다. 시장님 팬카페 회원 됐다고 모른 척하는 게 더 우습지 않겠어요?”

“하하. 잘하셨네요.”

“제가 좀 더 서둘렀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말은 아쉽다고 했지만, 안준식의 표정에는 그다지 아쉬운 느낌이 없었다.

“제 팬카페 회원이 안 됐더라도 민의당 당원 자격을 되찾을 생각은 없어 보이던데요.”

“쩝.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무리 국민 눈초리가 무섭다지만, 조 시장 말고 당원들도 징계한 건 과한 처사였습니다.”

안준식은 민의당 대흥시 지역위원회의 일반 당원과 시의원을 통틀어 가장 개혁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람.

대흥시 뿐만 아니라 인근 다른 지역에서도 유명한 건 그의 선명한 개혁성과 함께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준수하게 시의원 활동을 하며 ‘성과’를 쌓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오랜 시민단체 활동으로 쌓은 ‘내공’을 제대로 선보였다고나 할까?

때문에, 인근 OO 시 민의당 당원 중 개혁적인 이들에게 인정받고 교류도 잦아 그쪽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당 OO 시 지역위원회는 거의 폭탄 맞은 상황이라는데···.”

“그럴 만도 하죠. 폭력 행위로 시장이 탈당했고, 다수의 당원에게 징계까지 내려야 했으니까요.”

당적을 가진 시장이면, 그 지역위원회의 대장이나 다름이 없다.

대장은 사고 치고 탈당했고, 당 활동에 적극적이던 이들이 징계를 받고 일부는 탈당까지 했으니 OO 시 민의당 지역위원회의 상황이 절대 좋을 수가 없었다.

“작금의 상황을 수습할만한 영향력이나 역량 있는 인물도 없어서 김용진 의원에게 좀 나서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더불어 다음 시장 후보로 적합한 인물 찾기에 벌써 나섰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조만간 도당에 인재 추천을 공식 요구할지도 모른답니다.”

“네.”

안준식의 말에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 도훈.

그런 도훈에게 시선을 고정한 안준식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대흥시 지역위원회에서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도훈도 다 알고 있는 얘기를 안준식이 굳이 다시 꺼내는 이유가 뭘까.

“제가 지금부터 할 얘기는 제가 원해서 꺼내는 게 아니라 등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왜 갑자기 분위기를 잡으십니까? 무슨 얘긴데 그러세요?”

말은 저렇게 했지만, 도훈도 안준식이 꺼낼 화제가 뭔지 짐작하고 그를 흘겨봤다.

듣고 있던 두진과 영배의 시선도 안준식에게 집중된 상황.

안준식이 말을 이었다.

“시장님만 결심하시면, OO 시와는 달리 우리 대흥시는 평온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휴우.”

역시 그 얘기.

말하는 안준식부터가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안준식 스스로는 무소속인 도훈과 시장과 시의원으로서 논의하고 협력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지금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그래도 된다고 말이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세요.”

“... 휴우. 시장님, 정말 민의당 당원이 되실 생각 없으세요?”

질문하는 안준식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이 이야기를 끝내 도훈에게 하고 마는 자신과 그 질문을 끝내 하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불만 때문에.

도훈이 안준식의 속내를 이해한다는 듯한 눈빛으로 담담히 바라보다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의원님 처지를 이해합니다.”

“... 네.”

“하지만, 전 홀가분한 상태로 지내는 게 더 좋네요.”

“휴우, 네.”

크게 한숨을 내쉬고 뺨을 긁는 안준식.

그런 안준식을 잠시 바라보던 도훈이 몸을 일으켰다.

“우리 다시 회의 이어가기 전에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올까요?”

“... 그럴까요?”

“가시죠, 의원님.”

“네.”

도훈과 안준식이 비서실을 나간 뒤, 두진이 담담히 소리 없이 웃다 영배와 눈이 마주쳤다.

으쓱.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비슷한 미소를 머금는 영배.

‘... 하여간 못 말려.’

‘... 누가 저 친구를 말리겠나.’

영배와 두진이 동시에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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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예산안 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간 매번 쉽게 조정이 이루어졌던 안준식조차 도훈과 예산팀장과 길고 긴 토론을 해야 했고, 다른 의원들은 안준식보다 훨씬 더했다.

특히, 이전에 본 적 없는 ‘비장함’으로 무장한 차혜진은 더욱더.

“해주세요!”

“안 됩니다.”

“해주세요! 꼭 해주셔야 합니다!”

“못 합니다.”

“시장님!”

“그렇게 소리 지르셔도 달라지는 것 없습니다.”

차혜진과 도훈, 두진이 마주 앉은 시장실.

한쪽에 삼각대 위에 카메라까지 놓여 논의 과정을 촬영하고 있었다.

‘비장함’으로 무장했다지만, 차혜진의 방식은 논리에 근거한 토론이나 설득이 아닌 ‘생떼’에 가까웠다.

당연히, 도훈은 처음에 논리적으로 답한 뒤 ‘안 된다’, ‘못 한다’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씩. 씩. 씩.

‘철벽’ 그 자체인 도훈의 한결같은 반응에 분을 못 이긴 차혜진이 씩씩거렸고, 옆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두진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저··· 시장님. 오늘 논의는 일단 이걸로 마치는 게 좋겠습니다. 다음 일정이···.”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요? 차 의원님. 시작하기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

“오늘은 이걸로 마무리하고 사흘 뒤에 다시 만나시죠.”

“... 그러죠.”

도훈을 살벌한 눈초리로 노려보던 차혜진이 벌떡 일어나더니 짐을 챙겨 시장실을 나갔다.

쾅!

“휴우.”

내내 담담하던 도훈은 시장실 문이 굉음을 내며 닫히자마자 소파에 등을 대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진이 딱하다는 듯 도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게 좀 적당히 하시지 그랬습니까?”

“... 저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떼쓰는 사람을 어떻게 적당히 상대합니까?”

“그만큼 절박하니까 그렇겠죠.”

“절박할수록 논리를 갖추고 필요성을 증명해야죠. 그나저나 차 의원과의 논의에 예산팀장님 안 들어오시게 한 건 잘한 것 같습니다.”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훈의 말에 두진이 쓰게 웃었다.

작년 예산철 사건에 대해 차혜진은 아직도 직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도훈은 그런 예산팀장과 예산팀 직원들을 배려해 이차적으로 예산안이 취합된 이후 차 의원과의 논의 일체를 비서실에서 담당케 했다.

팀장과 직원들은 비서실 부담이 커질 거라며 반대했지만, 도훈은 ‘어차피 예산안 시즌인데 크게 달라질 것 없다’며 이를 관철했다.

“덕분에 직접 싼 김밥에 간식까지 얻어먹고 좋잖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도훈의 조치에 감격했는지 차혜진이 예산 문제로 시장실에 다녀가는 날이면, 꼭 예산팀에서 직원이 직접 싼 김밥을 보내거나 다른 간식을 만들어 보내줬다.

“오늘도 김밥이 오겠네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하.”

“다음 일정이 뭐였죠?”

“알면서 뭘 물어보십니까? 또 조정 논의죠.”

다음 일정도 조정 논의.

어차피 오늘 오후 일정은 전부 시의원들과의 면담이었다.

다음 상대는 비례대표인 송지은 의원이었고, 곧 다부진 표정을 한 그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살살 하시죠, 의원님.”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시장님.”

그렇게 엄살을 피우며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려는데, 송지은이 다른 얘기를 꺼냈다.

“아, 시장님. 그거 아세요? 어제 안준식 의원이랑 장민호 의원이 말다툼했다는 거요.”

“금시초문입니다.”

“아,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뭣 때문에요?”

“OO 시에서 이사 온 전 우리 당 당원 때문에요.”

“... 네? 차인호 씨요?”

“아시네요.”

“그분이 왜요?”

의아한 표정으로 도훈이 묻자 송지은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안 의원님이 그분에게 마음이 쓰이셨나 봐요. 직접 만나서 식사도 하시고 다독이고 하셨는데 우리 당에서 마음이 완전히 떠나간 것 같다고 걱정하시더라고요.”

“... 그리고요?”

“그분 좀 잘 챙기자고 우리 당 시의원들에게 말했는데, 장민호 의원이 뭐 그런 문제아까지 챙기냐고 얘기했다가 말다툼으로 번졌죠.”

“문제아요?”

“네.”

이어진 송지은의 말은 이랬다.

장민호가 이제 우리 식구도 아닌데, 굳이 그런 문제아에게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는 얘길 하자 안준식이 정색하고 왜 차인호가 문제아냐고 따졌다는 것.

문제의 원흉은 조민구 시장이고 주먹을 먼저 휘두른 것도 그인데, 그에 맞섰고 국민의 비판이 높다는 이유로 징계를 한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는 게 안준식의 주장.

“장 의원님이 논리적으로 꼬치꼬치 따지는 안 의원님에게 밀리다가 시장님 팬카페 회원을 왜 챙겨야 하느냐고 말하자 안 의원님이 폭발했어요. 그렇게 편협한 생각으로 어떻게 시의원을 하느냐고요.”

“... 진짜요?”

“네. 그다음은 뭐··· 상상에 맡길게요.”

“......”

도훈은 말문을 잃었고 내내 듣고만 있던 두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얘기···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게 쉬쉬해야 할 종류인 것 같은데 왜 얘기해주시는 겁니까?”

“그게 시장님이랑도 살짝 관련이 있거든요.”

“시장님이랑요?”

“네.”

“어떻게 말입니까?”

“궁금하세요?”

“물론이죠.”

씨익.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의 도훈과 두진을 향해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이는 송지은.

도훈과 두진이 그녀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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